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80화 (80/205)

# 80

내가 있어야 할 곳 (1)

특수치료실은 성공 가도를 내달렸다. 좋은 소문이 퍼졌는지 회원들이 계속해서 증가했고, 이에 따라 기적은 물론 강한수, 임정도, 윤세진의 치료 테이블도 꽉꽉 들어찼다.

아직까지 정수정과 맹동식은 치료 테이블이 절반 정도밖에는 들어차지 않았지만 그들 또한 기구를 이용하는 환자들을 돌보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환자로 가득한 치료실은 활기가 넘쳤다. 여기저기서 치료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환자들은 이 소리에 맞춰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한 번 더! 다시! 한 번 더! 다시!"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렇죠. 다시!"

"핫 둘! 핫 둘!"

그렇게 저마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4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특수치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조심스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초행자였기에, 마침 일이 없던 정수정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그러자 여자가 탐색을 멈추고 이에 답했다.

"어머니가 이 병원에 입원하게 될 것 같아서요. 치료실은 어떤지 구경 한번 왔어요."

수정은 친절하게 응대를 해 주었다.

"여기는 특수치료실이에요. 특별히 원하지 않으시면 아마 일반 재활 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게 되실 거예요. 일반 치료실은 코너를 도셔서 반대쪽으로 가셔야 해요."

"아! 재활 치료실은 보고 왔어요. 지금 특수치료실하고 재활 치료실을 비교하는 중이에요."

그 말에 수정의 눈이 반짝 빛났다.

"실비 보험이 있으시면 저희 쪽에서 치료받는 것도 고려해 보세요. 저희 실장님도 그렇고 다들 치료 정말 잘하시거든요."

"저희도 사실은 실장님 이야기를 듣고 온 거라서요."

"그래요? 음…… 이제 30분되면 실장님 치료가 끝나시거든요? 잠깐 만나 보고 가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쪽에 잠깐 앉아 계세요. 말씀드릴게요."

의자를 건네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수정은 기적에게로 다가가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치료가 끝나자마자 기적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저기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시는 분요. 곧 입원할 환자분 보호자이신데 재활 치료실이랑 저희 특수치료실 중에 어디서 치료받을지 고민 중이신가 봐요. 실장님 이야기 듣고 오셨대요."

"아, 그래요? 제가 가 볼게요."

그렇게 기적은 예의 여자와 얼굴을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기적 실장입니다. 여기 저기 둘러보고 계신다고요?"

"네. 저희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받으셨는데…… 어디서 치료받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라서요."

"아, 그러시군요. 재활 치료실이나 저희 특수치료실이나 치료는 다 잘해 주십니다. 잘 둘러보시고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잘해 보시고 결정하세요. 만약에 이쪽으로 오게 되시면 정말 열심히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기적은 굳이 특수치료실로 오라고 권유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더욱 보호자의 믿음을 끌어낸 모양이었다. 보호자가 돌아가고 난 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치료를 하고 있는 기적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주어집니다.

-목표 : 무릎 관절의 관절 가동 범위를 120도 이상 회복시키세요.

-보상 : 깜짝 놀랄 만한 제안.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난 것이었다. 기적은 그 퀘스트의 주인공이 조금 전 치료실에 들렀던 보호자의 어머니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던 보호자 덕분이었다.

'아직 내 환자 중에 무릎 수술을 받은 환자는 없으니까. 그나저나 120도라…… 쉽지 않겠는데?'

정상적인 사람이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무릎 관절 최대 가동 범위는 135도다.

하지만 수술을 하게 되면 이 범위가 상당 부분 줄어든다. 나이나 성별, 상태 등에 따라 예후가 다르겠지만 최대 90%를 최대 회복치로 본다. 135도의 90%…… 그러니까 122.5도를 한계치로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스템은 이번 목표를 120도로 설정하고 있었다. 한계치인 122.5도에는 살짝 못 미치는 수치이지만 적지 않을 환자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내준 셈이었다.

어려운 목표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이번 퀘스트의 보상이 심상치 않았다.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이라…… 그게 뭘까?'

기적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답을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전 치료를 마친 기적은 컴퓨터를 이용해 환자 차트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환자가 추가되어 있었다.

인정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78세의 여자였는데 퇴행성관절염으로 인한 무릎 연골 손상으로 수술을 한 환자였다.

'아, 이분이 인정선 님이구나. 수술한 지는 얼마 안 되셨고…….'

차트를 살펴 내려가던 기적은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이 환자를 다른 선생님에게 넘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무릎 수술 환자는 윤세진 선생님에게 맡겨 봐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의 그런 생각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차트 마지막에 적힌 담당의 명석한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치료는 꼭! 이기적 실장님에게 받고 싶다고 합니다!

'아…… 외통수였구나. 그나저나 치료는 꼭! 이라…….'

어쩐지 메시지에서 명석한의 분노가 느껴지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기도 잠시, 기적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환자의 차트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환자의 발병일과 직업, 또 현재의 상태 등등, 치료 계획을 세우기 위한 정보 수집에 들어간 것이다.

몇몇 이해하기 힘든 점들이 보였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인해 뼈가 맞닿을 정도로 연골이 닳아 없어졌고…… 이로 인한 인공 관절 수술을 하셨다라……. 도대체 얼마나 연골이 닳아 없어지면 뼈와 뼈가 맞닿을 수 있지? 그리고 왜 그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신 걸까?'

기적은 조금 화가 났다. 조금만 일찍 조치를 취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침음을 내뱉을 때였다. 문득 책상에 있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으니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원장실입니다. 실장님 맞습니까?

기적은 자세를 바로한 뒤 대답했다.

"네, 접니다. 말씀하세요, 원장님."

-아직 식사 전이시죠?

"네? 네. 이제 막 먹으러 가려던 참입니다."

-그래요? 안 드셨으면 저랑 같이 드시죠. 오랜만에 중국 음식을 시켜 먹을까 하는데……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요.

"그렇습니까?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기적이 전화를 끊으려 할 때였다. 다급한 명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잠시만요. 메뉴를 정해야 하는데…… 짜장면으로 하실래요? 짬뽕으로 하실래요?

"아……."

기적은 한참이나 고민한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저는…… 짜장면이요."

-짜장면,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네, 금방 올라가겠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기적은 팀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그대로 치료실을 나섰다.

치료실을 나서는 기적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심각했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멈칫거리는 것이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명의진이 무슨 말을 할지에 대한 고민인 것일까? 그 해답은 기적의 독백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코너를 돌아 나온 그가 작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짬뽕으로 할 걸 그랬나?'

똑똑.

노크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가자 명의진이 인사과 재무 담당 김철용, 그리고 담당 간호사인 허선경 간호사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장님, 저 왔습니다."

인사를 건네자 명의진이 특유의 젠틀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안 그래도 실장님 이야기하던 중이었습니다."

비어 있는 소파에 앉으며 기적이 물었다.

"제 얘기를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들어 올 때 보니까 다들 웃고 계시던데요. 제 흉이라도 보신 겁니까?"

그 말에 답한 것은 허선경이었다.

"네, 여기 김 주임님이 흉봤어요. 너무 다 잘해서 이상하다고. 어딘가 말 못할 심각한 결함 있는 거 아니냐고요."

"네에? 아니……."

기적은 어이없다는 듯 반문했고, 김철용이 화들짝 놀라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 농담으로. 이번에 7월 달 수입 결산이 나왔는데요. 특수치료실이 재활 치료실의 55% 수준으로 수입이 나왔습니다. 너무 잘하시니까 놀라서 농담으로 한 말입니다."

"네?"

기적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고개만 갸웃했다. 그 의문을 풀어 준 것은 명의진이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수입이 나왔다 이 말입니다. 6명이 40명이 넘는 사람들의 절반이 넘는 수익을 올렸으니 말입니다. 올해 안에 30% 수준만 돼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달 만에 50%를 넘어서다니, 김 주임님께 보고를 듣다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말한 명의진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실장님께 전화를 드린 겁니다. 수고하셨다고 감사의 말이라도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고개를 끄덕이는 기적의 얼굴은 상기된 것으로 보였다. 자신이 운영한 부서가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고 하니 보람과 자부심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잘됐다고 하니 정말 다행입니다."

"모두 실장님 덕분이지요. 가만있어 보자…… 이거……."

자리에서 일어난 명의진이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찾았다. 그러고는 봉투 2개를 꺼낸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는 그 봉투를 기적에게 하나씩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건강검진권입니다. 실장님이 건강검진을 받으셔도 좋고, 부모님을 드려도 좋습니다. 수고하셨다는 의미로 드리는 거니 유용하게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적이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될지……."

아무래도 자신만 선물을 받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는 것이었다.

명의진이 껄껄 웃었다.

"잘했으니 드리는 겁니다. 여기 두 분도 저한테 선물 많이 받으셨어요. 두 분은 기억 못 하시려나?"

그 말에 김철용과 허선경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럴 리가요. 원장님이 주신 선물 아직도 잘 쓰고 있습니다."

"저도요. 챙겨 주시는 것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의진도 빙긋 웃었다.

"그렇다네요. 그러니까 받으셔도 됩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인 기적이 봉투를 받았을 때였다.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보상으로 효도할 기회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이 건강검진권이 지난 퀘스트의 보상인 모양이었다.

기적은 내심 시스템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시스템. 이 건강검진권을 내가 쓰면 어떻게 되는 거야? 아…… 몸 건강하게만 살아도 효도다, 뭐 이런 건가?'

몸 건강하게만 자라면 그것이 효도다. 고길자의 말을 떠올린 기적이 이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 검진권을 다른 누군가에게 줘 버리면? 그러면 효도할 기회가 아니잖아?'

그러자 시스템이 응답을 해 왔다.

-다른 누군가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자식입니다.

'아…… 그러네…… 우리 부모님이라고는 안 했구나…….'

기적이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명의진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런데 배달 음식이 생각보다 안 오네요.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명의진은 스마트폰을 들어 중국집에 전화한 시간을 확인했다.

스마트폰에 불이 들어오며 메시지가 들어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명의진이 다시 한 번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아들 여자 친구인데…… 성격이 참 싹싹해요. 이렇게 점심 드셨냐고 문자도 오고 그런다니까…… 허허허."

명의진의 스마트폰을 내보이며 말하자 허선경이 웃으며 그 말을 받아 주었다.

"저번에 소개팅으로 만나셨다는 그 여자분이요?"

"어? 기억하시네요? 맞습니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 친구입니다."

처음 명의진이 그 말을 했을 때 기적은 차지은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자초지종을 밝히기 어려웠던 석한이 소개팅을 통해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을 거라는 나름의 추측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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