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교육에서 생긴 일 (7)
합격자 발표가 난 뒤 약 3분 후.
도미닉이 서류를 한아름 안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들고 있는 서류는 흔히 'Certificate'라 불리는 수료증이었다.
도미닉이 말했다.
"I have a certificate. Come up to the when I call your names."
"서티가 나왔습니다. 호명하는 분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
통역사의 통역이 이어지고, 오래지 않아 도미닉이 첫 번째 이름을 호명했다.
"ji-woo Min."
여기저기서 축하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민지우는 밝게 웃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고, 도미닉과 얼굴을 마주했다.
"추카합니다."
프랑스 출신의 도미닉은 어설픈 한국말과 함께 민지우에게 두툼한 두께의 서류를 건넸다. 반짝거리는 코팅제로 포장된 표지 안에는 PNF 3A 수료증이 들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수료증을 손에 들고 자리로 돌아가는 민지우는 감회가 새로워 보였다. 수료증을 받고 나니 교육을 수료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듯했다.
수료증 수여는 계속되었다.
"min-a La."
"jin-kyu Oh."
"yong-nam Park."
그리고 열 번째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어느 때보다도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이름의 주인공은 바로 기적이었다.
"ki-jeok Lee."
"축하해요! 이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기적은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눈앞에 선 기적을 보며 도미닉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You passed the examination on a perfect score."
"만점으로 이번 코스를 수료하셨다네요."
기적이 만점으로 합격했다는 것은 이미 게시판에 붙은 게시물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확인하는 것과 강사로부터 직접 듣는 것은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
만점으로 합격했다는 도미닉의 말과 함께 박수 소리와 함성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와 동시였다. 수료증을 건네받는 기적의 앞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이왕이면 만점으로!]의 목표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3,300(+300)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최연소 PNF 강사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수료증을 건네받음과 동시에 퀘스트가 완료된 것이었다.
기적은 메시지를 지운 뒤, 도미닉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감사합니다."
손을 흔들며 도미닉이 마지막 말을 전했다.
"You're the first person to pass a perfect score in my class. I will support your future.(당신은 제 교육에서 최초의 만점 수료자입니다. 당신의 앞날을 응원하겠습니다.)"
"땡큐, 땡큐!"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도미닉은 잡았던 손을 놓았고, 기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운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도미닉이 다시 말을 이었다.
"Ah……. congratulations. thirteen out of sixteen passed. that's a very very high pass. and with this, I will finish 3A training. thank you for all of the time and hard work."
"축하합니다. 16명 중에 13명이 합격했습니다. 역대급으로 높은 합격률이네요. 이것으로 3A 교육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교육을 마친다는 말에 교육생들은 도미닉을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 주었다. 1주일간 고생한 강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일순간 교육생들 사이에서 박수를 멈추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저 아직 수료증을 받지 못했는데요? 게시물에는 분명 pass라고 적혀 있었는데?"
의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강천웅이었다. 교육생들은 '왜 저래?'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는 게시물까지 뜯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보세요. 분명 패스라고……? 어? 이게 뭐야?"
그러나 그 목소리는 오래지 않아 힘을 잃고 말았다. 비로소 그는 본 것이었다.
자신이 봤던 pass는 최종합격을 뜻하는 pass가 아니라는 것을. 단지 실기를 합격했다는 의미의 pass라는 것을 말이다.
"아니…… 필기에서 불합격했다고요? 그것도 1개 차이로요?"
보조 강사가 안타깝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 선생님은 필기시험 총 20문제 중 11문제를 맞히셨습니다. 안타깝지만 합격을 드리기에는 한 문제가 모자랍니다."
"하, 한 문제가 모자라다고요? 혹시 뭔가 착오가 있는 것 아닙니까? 분명 12개 맞았을 텐데…… 답안지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
보조 강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착오는 없었습니다. 확인해 보고 싶다면 확인시켜 드리죠. 가끔 확인을 요청하는 교육생들이 있어서 답안지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보조 강사가 들고 온 박스에서 강천웅의 답안지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강천웅에게 내밀었다.
"보세요. 앞의 10문제에서 9문제를 맞히셨고, 뒤에 10문제에서 2문제를 맞히셔서 총 11문제 맞추셨습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자신의 시험지와 답안지를 대조하던 강천웅의 얼굴이 일순 하얗게 변했다.
강천웅은 처음 10문제를 모두 맞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5번 문제가 틀린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맞는 것을 모두 고르라고 했는데, 마음이 급했던 그가 이를 보지 못하고 1개만 선택한 것이었다.
"아니…… 이건……."
강천웅은 그제야 사람들이 자신을 왜 그런 눈빛으로 쳐다봤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떨어졌는데 좋아했으니 미쳤다고 생각했겠지…… 제기랄!'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감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을요."
뼈아프지만 보조 강사의 말은 현실이었다. 결국 강천웅은 그 길로 교육장을 떠나는 선택을 내렸다. 밀려드는 괴로움과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도미닉과 보조 강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떠나는 강천웅을 막지는 않았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수료증을 줄 수도 없는 일이니까.
보조 강사는 빠르게 분위기를 수습했다.
"자, 교육은 이것으로 모두 끝났으니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5일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또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3A 교육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곧바로 교육장을 떠나지 않았다. 수료증을 들고 도미닉과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 것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볼 일을 마친 교육생들이 하나둘 교육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기적 또한 가방을 챙겨 들고 교육장을 나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문을 열기 무섭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1주일 간 교육을 담당했던 보조 강사였다.
"이제 가시나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와 잠시 이야기 나눌 수 있으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보조 강사의 옆에는 이번 코스를 개최한 PNF 서울시 협회 직원과 박용남이 서 있었다.
기적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협회 직원으로부터 나왔다.
"반갑습니다. PNF 서울시 협회에서 협회장을 맡고 있는 박동진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희 협회는 이번 교육 동안에 선생님께서 보여 주신 실력에 놀랐습니다. 혹시 서울시 협회 직원으로 활동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생각이 있으시면 저희가 책임지고 4A, 4B 교육까지 들으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실기 강사 시간도 다 채울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릴 거고요. 아아, 혹여나 오해는 마십시오. 특권을 드리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기회를 드리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적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리고 저는 지금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이 병원에서 물리치료실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여기 계신 박용남 선생님도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병원에 근무한다고 해서 조기 축구회나 자전거 동아리에 가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배려해 주시는 겁니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직역하자면 이유 없는 호의는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저희는 선생님에게서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 강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 강사가 서울시 협회에서 나온다? 저희 입장에서는 아주 멋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
기적은 그제야 박동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찝찝한 마음은 남았다. 오늘 처음 본 박동진의 말을 100% 믿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떻습니까? 저희 서울시 협회에 정식 회원으로 들어오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박동진이 그렇게 물었을 때 마침맞게 떠오른 메시지 덕분이었다.
-퀘스트 [이왕이면 만점으로!]의 보상으로 최연소 국제 강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역시 이게 보상이었구나. 그렇다면…….'
기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이 주는 보상이라면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보상은 그에게 해를 입힌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적당히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PNF 교육을 끝까지 듣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국제 강사가 되는 일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고요. 하지만 저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지……."
박동진은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특권을 드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권한도 없고요. 다만 협회에서 코스를 개최하면 협회 회원에게 우선순위를 줍니다. 단지 그런 기회를 드리겠다는 겁니다."
박용남도 거들었다.
"서울시 협회니까 당연히 서울시 회원에게 우선순위를 주는 거죠. 그건 다른 시도 협회도 똑같아요. 그다음으로 고려하는 것이 연차고요."
물론 어드밴티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거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코스 교육이 열릴 때마다 돌아가면서 보조 강사 역할도 해야 하고, 또 준비도 해야 하고…… 아무래도 자기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는 걸 감안하셔야 해요."
그에 상응하는 페널티가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어드벤티지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페널티라고 말이다.
"네, 뭐…… 나 좋은 것만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보다는 교육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더 다가오네요."
긍정적인 대답에 박동진이 반색했다.
"그러면 서울시 협회에 가입하시겠다는 말이지요?"
"네.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해 보고 싶습니다."
"아무렴요. 기회를 주고말고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한 박동진이 기적을 향해 큼지막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기적이 그 손을 맞잡자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PNF 국제 강사를 향한 기적의 행보는 그렇게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