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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113화 (113/205)

# 113

어제보다 나은 오늘 (9)

* * *

매주 수요일은 힐링 센터의 정기 휴무일이다. 매일 일할 수는 없으니 가장 한가한 수요일로 휴일을 정한 것이다.

모처럼 휴일을 맞이한 기적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오픈 이후 약 보름간 벌어들인 금액을 계산했다.

"카드 명세서가 670만 원…… 현금으로 받은 돈이 180만 원…… 합이 850만 원이구나. 와, 생각보다 엄청 벌어들였네!"

기적은 행복한 비명을 내질렀다.

명성 병원을 다닐 때 그는 월급으로 350만 원 가량을 수령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직장인으로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액수였다.

그런데 힐링 센터를 연 뒤에는 2주 만에 무려 850만 원을 벌어들였다.

약 20%의 운영비를 고려하더라도 한 달에 거의 1,5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인다는 계산이 서는 것이다. 더구나 센터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한 달에 1,500만 원이라……. 지금 추세라면 2천까지도 가능하겠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센터가 호황을 누리는 것은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것이 주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기적이 센터를 오픈한 것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치료를 해내기 위함이었지 큰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뭐 다음부터는 꼭 예약을 한 뒤에 방문해 달라고 했으니까 사람들도 예약을 하고 오겠지. 수입이 조금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아."

기적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문득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오며 전화가 들어왔다. 스마트폰에는 '엄마'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기적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그러자 곧바로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들 잘 지내고 있지? 밥은 먹었고?

"밥? 아직. 이제 먹으려고…… 그런데 무슨 일이야?"

-너 오늘 할아버지 기일인 거 알고 있지? 큰아버지 댁으로 올 수 있나 해서.

솔직히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너무 바쁘다 보니 거기까지 신경을 쓸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기적은 큰아버지 댁에 방문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기적의 목소리가 삐뚤어졌다.

"나까지 꼭 가야 되나? 나 오늘 조금 바쁜데?"

-많이 바빠? 어지간하면 왔으면 좋겠는데. 신적이도 온다는데 너도 오면 좋잖아.

이신적은 큰아버지의 아들로 기적의 사촌 동생이었다.

"신적이는 자기 집인데 당연히 오는 거 아니야? 할아버지 제삿날 외박할 생각 아니면?"

-……그건 그렇지……. 그래서 아들, 못 온다고?

기적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어쩐지 풀이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에 마음을 바꾸고 말았다.

"알겠어. 오늘 늦지 않게 갈게. 할아버지 제사인데 손주가 가 봐야지."

-그래, 잘 생각했다. 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고 큰아버지 선물도 좀 사 들고 오고.

"뭐가 예쁘다고 선물까지…… 알았어. 뭐라도 들고 갈게. 이따 봐."

-그럼 이따 봐, 아들!

그것으로 통화 종료.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기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쉬는 날만 아니었으면 못 간다고 하는 건데……."

앞선 전화 통화에서도 드러났지만 기적은 큰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 몰라라 도시 생활을 하다가 거액의 보상금이 있다는 것을 들은 뒤에야 할아버지를 모신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뻔뻔하게 전 재산을 독식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주제에 모든 것을 양보한 아버지 어머니를 무시하는 태도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만 가면 얹히는 기분인데…… 소화제라도 먹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기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겠어. 가야지."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부모님에 대한 도리리라.

외출 준비를 마친 기적은 곧 신발에 발을 집어넣었다. 날이 저물기 전에 여러 용무를 보려면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날이 저물 시간이 되자 기적은 선물 세트를 챙겨 집을 나섰다.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분당.

이제는 성남시에서 독립한 독립 도시로 천당 위에 분당이라고 불리는 부자 동네였다.

한숨을 내쉰 기적은 정자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기적이 살고 있는 신림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열차는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는 여전하네?'

사방을 둘러봐도 으리으리한 집들로 가득한 거리. 기적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저택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곳이 큰아버지인 이성훈의 집이었으니까.

벨을 누르고 큰아버지 댁으로 들어가자 60대의 나이답지 않게 젊은 외모를 가진 큰어머니가 기적을 반겼다.

"기적이 왔니? 어서 와라."

기적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홍삼 세트를 내밀었다.

"이것 좀 드세요. 갱년기에 좋다고 해서 사 왔어요."

"그래, 고맙구나. 안으로 들어가 봐라. 동서는 잠깐 마트에 갔고…… 큰아버지랑 서방님은 벌써 한잔하고 계신다."

"예……."

올 것이 왔구나. 바짝 긴장한 기적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를 발견한 사촌 동생 이신적이 반갑게 인사하며 자기 옆자리를 툭툭 쳤다.

"여어, 형 왔어? 이리 와서 앉아."

"어어……."

힘없이 대답한 기적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비실비실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큰아버지가 일장연설을 앞둔 교장 선생님처럼 험험 헛기침을 했다. 스트레스의 시작이었다.

기적은 상 앞에 앉아 애꿎은 오징어 다리만 쥐어뜯었다. 이제나 저제나 끝나기만을 기다렸지만 큰아버지의 잔소리는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냐?"

"네네, 듣고 있습니다."

"네 나이가 내일 모레면 서른이 아니냐? 그러면 이제 슬슬 장가도 가고 할 나이인데. 모아 둔 돈도 한 푼 없어 아직까지 뚜벅이 신세가 웬 말이냐?"

'아니, 내가 지금 왜 여기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지?'

기적은 문득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실제로 말을 내뱉을 용기는 없다. 그래 봐야 훈계를 듣는 시간만 늘어날 테니까.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이신적이 불쑥 끼어들었다.

"형이 그러고 싶어서 그러나? 형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건데 아빠는 왜 그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지금 기적의 심정이 딱 그랬다.

'저 자식은 가만이나 있지. 왜 나서서 사람 속에 불을 질러?'

기적이 내심 빠드득 이를 가는데, 보다 못한 이성진이 나섰다.

"그래, 신적이는 요즘도 하는 일 잘되고? 요즘 경기가 불황이라고 하던데."

"헤헤, 신기한 게 불황도 저는 피해 가더라고요? 이번에 하나 뽑았어요."

이신적은 주머니에서 자동차 스마트키를 꺼내, 보란 듯이 상 위에 올려놓았다.

거기에는 날렵한 표범이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한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야생마가 뿜어내는 생동감이 마치 스마트키 밖까지 뛰쳐나오는 듯했다.

그 마크를 본 아버지 이성진은 큼큼거리며 시선을 외면했다.

이성훈은 소리 내 껄껄 웃었다.

"신적이가 공부는 조금 못 했어도, 사업 수완이 있다니까? 강남 쪽에 작은 카페 하나 차려 줬더니 월 수익이 1천을 훌쩍 넘는다잖아. 이것저것 다 떼도 1천만 원 정도는 번다나 어쩐다나."

"에이, 아빠도 참. 운이 좋았어, 운이!"

이신적이 아니라는 듯 빠르게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손사래를 치는 그의 시선은 묘하게 기적을 향해 있었다. 어딘가 내려다보는 듯 오만한 눈빛을 한 채로. 모르긴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울컥한 기적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했다.

"저도 강남에 센터 차렸어요. 양재 역 앞에요."

그 말에 이신적이 씨익 웃었다. 올라간 입꼬리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좋은 먹잇감을 발견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이신적이 말했다.

"강남에 센터를, 또? 어쩌다가? 저번에 한 번 망하……. 아니 잘 안 돼서 병원에 들어간 것 아니었어? 작은 아빠가 좋은 병원에 들어갔다고 엄청 자랑하시던데…… 왜 그런 거야?"

이성진도 깜짝 놀라 말을 물었다.

"너 병원 다니는 것 아니였냐? 강남에 센터를 차렸다니 무슨 말이야?"

기적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 전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서 센터를 차리게 됐어. 나는 들어가서 일만 하고 수입을 8 대 2로 나누기로 했어. 내가 8이고 건물 주인이 2."

이신적이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구나. 그런데 작은 아빠 말씀처럼 요즘 불경기인데 센터가 잘되려나 모르겠네. 힘들지 않아?"

"힘들지."

기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신적의 입꼬리가 미미하게 올라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 그러나 이어지는 기적의 말은 그의 표정을 뒤바꾸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기적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회원들이 끝도 없이 찾아와서 너무 힘들어. 조금도 쉴 틈이 없다니까? 한 사람 치료할 때마다 10만 원이나 받는데도 회원들이 나날이 늘어나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이신적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하, 한 사람당…… 10만 원? 많이 받네? 그런데도 회원이 계속 찾아온다고? 그럼 한 달에 얼마나 벌어?"

"계산 안 해 봤는데…… 말 나온 김에 한번 계산해 볼까? 하루에 10명 정도는 오거든. 그럼 한 달로 치면 얼마가 되지?"

기적이 영 계산이 되지 않는다는 듯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이신적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10명이면 하루에 100만 원이니까 한 달에 3천? 한 달에 3천을 번다고?"

"에이, 3천까지는 아니지. 최근에야 이렇게 늘어난 거고…… 1주일에 한 번씩 쉬기도 하고…… 추가로 할인해 드리는 것도 있고…… 운영비랑 공과금도 들어가니까……."

말끝을 흐리는 기적의 모습에 이신적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숨을 돌렸다. 그 정도라면 얼추 자신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그러나 이어진 기적의 목소리는 그런 이신적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렸다.

"달에 한 2천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은데?"

"2, 2천 정도라고? 형, 확인할 수 없다고 너무 막 지르는 것 아니야?"

그렇게 반문하는 이신적의 표정에는 믿기 힘들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이성훈, 심지어는 아버지인 이성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한 달 전만 해도 병원에서 일한다던 기적이 그 짧은 기간 동안 한 달에 2천만 원을 버는 사업가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언중유골이라는 것을 느낀 것일까? 기적이 스마트폰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는 어플을 가동시켜 지난 2주 동안 벌어들인 수입을 공개했다.

"확인할 수 없기는…… 여기 이렇게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기적이 내민 어플에는 상호명 힐링 센터의 지난 2주간의 수입 내역이 정확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이성훈과 이신적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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