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29화 (29/205)

# 29

꿈을 향해 던져라 (12)

입원 2팀 선임 치료사 차민규

입원 2팀 평 치료사 서종훈

입원 1팀 평 치료사 우진원

입원 3팀 평 치료사 이상문

입원 3팀 인턴 치료사 맹동식

그리고 김성우, 그리고 이기적.

이렇게 7명은 휠체어 농구 대회를 위한 맹훈련에 돌입했다. 치료 시간에 성우와 훈련했음은 물론, 퇴근 이후에도 시간을 내 훈련을 실시했다.

병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전용 휠체어 지원과 인근 구장을 빌려주었고, 셔틀버스까지 운영해 주었기에 7명은 보다 편하게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시작할 때만 해도 그들의 실력은 형편없었다. 휠체어 좀 굴린다는 이유로 선발된 그들은 슈팅, 드리블 등의 고급 기술은 고사하고 공을 향해 내달리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라고 할까, 치료사, 아니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식으로 해서 대회에 나갈 수 있을까?"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은데? 나가서 개망신만 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어쩐지 처음부터 하기 싫더라고."

그러나 흘린 땀은 역시나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다. 훈련을 계속함에 따라 그들의 실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운전이 익숙해졌고, 운전이 익숙해지며 기술을 펼치기가 용이해졌다. 짜임새가 조금씩 갖춰지기 시작하며 선수들의 태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이거 은근히 재미있네."

"운동이 생각보다 엄청 되는데?"

"그러니까. 나는 2kg나 빠졌더라고. 뱃살도 빼고, 휴가도 받고 참가금도 챙기고, 이런 걸 두고 일석삼조라고 하나?"

"그나저나 부팀장님하고 성우 엄청 잘하네. 동식이도 곧 잘하고."

유소년 농구 유망주였다던 성우는 훈련이 거듭되며 예전의 실력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안정된 레이업은 물론 45도 지점에서 던지는 뱅크슛은 십중팔구 들어갈 만큼 엄청난 정확도를 보이고 있었다.

동식 또한 괜찮은 실력을 보였다. 정교한 드리블이나 슛은 없었지만 큰 덩치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플레이로 코트를 휘젓고 있었다.

기적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학창 시절 농구를 즐겨했던 그는 수준급의 휠체어 스킬과 드리블 능력을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몰랐지만 매직 핸드의 레벨 업 효과가 손기술에 영향을 미친 것이었다.

"부팀장님 드리블 진짜 잘하시네요."

"성우는 슈팅이 예술이네."

"동식이는 에너지 레벨이 최고네. 지치지도 않는 거야?"

그렇게 개인 기술이 어느 정도 올라온 다음에는 팀 전술 훈련에 들어갔다. 패스를 주고받고, 약속된 플레이를 연습하는, 이를테면 심화 학습이었다.

그렇게 훈련에 열중하는 사이 그날이 다가왔다. 명성 병원 배 휠체어 농구 대회가 열리는 그날이 말이다.

***

2018년 5월 4일.

하늘이 유난히도 맑은 토요일 아침.

서울 시립 체육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휠체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푸는 사람들, 농구공을 탕탕탕 튕기며 몸을 푸는 사람들, 그런 이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또 무언가를 준비하듯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운동장을 채운 모든 이들은 황금빛 햇살을 받으며 곧 있을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 다들 주목해 주세요!"

그런 그들의 행동을 멈추게 한 것은 인사과장 임중기였다. 명의진의 지시를 받은 그는 이번 행사에 관한 일체를 전담하고 있었다.

"이제 곧 대회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대회에 참가하실 분들과 이를 관람하길 원하시는 분들은 서둘러 농구장 안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중기의 말에 아직까지 혼잡한 실내를 피해 실외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농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네."

MS라는 문구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있는 기적.

"네, 드디어 시작이네요."

마찬가지로 유니폼을 입고 있는 김성우.

"떨리네요."

그리고 같이 훈련을 해 온 5명의 선수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다들 자신 있지?"

기적이 모두를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

그 질문에 성우를 포함한 5명의 선수들은 떠올렸다, 갑작스레 휠체어 농구 선수로 선발되고 이를 준비하며 지냈던 3주간의 시간들을.

"자신 있습니다."

물론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냉정히 따져 봤을 때 기존의 팀을 이길 생각을 하는 것은 과욕이었다.

하지만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때로는 아름다운 패배도 있는 법이다. 명성 병원 휠체어 농구팀, 팀명 MS 휠스켓은 오늘 그걸 해 볼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패배를 말이다.

"사랑을 행동으로! 제1회 명성 병원 배 휠체어 농구 대회를 지금 시작합니다!"

특별 초빙한 전문 사회자의 선언과 함께 대회가 시작되었다. 오늘 대회에는 총 4개 팀이 참가했다. 경기권의 고양 홀트, 용인대 YD, 수원무궁화, 그리고 MS 휠스켓, 이렇게 4개 팀이 우승 상금 1천만 원을 두고 경쟁을 펼칠 예정이었다.

"첫 번째 경기! 용인대 YD 대 MS 휠스켓!"

사회자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도합 10대의 휠체어가 우르르 농구 코트 안으로 달려들었다. 첫 경기에 참가할 10명의 선수들이었다.

"와아아아!"

소규모 관람석에 자리한 300여 명의 관람객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병원 인사들도 보였다. 중앙에 마련된 특별석에는 병원장 명의진을 비롯해 박영규, 주호식 등 재활치료과 간부들과 각 과 과장들이 앉아 있었고, 그 뒤로 마련된 관람석에는 주호식이 그토록 강조했던 송한나를 비롯 각 팀의 팀장과 부팀장들, 그리고 인턴 사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쪽에는 푸드 코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햄버거, 치킨, 떡볶이 등의 먹거리를 판매하는 이 푸드 코트의 수익금은 전액 환우들을 위해 기부할 예정이었다.

소식을 듣고 몰려든 몇몇 기자들이 체육관 곳곳을 찍는 가운데, 경기에 참가할 10명의 선수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코트 중앙에 모여들었다.

휘슬을 목에 건 주심이 경기를 앞두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정정당당하게. 페어플레이 합시다! 상호 간의 인사."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상호 간의 인사가 이어지고, 선수들은 전투 대형으로 헤쳐 모였다. 양 팀에서 가장 키가 큰 2명은 점프볼을 하기 위해 하프라인 앞에서 얼굴을 맞댔고, 나머지 선수들은 공을 잡기 용이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첫 득점은 놀랍게도 MS 휠체어 팀에서 나왔다. 맹동식이 점프볼을 공격 코트로 쳐 냈고, 시작과 동시에 달려 나간 기적이 노마크 레이업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와아아아!"

자연스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지금 이곳은 홈구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많은 병원 직원들이 와 있었으니까. 엄청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좋은 분위기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경기권 최강이라 불리는 용인대 YD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첫 득점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것일까,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YD가 압도적인 경기력을 발휘했다.

득점 또 득점, 그리고 또 득점.

신기에 가까운 경기력이었다. 그들은 바퀴가 굴러가는 와중에도 슛을 던져 득점을 성공시켰고, 휠스켓의 혼을 빼놓는 움직임과 드리블로 손쉬운 득점을 연결시켰다.

반면 휠스켓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들은 YD의 압박 수비에 막혀 이렇다 할 공격을 펼치지 못했고, 에라 모르겠다 슛으로 허무하게 공격 기회를 날려 버렸다.

좀 봐줄 만도 한 상황이었지만 봐주기는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라는 생각하에 YD는 조금의 느슨함도 없이 휠스켓을 몰아 부쳤다.

그렇게 2쿼터가 끝났다. 스코어는 7 대 34.

점수 차를 계산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점수가 벌어져 있었다.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러나 휠스켓의 벤치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저쪽 진짜 잘하네요…… 이 정도면 거의 서커스 아닌가요?"

"그러니까. 어떻게 바퀴가 굴러가는 와중에 슛을 던져서 집어넣지?"

"그래도 대단하지 않아? 그 팀을 상대로 우리 7점이나 넣었잖아."

"하긴. 생각보다는 선전했어. 점프볼 상황에서 약속된 플레이도 성공시켰고."

그래도 아쉬운 점은 분명 있었다. 기적은 시선을 돌려 풀 죽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성우를 바라보았다. 과도한 의욕과 긴장 때문일까, 평소에는 잘만 들어가던 슛이 오늘따라 전혀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성우야."

기적은 부름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성우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가 이어졌다.

"슛은 들어갈 때도 있고, 안 들어갈 때도 있는 거야. 평소에 엄청 높은 성공률 기록했잖아.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기회가 오면 냅다 던져. 명심해, 오늘 이 무대는 오롯이 널 위한 무대라는 걸."

흔히 들을 수 있는 위로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성우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적의 매직 마우스가 또 한 번 마법을 부린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는 성우의 눈빛은 반짝 빛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