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66화 (66/205)

# 66

교육에서 생긴 일 (1)

다시 한 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기적은 그 한 주의 시작을 명성 병원이 아닌 해일로 재활 병원에서 맞이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PNF 레벨 3 교육을 듣기 위해서였다.

사실 PNF 레벨 2 과정을 수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교육이 워낙 자주 열리기도 하고, 교육 인원을 충분히 받기 때문에 누구라도 열정만 있으면 5년 차 이내로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레벨 3A부터는 이야기가 달랐다. 교육이 가뭄에 콩 나듯이 열리는 데다 교육 인원도 적기 때문에 교육을 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교육, 그게 바로 레벨 3A였다.

게다가 교육을 듣는다고 해서 무조건 수료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필기시험과 실기 시험을 모두 합격해야만 비로소 PNF 레벨 3 수료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말의 꼼수도 기대할 수 없다. PNF 레벨 3부터는 국제 과정으로 외국인 강사가 배정되기 때문에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절대로 이 과정을 수료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교육실로 들어서는 기적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어렵게 시간을 낸 만큼 반드시 수료증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여기가 교육실이구나. 생각보다 아담하네.'

이번 교육은 총원이 16명으로 정해져 있었다. 때문에 교육실은 그리 크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안에는 아직 1명의 교육생도 보이지 않았다. 기적이 예정 시간인 9시보다 무려 40분이나 이른 시간에 도착한 탓이었다.

기적은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자리에 앉아 책상에 놓여 있는 교재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난 과정을 복습하고, 앞으로 들을 과정을 예습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보조 강사와 교육생, 그리고 통역사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육을 5분 남긴 시점, 모든 자리가 들어찼다. 딱 한 자리만 빼고는. 바로 기적의 옆자리였다. 아무래도 지각을 할 모양이었다.

'첫날부터 지각인가? 빨리 와야 할 텐데.'

기적은 자신의 옆자리를 배정받은 '박용남'이라는 교육생이 가급적 늦지 않기를 바랐다.

PNF는 배정받은 짝과 함께 많은 일을 함께 한다. 교육을 같이 듣는 것은 물론, 모든 실습을 짝을 이뤄 진행해야 한다. 당연히 짝이 처음부터 점수를 잃는다거나, 늦게 도착한다면 기적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적의 바람이 거기까지는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9시가 다 되도록 끝내 박용남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이내 오늘의 교육을 담당하게 될 국제 강사 도미닉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미닉이 말하는 것을 통역관이 통역해 주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총 5일간 PNF 레벨 3A 교육을 진행하게 된 베커스 도미닉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렇고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제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프로젝트에 강사 소개 화면이 떠올랐다.

PNF 국제 강사답게 도미닉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다. 박사 학위는 물론, PNF 레벨 5와 AQC(보조 강사 코스)를 수료했으며 국제 강사를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ICC(국제 강사 코스)까지 수료한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모두 국제 강사를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수료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이유로 그의 업적을 깎을 필요는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물리치료사들이 국제 강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부분이 고배를 마시고 있으니까.

국제 강사 자격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참고로 한국 출신의 국제 강사는 전무후무하며 보조 강사 또한 고작 7명에 불과했다.

읽기에 충분한 시간을 부여한 도미닉이 말을 이었다.

"혹시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에 궁금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가볍게 질문을 받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기적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교육생이 손을 들었다. 강천웅이라는 이름의 교육생이었다.

"질문하세요."

허락을 얻어 낸 강천웅이 기적의 옆자리를 힐끔거리며 말했다.

"출석 체크를 안 하신 것 같아서요."

통역관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도미닉이 '오, 아이 씨!'를 연발했다. 그러고는 보조 강사를 시켜 출석 체크를 하게끔 했다.

당연히 기적의 옆자리에 앉을 박용남이라는 교육생은 지각을 지적당했다.

"박용남 교육생 안 오셨나요?"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결국 보조 강사는 박용남의 이름 옆에 X표를 쳐 버렸다. 이제 박용남은 이번 교육을 수료하는 데 있어 상당한 페널티를 받게 된 셈이었다.

강천웅은 그제야 만족한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고, 기적은 그런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각을 해서 페널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굳이 고자질을 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만약 이번 교육이 상대평가라면 그래도 강천웅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교육은 절대평가였다.

주변 사람이 잘한다고 해서 내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굳이 고자질을 하다니…… 기적은 강천웅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저 잠시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2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여자가 숨을 헐떡거리며 강의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초행길이라 길이 헷갈려서 늦었습니다."

그 말에 보조 강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혹시 박용남 선생님? 조금만 일찍 오시지…… 조금 전에 출석 체크했는데요."

박용남의 얼굴에 살짝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바로 기적의 옆자리였다.

기적은 자신의 짝이 덩치 큰 남자일 거라 생각했다. 책상에 붙은 박용남이라는 이름표는 자연스레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박용남은 의외로 여자였다. 그것도 아담한 체구에 큰 눈을 가진 강아지상의 여자였다.

자리에 앉은 박용남이 기적을 향해 슬쩍 눈인사를 해 왔다. 기적은 마주 고개를 숙여 그 인사를 받아 주었다.

그렇게 출석 사건이 일단락되고, 도미닉은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다.

첫 시간인 만큼 이론 강의가 이어졌다. PNF의 역사와 유래, 접근법, 그리고 레벨 2까지 배웠던 내용을 복습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기적은 강의를 들으며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PNF의 배경 지식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 또 그동안 배웠던 PNF의 패턴들을 보다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집중을 하다 보니 90분이 금방 지나갔다. 시간을 확인한 도미닉이 교육생들에게 휴식을 부여했다. 통역관이 그를 대신해 말했다.

"자, 그럼 15분간 휴식한 뒤에 뵙겠습니다."

도미닉이 자리를 비우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교육생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기적 또한 보고 있던 패턴을 모두 살핌과 동시에 자세를 흐트러뜨렸다. 아침 일찍부터 머리를 회전시켰더니 뒤늦게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초코 과자나 하나 먹을까?'

단 것이 당겼던 기적이 뒤편에 마련된 다과를 응시할 때였다. 강의가 끝남과 동시에 도미닉을 따라 나갔던 박용남이 어느새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기적을 향해 과자를 하나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박용남입니다."

얼굴과 매치가 안 되는 이름과 목소리에 내심 실소를 흘린 기적이 마주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이기적입니다."

물론 이름이 특이한 것으로 치면 기적 또한 누구 못지않았다. 당황한 얼굴로 박용남이 되물었다.

"네? 이…… 뭐라고요?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아서요!"

기적이 손으로 책상의 이름표를 가리켰다. 'Lee Ki-Jeok'라는 이름표를 본 박용남이 떡 하고 입을 벌렸다. 물론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신색을 회복한 박용남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기적 선생님! 이름 진짜 특이하시네요. 한자 무슨 한자 써요? 저는 다음에는 꼭 용 같은 아들 태어나라고 해서 용남이요. 제가 우리집 셋째 딸이거든요."

자칫 콤플렉스가 될 수도 있는 사연이었지만 박용남은 굉장히 스스럼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특이한 이름을 가졌다는 동질감 덕분일까? 기적 또한 편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저희 항렬이 적자 돌림을 써서요. 힘차게 뻗어 나가라고 기운 기(氣)자에 이를 적(適)자 씁니다."

용남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석하면 굉장히 멋진 이름이네요. 합치면 이기적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되지만?"

"이상한 건 선생님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만?"

둘이 이름을 주제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안녕하세요?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저도 같이 좀 해요."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강천웅이었다. 뒤로 몸을 돌린 그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조금 전 있었던 출석 체크 사건을 알고 있는 기적은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박용남은 웃으며 그 말을 받아 주었다.

"아, 네. 이름이 특이해서 그 이야기 좀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강천웅입니다. 저는 올해 서른셋입니다. 두 분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강천웅은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기적은 그런 그가 조금 껄끄러웠으나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스물아홉입니다."

"저는 스물일곱이요. 아, 다행이다. 내가 제일 어려!"

대화에 끼어든 강천웅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 댔다. 그리고 그 질문은 대부분 박용남을 향해 있었다. 자연스레 대화에서 소외된 기적이 잠시 덮어 두었던 교재로 시선을 돌릴 때였다.

보조 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들, 지금부터 유니폼과 이름표를 나눠 드릴 텐데요. 호명하시는 분 앞으로 나오셔서 받아 가 주세요. 다음 시간부터는 실습도 할 테니까 받은 옷으로 환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먼저 강천웅 선생님?"

제일 먼저 강천웅을 호명한 보조 강사 덕분에 기적은 자연스럽게 불편한 대화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환복을 하고 난 다음에는 본격적인 수업이 이어졌다. 도미닉이 패턴 시범을 보이고, 그가 지목하는 교육생이 나와 그걸 재현해 보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패턴이란 PNF 치료 동작을 일컫는 것으로, 상지 패턴, 하지 패턴 등 수많은 동작으로 나누어지고, 치료사는 이 동작들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응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었다.

도미닉은 먼저 상지 패턴부터 선보였다. 그가 무던하게 내뱉는 말을 통역사가 열심히 해석해 주었다.

"우선 레벨 2까지 배웠던 패턴을 다시 한 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스타트 포지션은 모두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설명 없이 동작만 빠르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도미닉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였다. 엄청난 숙련도를 바탕으로 동작들을 빠르게 재현해 보인 것이었다.

치료사들은 기억을 더듬거나 직접 몸을 움직여 따라해 보기도 하며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복기해 보았다.

그렇게 약 10분의 시간이 지나고, 도미닉이 패턴들을 응용한 동작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조금은 풀어져 있던 교육생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본격적인 3A 교육이 시작됐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PNF 3A 교육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