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꿈을 향해 던져라 (13)
3쿼터 초반.
1, 2쿼터와 다름없이 용인대 YD의 맹공이 쏟아졌다. 완전히 몸이 풀린 YD는 수준 높은 플레이를 선보이며 연신 관중의 감탄성을 이끌어 냈다.
사실 용인대 YD는 휠체어 농구계에서 강팀으로 꼽히는 팀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팀이기 때문에 실업의 지원하에 농구에 전념하는 실업 팀 선수들보다 기술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대 YD는 휠스켓을 상대로 기존 팀의 무서움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라는 전제 조건을 깔 필요도 없었다.
굳이 그런 조건을 깔지 않더라도 그들이 보여 주는 퍼포먼스는 충분히 훌륭했다.
YD는 주전 멤버를 빼고 로테이션을 가동하는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스코어는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벌어졌다. 아웃 넘버를 만들며 손쉬운 레이업 득점을 올린 그들은 기어이 점수를 11 대 45까지 벌려 놓았다.
재미있는 상황은 다음 순간 벌어졌다. 공을 이어받은 기적이 하프라인을 넘어가며 손가락 3개를 들어 올렸다. 약속된 플레이를 수행하자는 의미의 수신호였다.
그 신호에 휠스켓 선수들이 반응했다. 기적을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오른쪽 3점 라인 밖으로 이동한 것이다. 단 성우는 제외였다.
그는 홀로 왼쪽 라인에서 자리를 잡은 채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적의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아이솔레이션이었다.
아이솔레이션은 팀의 에이스에게 1 대 1 대결을 펼칠 공간을 열어 주는 작전이었다. 물론 이는 나머지 팀원들의 슈팅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쓸 수 있는 작전이었지만 용인 YD 선수들은 기꺼이 아이솔레이션을 위한 판을 깔아 주었다.
기적은 의지를 담아 공을 패스했다.
'성우야, 자신 있게 던져! 실패해도 뭐라 그럴 사람은 없어.'
성우는 앞서 다섯 번이나 슛을 실패했기 때문에 어깨가 상당히 무거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공을 들어 올렸다. 순간적으로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도 없이 연습했고, 또 성공시켰던 작전이야. 성공 못 할 이유가 없잖아.'
성우는 등지고 있던 몸을 돌려 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전담 마크맨은 성우에게 슛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의도적으로 새깅 디펜스(슛은 던지도록 두고 돌파를 막는 수비)를 펼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성우는 보다 편하게 연습한 기술을 시도할 수 있었다.
'나를 무시하지 마라!'
천천히 움직이던 성우가 휠체어를 빙글 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침없는 슈팅! 공은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백보드를 때린 뒤, 유유히 림을 통과했다.
그 슈팅 하나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성우가 처음으로 슛을 성공시킨 시점, 양 팀의 스코어는 30점 이상 벌어진 상태였다. 승패가 이미 갈렸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
그러나 휠스켓 전사들은 굴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슛 감을 찾은 성우가 있었다. 무려 3연속으로 슛을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 1개는 3점 슛이었다.
그렇게 되자 용인대 YD도 더는 성우를 버려두지 못했다. 새깅 디펜스를 버리고 타이트한 수비로 전환한 것이다.
이후 제법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여전히 양 팀의 스코어는 30점 넘게 유지되었지만 3쿼터 득실점 마진만 놓고 보면 12 대 17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물론 4쿼터 시작과 동시에 느슨해졌던 YD의 수비가 다시 탄탄해지고, 주전 멤버들이 다시 나오면서 양 팀의 스코어는 더욱 벌어졌지만, 한때나마 접전을 벌였다는 사실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었다.
"휠스켓! 휠스켓! 휠스켓!"
"달려라! 휠스켓! 포기하지 마라!"
어느새 관중은 압도적으로 MS 휠스켓을 응원하고 있었다. 약자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휠스켓이 보여 준 투혼이 기름을 부은 것이었다.
"허억! 허억!"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휠스켓은 휠을 굴리고 또 굴렸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마치 접전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그리고 경기가 끝났을 때 휠스켓 선수들은 경기에 승리한 용인대 YD 선수들보다 더 기뻐하며 파이팅을 외쳤다.
"나이스! 나이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MS 휠스켓 파이팅!"
"수고했다, 성우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 자격이 있었다.
관중의 반응도 이를 뒷받침했다. 큰 점수 차로 패했지만 비난과 야유 따위는 없었다. 관중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휠스켓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었다.
아름다운 패배.
MS 휠스켓은 당초 목표했던 바를 이룬 것이었다.
기적은 함께 뛴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눈 뒤, 마지막으로 성우와 얼굴을 마주했다.
"성우야, 수고했다. 너는 오늘 최고였어."
성우는 환한 미소로 그 말을 받았다.
"선생님들이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지금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근데 아무래도 울면 안 되겠죠?"
"당연히 안 되지. 너 울면 분위기 이상해진다?"
그렇게 말한 기적이 휠체어를 돌릴 때였다. 돌아서는 그의 등에 대고 성우가 외쳤다.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에 다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게 됐어요."
"……."
-감동적인 치료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22(+2)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환자의 만족도가 20 올랐습니다.
-퀘스트 [꿈을 향해 던져라]의 달성 조건을 모두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레벨 업 확정권 2장을 얻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연달아 들려왔지만 기적은 이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곧 그의 눈에 양 주먹을 꽉 쥐고 힘주어 외치는 작은 소년 하나가 보였다. 그 모습에서 처음의 삐딱했던 불량소년은 찾기 힘들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소년만이 있을 뿐.
다음 순간 기적은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던진 것은 단순한 농구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저 높은 하늘을 향해 찬란한 꿈을 던진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부디 그 농구공이 하늘에 닿기를. 기적은 가볍게 바라보았다.
대회가 끝난 다음 주 토요일.
용인대 내에 위치한 실내 체육관.
그곳에서는 휠체어를 탄 선수들이 농구공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용인대 YD 휠체어 농구 팀이 두 팀으로 나뉘어 치르는 연습 경기였다.
휠체어 농구는 장애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는 스포츠였다. 하지만 이 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너희들이 하면 얼마나 할 수 있겠어? 기존의 농구 선수만큼 할 수 있겠어?
지금 코트에서 뛰고 있는 10명의 선수들은 그러한 편견과 차별을 이겨 내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공이 정신없이 날아다녔고, 휠체어에 탄 선수들이 믿을 수 없는 속도와 파워를 발휘하며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고 있었다.
경기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펼치는 경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쳤다. 선수들은 날듯이 코트를 휘저었고, 곡예와 같은 동작으로 슛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그중 유독 작은 소년이 1명 보였다. 덩치도 작고 나이도 어려 보이는 귀여운 소년. 이 소년은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불의의 사고로 반신마비가 된 환자였다.
충격이 컸을 터였다. 채 고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나이로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절망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결과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용인대 YD 팀에 합류하여 꿈을 키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워낙 휠체어 농구 선수가 부족하기에 감독이 적극적으로 나선 덕분이었다. 정식 선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상관은 없었다. 그보다는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딛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소년의 실력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슛이 정확하다는 것을 빼면 기술적인 면이나 피지컬적인 면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하지만 소년은 정식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부족하니까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니까 더 열심히 움직였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몇 달, 아니 몇 주 만에 저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거지? 소년의 어린 나이와 얼마 되지 않은 농구 경력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수군거렸다.
그 모습을 시종일관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관중석 한쪽에 앉아 소년이 뛰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 그러니까 성우는 그가 온 것을 알지 못했고, 아마 볼 정신도 없을 거다.
기적은 멋지게 득점에 성공한 뒤, 흐르는 땀을 닦는 성우를 보며 씩 웃음을 지었다.
'부디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되기를. 그리고 꼭 꿈을 이루기를…….'
오늘도 기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꿈을 향해 던져라!(김성우) 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