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54화 (54/205)

# 54

시간아 멈춰라 (10)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달성도가 2 상승했습니다.

(61/100)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달성도가 3 상승했습니다.

(64/100)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달성도가 2 상승했습니다.

(66/100)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달성도가 5 상승했습니다.

(71/100)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달성도가 1 상승했습니다.

(72/100)

하루하루 기적의 눈앞에 달성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오를 때마다 박현숙의 상태 또한 좋아져 갔다.

몸통과 다리에 힘이 생기면서 서는 것은 물론, 독립적인 보행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고, 경직되어 있던 체간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면서 가능한 동작도 늘어났다.

좋아진 것은 비단 운동 능력 뿐만은 아니었다.

일단 얼굴에 표정이 생겼다. 항상 가면을 쓴 것처럼 무표정했던 박현숙은 이제 감정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얼굴에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 표정의 뜻을 남편만이 알아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뿐만 아니었다. 박현숙의 정신을 좀먹던 우울증도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 꾸준한 약물 치료와 운동이 병행되면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우울증을 훌훌 떨쳐 낸 그녀였다.

명의진은 박현숙의 혼&야르 스케일을 3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그녀가 28세의 젊은 나이로 파킨슨병에 걸린 이후, 무려 10년 만에 진단받은 3단계였다.

아직 그녀의 나이가 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28세의 젊은 나이로 파킨슨에 걸렸을 때만 해도 그녀는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젊은 나이가 그녀에게 축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4단계가 3단계로 하향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꾸준한 약물 치료와 운동 치료가 병행된다면 충분히 그 이상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박현숙에게 병원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니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한 천국이었다.

그것은 박현숙의 태도에서 잘 드러났다.

"선생님, 오늘은 벌써 끝내는 건가요? 더 할 수 있는데……."

"제가 안 됩니다, 제가. 이제 환자가 많아져서 저도 시간을 더 낼 수가 없어요."

시간이 흐르며 특수치료실은 이제 꽤 활성화가 되어 있었다. 정식 회원은 아직 5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명의진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이 꽤나 분주하게 치료실을 드나들고 있었다.

"아쉽지만 하는 수 없죠. 오늘도 감사함니다, 선생님."

박현숙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위대한 치료에 성공했습니다. 환자가 아쉬워합니다. 보상으로 55(+5)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달성도가 5만큼 상승합니다. (101/100)

-퀘스트 [시간아, 멈춰라!]의 목표를 초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880(+80)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와 보상이 주어진다는 메시지가 연속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메인 보상은 메시지만 떠올랐을 뿐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예전의 기적이었다면 바로 주어지지 않는 보상에 조급함을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지난 여러 번의 경험은 그에게 참을성이라는 것을 선물해 주었다.

'곧 보상이 주어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기적이 메시지를 지워 버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남편분은 어디 가셨나요? 아까부터 안 보이시네요?"

그러자 박현숙이 워커를 이용해 휠체어에 앉으며 말했다.

"아까 수납하러 간다고 갔어요. 차에서 뭐 가져올 것도 있고 그래서. 이제 제가 이렇게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밝은 목소리로 말한 박현숙이 시계를 확인했다.

"끝나기 전에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어! 저기 오네요."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한남훈이 옆구리에 뭔가를 끼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걸어오는 방향에는 박현숙이 아닌 기적이 있었다.

"벌써 치료가 끝난 겁니까? 제가 조금 늦었군요."

어느새 기적의 앞에 도착한 한남훈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것을 기적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신문이었다.

"제가 글 하나 썼는데 시간 되실 때 한번 읽어 보세요. 첫 장에 쪽수 나와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거……."

그는 또 왼손에 들고 있던 직사각형 모양의 봉투를 내밀었다.

"신문 보시면 이게 뭔지 알게 될 겁니다. 꼭 신문 먼저 보시고 보세요. 그래야 순서가 맞습니다."

기적은 순간 돈 봉투인가 싶어 망설였지만, 곧 봉투가 돈 봉투와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꼭 순서 지켜서 보겠습니다."

전달을 마친 한남훈은 그 즉시 박현숙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향했다. 둘의 표정이 어쩐지 부끄러워 보였지만 기적은 그것을 캐치해 내지 못했다.

"어서 오세요, 바로 치료 시작할까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다음 환자 때문이었다. 신문과 봉투를 실장실 안 책상에 올려 둔 기적은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오늘은 밸런스 볼을 이용해서 치료할 거예요."

아무도 없는 실장실 안 책상에는 흑백의 신문과 딱지를 접듯이 만든 하얀 봉투가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치료를 끝내고 신문을 보자마자 기적이 내뱉은 말이었다. 신문 첫 페이지 오른쪽 하단에 있는 목차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시간아, 멈춰라!(기적의 물리치료사) 13P(한남훈 칼럼리스트)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신문 표지에 적혀 있었다. 기적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신문을 넘겼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13P였다.

[시간아, 멈춰라!(기적의 물리치료사)]

제가 사랑하는 집사람을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결혼한 지 딱 10주년이 되네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내는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파킨슨병이라고 부르는 난치병이지요. 보통은 70대 이상의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인데 정말 불운하게도 아내는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파킨슨병을 얻었습니다.

한남훈의 칼럼은 비교적 담담하게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글이 진행될수록 이야기는 점점 극적으로 변해 갔다.

아내가 파킨슨 진단을 받은 날도 벌써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결혼을 불과 세 달 앞두고 파킨슨 진단을 받은 그날을.

파킨슨병은 정말 무서웠습니다. 아내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빼앗아 가 버렸죠. 시간, 표정, 건강 등등…….

그 때문에 저희는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민하지 않고 혼인신고를 해 버렸습니다. 주변에서는 반대했지만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물론 병간호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히스테릭하게 변해 가는 아내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예, 솔직히 저는 지쳐 버렸습니다. 모든 걸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제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병적으로 병원을 찾아다닌 것은. 잘한다는 병원은 집착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만족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널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했다는, 아내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고백과 함께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기적의 물리치료사라고 부르겠습니다. 왜냐고요? 그 사람이 저와 제 아내에게 기적을 보여 줬거든요.

사실 제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또 뜬금없는 자기 고백을 한 것은 바로 이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 수많은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을 만나 봤습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달랐습니다. 첫날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선생님은 역시나 달랐습니다.

이 선생님을 만나고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저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존경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이 사람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 주세요. 제 아내에게 그랬듯 많은 환자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세요.

한참이나 더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한남훈의 칼럼은 이내 결말을 맞이했다.

선생님, 다가오는 7월 1일.

저와 제 아내가 결혼한 지 딱 10주년이 되는 날.

늦었지만 결혼식을 올리려 합니다. 그 자리에 선생님이 꼭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선생님과 제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외치겠습니다.

시간아, 멈춰라! 내 생애 최고 빛나는 순간아, 영원하라고! 말입니다.

아! 끝내기 전에……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최고 빛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한번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시간을 멈추고 싶은…… 여러분 인생에 최고 빛나는 그 순간을 말입니다.

"음……."

이야기는 그렇게 끝을 맺었고, 기적은 저도 모르게 침음을 내뱉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벤트였다. 지금까지 그가 환자들을 위해 이벤트를 한 적은 많았지만, 반대로 환자와 보호자가 자신을 위해 이벤트를 해 준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한남훈을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엉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짜고짜 자신의 손을 잡으며 아내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을 때는 말이다.

그래도 매일 얼굴을 보며 그 판단을 조금씩 바꿔 가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역시나 한남훈은 엉뚱한 사람인 듯했다. 그 엉뚱한 마음씨가 보이는 것 같아 기적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매달았다.

기적의 손은 어느새 한남훈이 주고 간 청첩장을 넘기고 있었다.

* * *

무더위가 시작되는 어느 날.

서울에 위치한 한 야외 결혼식장에서는 한 커플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초혼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잔디밭으로 만들어진 버진 로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긴장한 듯 보이는 그 남자는 연신 땀을 훔쳐 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시선이 닿는 곳, 그러니까 남자의 맞은편에는 1명의 여자가 서 있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오늘의 주인공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곧 있을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근 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졸혼, 황혼 이혼 등등.

너무도 쉽게 도장을 찍고 님에서 남으로 갈라선다.

하지만 그들은 알까? 눈앞의 부부가 이 결혼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어느 순간 피아노 연주곡이 울려왔다. 그리고 여자는 그 음악에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여자의 걸음은 마치 펭귄의 그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보폭은 짧고, 자세는 구부정했다.

하지만 감히 누가 그 걸음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수 있으랴! 단언컨대 지금 이 여자의 걸음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걸음이었다.

축하를 위해 모인 하객들도 모두 숙연한 표정으로 더딘 걸음을 옮기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오늘의 신부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오랜 시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던 환자였다.

다시는 혼자 서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환자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 여자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걸을 수가 있지?'

'분명 휠체어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는데?'

여자의 처지를 알고 있는 하객들은 그 여자의 걸음을 보며 '기적'이라고 수군거렸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 뿌듯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하객들 뒤 그늘진 곳에 서 있었다. 박현숙과 한남훈은 그를 보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발견하기 힘들 거다.

기적은 한남훈의 손을 잡은 뒤,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짓는 박현숙을 보며 속삭였다.

'시간아, 멈춰라! 내 생에 최고 빛나는 순간아, 영원해라!'

오늘도 기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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