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97화 (97/205)

# 97

아버지를 위한 콘서트 (10)

-콰드리 포지션으로 시작할게요.

기적이 그렇게 말하자 김중덕이 움직였다. 팔의 반동을 이용해 몸을 엎드린 그는, 이내 팔의 각도를 줄이며 프론(엎드린) 자세에서 콰드리(네 발)자세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떨림이 발생하긴 했지만, 그 증상은 이내 없어졌다. 이는 동작을 펼치는 데 별다른 무리가 없었다는 뜻으로 그동안의 반복 훈련에 소뇌가 거의 적응을 마쳤다는 것을 뜻했다.

-보통 운동 실조증 환자는 떨림 증상이 굉장히 심하게 나타납니다. 여기 김중덕 님 역시 처음 콰드리 포지션을 취할 때에는 떨림 증상이 굉장히 심하셨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떨림 증상이 거의 없어졌죠. 이게 뭘 뜻하겠습니까? 협응 훈련을 계속해 뇌에 정보를 입력하면 운동 실조증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육생들은 놀란 눈을 빛내며 기적의 치료를 지켜보고 있었다. 만약 조금 전 교육생들이 콰드리 포지션을 만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원래부터 떨림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려니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조금 전 그들은 보았다. 예의 교육생들이 콰드리 포지션을 만들 때 김중덕의 몸이 얼마나 떨림을 보였는지를.

그런데 기적이 나서자 거짓말처럼 떨림이 없어지니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직접 치료를 했던 교육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왜지? 왜 저 사람이 하면 떨림이 일어나지 않지?'

교육생들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기적의 치료를 살폈다. 하지만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살펴봐도 그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치료사의 노하우란 시력이 좋다고 해서 찾아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집중하세요, 여기를 잘 보세요. 이런 말 따위는 필요 없었다.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교육생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잘 보이지 않는지 통로로 나와 치료를 지켜보는 이들도 하나둘 생겨났다. 그들의 눈에서는 기적의 치료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적의 치료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콰드리 포지션에서의 치료를 보여 준 기적은 어느새 싯 투 스탠드를 위한 자세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스탠딩 포지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체의 체중입니다. 체중을 최대한 앞으로 넘긴 상태에서 몸을 일으켜야만 쉽게 일어날 수 있고 떨림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의식해 중심을 너무 앞으로 가져오면 환자의 엉덩이가 빠져 자칫 뒤로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다시 김중덕을 향해 시선을 돌린 기적이 말을 이었다.

-체중 조금만 더 앞으로 넘기시고…… 일어나세요.

기적의 조언에 따라 상체의 각도를 잡은 김중덕이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좌중에서 다시 한 번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 교육생이 했을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는 김중덕 때문이었다.

"뭐야? 뭘 어떻게 한 거야?"

"그러게. 뭐 별로 다르게 한 것 같지도 않은데 환자는 왜 저렇게 쉽게 일어나는 거야?"

"같은 환자가 맞나 싶은데? 중간에 바꿔치기 한 것 아냐? 정말이지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네."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기적의 치료는 계속되었다.

'오늘 컨디션이 정말 좋으시네? 어쩌면 게이트를 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렇다면…….'

오늘은 게이트에 도전해 보겠다. 이렇게 마음먹은 기적은 게이트를 위한 사전 준비에 들어갔다.

무릎을 굽혔다 펴며 다리에 힘을 기르고, 또 다리를 들어 올렸다 정확한 위치에 내려놓는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시켰다.

-다시! 다시! 발을 정확하게 내려놓으세요. 속도에 신경 쓰지 말고. 다시! 다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예정된 시간에서 5분을 남겨 놓은 시점에서 기적은 잠시 치료를 멈췄다.

-오늘은 게이트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게이트는 아직까지 한 번도 도전해 본 적이 없는, 처음 도전해 보는 동작인데요. 과연 김중덕 님이 하실 수 있을지 지켜봐 주세요.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말에 교육생들의 집중력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진 소강당에 기적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김중덕 님! 하나에 워커 밀고, 둘에 왼발! 셋에 오른발입니다. 자, 하나!

기적이 하나를 외쳤다. 그러나 김중덕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평소와는 다른 정신력으로 무장한 그였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쉽지가 않은 듯했다.

그러한 낌새를 눈치챈 것일까? 기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뒤에 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김중덕을 일깨웠다.

'그래. 뒤에는 선생님이 있고, 앞에는 아들이 있다. 용기를 내자, 김중덕.'

쉽지 않은 도전 앞에서 김중덕의 발걸음은 상당히 무거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첫 비행을 앞둔 새처럼, 지금 이 순간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계속 걸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발을 들어 올리는 연습을 수없이 진행했어. 해내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

드륵.

김중덕은 마침내 워커를 밀었다. 그리고 둘! 이라는 기적의 구령에 맞춰 왼발을 들어 올렸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저 워커를 잡고 발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김중덕은 덜덜 다리를 떨면서도 침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따라 워커, 왼발, 오른발. 이는 결코 정상적인 발걸음이라 할 수 없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이 떨렸고, 보폭이라고 하기에도 뭐할 정도로 이동 거리가 짧았다.

하지만 누가 감히 비웃을 수 있으랴? 필사적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 사람을 보고 말이다.

졸지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모두는 느낀 것이었다. 지금 김중덕의 게이트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그리고 특별한 한 사람. 맨 뒷자리에 앉은 김중덕의 아들 김정수는 아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두운 조명에 얼굴을 가린 그는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슈퍼맨과도 같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이 강하고, 빨리 달리고, 운동도 잘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왜 그렇게 커 보였는지.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아버지와의 팔씨름을 이기게 됐고, 보다 빨리 달리게 되었다. 기쁘다기보다는 서글펐다, 아버지의 어깨가 작게 느껴지는 것이.

그랬던 아버지가 쓰러졌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킬 것 같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사고 이면에 자신을 위한 집 대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정말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자신이 아버지를 절벽에서 밀어 버린 것 같아 모든 걸 다 놔 버리고 싶은 충격에 빠졌다. 자신으로 인해 아버지가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다시는 걷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다시 걷고 있었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던 일을 아버지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어릴 적 품었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어쩌면 아버지는 정말로 슈퍼맨일지도 모르겠다고. 작아 보였던 아버지가 다시 커 보이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중덕은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채 열 걸음을 옮기기도 전 김중덕의 체력은 바닥이 났고, 기적은 재빨리 나서 다리가 풀린 김중덕을 부축해 주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아주 잘하셨어요."

"여여어어얼씨이이미이이 해애애쓰으으읍니이이이다아아아."

김중덕이 창백하지만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답했을 때였다. 좌중 어디선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박수 소리는 오래지 않아 덩치를 키우며 소강당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기적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그 순간이었다.

-퀘스트 [아버지를 위한 콘서트]의 달성 조건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5,500(+5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레벨 업 확정권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김중덕이 독립적인 게이트를 하면서 퀘스트가 완료된 것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며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린 기적이 어느 순간 입을 열었다.

-사실 오늘 환자분의 아드님이 와 계십니다. 저기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고 계신데요. 평소 김중덕 님의 아드님 자랑이 대단했습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라서 바이올린을 기가 막히게 켜신다고요. 그 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피로가 싹 달아나는 기분이라고요. 그런데 아까 아드님을 보니까 바이올린을 가지고 오신 것 같더라고요. 아까 가지고 오신 것 바이올린 맞습니까?

기적이 김정수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김정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네! 하고 대답해 왔다. 빙긋 웃은 기적이 본론을 꺼내 놓았다.

-역시 바이올린 맞군요. 아버지가 아드님의 바이올린 연주를 참 좋아하신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아드님이 앞으로 나오셔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려주세요. 그러면 그동안 제가 아버님을 걷게 해 보겠습니다. 그냥 걸었을 때와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걸었을 때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자고요. 해 주실 수 있죠?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김정수를 향해 돌아갔고, 김정수는 말없이 몸을 일으켰다. 바이올린을 든 김정수의 발걸음은 단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소강당에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에 맞춰 김중덕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워커를 밀고 왼발, 오른발. 다시 워커를 밀고 왼발, 오른발. 그는 마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발레를 하는 사람처럼 리드미컬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분명 조금 전 김중덕의 게이트는 엉망이었다.

다리를 내딛을 때마다 심하게 전신을 떨었고, 그마저도 열 걸음을 못가 다리가 풀려 버렸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 이 순간 김중덕은 믿기 힘들 정도로 안정적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보폭이 곱절은 늘어났고, 전신 떨림도 몰라보게 줄어들어 있었다.

"……."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김정수는 쉬지 않고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바이올린 연주가 끊기는 순간, 아버지의 걸음도 끝날 것만 같아 그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잔잔하게 흐르던 선율이 어느 순간 높아지기 시작했다. 낮은 선율에 맞춰 겨우 발걸음을 옮기던 김중덕이 적응하기 힘들 것 같은 고음이었다.

하지만 김중덕은 높아진 선율에 맞춰 더욱 높이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쩌면 고음역대의 선율은 재활 과정에서 김중덕이 만나게 될 고비를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중덕은 씩씩하게 고비를 넘어갈 것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지켜야 할 가족과 함께하는 한 김중덕은 영원한 슈퍼맨이었다.

높아졌던 음악이 다시금 잔잔해졌다. 이에 따라 높아졌던 김중덕의 발걸음도 다시 원래의 높이로 내려왔다. 크지 않았던 떨림도 다시금 격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슈퍼맨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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