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병원은 현대판 고려장? (1)
1주일간의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교육을 마친 기적은 더욱 훌륭한 치료사가 되어 있었다.
이는 단지 3A 과정을 수료하고, 수료증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3A 교육을 들으면서 얻은 포인트와 숙련도가 기적의 실력을 진일보시킨 것이었다.
지난번 퀘스트를 해결하며 얻은 레벨 업 확정권에 이어 다량의 포인트를 투자한 결과였다.
기적은 병원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시스템 창을 소환해 보았다. 이에 따라 몰라보게 성장한 시스템 창이 주르르 떠올랐다.
-매직 핸드 LV 9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13,750)
-매직 아이 LV 8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5,500)
-매직 브레인 LV 7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2,500)
-매직 페이스 LV 7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2,300)
-매직 마우스 LV 7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2,300)
-남은 포인트 : 120 (치료 성공 보상 10% 상승효과 적용 중)
몰라보게 상승한 레벨 때문일까? 1주일 만에 병원으로 복귀하는 기적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우선 원장실을 방문해 잘 다녀왔다고 복귀 인사를 한 그는 치료실로 들어서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잘 지내셨습니까?"
그러자 그를 발견한 특수치료실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어? 실장님!"
"교육 잘 다녀오셨어요? 3A 코스는 당연히 수료하셨겠죠?"
"1주일이 이렇게 긴 줄 몰랐네요."
그런데 이상했다. 1주일만의 재회라고 하기에는 직원들의 반응이 너무 격한 느낌이 있었다.
기적은 잠시 위화감을 느꼈으나 이내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고 직원들의 인사를 받았다.
"다행히 수료했습니다. 별일 없었죠?"
치료사들은 '네' 하고 대답했고, 기적은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강 선생님이 안 보이네요? 아직 출근 안 하신 모양이에요? 잘 적응하고 계시죠?"
치료사들은 그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모두를 대표해 윤세진이 입을 열었다.
"아…… 그분은 너무 적응을 잘하셔서 문제죠."
묘한 뉘앙스에 기적이 고개를 갸웃했다.
"너무 적응을 잘해서 문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눈치를 살피던 윤세진이 뭔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출입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그를 본 윤세진이 작은 목소리로 '역시 양반은 못 되네.'라고 속삭였다. 나타난 남자는 바로 강한수였다.
"굿모닝! 어? 실장님도 오셨네요?"
"네, 교육 마치고 왔습니다. 그런데 조금 늦으셨네요? 저희 특수치료실은 8시 50분까지입니다만?"
그 말에 시간을 확인한 강한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이런! 8시 52분이네요. 그래도 병원 정문은 50분 전에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일이었다면 몰라도 시간문제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아니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아주 예민해요. 제가 말하는 8시 50분은 치료실 앞 출퇴근 기계에 찍힌 시간이 기준입니다. 어? 혹시 이번 주 내내 늦으신 건 아니죠?"
단호한 태도에 찔끔한 강한수가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그쯤에서 잔소리를 멈춘 기적이 실장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분 늦은 걸 가지고 왜 저럴까?"
강한수는 동조를 구하듯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수정 샘, 베드 알코올로 닦았어요?"
"아니요, 아직요. 이제 닦으려고요."
"동식 샘, 나랑 이것 좀 같이 옮겨 줄래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제 할 일을 찾아가고 있었다. 강한수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콧잔등만 찌푸렸다.
실장실로 돌아온 기적은 책상에 앉아 오늘 자 환자 현황을 확인했다.
1주일 동안 자리를 비운 만큼 새로이 들어온 환자가 몇 명 보였다. 53세의 외래 환자가 1명, 80세의 입원 환자가 1명이었다.
'나이 53세 김대한 님은…… 십자 인대 파열로 인한 재활…… 무릎 관절의 가동 범위 정상화가 목표…… 이분은 아직 환자가 별로 없는 강한수 선생님에게 맡기고……. 그리고 고길자 님은…… 78세 할머니…… 낙상으로 인한 골절 후유증…… 단순 골절이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분도 강한수 선생님에게…….'
기적은 환자의 담당 란에 강한수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가 이내 다시 지웠다. 한꺼번에 환자를 맡기면 힘들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루에 2명은 조금 그러나? 하긴…… 치료 계획도 세우고 해야 할 테니까…… 그래, 이분은 내가 치료하자. 비어 있는 시간이…… 오전 11시에 넣으면 되겠다.'
그것으로 환자 배정을 마친 기적은 곧 시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시계가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일과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기적은 1주일 만에 만난 환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러자 환자들도 반가운 목소리로 화답해 왔다.
"선생님, 드디어 오셨네! 나 이번 주에도 선생님 안 나오면 회원 탈퇴하려고 했잖아."
"하하, 그러셨어요? 다행이네요. 너무 늦지 않게 복귀해서."
그렇게 기적이 오랜만의 일과를 수행할 때였다. 어느 순간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병원은 현대판 고려장?]을 부여합니다.
-목표 : 환자를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0/1)
-보상 : 효도할 수 있는 기회, 대량의 포인트.
'어? 퀘스트?'
퀘스트가 나타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냥 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퀘스트를 수행하는 편이 보다 몰입이 되니까.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에는 퀘스트 명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런데 뭐야? 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라니……?'
기적이 알기로 고려장은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부모를 산에 내다 버리는 고려 시대의 장례 풍습을 일컫는 말이었다. 물론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러한 사전 지식 때문일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좋은 뜻으로 해석이 되지 않았다.
'이건 너무 슬프잖아…… 시스템, 네가 말하는 고려장이 내가 생각하는 고려장이야?'
기적은 시스템을 향해 물었다. 그러나 시스템은 대답이 없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시스템은 불리할 때는 입을 다무는 경향이 있었다.
'말이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맞는 것 같네. 그럼 신환으로 들어온 고길자 님이 이번 퀘스트의 주인공인가?'
78세의 나이, 마침 들어온 신환이라는 점 때문에 기적은 고길자를 이번 퀘스트의 유력한 후보로 꼽았다.
그런데 11시가 조금 안 되어 나타난 고길자의 첫인상은 기적이 생각한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이분이 아닌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적은 곱슬곱슬한 백발에, 빼빼 마르고 거동이 불편한 전형적인 할머니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간병인과 함께 나타난 고길자의 모습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일단 머리색이 자연스러운 갈색이었고, 몸집도 생각보다 컸으며, 얼굴에 주름살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과 다른 것은 비단 겉모습 뿐만은 아니었다. 하는 행동도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여기는 뭐 하는 데야? 왜 나를 여기로 데려왔어?"
짜증스러운 얼굴로 고길자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심지어 기적에게 묻는 것도 아니었다. 고길자의 목소리는 등 뒤에 있는 간병인을 향하고 있었다.
간병인이 기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물리치료 받는 데야, 엄마 빨리 나으라고. 여기는 물리치료사 선생님이고."
고길자가 못 미더운 표정으로 기적을 살피며 말했다.
"물리치료? 그거 한다고 빨리 나아? 침을 맞아야 빨리 낫지."
"아니……."
중간에 끼인 간병인만 고생하는 것 같아 그쯤에서 기적이 나섰다.
"고길자 님, 여기는 한방 병원이 아니라 침 같은 거는 못 놔요. 대신에 다른 좋은 치료가 많거든요? 저만 믿으시면 제가 책임지고 낫게 해 드릴게요."
간병인도 재빨리 거들었다.
"그래, 이 선생님 엄청 유명하대. 이 선생님한테 치료받으려고 사람들 막 이만큼 줄 섰대. 엄마는 복 받은 줄이나 알아."
하지만 유명하다는 말에도 고길자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간병인이 조금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나아야지 집에 갈 거 아냐. 집에 안 갈 거야?"
고길자는 집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집? 집에 가야지. 이 사람한테 치료받으면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주성이가 데리러 와?"
"그럼, 그럼. 그러니까 얼른 치료받아."
"알았어. 그럼 치료받아야지."
뒷전으로 밀려난 기적은 밀려드는 난감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어쩐지 치료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완전히 유령 취급하네. 아주 강적을 만났어.'
씁쓸함이 밀려들었지만 기적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기적의 치료는 문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에게는 8레벨의 매직 아이가 있었지만 문진은 매직 아이로 확인할 수 없는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다 넘어지신 거예요?"
"작년 겨울에 빙판길에서 넘어지셨대요."
"일상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편한 부분은 어떤 부분이에요?"
"아무래도 걷는 거죠. 앉았다 일어날 때도 많이 힘들어 하시고."
"혼자 걸을 수는 있으신가요? 아니면 보조 기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나요?"
"혼자서 걷기는 하시는데…… 그 뭐냐…… 다리 4개 달린 지팡이…… 아아, 맞아요. 콰드리 케인! 그거 없이는 힘들어 하세요."
그렇게 하나하나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다 보니 금세 많은 정보가 모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매직 아이와 매직 핸드를 활용할 차례였다.
기적은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직접 보고 만지며 고길자의 몸 상태를 체크해 나갔다. 실체 없는 목소리가 그에게 끊임없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곳은 없는데?
-골절로 인해 다리 전체에 부종이 있어. 간단한 마사지를 통해 이 부분을 해결한다면 치료에 속도를 낼 수 있겠지.
-부종을 제거한 다음에는 체중을 중력하에 놓고 치료를 하는 게 좋겠어. 체중 지지가 골절된 뼈를 다시 붙이는 데 도움을 줄 테니까.
-근력 강화도 필수로 해야겠지. 전반적으로 근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
포인트 투자가 괜한 것은 아니었는지 레벨이 높아진 매직 핸드와 매직 아이는 더욱 빛을 발했다.
치료를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 전반적인 문제점과 치료 계획들이 착착착 기적의 머릿속으로 입력되고 있었다.
"일단은 가벼운 마사지를 통해 골절 부위의 부종을 제거할 거고요. 그 후에는 일어선 자세에서 근력 강화를 할 거예요. 이 동작을 통해 아직 균열이 남아 있는 뼈를 완전히 붙여 볼 생각입니다."
기적이 그렇게 치료 계획을 설명했지만 고길자의 표정은 그다지 탐탁지 않아 보였다. 치료를 원한다기보다는 마지못해 치료를 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기적은 그런 고길자의 태도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길자의 마음을 돌릴 자신이 있었으니까.
"자, 그럼 마사지부터 해 볼까요?"
기적의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