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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16화 (116/205)

# 116

비만은 병이다? (1)

힐링 센터는 성공 가도를 내달렸다. 예약제는 성공적으로 정착되었고, 이에 따라 기적은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회원들을 케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다만 어제까지는 기적이 치료를 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신규 방문자들을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마저도 해결되었다. 수정이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실장님, 안녕하세요? 저 출근했습니다. 10시 출근 너무 쾌적하네요."

원래도 수정은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병원이 아닌 센터에서 함께 일할 동료로 보니,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다. 그런 그녀가 합류하자 센터의 분위기가 단번에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기적의 표정도 절로 밝아졌다.

"수정 샘, 어서 와요. 커피 한 잔 할래요?"

"잘 마시겠습니다."

수정은 거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적은 커피를 내려 수정에게 건넸고, 수정이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데스크 밑에서 종이 가방 하나를 꺼내 수정에게 내밀었다.

"유니폼하고 신발이에요. 사이즈 아마 맞을 거예요."

"아, 정말요?"

수정은 신이 나서 유니폼을 꺼내 들었다. 유니폼은 기적의 것과 거의 똑같았다.

영문으로 힐링 센터라고 쓰인 반팔 카라티에 검은색 바지, 벗고 신기 편한 흰색 운동화까지.

다만 차이가 있다면 기적의 상의는 하늘색, 수정의 상의는 분홍색이라는 점 정도였다.

"유니폼 예쁘네요. 바로 입어 봐도 되요?"

"그러세요. 저기 뒤에가 탈의실이에요."

신이 나서 탈의실로 향한 수정은 오래지 않아 환복을 마치고 나왔다. 그런 수정을 본 기적은 딱 예상대로라고 생각했다.

옷태가 좋은 수정은 어떤 옷이든 잘 소화해 낼 것이라 생각했는데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딱 맞네요. 맞춘 것 같아요."

"그런가요? 바지가 살짝 짧은 것 같은데요? 원래 10부 스타일로 사신 거예요?"

"아, 아뇨. 그런 거는 아닌데. 10부가 되어 버렸네요? 그런데 잘 어울려요. 그냥 이대로 입으면 될 것 같은데요?"

"네네. 저도 마음에 들어요."

고개를 끄덕인 기적이 커피 잔을 들고 와 수정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주의할 점들을 알려 주었다.

"여기서는 주의해야 할 게 있어요. 절대 환자라는 말과 치료라는 말은 사용 금지입니다. 저나 수정 샘이나 입에 붙어서 나도 모르게 치료라는 말과 환자라는 말이 튀어나오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신경을 써 보자고요. 환자라는 말 대신 회원, 치료라는 말 대신 운동이라는 말을 쓰는 게 좋아요. 환자를 치료한다고 말하면 불법, 회원에게 운동을 시켜 준다라고 하면 합법. 말장난 같지만 우리나라 법이 그래요. 행여나 습관처럼 치료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면 바로 수정해 주셔야 해요. 수정 샘이니까 수정 잘하겠죠, 뭐."

"네, 뭐라고요?"

기적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을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수정 샘은 우리 센터에서 소아 파트를 담당하게 될 거예요. 지난주부터 소아 광고를 올렸거든요. 그 덕분인지 1명이 예약을 잡았어요. 오늘 11시쯤 오신다고 했으니까 수정 샘이 잘 치료해서 회원 가입 받아 봐요. 첫 번째 미션입니다."

"알겠습니다. 첫 번째 미션 잘해 볼게요."

그것으로 전달 사항 종료.

깔끔하게 전달을 마친 기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 들이닥칠 회원들의 공세를 막아 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수정이 그런 기적을 도왔고, 10시가 됨과 동시에 기적은 클로즈라고 적혀 있던 팻말을 오픈으로 돌렸다. 하루 일과가 시작된 것이었다.

***

힐링 센터는 2시부터 3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그 시간을 이용해 점심도 먹고, 쉬는 시간도 가지며 오후를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예약도 받지 않았기에 기적과 수정은 걱정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배달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이렇게 수정 샘이랑 같이 점심 먹는 것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그러게요. 예전에는 매일 같이 먹었는데……."

"그때 생각나네요, 일은 어때요? 할 만해요?"

수정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정신없어요.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기적은 그런 수정을 위로했다.

"자신감을 가져요. 아까 왔던 정은이도 회원 등록하고 갔잖아요. 마음에 들었으니까 5회 이용권도 끊은 것 아니겠어요?"

기적이 말한 정은이란 오전 예약 환자였던 김정은이라는 8세의 아이였다.

경미한 소아마비 증상이 있는 아이였는데 수정은 김정은을 훌륭히 치료했고, 엄마는 치료가 마음에 들었는지 회원 등록은 물론 5회 이용권까지 충전해 버렸다. 잘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였다.

그때를 떠올린 수정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뿌듯한 감정이 떠올랐다.

"실장님 덕분이죠. 다 예전에 실장님이 소영이 치료하던 거 보고 배운 거니까요."

"보고 배웠다고는 해도 다 본인 능력이죠. 그렇게 따지면 저도 보고 배운 건데. 그나저나…… 수정 샘도 이제 바빠질 것 같은데요?"

"어, 왜요?"

"저쪽 소문 빠르잖아요. 아까 어머님이 SNS 같은 데다 소문내시면 보고 많이들 찾아오실 것 같은데요?"

"그러려나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네요."

"실력만 좋으면 사람들은 찾아오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쳤을 때였다. 문득 문이 열리며 인기척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 어?"

몸을 일으키며 양해를 구하려던 기적이 어!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너무나 낯익었던 탓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기적은 그 사람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원장님!"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명의진이었다. 명의진은 조금 수척해진 얼굴이었지만 여전히 얼굴에 젠틀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실장님. 어? 정수정 선생님도 계셨군요? 두 분이 여기서 일하시는 겁니까?"

기적은 조금 곤란한 얼굴이었다. 명의진의 눈에 지금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명의진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긴요. 사과할 사람은 전데요. 며칠 전에야 실장님이 그렇게 떠나게 됐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과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특수 치료실 직원분들께 여쭤보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사과라니요, 뭐 그런 말씀을. 원장님이 저한테 사과할 게 뭐가 있습니까? 저야말로 죄송하죠. 이렇게 병원 근처에 센터를 차리게 되어서……."

두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해서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잘못한 것이 없었으니까. 명의진은 몸이 아팠을 뿐이고, 기적은 새 직장을 찾았을 뿐이었다.

그것을 느꼈을까?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피식 웃었다.

"실장님은 정말 여전하시네요."

"원장님도 여전하시네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수정이 커피를 가져왔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병원을 떠나셨다는 말씀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사장님 결정이라고 들었는데 아마 석한이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겠죠."

한 모금 들이켠 커피가 너무 썼던 것일까? 명의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석한이가 어렸을 때 엄마를 잃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비틀린 심성이 있어요. 아비인 내가 그 비틀린 심성을 바로잡아 줘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석한이가 잘못하는 일이 사실은 다 제 잘못인 거죠.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아버지로서 실장님께 사과를 드리는 겁니다."

기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 닥터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악연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순화해서 말해도 결코 좋은 사이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굳이 옆에서 투덕거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고, 석한이도 제가 없는 생활에 만족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원장님도 부담 가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마음 쓰시다가 건강 해치면 안 되잖아요."

명의진은 크게 침음을 내뱉었다.

사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석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적의 해임에 대한 자초지총을 듣기 위해서 만든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그가 석한에게 들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자기변명과 기적에 대한 험담뿐이었다.

그런데 기적은 달랐다.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덤덤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는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석한과 기적의 그릇 크기가 애초부터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가 흘린 침음은 바로 거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석한이도 실장님과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왜일까? 어쩐지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자꾸만 석한과 기적의 악연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명의진은 말머리를 돌렸다.

"그나저나 센터 잘 꾸며 놓으셨네요? 운영은 잘됩니까?"

"지금까지는 잘되고 있습니다."

"뭐 당연한 일이죠. 실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마침 커피가 떨어졌고, 명의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가 너무 무거우면 안 되지. 휴식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합니다. 센터가 더욱 번창하기를 빌겠습니다."

"원장님도 건강 꼭 회복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기적은 어느 때보다도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다시 볼 일이 없는 명의진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자꾸만 명의진을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

기적은 오후 일과를 시작했다. 3시가 되기 무섭게 예약된 회원이 찾아온 것이었다.

"실장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박충석 님. 1주일 만인가요?"

"예예. 일이 바쁘다 보니 겨우 짬을 내서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바로 봐 드리겠습니다."

박충석은 팔꿈치 수술로 인해 어깨 관절과 팔꿈치 관절에 가동 제한이 생긴 회원이었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박충석은 겁이 상당히 많은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수술 이후 수술을 받은 오른쪽 팔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심한 가동 제한이 생긴 것이었다.

그 때문에 기적은 그 가동 제한을 푸는 데 중점을 두고 치료를 진행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팔에 힘을 빼는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제가 이렇게 아무리 펴 드려도 무용지물이 돼 버려요."

그러자 박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 참 신기해요. 내가 아픈 팔은 오른쪽 팔인데, 실장님은 왼팔을 통해서 오른팔을 좋아지게 만들잖아요."

상기된 박충식의 목소리에 기적은 피식 웃었다. 아프지 않은 쪽의 팔을 통해서, 혹은 다리를 통해서, 아픈 쪽 팔다리를 치료하는 것은 PNF의 주된 치료 콘셉트였고, 기적은 이를 적용했을 뿐이었다.

"별로 대단한 거는 아니에요. 통증 없이 가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건 분명 장점이지만 그만큼 적용이 힘들고 그만큼 회원님을 힘들게 한다는 단점이 있거든요."

"하긴…… 이거 하고 나면 좀 힘들기는 해요."

그것이 PNF의 단점이었다. no pain no gain. 아무래도 반대쪽 팔을 이용하는 만큼 아픈 쪽에 영향을 주기 위해 더욱 강한 힘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는 좋지 않은 움직임을 억제하는 보바스와 접목시킨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면 피로도도 줄이고 치료도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기적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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