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28화 (28/205)

# 28

꿈을 향해 던져라 (11)

***

"부팀장, 원장님하고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주호식의 말에 기적은 3일 전 명의진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명의진은 성우에게 휠체어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는 기적의 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흥미롭다는 듯 몇 분에 걸쳐 질문을 던진 것이다.

환자의 치료 차트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어떻게 휠체어 농구를 할 생각을 했느냐 등의 질문이었다.

그때는 환자를 향한 흔한 관심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주호식의 얼굴을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원장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그게……."

주호식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말을 이었다.

"원장님이 명성 병원 배 휠체어 농구 대회를 열겠다고 하시네."

"예? 명성 병원 배 휠체어 농구 대회요?"

"그래. 그리고 그 대회에 우리 병원도 출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 김성우 환자를 주축으로 말이야."

"아니, 대회에 나가려면 최소 5명이 있어야 하는데요? 저희 병원 코드 환자 중에 휠체어 농구를 할 만한 사람이 있나요?"

기적의 질문은 제법 날카로웠다. 명성 병원의 환자들은 대부분 스트록 환자들로, 코드 환자는 그 수가 많지 않았으니까. 그마저도 대부분 보험 관계로 들어와 있는 환자들이었고.

그러나 주호식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왜 꼭 코드 환자가 나가야 하는데?"

"네? 설마……?"

말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주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팀장도 있고, 나도 있고, 사람 많잖아. 휠체어 잘 만지는 치료사들 골라서 라인업 만들어 봐. 원장님이 부팀장한테 팀 구성 전권을 맡기겠다고 하시던데?"

'그거 참 대단한 권력이네.'

기적은 말문이 막혔고, 주호식은 말이 많아졌다.

"알아보니까 우리나라에 휠체어 농구 팀이 20팀 정도가 있는데 그중 9팀은 비장애인 팀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나가는 것도 문제는 안 될 거야. 사실 우리 병원이 코드 쪽으로는 입지가 넓지 않잖아. 그래서 이 기회에 코드 환자들에게 병원 홍보도 하고, 바자회를 열어서 수익금으로 좋은 일도 하고 일석이조가 아니냐는 것이 원장님 말씀이야."

"그런데 성우가 나간다고 할지도 걱정인데요."

"그건 걱정 마. 이미 원장님이 김성우 환자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니까."

"아…… 일 처리 참 빠르시네요."

기적은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그런데…… 그거 주말에 열리죠?"

주호식은 그 질문의 의도를 단숨에 캐치해 냈다. 기적이 괜히 동료들의 휴식일을 뺏을까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명의진의 지시 사항을 떠올려 보면 말이다.

"대신 대회에 참가하는 치료사들에게는 연차 한 장 플러스! 그리고 아직 구상 단계이긴 한데 참가비도 꽤 있다지, 아마?"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주호식은 계속해서 기적을 다독였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진행해. 어차피 소규모로 여는 대회고, 급조한 우리 팀에게 우승을 바라는 사람도 없어. 그냥 참가하는 데 의의를 두는 거지. 원장님은 이번 대회의 캐치프레이즈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화합을 내세울 모양이야. 이건 기회야, 우리 재활치료과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대회는 3주 후 토요일. 어때, 이만하면 준비할 시간도 넉넉하지?"

주호식이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몸도 마음도 아픈 환자]가 연계 퀘스트 [꿈을 향해 던져라]로 변경됩니다.

-달성 조건 : 1. 해당 환자의 만족도를 80 이상으로 올리세요. (60/100)

-휠체어 농구 대회에 출전하세요.

-보상 : ??? x2

가뜩이나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인데 시스템 메시지가 쐐기를 박아 버렸다. 바뀐 것은 대회에 참가하는 것뿐인데, 두 배의 보상이라니…… 이래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실장님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번에도 주호식은 기적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캐치했다.

"물론 도와줘야지. 내가 이따 치료 끝나고 이야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치료가 있어서 이만……."

인사를 마친 기적이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주호식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뇌까렸다.

'주머니 속의 뾰족한 송곳은 반드시 뚫고 나온다더니…… 조만간 병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지도 모르겠어.'

그날 오후.

주호식은 치료가 끝나기 무섭게 치료사들을 불러 모았다.

"어제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다다다음주 토요일, 그러니까 5월 4일에 명성 병원 배 휠체어 농구 대회를 개최한다. 아직 협의 과정에 있는데 시간은 오전 9시, 장소는 인근 농구장이 될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질문 있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두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5월 4일, 연휴의 시작에 행사라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입원 2팀장 송한나가 초조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그것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이었다.

"휠체어 농구 대회가 뭔가요? 저희도 무조건 참여해야 하나요?"

모두의 시선이 쏠린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주호식은 뜸을 들였다.

"글쎄, 송 팀장이 생각하기에 어떨 것 같아?"

"참가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자 주호식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며 말했다.

"그래? 참가는 자유인데. 그럼 송 팀장은 꼭 오는 걸로."

"어우, 실장님!"

야유 비슷한 송한나의 외침을 외면하며 주호식이 말을 이었다.

"연휴라 다들 놀러가야 하잖아. 어차피 대회가 열릴 농구장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 불이익 같은 거 없으니까 꼭 오고 싶은 사람만 참여하면 돼. 예를 들면 송 팀장 같은 사람?"

다시 한 번 송한나의 야유가 들려왔지만 주호식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송 팀장은 꼭 오는 걸로 하고. 다음 안건인데……."

잠시의 시간 차를 두고 주호식이 말을 이었다.

"혹시 휠체어 좀 굴리는 사람 있나? 막 휠체어 굴려서 휙휙 돌고 이런 거 잘하는 사람 있잖아. 손 좀 들어 봐. 선착순 5명!"

선착순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좌중은 조용했다. 눈치만 살필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주호식이 방법을 바꿨다.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겠다? 그럼 하는 수 없지. 거기 뒤에 선생님들. 가서 휠체어 5개만 가져와 봐. 방법이 있나? 퇴근이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테스트해 봐야지, 뭐."

결국 주호식 앞으로 휠체어 5개가 앞에 놓였다. 주호식이 앞에 있던 5명을 불러냈다.

"앞에부터 5명씩 나와서 할 수 있는 거, 한 번씩 해 봐."

그렇게 때아닌 휠체어 경연이 시작되었다.

우물쭈물하던 치료사들은 막상 해 보니 재미있는지 밝은 표정으로 바퀴를 굴렸다.

기적은 한쪽에 서서 열심히 바퀴를 굴리는 치료사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좋은데?'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수준급의 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구색은 갖출 수 있을 것 같았다.

팔짱을 낀 주호식이 기적 대신 리액션을 했다.

"와, 세 번째 누구야? 잘하는데? 이렇게 잘하면서 왜 손을 안 들었어?"

"거기 오른쪽 마지막 우측으로 열외!"

"에이, 장 팀장! 치료사 짬밥이 몇 년인데 그러고 있어? 그러면서 코드 환자들 담당할 수 있겠어? 이번 조는 전원 탈락. 다음!"

주호식은 그런 식으로 총 7명의 치료사를 열외시켰다. 기적보다 직급이 높지 않고, 가능성이 보이는 7명을 추려 낸 것이다.

"자, 모두 한 번씩 했나? 안 한 사람 없지?"

"네, 다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주호식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원장님이 요즘 코드 환자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 병원에 코드 환자가 많아질 확률이 높으니까 선생님들도 기본적인 휠체어 컨트롤 정도는 연습해 두도록 해. 그래야 코드 환자들 교육할 거 아니야? 뭐……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까 잔소리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오늘 다들 수고 많았고, 열외한 7명 제외하고 다들 퇴근할 수 있도록."

"수고하셨습니다!"

"실장님, 수고하셨어용!"

치료사들은 주호식의 마음이 바뀔까 얼른 인사를 건넨 뒤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기적은 치료실이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섰다. 치료사들의 영문 없는 시선을 받으며 그가 말했다.

"선생님들 중에 혹시 농구 좋아하시는 분 계신가요?"

휠체어에 이어 농구까지 나왔지만 치료사들은 여전히 영문이 없는 표정이었다. 설마하니 자신들에게 휠체어 농구를 시킬 것이라고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하는 것이다.

눈치를 보던 치료사 1명이 손을 들었다. 얼마 전 기적과 저녁을 함께 했던 3팀 인턴 맹동식이었다. 막내로서 총대를 멘 것이었다.

"NBA 좋아합니다."

"또요? 또 좋아하시는 분 계십니까?"

눈치를 보던 치료사들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입을 열었다.

"저는 야구는 좋아하는데, 농구는 잘 모릅니다."

"가끔 TV는 봅니다."

"어렸을 때 농구대잔치 좀 봤습니다. 마지막 승부랑."

7명 중 5명은 그래도 농구를 안다고 말했고, 나머지 2명은 농구에 대해 문외한이라고 말했다. 그 대답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럼 여기 두 분은 퇴근하시고…… 나머지 다섯 분은 저와 같이 휠체어 농구 대회에 나가시면 됩니다."

휠체어 농구 대회에 나갈 5명이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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