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병원은 현대판 고려장? (7)
"뭐? 너 무슨 말을 그런 식으로 하냐? 말하는 게 뭐 그래? 여기 싸우려고 왔어? 네가 무슨 싸움닭이야?"
"그래. 오빠들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니. 아들이니까 어머니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하이고, 걱정 두 번만 했다가는 우리 엄마 병원에서 늙어 죽겠네."
"뭐? 어머니가 혼자 계시니까 그런 거 아냐. 지금 상황이……."
"휴~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바로 그때였다. 남매의 말다툼을 지켜보고 있던 고길자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가 혼자 있는 게 걱정된다는 거 아냐?"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두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엄마가 혼자 있으니까 걱정되는 거지."
"맞아. 혼자만 아니면 당장 퇴원해도 좋지. 그런데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 퇴원하면 보험으로 간병비를 줄 수도 없고. 아주머니 고용하는 돈은 어떻게 할 건데. 승미, 네가 낼 거야?"
다시 한 번 분위기가 격해지고 있었다. 칸막이가 있지만 다른 칸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대화가 들릴 정도였다.
그것을 의식했는지 고길자가 다시 나섰다.
"그러니까 너희들 말은 내가 혼자만 아니면 괜찮다는 거지? 누군가가 24시간 옆에 붙어 있어 주면 된다는 말이야. 그렇지?"
함승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렇지? 그런데 누가 그럴 수가 있어. 나는 너무 바빠서 안 되고. 애들 엄마도 일하느라고 바쁜데……."
함승진도 한 팔 거들었다.
"우리도 그래. 나도 일해야 하고. 애들 엄마는 아직 애들이 어리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힘들지. 잠깐씩 들러 보는 거면 몰라도……."
말끝을 흐리는데 고길자가 말했다.
"누가 너희들보고 와 있으라고 그러냐? 승미가 와 있으면 되잖아, 승미가. 네가 나랑 같이 살아. 저녁까지는 저 사람이랑 같이 있을 테니까 퇴근하고 오면 되잖아. 어차피 8시간 간병비는 집에 있어도 나오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을까? 세 사람, 함승현, 함승진, 함승미 모두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세 사람 모두 눈이 크지 않은 편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균 이상으로 커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싸한 느낌을 받은 함승현과 함승진이 즉각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어, 어머니…… 승미랑 같이 살겠다고요? 말도 안돼요…… 갑자기 그게 무슨……."
"그래요. 어머니하고 승미하고는 완전 상극인데…… 어머니 스트레스 받아서 안 돼요."
두 아들 못지않게 함승미도 질색했다.
"내가 왜 엄마랑 같이 살아? 사람을 얼마나 못살게 굴려고…… 나는 혼자가 편해."
그 말에 함승현, 함승진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적인 시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길자가 불쑥 말했다.
"승미야, 내가 그동안 잘못했다."
짧은 한마디.
하지만 좌중의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두 아들은 붉어진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어머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래요! 어머니가 뭘 잘못했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두 아들이 앞다투어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잘못했다는 말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희는 빠져 있어라. 이건 나랑 승미 문제니까."
그들이 깜짝 놀랄 말들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집 명의를 승미, 네 이름으로 해 주마. 그러니까 나랑 같이 살자."
"어머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집을 왜 승미 이름으로 바꿔요? 어머니, 저희가 집 팔자고 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그냥 해 본 소리에요. 안 그래, 승진아?"
"그렇지. 그냥 해 본 소리지. 그 집을 진짜 팔수가 있나? 그 집이 어떤 집인데."
"그렇지. 그리고 어머니 그냥 퇴원하세요. 보니까 몸 상태 괜찮아지신 것 같은데. 퇴원하셔도 될 것 같아요."
두 아들은 빠르게 태세 전환을 했다. 하지만 고길자는 대답도 하지 않고 함승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에 사람들의 시선이 함승미에게로 집중되었다.
함승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고민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고길자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드는 듯했다.
그런 함승미를 도와준 것은 기적이었다. 물론 기적이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분위기는 그가 입을 열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만 치료시간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함승미는 엉거주춤 서 있는 기적을 바라보며 떠올렸다, 얼마 전 있었던 대화를.
-옛날 분이시니까 그럴 수 있잖아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저희 아버지도 그래요. 엄청 무뚝뚝한 분이시라 앞에서는 거의 말을 안 하시지만, 사실은 저를 엄청 생각하고 계시죠. 아마 본인보다도 더…… 그런 게 부모가 아닐까요?
동시에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는 지금 엄청난 용기를 내고 계신지도 몰라.'
그렇다면 괜한 오기를 부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도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함승미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조금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진심이면 나는 그럴 생각 있어."
마음이 급해진 두 아들이 막말을 내뱉었다.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겉 다르고 속 다른 애였구나? 음흉한 것 좀 봐?"
"오빠는 진짜 당황스럽다. 너 주제를 모르고 왜 그러냐?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거 모르겠어?"
분위기는 이제 격해지는 것을 넘어 험악해졌다. 두 아들은 당면한 손해 앞에서 이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중재자가 나섰다. 그 사람은 역시 고길자였다.
"너희들이야말로 조용히 하거라. 내가 승미한테 묻고 있는데, 왜 너희들이 자격을 운운해?"
"어머니?"
"어머니?"
두 아들은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채로 그저 어머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황은 두 아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병원에서 시작된 막장 가족 드라마는 결말을 맞이했다.
막장 드라마치고는 나름 훈훈한 결말이었다. 결과가 실망스러웠던 두 아들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지만, 고길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다음 날.
고길자는 전에 없이 밝은 표정으로 치료실에 나타났다.
"자네 덕분에 오랜 마음의 짐을 내려놨어. 정말 고마워. 누구 아들인지 몰라도 자네 부모님은 좋겠네. 이렇게 훌륭한 아들이 있어서 말이야."
시골에 계신 두 부모님을 떠올린 기적은 쓴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님한테는 별로 효도를 못 하고 있어요.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게 잘 안 돼요."
고길자는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말했다.
"부모님은 다른 기대 없어. 그저 건강하게만 잘 살아 주면 그게 효도인 거야."
억만금을 주어야만이 효도가 아니다.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그게 효도다. 고길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쩐지 기적은 고길자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아 짙은 미소를 머금었다.
고길자의 표정 또한 밝기만 했다.
"나 이번 주 금요일에 퇴원하기로 했어. 승미가 와서 퇴원 수속 밟을 거야.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 보험이 있어. 회원 등록해서 종종 예약할 테니까, 또 얼굴 보자고."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퀘스트 [병원은 현대판 고려장?]의 달성 조건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효도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3,300(+3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연달아 떠오르는 시스템 창을 지운 기적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 아세요? 병원에서는 '또 오세요.'라는 말 못 하는 거? 다른 가게에서는 인사가 되지만 병원에서만큼은 악담이 되거든요. 아쉽기는요. 환자를 잘 치료해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제가 하는 일인데요. 너무 잘된 일이죠."
"허허허, 그런가? 하긴 병원에서 또 오라고 하면 안 돼지."
고길자의 웃음은 밝고 건강해 보였다. 그 모습에서 처음의 까칠하고 차가운 할머니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1명의 엄마가 있을 뿐.
동시에 기적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 퀘스트는 시스템이 자신에게 던진 메시지일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은 어떻습니까?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있습니까?
기적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 * *
뜨거운 태양이 내리쪼이는 7월의 어느 날.
서울에 위치한 한 병원 원무과에서는 모녀로 보이는 두 여자가 퇴원 수속을 밟고 있었다.
"환자분…… 1941년생 맞으시죠?"
"네, 맞아요."
최근 고독한 노인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식에게 버림 아닌 버림을 받은 부모들이 고독한 노후를 보내다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너무 바빠서, 각박한 세상 살기가 힘들어서.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은 그렇게 변명한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어제를 살았던 수많은 부모님들이 실은 지금보다 훨씬 힘든 세상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진료비와 입원비 모두 해서 총 559만 원입니다."
"카드로 계산할게요."
직원의 말에 딸은 카드를 내밀었고, 영수증이 출력되는 것으로 퇴원 수속이 마무리되었다.
오늘 퇴원하는 초로의 여자는 독거 생활을 하다 넘어져 골절로 입원한 환자였다. 하지만 지금 이 여자는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성큼성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모습을 본 직원이 상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고길자 님, 진짜 좋아지셨네요. 누가 보면 병문안 왔다가 돌아가시는 줄 알겠어요."
그 말에 초로의 여자, 즉 고길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진짜 좋아졌어. 내가 이 병원에서 기적을 만났거든."
고길자의 말에 딸, 함승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우리가 기적을 만났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직원을 뒤로하며 두 모녀는 병원 출구를 나섰다.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새하얀 햇빛을 향해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창문을 열고 병원을 나서는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시선을 느낀 것일까? 걸음을 옮기던 함승미가 일순 고개를 들어 기적이 있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강렬하게 반사되는 햇빛 때문이었을까? 그를 발견하지 못한 함승미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고길자를 택시로 인도했다.
기적은 사이좋게 택시에 올라타는 두 모녀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부디 집에 잘 돌아가시길. 그리고 병원은 다시 오지 마시길.'
오늘도 기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