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59화 (59/205)

# 59

추락하는 평판에는 날개가 없다? (5)

그날 저녁.

명성 병원 홈페이지에는 기적에 대한 저격 글이 올라왔다. 기적의 불친절함과 잘못된 치료 방법, 그리고 그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평소에 간헐적인 허리 통증이 있어 병원 방문을 고민했었습니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초기에 잡자는 생각이었죠. 그러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아주 잘하는 물리치료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기적 실장님을 찾아가게 됐죠.

처음 치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주 친절하게 해 주시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치료할 때는 통증도 없었고, 기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좀 의아한 동작들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죠.

그런데 집에 와서 있다 보니 점점 허리가…… 처음에는 조금 뻐근한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일어나거나 자리에 앉는 것조차도 힘들어질 만큼 안 좋아졌습니다. 결국 다음 날 아침에 다른 병원을 방문했죠……. 중략…….

저는 지금 돈을 바라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돈을 준다고 해도 받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잘못된 치료 행위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문득 절대 자기 탓이 아니라며 악을 쓰시던 그분의 얼굴이 떠오르네요. 그러면 제 허리는 대체 왜 악화된 걸까요?

그래도 병원의 응대는 좋았습니다. 담당의였던 명석한 선생님은 정말 실력 좋은 의사분이셨고, 인사과 과장님도 너무나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분만 유독…….

의료 분쟁에 있어 병원이 절대 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절한 미소로 응대해 주셨던 명 선생님과 인사과장님에게 기대를 걸어 봅니다. 부디 병원 차원에서 이 일을 해결해 주세요. 저는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 후략…….

김유진의 글은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고, 이에 따라 병원에도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은 직접 홈페이지 글을 본 사람을 통해서, 그리고 명석한에 의해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묘하게 변질된 채로였다.

"이기적 실장님 소식 들었어? 의료사고 났다던데?"

"나도 들었어. 그런데 약간 성추행 같은 것도 있다던데?"

"헐! 그건 몰랐네. 실장님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는데."

"그러니까 나도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사람들은 겉으로는 기적이 그럴 리 없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날 리가 있나?'

'무슨 일이 있었으니까 말이 나왔겠지.'

그럴 때마다 기적의 평판은 조금씩 내려갔다.

-병원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평판이 내려갑니다.

퀘스트가 시작될 때만 해도 85에 달했던 평판은 첫날 80 밑으로 내려갔고, 김유진이 올린 저격 글 이후 계속 하향세를 걸어 아예 60 밑까지 내려가 버렸다.

물론 기적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수치료실 직원들이었다. 동료 직원들이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물어올 때마다 절대 아니라고 답하며 적극적으로 변호한 것이다.

효과가 있었다. 그들이 그들의 동기들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적극적인 변호를 할 때마다 기적에게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병원에 옹호 여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평판이 살짝 상승합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미미했다. 그들이 옹호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퍼져 나가고 있는 악소문 때문이었다.

기적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처음에 말했던 대로 고소를 한다면 차라리 대응이 편할지도 몰랐다. 법정 싸움으로 간다면 그도 무고죄로 맞서면 되는 일이니까. 그렇게 되면 명명백백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김유진은 정말 교묘한 방법으로 기적을 괴롭히고 있었다. 정작 고소는 하지 않고 홈페이지에 저격 글을 올리거나 병원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소문을 만들어 내는 방법으로 기적을 곤란에 빠트리고 있었다.

'평판은 자꾸만 떨어지는데…… 해결 방법은 보이질 않으니…… 답답하네…….'

현재 그의 평판은 57, 시스템이 말한 퀘스트 실패까지는 단 7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초조하고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시스템 혹시 힌트 같은 것은 없는 거야?'

물론 시스템은 반응을 해 오지 않았다. 기적이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내쉴 때였다. 문득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정수정이었다. 기적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수정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실장님, 병원 물품 좀 사러 갔다가 봤는데요. 이것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수정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를 본 기적의 두 눈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후 일과를 시작하는 기적의 표정은 심란했다. 조금 전 본 것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 거였다니…… 무슨 거래가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이야기를 해 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기적은 김유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오후 3시까지 특수치료실로 오라고 말이다.

그러자 곧 김유진에게서 답변이 돌아왔다. 좋지 않은 말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결국은 3시까지 오겠다는 답변이었다.

그렇게 둘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점,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유진은 냉기가 풀풀 풍기는 표정으로 특수치료실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요? 이제야 사과할 마음이 생겼어요? 사과하려면 본인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차가운 말에 기적의 표정도 차갑게 굳어 버렸다.

"사과는 그쪽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그쪽이 오는 게 맞죠."

"하…… 뭐라고요?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요? 아직도 정신 못 차렸군요? 정말 고소를 당하고 싶어서 그래요?"

비아냥거리는 김유진을 보며 기적은 생각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제 할 말만 하는 그녀와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하겠다고.

기적은 말없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보며 김유진은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지금 내 말 안 듣고 스마트폰을 보는 거예요? 와! 진짜 막가자는 건가? 기본이 안 되어 있네, 기본이."

'손님'과 '치료사',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갑'과 '을'.

김유진은 갑에 해당하는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기적을 마구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갑과 을은 언제든 을과 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원하는 사진을 찾아낸 기적이 스마트폰을 김유진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익숙한 카페에 앉아 명석한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 이게 뭐예요?"

기적이 스마트폰을 거둬들이며 이에 답했다.

"보시는 그대로요. 그때 분명 처음 보는 사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왜 거짓말 하셨습니까?"

"그, 그게……."

김유진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 눈알만 디루룩 굴렸다. 이마와 콧잔등에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말을 잃은 그녀를 대신해 기적이 나섰다.

"이대로 이 사진을 들고 경찰서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할까요? 아니면 모든 걸 인정하고 사과하실래요?"

기적은 얼마 전 김유진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물론 이 사진 하나만 가지고 모든 것을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명석한과는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녀가 법적인 책임을 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거짓말이 들통났다는 점과 경찰서를 거론한 기적 때문에 김유진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기적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예전에도 비슷한 일로 경찰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김유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기적이 몸을 돌리기 무섭게 그녀가 기적을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내가 미안해요. 내가 실수했어요."

다리에 힘이 풀렸을까? 김유진은 옆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적은 그 모습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김유진은 눈물의 고백을 했다. 이번 일은 명석한의 부탁을 받고 한 일이며 치료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말이 그녀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다.

"미안해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랬어요……. 월세는 계속 밀리고…… 공과금도 밀려서 돈이 급하게 필요했어요……."

기적은 그 말을 고스란히 녹음했다. 그러고는 치료가 끝나기 무섭게 명석한의 진료실을 찾아갔다.

들려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든 석한이 얼굴 가득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실장님이 제 방에는 무슨 일입니까? 혹시 사과라도 하러 오신 겁니까? 사과는 제가 아니라 환자분에게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더 이상 듣기 힘들다는 듯 기적이 말했다.

"사과? 내가 그걸 왜 해야 되는데?"

"내가? 되는데? 이 실장님, 여기는 병원입니다. 누가 공적인 자리에서 반말을 해도 좋다고 했습니까? 지금 막 가자는 겁니까? 해고당하고 싶어서 그래요?"

소리치는 석한을 보며 기적은 '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리도 뻔뻔할 수 있는지,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얼굴을 굳힌 기적이 말했다.

"김유진 님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 왜 그랬냐? 왜 그런 부탁을 했어?"

그제야 유들유들하던 석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의자에 기대고 있던 등이 어느새 바짝 일어서 있었다.

"뭐? 부탁이라니……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모르는 척하지 마라. 나를 모함해 달라고 네가 부탁했다며? 돈까지 주면서."

어찌나 놀랐는지 석한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반동으로 인해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며 그가 말했다.

"뭐? 김유진 님이 그래? 내가 그랬다고? 그건 모함이야. 나는 그 여자 몰라. 이 병원에서 환자로 처음 만났다고! 알지도 못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돈을 준다는 거야? 괜한 사람 모함하지 마. 너 왜 이렇게 막 나가는 거야?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목소리를 높이는 명석한에 비해 기적의 목소리는 침착하기만 했다.

"요 앞에 할리 커피 알지? 거기서 김유진 님하고 만났던데? 나한테 그 사진이 있는데 그래도 모르겠다고 할 거야? 조금 멀리 가서 하지 그랬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 몰라?"

석한은 아차 싶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안면을 몰수했다.

그의 뻔뻔함은 김유진보다 한 수 위였다.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말했다.

"그래, 우리 아는 사이야.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야. 그냥 허리가 아프다기에 병원을 추천해 줬을 뿐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혹시 오해를 살까 봐 그런 거지. 돈을 줬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가 우리 병원에 해가 될 짓을 왜 해?"

기적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석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몸을 일으켜 진료실을 나가려 했다.

그런 기적의 등에 대고 석한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그,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할 거야? 아버지에게 말할 거냐고……!"

기적은 석한의 모습이 아직 철이 덜 든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맥이 빠진 그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이제 나는 네가 왠지 불쌍해 보인다."

얼굴이 굳어 버린 석한을 보며 기적이 재차 말했다.

"걱정 마라. 일단은 말 안 할 테니까."

당장은 쓰지 않고 아껴 두겠다. 석한에게는 그 말이 그렇게 들렸다.

'일단은? 저 자식이…….'

석한이 이를 갈거나 말거나.

기적은 미련 없이 진료실을 나섰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석한은 문이 닫히기 무섭게 책상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던졌다. 종이로 만든 서류철이 힘없이 책상을 때리고 떨어졌다.

"뭐? 내가 불쌍해 보인다고? 제깟 놈이 감히 나를 동정해? 끄으윽!"

석한은 기적에게 욕설을 퍼부었지만 머리끝까지 차오른 화는 조금도 가라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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