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어제보다 나은 오늘 (5)
기적이 넋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남중단을 향해 말했다.
"남중단 님,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은 암 같은 불치병이 아니에요.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질환이에요. 저와 함께 운동하다 보면 통증은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아직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남중단은 여전히 무기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목소리가 그 표정을 바꿔 버렸다.
"기운 내셔야죠, 저기 있는 손주들을 생각해서라도."
"손주들을 위해서……."
남중단은 그렇게 뇌까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감았던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눈빛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그런 남중단을 향해 기적이 말했다.
"이런 종류의 증상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합니다.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야 극복해 낼 수 있어요. 뭐, 남중단 님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남중단의 모습에서 기적은 떠올린 것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은 강하다는 것을. 손주들이 있는 한 남중단은 쓰러지지 않는다, 아니, 쓰러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기적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뭐든 해 봅시다. 내가 우짜면 돼요?"
전에 없이 또렷하고 의욕 넘치는 남중단의 목소리가 그 증거였다.
기적은 살짝 웃으며 그 질문에 답했다.
"열심히 치료받으러 오시고 또 열심히 치료받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다시 일상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사설은 거기까지였다. 남중단의 동기부여가 확실한 이상 더 이상 말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기적이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남중단의 증상은 아직 중증까지는 아니었다. 역치(통증을 느끼는 최소한의 자극)도 보통의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에 비하면 좋은 편이었고, 골절이 발생한 시기가 6개월 전이라는 점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보통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은 골절 후 3개월 후 즈음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는 괜찮으시죠?"
기적은 남중단의 오른쪽 팔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러자 남중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괜찮기는 한데……."
그렇게 대답하는 남중단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잔뜩 어려 있었다. 치료를 한다기에 뭔가 대단한 치료를 할 줄 알았는데 팔을 쓰다듬고만 있으니 이게 뭐 하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그 눈빛을 신경 쓰지 않고 침착하게 치료를 이어 나갔다.
'뭐 하는 건가 싶어도 곧 이해하게 될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기적이 아무 생각 없이 남중단의 팔을 쓰다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 읽었던 통증에 관한 논문을 떠올리고 그렇게 한 것이었다.
흔히 가벼운 화상을 당했거나 작은 타박상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그 부위나 그 옆을 살살 쓰다듬는다.
어떤 이론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사람들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실제로 통증이 줄어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과연 그게 기분 탓일까? 기적이 참고했던 논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쓰다듬는 행동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관문 조절설이라는 통증 조절 이론이 있었다.
관문 조절설(gate control theory)이란 통증의 문지기 역할을 하는 교양질 세포와, 통증을 전달하는 T 세포를 조절하여 통증을 억제한다는 이론이었다.
통증을 전달하는 얇은 신경 섬유가 흥분하면 문지기인 교양질 세포가 억제되어 관문이 넓어지고, 통증이 뇌로 전달되지만, 촉각 등을 전달하는 굵은 신경 섬유가 흥분하면 교양질 세포를 흥분시켜 관문을 닫게 만들고, 이에 따라 통증이 뇌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넓게 쓰다듬는 행위가 교양질 세포를 흥분하게 만들고 이에 따라 통증이 억제된다는 말이었다.
기적이 남중단의 팔을 쓰다듬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동작을 통해 관문을 좁혀 역치를 상승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언제까지고 팔만 쓰다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전 작업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면 다음 치료를 진행할 단계였다. 팔에서 손을 뗀 기적이 남정단 스스로 팔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일단은 1KG 덤벨인데요. 이걸 잡으시고 저를 따라 움직여 보세요."
하지만 남정단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주름진 얼굴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맨 몸으로 움직여도 통증이 생기는데 무게를 달고 움직이라니…… 이건 도저히 무리라고.
"……."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적은 재차 권했다.
"일단 한번 해 보세요. 해 보시고 말씀하세요."
결국 남중단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아령을 받아 들었다. 아령을 받아 드는 남중단의 손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바람만 스쳐도 통증이 느껴지는 오른팔이었다. 그런데 가볍다고는 해도 무게를 들고 움직인다면 그 결과는 뻔했다.
'참아야지…… 참아 보자.'
남중단은 단단히 마음을 먹으며 아령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음?'
무거운 아령을 받아 들었음에도 팔에서 별다른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에는 작은 물 컵만 들어도 통증이 느껴졌을 오른팔이 무거운 아령을 들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남중단은 그 점이 궁금했다.
"어라? 팔이 안 아프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기적은 알아듣기 쉽게 이를 설명해 주었다.
"옛날에 엄마 손이 약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엄마가 배를 만져 주면 배가 안 아파지잖아요. 그게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닙니다. 실제로 효과가 있는 거죠. 저는 그걸 이용해서 남중단 님의 팔을 만져 드린 겁니다.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물론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중단이 손을 움직이기 무섭게 약간의 통증이 찾아왔다. 남중단이 이를 말했으나 기적은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약간의 통증은 참고 계속 따라해 보세요. 괜찮아 질 겁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남중단의 움직임을 지도하던 기적이 불쑥 말했다.
"어떠세요, 통증 아직도 있으세요?"
그 말에 남중단은 깨달았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지만 팔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놀람이 가득 섞인 음성으로 남중단이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요? 팔이…… 팔이 안 아프네!"
통증이 느껴지던 팔에서 어느 순간 통증이 사라졌다. 마법과도 같은 사실에 남중단은 놀람을 표했다.
"와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아, 진우 남매의 얼굴도 밝아졌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해도 좋아지지 않던 할머니의 통증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기적은 그렇게 대단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운동을 하면 아드레날린이 나옵니다. 어지간한 통증은 느끼지 못하게 되죠. 그래서 그런 겁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단계를 밟아 나간다면 통증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걸 페인 컨트롤이라고 말합니다."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이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라 평가받는 이유는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다. 손만 대도 통증을 호소하니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치료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가 통증에 둔감해진 상태라면?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더 이상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은 난공불락의 병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움직여 볼게요. 제 손을 따라오세요. 아프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고요."
남중단의 손을 잡은 기적이 움직임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남중단은 처음에는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는지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를 캐치한 기적이 강도를 수정함에 따라 이내 안정세를 되찾았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다.
페인 컨트롤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는 일은 기적으로서도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 환자는 물론이고, 페인 컨트롤이 필요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환자를 치료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이러한 콘셉트의 접근은 처음이었다.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도전은 다행히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새로운 치료에 성공했습니다.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보상으로 550(+5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달성도가 올랐습니다. 환자의 통증 수치가 5만큼 감소했습니다. (91/100 → 86/100)
-새로운 치료의 성공으로 PNF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81/100)
-새로운 치료에 성공하며 보바스 치료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습니다. (31/100)
마침맞게 떠오른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40여 분에 걸친 치료가 끝나고 남중단이 지은 밝은 표정은 그 어떤 것보다 확실한 증거가 되어 주었다.
"고맙소, 고맙소. 팔이 한결 좋아졌어. 선상님 덕분에 팔이 한결 편해졌어. 이렇게 움직여도 아프지도 않고. 이거 참 신통방통한 일이네."
팔을 움직여 보며 말하는 남중단의 주름진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어려 있었다. 의식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간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지며 절로 떠오른 미소였다. 이를 본 기적의 얼굴에도 뿌듯한 미소가 어렸다.
"좋아지셨다니 저도 기쁘네요. 앞으로 열심히 해 보자고요. 매일 이 시간에 오세요. 제가 이 시간이 한가하거든요."
소기의 성과를 거둔 덕분일까? 그렇게 말하는 기적의 목소리에서는 파이팅이 넘쳤다. 그러나 반대로 남중단의 얼굴에는 그늘이 어렸다. 손사래를 치며 그녀가 말했다.
"아니여. 나는 오늘로 됐어. 오늘 해 준 것만도 너무 고마워. 많이 좋아졌으니까 한동안 살만 하겄지."
기적은 남중단의 모습에서 짚이는 바가 있어서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요금 때문에 부담이 돼서 그러세요?"
"……."
남중단은 말이 없었고, 기적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혹시 요금 때문이라면 그냥 오세요. 오셔서 치료받으세요."
남중단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없이 살아도 남한테 피해는 안 주고 지금까지 살았어.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냥 와서 치료를 받겠어. 이렇게 고생하면서 치료해 주는데."
기적은 흐르는 땀을 닦은 뒤 말했다.
"땀 몇 방울 흘린다고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뭣보다 당사자가 피해라고 생각 안 하는데요? 남중단 님 같은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라 제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계속 오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에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운데……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지……."
남중단은 단호한 표정으로 선을 그었다. 무려 70년을 살아온 할머니의 고집은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것이었다. 결국 기적은 비장의 한수를 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