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교육에서 생긴 일 (6)
나타난 이는 강천웅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나타난 그가 마침 뒷문 앞에 있던 보조 강사에게 다급히 물었다.
"오다가 접촉 사고가 나서 조금 늦었습니다. 시험 벌써 시작된 겁니까?"
보조 강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시험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네. 9시 35분까지입니다. 일단 빨리 자리에 앉아서 시험 치르세요."
그 말에 강천웅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현재 시각은 9시 23분으로 시험 종료 시간까지는 단 12분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시험을 치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인 것이다.
강천웅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일단은 자리에 착석해 시험을 치르기 시작했다.
다시 시험이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둘 시험지를 뒤집는 사람이 나타났고, 오래지 않아 9시 35분이 되며 시험 시간이 종료되었다.
"자, 시험 시간 종료입니다. 답안지 걷겠습니다."
답안지를 제출하는 교육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시험 자체가 난이도가 높지 않은 객관식 문제인 데다 12개 이상만 맞히면 합격을 할 수 있었기에 대부분 합격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뒤늦게 시험장에 도착한 강천웅이었다. 땀을 뻘뻘 쏟으며 그가 말했다.
"아직 다 못 봤습니다. 시간 좀 더 주세요. 늦게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지각 점수를 받더라도 시험 시간은 똑같이 주셔야죠."
보조 강사는 곤란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제 분명 9시 정각에 시험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늦으신 것은 전적으로 선생님 잘못입니다만……?"
"그래도 융통성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지각에 대한 페널티는 받겠습니다. 하지만 시험 시간은 동등하게 주십시오."
"음……."
침음을 흘린 보조 강사가 도미닉과 의견을 나눴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선생님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의 시간이 뒤로 미뤄집니다. 만약 모든 선생님들이 동의하시면 추가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한 분이라도 동의하지 않으시면 추가 시간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보조 강사가 모두를 향해 물었다.
"추가 시간을 드리는 것에 동의하시는 분 손 들어 주세요."
그러나 분위기는 냉랭했다. 눈치를 살필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은 대동소이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업자득이지, 뭐.'
뿌린 대로 거둔다, 사람 앞일은 모른다는 말이 절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강천웅은 이를 갈았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즉시 답안지 제출하지 않으시면 영점 처리하겠습니다."
결국 강천웅은 후반 10문제를 모두 줄을 세운 뒤 답안지를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앞선 10문제를 모두 맞춘다고 해도 합격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답안지를 빼앗긴 강천웅은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행패를 부릴 수는 없었다. 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조 강사의 존재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주의를 받을 때 받더라도 한바탕 소란을 일으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기적의 존재가 신경 쓰였다. 어제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제기랄…….'
강천웅은 괜히 책상을 밀어재낀 뒤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왜일까? 나름대로 힘껏 밀었다고 생각한 책상은 원래의 위치에서 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쉬는 시간 이후에는 실기 시험이 이어졌다. 15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도미닉은 앞에 서서 실기 시험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통역의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실기 시험은 새로이 배운 20여 가지의 패턴 중 제가 임의로 지정하는 10개의 패턴을 펼쳐 보이는 것으로 당락을 결정하겠습니다. 10개 중 6개 이상의 패턴을 제대로 펼쳐 보이면 합격, 그러지 못하면 불합격입니다. 시험은 가나다순으로 보겠습니다. 첫 번째 선생님은 강천웅 선생님?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보조 강사는 강천웅을 시험장으로 안내했고, 강천웅은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시험장 안 베드에는 협회 직원 1명이 누워 있었고, 그 앞에는 도미닉이 매의 눈빛을 하고 서 있었다.
보조 강사가 한쪽에 있는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스 안 종이에는 총 20개의 패턴이 적혀 있습니다. 이 중 10개를 차례로 뽑으시면서 그에 해당하는 패턴을 보여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강천웅이 종이를 뽑아 도미닉에게 내보였다. 그러고는 이에 상응하는 패턴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살피는 도미닉의 시선은 분주했다. 그는 평가지를 보랴, 강천웅의 패턴을 보랴 바쁘게 눈동자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평가지에 표시된 강천웅의 월화수목 실기 평가 점수는 +3점이었다. 가장 어려운 패턴을 배웠던 목요일을 제외하면 모두 가산점을 받은 것이었다.
세 번이나 가산점을 받은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듯 강천웅은 자신 있게 패턴을 펼쳐 보였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모습으로 패턴을 펼쳐 보인 것이다. 도미닉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잘하네. 나무랄 데 없는 실력이야.'
합격의 마지노선을 넘으며 긴장이 풀린 것일까? 강천웅은 일곱 번째 패턴에서 엉뚱한 패턴을 펼쳐 보였지만 당황하지 않고, 이어진 세 번의 패턴을 모두 정석대로 펼쳐 보였다.
열 번의 패턴이 모두 끝났을 때 그가 받은 점수는 100점 만점에 82(+3)점이었다. 굳이 가산점이 없었더라도 커트라인인 60점을 무난하게 넘어서는 점수였다.
"수고했습니다."
시험장을 나서는 강천웅은 한숨 돌렸다는 듯 크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이것으로 실기는 합격했으니 필기에서 약간의 운만 따라 준다면 이번 3A 교육을 수료할 각이 보였다.
'앞의 10문제는 확실히 정답이야. 나머지 10문제 중에서 2문제만 맞으면 되는데…… 줄을 세웠으니 확률적으로 두 문제는 맞겠지.'
이번 시험의 유형은 오지선다형이다. 즉, 찍기만 해도 1/5의 확률로 정답을 맞힐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구나 강천웅은 아무런 생각 없이 줄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보통 이런 시험은 정답의 개수가 동일하게 분포한다는 것을 감안해 10번 문제까지 정답수가 가장 적었던 3번에 줄을 세웠다.
'분명 합격이야. 니들이 아무리 나를 방해해도 이 강천웅이는 합격이라고!'
강천웅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시전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응시생이 시험장으로 이동했고, 시험은 다시 재개되었다. 지난 1주일을 좌우할 실기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기적은 정확히 10번째 순서로 실기 시험장에 들어섰다. 상자에 손을 집어넣는 그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유는 있었다.
'목표는 만점이다!'
만점을 목표로 시험에 임하기 때문이었다. 뽑기 한 번 한 번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도미닉은 그런 기적의 모습을 오해했다.
'의외로 시험에 약한 스타일인가? 그동안 보여 준 실력이라면 긴장할 이유가 없을 텐데…….'
그는 어쩌면 기적이 시험에 약한 새가슴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구심으로 가득 찼던 도미닉의 눈동자는 오래지 않아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음…… 뭐가 이렇게 여유가 넘쳐? 정말 3A 교육을 처음 듣는 사람 맞아?'
어느 순간부터 도미닉은 잘하는 점을 찾기보다는 잘 못 하는 점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너무 잘하다 보니 10점 만점에서 거꾸로 점수를 깎아내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단점은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도미닉이 방식을 바꿨다.
"Wait, wait!"
시험을 중지시킨 도미닉이 수신호를 보내 환자 역할을 하던 직원을 내려오게 했다. 그러고는 그를 대신해 자신이 베드에 누웠다.
"I'm the patient role from now on! try again! (지금부터 제가 환자 역할을 하겠습니다. 다시 해 보세요.)"
자신이 직접 환자가 되어서 각 관절마다 저항이 제대로 들어가는지 느껴 보겠다는 것이었다.
대강 뜻을 이해한 기적은 잠시 당황했다.
'아니 왜…… 원래 이런 식으로 진행하나?'
그는 도미닉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긴…… 대상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지. 나는 내 치료를 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기적은 다시 시험에 집중했다. 이전과 똑같이 상자에서 패턴을 뽑고, 또 이를 펼쳐 보이고.
환자가 도미닉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듯했다.
도미닉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퍼펙트! 퍼펙트! 미스터 리는 무조건 퍼펙트야. 그 외에 다른 점수는 어울리지 않아.'
10번째 패턴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도미닉은 평가지에 점수를 매겼다. 그가 볼펜을 움직임에 따라 평가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쓰였다.
-Perfect score.
11시 30분.
실기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예정된 교육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시험을 마친 교육생들은 교육장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결과 발표와 수료증 배부가 남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를 기다리며 점심 도시락을 먹는 교육생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실기만 끝내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더 떨리네요."
"입맛이 없네요. 먹다가 얹힐 것 같아요."
"저는 실기는 붙은 것 같은데, 필기가 조금 걸려요."
"저도 반반이네요. 분명 완벽하다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너무 떨려서 머릿속이 하얘져 버렸어요."
"보통 몇 시쯤 발표난데요?"
"병원 팀장님한테 들었는데 한 12시쯤이면 결과 나온다네요. 수료증 발급은 12시 10분쯤 되고……."
1주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난 상황이다. 원래대로라면 밥이 참 맛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좀처럼 밥을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수료증 취득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사실 바쁜 와중에 PNF 교육을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쉽게 열리지 않는 교육 일정도 일정이지만, 무려 5일의 휴가를 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더라도 병원의 도움 없이는 교육을 들을 수가 없다.
수가(의료 보험) 청구가 가능해지는 레벨 2 교육까지는 병원에서도 적극적으로 교육을 보내 준다.
교육비까지 지원해 줄 정도다. PNF 레벨 2를 수료하면 의료보험 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 수가가 3배 이상 급등하기 때문에 교육비를 지원해 주더라도 이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벨 3부터는 이야기가 다르다. 레벨 2를 들으나 레벨 3을 들으나 청구할 수 있는 수가가 똑같기 때문에 병원 측에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순전히 물리치료사 개인의 만족을 위해 듣는 교육이기 때문에 쉽사리 시간을 내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 모인 교육생들도 다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었다.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보이지 않는 부담감과 싸운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뒷문이 열리며 보조 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험 결과 나왔습니다. 게시판에 붙일 테니 확인해 주세요."
그렇게 말한 보조 강사가 뒤쪽에 위치한 게시판에 A4 용지를 부착했다. 이와 거의 동시였다. 마치 용수철이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교육생들이 게시판 주변을 점령했다.
'나이스! 합격이다!'
'붙었어! 붙었다고!'
자신의 이름 옆에 적힌 'Pass'라는 문구를 본 합격자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겉으로 격하게 티를 내지는 못했다. 군데군데 보이는 'fail'이라는 문구 때문에 애써 부푼 마음을 감추는 것이었다.
그 시점 강천웅도 결과를 확인했다.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뒤에서 명단을 확인한 그는 자신의 이름 옆에 쓰여 있는 'Pass'라는 문구를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됐다!"
강천웅은 격하게 외쳤다. 곧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는 당당했다.
'뭘 그렇게 봐? 합격해서 좋아하지도 못해?'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보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외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다. 사람들이 왜 자신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