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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물리치료사-27화 (27/205)

# 27

꿈을 향해 던져라 (10)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우가 일순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몇 초 후, 얼굴을 가린 손바닥 사이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깜짝 놀란 기적이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뭐야, 갑자기 왜 울어?"

"몰라요. 그냥 눈물이 나요."

성우는 뭐라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듯했다. 기적에 대한 고마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애잔함, 그리고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등이 뒤섞여 혼란을 느끼는 듯했다.

기적은 일부러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성우가 눈물을 그치기를 기다려 주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성우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제가 농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럼 왜 하라고 하는 거예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 꿈꾸는 걸 멈춰 버린 인생은 빛바랜 초상화와 같다고. 나는 네가 꿈을 꾸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군요."

성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는 고개를 저으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자꾸 고개를 끄덕이라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거예요?"

"기초 단계까지는?"

"정말이지 못하는 게 없네요?"

"첫 병원이 코드 환자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이었거든.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나? 하여튼 그런 코드 환자를 담당한 적이 있었어. 그 환자 치료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당시 병원에서 선임 치료사들에게 배우기도 했고, 그래서 기본적인 휠체어 스킬 정도는 할 줄 알아."

이제는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았는지 평온해진 목소리로 성우가 말했다.

"한번 해 볼게요. 아니, 해 보고 싶어요!"

다음 날.

기적은 본격적으로 휠체어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휠체어 농구에 반드시 필요한 동작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으로 가르친 동작은 180도 턴이었다. 농구에서 흔히 스핀 무브라고 하는 이 동작은 휠체어 농구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킬이다.

상대를 제칠 때도 사용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공수 전환 상황에서 이 스킬이 사용된다. 쉽게 말해, 휠체어 농구의 핵심 스킬이 바로 이 180도 턴이었다.

"180도 턴은 간단해. 한쪽 바퀴를 돌려서 빙글 도는 거야. 잘 봐."

휠체어에 앉은 기적이 몸을 기울이며 한쪽 바퀴를 강하게 굴렸다. 그러자 원심력에 의해 휠체어가 빙글 돌았다. 선수 못지않은 깔끔한 턴 동작. 은연중에 발동한 매직 핸드가 손의 위치와 상체의 기울기를 조정해 준 결과였다.

멋지게 성공시킨 기적이 보충 설명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거는 반대쪽 바퀴는 강하게 밀어주면서 축이 되는 쪽은 굴러가지 않게 잘 잡아 주는 거야. 아니, 아니지. 쏘리. 잡아 준다기보다는 뭐랄까? 약간 반대로 밀어주는 느낌? 이건 해 봐야지 알 수 있어. 한번 해 봐."

그러나 의욕적인 기적과 달리, 성우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넘쳤다.

"불안한데…… 넘어지면 어떻게 해요?"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지. 그래서 안 떨어지게 스트랩 묶었잖아?"

"하아, 여기를 잡고 돌리면 돼요?"

심호흡을 한 성우가 긴장된 표정으로 바퀴를 잡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매직 아이가 발동했다.

"아니, 조금 더 뒤쪽을 그러쥐듯이 잡아 봐. 지금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 상체를 회전하는 쪽으로 더 기울여야지."

그립과 자세를 정석대로 조정해 줬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성우의 첫 시도는 무참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래도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었으니까.

"처음치고는 상당히 괜찮았어. 그걸 조금 더 빨리하면 되는 거야. 조금 더 속도를 높여서 빙글~ 오케이?"

"아, 이거 에바 참치꽁치!"

장난스러운 말과는 달리 성우는 진중하게 트레이닝에 임했다.

그러한 태도 덕분일까, 몇 번을 반복하자 그의 180도 턴도 조금씩 모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보다 재미있네요."

성우가 땀을 닦으며 살짝 웃었다. 부드러워져 가는 턴 동작을 따라가는 것인지, 그의 표정도 점차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이어서 하자."

"시계에 모터 달았나? 알겠어요!"

땀으로 흠뻑 젖은 성우는 뭔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더욱 좋아진 모습으로 치료실에 나타났다. 병실에서 제법 연습을 한 모양인지 빙글 도는 속도가 보다 빨라져 있었다.

"이거 생각처럼 무리는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됐죠? 완벽했죠?"

성우는 완벽한 자세로 스핀 무브를 선보인 뒤 격정에 찬 목소리로 물을 수 있었다.

180도 턴 동작이 어느 정도 완성되자 기적은 두 번째 동작을 가르쳤다. 스핀 무브만큼 자주 쓰는 스킬은 아니지만 휠체어 농구에서 꼭 필요한 동작, 넘어졌다 일어나기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휠체어 농구는 매우 과격하다. 몸싸움이 허용되는 스포츠인 만큼 골밑에서 상상 이상으로 거친 몸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면 넘어지는 일도 부지기수. 바로 그때 쓰이는 동작이 바로 이 넘어졌다 일어나기다.

"넘어졌다 일어나기의 핵심은 스피드야. 공수 전환 시에 최대한 빨리 일어나야 늦지 않게 백코트를 할 수 있으니까. 아웃 넘버 알지?"

아웃 넘버.

이는 수비가 미처 백코트를 하지 못해 수비보다 공격 숫자가 많은 상황을 뜻하는 농구 용어다. 아웃 넘버가 되면 공격수 중 1명은 노마크 상태가 되어 쉽게 득점을 허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빠르게 백코트를 해야 하는 것이다.

농구를 했었던 성우는 아웃 넘버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 건데요?"

넘어졌다 일어나기는 180도 턴에 비해서는 그래도 쉬웠다.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재빨리 몸을 엎드려 일어나면 되기 때문에 팔의 힘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숙련도에 따라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넘어질 때는 무조건 옆으로 넘어져야 해. 그런 다음 바로 몸을 돌려서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나는 거지."

"일단 해 볼게요."

성우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아직 기적이 해 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동작에 들어갔다.

환골탈태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변화였다. 삐딱한 자세로 '몰라요'만 반복하던 처음과 비교하면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과하면 안 하는 것만 못해."

너무 무리하는 것 같아 기적은 조금 일찍 치료를 끝냈다. 환자의 페이스를 조절해 주는 것 또한 치료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럴까요?"

치료를 끝내자 또 메시지가 들려왔다.

-만족스러운 치료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10(+1)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환자(김성우)의 만족도가 2 상승합니다. (60/100)

'어? 만족도 60이다.'

처음 -10으로 시작했던 만족도였다. 한때는 -20이 되면 퀘스트를 실패한다는 경고 메시지까지 받았다. 이대로 퀘스트에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그날 이후 만족도는 계속해서 올랐고, 어느덧 60까지 치솟았다. 목표치까지 딱 20이 남은 것이다.

비단 성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 모두가, 그에게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박부진 환자는 이제 완전히 좋아져 케인을 들고 산책까지 나가고 있었다.

얼마 전 치료 실장 주호식으로부터 이런 말까지 들었다, 요즘 부팀장에게 치료받고 싶다는 환자들 설득하느라 머리가 아프다는. 병원에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말과 함께였다.

레벨 업 시스템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나날이 성장하는 레벨 업 시스템은 기적을 성공 가도로 이끌고 있었다.

'환자를 치료하면 포인트를 얻고, 포인트를 얻으면 레벨 업하고. 좋은데?'

기적이 내심 쾌재를 부를 때였다.

"뭔가 재미있는 치료를 하는 것 같던데 벌써 끝난 겁니까?"

뒤를 돌아보니 병원장 명의진이 치료과장 박영규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시찰을 나왔다가 기적이 치료하는 모습을 본 듯했다.

"아, 네. 성우가 조금 힘들어 해서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명의진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뭘 하고 계신 겁니까? 멀리서 보기에 엄청 빨리 일어서는 것 같던데요? 단순히 ADL 훈련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만?"

병원장 자리에 그냥 올라간 것이 아니었는지 명의진의 눈썰미는 날카로웠다.

성우를 힐끔 돌아본 기적이 말했다.

"실은…… 성우가 휠체어 농구를 하면 어떨까 싶어서 훈련을 시키던 중이었습니다."

"휠체어 농구요?"

명의진이 살짝 놀란 듯 반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적은 알지 못했다. 방금 나눈 대화가 불러올 나비효과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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