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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45화 (45/205)

# 45

시간아 멈춰라 (1)

기적의 변화를 느낀 것은 비단 차민준뿐만은 아니었다. 그 날 기적을 만난 많은 치료사들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네, 부팀장님도요!"

인사를 나누고 멀어져 가는 기적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며 우측의 치료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요즘 부팀장님 좀 멋있어지신 것 같지 않아?"

"그러게. 내 생각에는 치료를 잘하니까 더 멋있어 보이는 것 같아. 그러니까 후광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치,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지? 나 아까 살짝 심쿵할 뻔했잖아."

"에이, 오버는 하지 말고.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런가? 흐흐. 아무튼 진짜 훈훈해지셨어."

"그건 나도 인정!"

좌측의 치료사가 멀어져 가는 기적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으며 말했다. 치료사들은 만난 지 이제 3~4개월밖에 되지 않은 기적에게 꽤나 큰 호감을 품고 있었다.

단지 훈훈해진 얼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부분은 어디까지나 플러스알파일 뿐이었다.

치료사들은 기적의 실력과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조용한 카리스마에 매료된 사람은 비단 주호식뿐만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레벨 업 시스템과 함께 인간 이기적 또한 나날이 발전하고 있었다.

* * *

"반갑습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이렇게 앞에 서서 보니까 기분이 굉장히 색다르네요. 그럼 교육을 시작해 볼까요?"

교육을 위해 모인 치료사들의 앞에 서며 기적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치료사들이 눈을 빛내며 박수를 보내 왔다.

박수가 잦아들기를 기다린 기적이 말을 이었다.

"사실 실장님께 1시간 동안 교육하라는 말을 듣고 무슨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주제라도 정해져 있으면 쉬울 텐데, 주제를 생각하는 데만 꼬박 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오늘의 강의는 주제가 없다."

주제가 없다는 말에 치료사들의 표정에 의문이 어렸다. 주제가 없는 교육이라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적당한 타이밍에 기적이 나섰다.

"그러니까 오늘 교육은 자유 토론이 될 겁니다. 지금부터 5분을 드리겠습니다. 옆 사람과 토론을 해도 좋고, 혼자 생각을 해도 좋으니, 평소 궁금했던 것 아무거나 질문을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그에 대해 대답하고 같이 해결해 나가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 질문은 정말 아무거나 좋습니다. 신경계 환자에 관한 것도 좋고, 평소 자신이 불편했던 것에 대해 물어도 좋고, 아예 치료와 관련이 없는 질문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교육의 주제를 정하는 겁니다."

기적이 이런 방식을 떠올린 것은 퀘스트 덕분이었다. 15명 이상의 교육생들을 만족시키라는 것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맞춤형 교육을 하면 보다 쉽게 만족감을 느끼겠지. 보상을 주겠다는데, 사양할 이유가 없잖아.'

치료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누군가는 생소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신선한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빛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같은 이야기를 놓고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양했다.

기적이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자, 지금부터 5분 드리겠습니다. 모두 의무적으로 질문할 거리를 생각해 주세요."

그 말과 함께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갔다. 치료사들은 서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혼자만의 질문을 생각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오래지 않아 5분이 지나갔다.

기적은 손뼉을 치는 것으로 시간 종료를 알렸다.

"자! 시간 종료됐습니다. 다들 준비됐죠?"

"네, 준비 끝났습니다."

몇몇 치료사들은 자신 있게 대답했고, 몇몇 치료사들은 기적의 시선을 외면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장난기가 동한 기적은 눈을 피하는 사람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거기 이선민 선생님부터 말씀해 보실래요? 그냥 자리에 앉아서 하셔도 됩니다."

콕 집어 말하자, 이선민이 곤란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적당한 질문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1번 타자인 만큼 기적은 관용을 베풀었다.

"정 없다면 저에게 사적인 질문을 해도 됩니다. 무슨 질문이든 오케이입니다."

웃으며 말하자 이선민이 겨우 입을 열었다. 질문은 상상 이상으로 식상했다.

"여, 여자 친구 있으세요?"

기적이 실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시작부터 나오네요. 저 여자 친구 없고요. 혹시라도 이런 사적인 질문하실 분들 지금 손들어 주세요. 후딱 끝내 버립시다."

기적의 말에 여기저기서 빵! 하고 웃음이 터졌고,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기대했던 질문은 아니었지만 효과는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더 이상의 사적인 질문은 없었다. 기적으로부터 발언권을 얻은 손현민이라는 치료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소 라운드 숄더가 있어서 자세가 엉거주춤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질지 궁금합니다."

"라운드 숄더요? 앞으로 한번 나와 볼래요?"

그 말에 손현민이 앞으로 나왔고 기적은 손현민의 어깨와 척추 라인을 면면히 관찰했다.

'음…… 확실히 라운드 숄더네. 아직 완전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두면 위험할 수도 있겠어.'

시진을 마친 기적이 그를 옆으로 돌려세웠다, 그의 옆 라인이 교육생들에게 보일 수 있도록.

그리고 말했다.

"다들 보이시나요? 현민 샘의 척추 라인이?"

"네, 보입니다."

"라운드 숄더에는 필연적으로 요추 전만, 흉추 후만, 경추 전만이 따릅니다. 사람의 척추는 소문자 s를 유지해야 하는데, 지금 현민 샘처럼 대문자 S라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라운드 숄더를 먼저 치료해야 할까요? 아니면 척추 라인을 먼저 치료해야 할까요?"

한 치료사가 답했다.

"라운드 숄더 아닙니까?"

기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척추를 먼저 손봐야죠. 척추는 몸의 중심입니다. 척추 라인이 좋아지면 자연스레 라운드 숄더와 거북목 현상까지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자, 보세요. 현민 샘 턱을 아래로 살짝 잡아당겨 보세요."

그 말에 현민이 턱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단지 턱을 당겼을 뿐인데, 대문자 S 라인이 소문자 s 라인에 가까워진 것이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척추 라인은 물론, 라운드 숄더까지 상당 부분 개선된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기적이 손현민을 향해 부탁했다.

"혹시, 상의 탈의 가능할까요?"

"네네."

손현민은 기꺼이 상의를 탈의했고, 덕분에 치료사들은 더욱 선명하게 척추의 변화를 살필 수 있었다. 현민 또한 치료실 사방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현민 샘 말고도 본인이나 주변에 라운드 숄더와 거북목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턱을 살짝 당기고 다니라고 조언해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척추 건강이 상당히 좋아질 겁니다."

현민에게 상의를 입으라고 말한 기적이 말을 이었다.

"물론 라운드 숄더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대흉근, 소흉근 같은 근육 스트레칭과 병행된다면 더욱 좋겠죠. 이때 중요한 점은 남이 해 주는 수동 운동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반드시 본인 스스로 능동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기적이 어느새 옷을 입은 현민을 바라보았다.

"현민 샘, 질문에 대답이 되었나요?"

"네, 충분히 알겠습니다."

현민이 들어가자 기적은 다음 질문을 받았다.

"자, 다음 질문요."

그러자 이번에는 박진구라는 치료사가 손을 들었다.

"평소에 허리 통증이 심한데요. 병원에도 많이 다녀 봤는데 이렇다 할 차도가 없어서요.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번에도 기적은 박진구를 앞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걸어오는 자세와 척추 라인을 유심히 관찰했다.

'일단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기적은 준비해 둔 베드에 박진구를 엎드리게 한 뒤, 척추 라인과 허리 근육들을 촉진해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별다른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상체에는 문제가 없어. 그렇다면 발상을 전환해 볼까?'

고개를 끄덕인 기적이 이번에는 하체를 만졌다. 칼프 머슬이라 불리는 종아리 근육을 만져 보고, 또 햄스트링이라고 불리는 허벅지 뒤 근육도 만져 보았다.

"진구 선생님은 운동을 좋아하나 봐요?"

그러자 박진구가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축구 좋아합니다. 축구를 좋아해서 조기 축구를 다니고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기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답이 나왔네요. 진구 선생님의 허리 통증은 다리에서 기인하는 겁니다. 칼프 머슬이 짧아지면서 햄스트링을 짧아지게 만들고, 또 짧아진 햄스트링이 허리에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간단한 동작 한번 해 보죠. 진구 선생님,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바닥을 짚는 스트레칭 해 보세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박진구가 허리를 구부려 땅을 짚으려 했다. 그러나 어림없었다. 손가락이 땅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박진구의 입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보세요. 비정상이라고 해야 할 만큼 다리 뒤 근육이 짧아져 있어요. 남자분들에게서 많이 볼 수 있는 증상인데요. 진구 선생님은 보다 심하네요. 아마 축구처럼 격한 운동을 하면서 빚어진 현상이겠죠. 축구처럼 격한 운동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뒤 근육이 짧아지게 되어 있어요. 때문에 충분한 준비운동과 마무리 운동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한 기적이 다시 진구를 자리에 눕게 했다. 그리고 PNF의 기본 스킬인 홀드 앤 릴랙스 기법을 이용해서 진구의 뒷다리를 늘려 주었다. 홀드 앤 릴랙스, 늘어난 범위만큼 다리를 올리고 홀드 앤 릴랙스. 다시 늘어난 범위만큼 다리를 올리고 홀드 앤 릴랙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자, 다시 일어나서 허리 구부려 보세요."

기적은 다시 처음의 동작을 반복시켰다.

박진구는 다시 허리를 구부렸다. 다음 순간, 박진구는 물론 그를 지켜보던 치료사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적이 잠깐 손을 댔을 뿐인데 박진구의 허리가 폴더처럼 구부러진 것이다.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차이였다.

"와, 대박!"

"진짜 신기하다……."

기적이 말했다.

"정말 기본적인 홀드 앤 릴랙스 기법입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최대한 구부린 상태에서 8초간 유지하고, 펴고 쉬었다가 다시 늘어난 범위만큼 구부리고 8초간 유지, 다시 휴식. 이걸 반복하면 됩니다."

기적이 그렇게 말했을 때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8초인가요?"

"8초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8초 이상 홀드해도 더 이상의 효과가 없다고 논문에서 봤습니다."

"아…… 그렇군요."

기적은 다시 박진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스트레칭을 해서 뒤쪽 근육이 늘어나면 허리 통증은 자연히 좋아질 겁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나요?"

"네, 차후에 경과보고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기적이 다시 좌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 너무 본인들 이야기만 하기는 그러니까 환자에 대한 질문도 좀 들어 봅시다."

기적은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질문을 받아 나갔다. 치료사들은 기적의 대답을 듣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면서 즐겁게 교육에 참여했다.

그럴 때마다 기적의 머릿속에는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교육생들이 만족해합니다. (1/15)

-교육생들이 만족해합니다. (2/15)

-교육생들이 만족해합니다. (3/15)

올라가는 숫자와 함께 치료사들은 더 나은 치료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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