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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74화 (74/205)

# 74

병원은 현대판 고려장? (2)

고길자는 골절의 후유증으로 다리에 부종 현상이 있었다. 쉽게 말해 다리가 부어 있다는 말이다. 기적은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부종을 빼는 데 역시 지압만 한 건 없겠지.'

환자의 부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붓기와는 조금 다르다. 만성적인 질환이기 때문에 굳기가 상당히 굳다. 한 곳에 오래 머물다 보니 아무래도 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적이 지압을 하려는 건 그 때문이었다. 꾹꾹 누르는 동작으로 한 곳에 몰려 있는 부종들을 퍼뜨리려는 것이었다.

기적은 비교를 위해 사진을 찍은 뒤 손가락과 주먹을 사용해 지압을 시작했다. 사실 지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지압(指壓)이란 문자 그대로 손가락으로 누르는 일이니까. 누구라도 손가락으로 누르면 그게 바로 지압이다.

하지만 지압을 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적절한 곳에 적당한 압력으로 눌러야 비로소 효과적인 지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기적의 지압은 매우 훌륭했다. 매직 핸드와 매직 아이의 도움을 받는 기적은 적시적소에 지압을 하고 있었다.

고길자도 그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처음 기적이 지압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고길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발목을 왜 누르는 거야? 내가 다친 데는 발목이 아닌데? 치료사가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치료하나?"

"아니요. 다친 곳은 아니지만 이쪽이 많이 부어 있어서 그래요. 원래 사지 말단부가 가장 많이 붓거든요."

설명을 해 주었지만 고길자의 표정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길자의 표정은 서서히 풀려 갔다.

3분 후.

"음…… 시원하기는 한데, 정말 붓기가 빠지긴 빠지는 건가?"

5분 후.

"뭔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10분 후.

지압을 끝낸 기적이 사진을 보여 주며 비교해 주자 표정이 완전히 밝아졌다.

"어? 그러네! 왼쪽이 많이 가늘어졌네. 다리도 가벼워졌고."

"네. 한번 일어서 볼게요. 그럼 더 느껴지실 거예요."

기적의 도움을 받은 고길자가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순간, 고길자의 표정은 또 한 번 달라졌다.

"어어! 어어?"

다리에서 느껴지는 힘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지압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달라지다니.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기적의 진짜 치료는 이제부터였다.

"지금부터는 근력 강화 운동을 할 거예요. 이거 하면 더 좋아지실 거예요."

기적은 고길자의 앞에 워커를 위치시켜 지지할 곳을 준 뒤,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훈련시켰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 같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새로이 배운 PNF 패턴의 묘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작이었다.

그렇게 예정되어 있던 치료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포인트가 주어진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기적이 말했다.

"어떠세요? 침 안 맞으셔도 좋아지죠?"

"한 번 받아 보고 알 수가 있나? 계속 받아 봐야지 좋은 줄 알지."

고길자가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간병인이 휠체어를 밀고 오며 말했다.

"딱 봐도 좋아졌구먼 뭘 그래. 하여간에 말하는 본새하고는. 선생님, 내일 또 뵙겠습니다."

고길자를 대신해 고개를 숙여 보인 간병인이 이내 휠체어를 밀고 사라졌다.

기적은 손을 씻은 뒤 손목을 올려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현재 시각은 11시 32분, 곧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퍼펙트까지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치료였어.'

나쁘지 않은 치료였다. 기적은 고길자와의 첫 치료를 그렇게 평가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강한수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실장님, 솔직히 조금 실망입니다."

뜬금없는 말에 기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뭐가 말입니까?"

"실장님이라고 해서 엄청 실력이 좋으실 줄 알았는데……. 방금 보니까 마사지를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보기 좀 불편했습니다. 병원이 동네 마사지실은 아니지 않습니까?"

기적은 그제야 강한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기적이 마사지를 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사실 물리치료사들은 마사지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마사지사와는 다르다는 이상한 자부심 때문이다.

물론 마사지사와 물리치료사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물리치료사는 말 그대로 물리치료사다.

온갖 물리적인 요법을 이용해 치료하는 사람인 것이다. 필요하다면 마사지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마사지를 한 것이 어떻다는 말입니까? 고길자 님은 부종이 심해서 마사지가 꼭 필요했습니다."

"아니요. 마사지 말고도 여러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아이스 같은 것들이요. 그 정도도 모르십니까?"

아이스를 통해 강직과 부종을 줄이는 것은 기적이 박부진을 치료할 때도 이용했던 방법이었다.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기적이 모를 리가 없었다.

"모를 리가요. 하지만 아이스보다는 지압이 더욱 효과적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저는 실장님의 치료가 우리 특치실의 격을 떨어뜨렸다고 생각합니다."

격을 떨어뜨린다는 말에 기적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치료에 관한 토론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언제든지 의문이 생기면 지금처럼 의문을 제기하셔도 좋습니다. 그런 토론이 서로를 발전시켜 준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지압이 치료실의 격을 떨어뜨린다? 그 말은 이해하기 힘드네요. 지압도 엄연한 물리치료의 한 방법입니다. 필요한데 쓰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반대로 물어보겠습니다. 환자의 부종을 제거하는 데 지압만큼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그야……."

강한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으나 결국 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아이스가 부종에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사지만큼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보며 기적이 말을 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저 좀 알려 주세요. 그럼 지압 대신 그 방법을 쓰겠습니다."

"……."

다시 한 번 똑같은 전개가 이어졌다.

"마사지가 격을 떨어뜨린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마사지가 물리치료의 격을 떨어뜨린다고 대체 누가 그럽니까? 그건 선생님의 개인적인 선입견 아닐까요? 제 치료 철학은 이렇습니다. 환자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최선의 치료법을 적용시킨다. 그 과정에서 격이 높거나 격이 낮은 치료법은 없다. 단지 상황에 맞는 치료가 있을 뿐이라고요. 선생님의 치료 철학은 무엇입니까? 저하고는 다릅니까?"

다를 리가 없었다. 결국 물리치료의 목적은 일상생활이 불편한 환자를 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으니까. 그것 이상의 가치는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강한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이들은 비단 그뿐만은 아니었다. 소란이 일자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들었던 치료사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들은 기적의 말을 통해 물리치료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고 있었다.

이는 한 학기 내내 물리치료학개론을 배우면서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기적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다들 모였네요? 모인 김에 말할게요. 오늘 점심 요 앞에 회전초밥집 어떻습니까? 1주일 동안 자리를 비워서 죄송하기도 하고 밥을 한 끼 살까 하는데 말입니다."

그 말에 4명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아졌다. 식당 밥이 맛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교 대상이 회전 초밥집이라면 아무래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니까. 다만 선뜻 얻어먹겠다고 하기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눈치챈 기적이 다시 말했다.

"저 없는 동안 고생하셨잖아요. 병원에서 교육비도 지원받았고 해서 그 돈으로 쏘겠다는 겁니다. 아니면 혹시 메뉴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기적의 그 말은 마법과도 같이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하나둘 슬쩍슬쩍 손을 들어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실장님 나이스 샷?"

"저도…… 잘 먹겠습니다."

윤세진이 스타트를 끊었고, 정수정이 뒤를 이었으며, 임정수가 소심한 표정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식가 맹동식이 이렇게 엄포를 놓았다.

"실장님, 후회하지 마세요. 얼마나 먹을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기적은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그 말을 받았다.

"네 뭐……. 가는 시간 오는 시간 빼면…… 시간은 40분 정도니까요……."

그 말에 맹동식은 말없이 배를 두드려 보였다. 배를 두드리는 맹동식의 손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몇 차례 헛기침을 내뱉은 기적이 어색하게 서 있는 강한수를 향해 말했다.

"선생님, 뭐 하세요? 빨리 옷 갈아입고 나오세요. 밥 먹으러 가게."

"예? 아…… 네."

기적은 멋쩍게 대답하는 강한수를 향해 씩 웃어 보인 뒤 본인도 옷을 갈아입으러 실장실로 향했다. 강한수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수치료실 치료사들이 점심 식사를 위해 병원을 빠져나가는 순간, 병원 앞에는 검은색 차 한 대가 지나고 있었다. 검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 두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바로 명석한과 차지은이었다.

핸들을 돌리며 명석한이 말했다.

"표정이 왜 그래?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네? 아니에요."

"그래? 아니면 말고."

사실 그는 차지은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백미러를 통해 어디론가 항하는 기적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거야? 뭐 찔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어쩐지 심사가 뒤틀린 석한이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았다.

이에 따라 차가 둔중한 울음소리를 토해 내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수가 틀리면 급격히 변하는 석한의 성격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우우우웅!

깜짝 놀란 지은이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오, 오빠, 너무 빨라요."

그러나 석한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엑셀을 밟는 데만 집중할 뿐이었다.

지은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오빠! 아, 앞에 차요!"

물론 석한 또한 신호가 바뀌었고, 앞에 차가 서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단계에서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는 간발의 차이로 충돌을 피한 채 멈춰 섰다.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올린 석한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얼굴을 하고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미안, 신호가 바뀐 줄 몰랐어."

"괘, 괜찮아요."

가슴에 손을 올린 지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였다. 일순 그녀의 눈에 바닥을 굴러다니는 립스틱이 들어왔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관성의 법칙으로 인해 시트 밑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어? 이게 뭐예요?"

"응? 뭐가?"

지은이 립스틱을 들어 보이며 재차 물었다.

"이 립스틱요!"

"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잠시 당황한 듯했던 석한이 이내 그렇게 둘러댔다. 그러나 지은의 얼굴에 떠오른 의혹은 점차 커져만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른다는 말과 지금 석한의 얼굴은 누가 봐도 매칭이 되지 않았으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했는지 석한이 보충 설명을 늘어놓았다.

"아! 할머니 건가 보다. 저번에 할머니가 탔었거든."

하지만 그 설명은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뻔했다. 지은이 보기에 이 립스틱 색깔은 장성한 손자를 둔 할머니가 쓰기에는 너무 화려했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런 분위기를 깨뜨려 준 것은 갑작스레 들려온 석한의 전화벨 소리였다.

"어어. 형, 오랜만이야. 내일? 어, 그래 한번 보자. 알겠어. 와서 연락해."

전화를 끊은 석한이 지은을 향해 말했다.

"서울대에서 같이 수련하던 형인데 내일 한번 보자고 그러네? 내일 퇴근 시간에 맞춰서 병원으로 와. 같이 밥이나 먹게."

"제가 가도 되는 자리예요?"

"그럼 안 되는 자리에 오라고 하겠어?"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인 지은이 손에 쥐고 있던 립스틱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서야 더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둘의 관계가 수평이 아닌 수직 관계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지은은 자신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던 기적의 모습이 떠올라 내심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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