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18화 (18/205)

# 18

아버지의 이름으로 (9)

-퀘스트 보상을 받았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렇게 참신한(?) 방법으로 퀘스트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뭐야, 이 스마트 워치가 보상이라고? 뭐…… 시간도 잴 수 있고, 동영상 촬영도 되니까…… 치료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이건 그냥 평범한 물건이잖아? 이래도 되는 거야?'

기적이 살짝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퀘스트 보상이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아이템을 받을 줄 알았는데 보상으로 나온 아이템은 그가 기대했던 스페셜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물론 고가의 제품이긴 했지만…… 뭔가 당한 기분이랄까?

그런데 그 순간 메시지가 다시 들려왔다.

-스마트 워치 : 착용 시 치료 성공 보상으로 얻는 포인트 10% 상승(소수점 반올림, 최소 +1포인트 보장).

마치 기적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아…… 평범한 스마트 워치는 아니구나. 뭐야, 그러고 보니 다른 선물도 있다고 했는데, 다른 선물을 받았으면 보상 아이템도 바뀌는 거였나?'

-선택에 따라 보상 아이템은 변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템에 주어지는 옵션은 모두 동일합니다.

'그런 거군.'

메시지를 지워 버린 기적은 감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원장실을 빠져나왔다. 마지막까지 주의를 집중해 조용히 문을 닫은 그는, 몸을 돌린 뒤 크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휴우, 끝났다.'

뭔가 큰일을 끝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며 몸에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적은 다리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아갔다.

성공적인 케이스 컨퍼런스였다. 지켜본 원장이 따로 선물을 챙겨 줬을 정도로 대단히 성공적인. 그렇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퇴근하즈아!'

기적은 어느 때보다도 당당한 발걸음으로 3층 재활치료실을 향했다.

***

햇살이 좋은 4월의 첫날.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 예식장에서는 2명의 청춘남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있었다.

최근에는 결혼식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부부들이 참 많아졌다.

미니멀 라이프.

모든 것을 간소화시키는 최근 트렌드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하지만 결혼식이라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규모야 어떻든 간에 많은 사람들을 증인으로 두고 사랑의 맹세를 한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뒤따르는 책임감이 과연 같을까? 말의 힘이란 생각보다 무거운 법,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객들의 박수와 함께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 입장이 이어졌다. 아버지의 손을 붙잡은,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성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버진 로드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늘 신부의 아버지는 지금부터 대략 네 달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환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 남자는 믿기 힘들 정도로 안정된 걸음걸이로 딸을 인도하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다소 느리지만 분명한 발걸음으로.

어떻게 저렇게 잘 걸을 수가 있지? 남자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남자의 걸음걸이를 보며 '기적'이라고 수군거렸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바로 기적이었다. 기적은 예식장 구석진 곳에 서 있었다. 박부진과 김미숙은 그를 보지 못했고, 아마 볼 정신도 없을 거다.

기적은 신랑에게 딸을 보낸 뒤, 뿌듯한 얼굴로 맺힌 땀을 닦는 박부진을 보며 씩 웃었다.

'부디 잘 살기를. 그리고 가족이 두루 평안하기를.'

누가 말했던가? 기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아버지의 이름으로(박부진) 편 完.

꿈을 향해 던져라 (1)

***

4월의 첫 출근 날.

아침 조회를 끝낸 주호식은 기적을 따로 불러냈다.

"부팀장, 혹시 코드 환자 치료할 줄 아나?"

코드 환자란 스파이날 코드 인저리(SCI) 환자의 줄임말로, 흔히 말하는 반신 마비, 혹은 사지 마비 환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기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첫 병원이 코드 전문 병원이었습니다. 환자의 40%가 코드 환자라서 치료해 본 경험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살짝 눈치를 살피며 기적이 말했다. 그러자 주호식이 그거 다행이라는 듯 박수를 짝짝 쳤다.

"오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사실은…… 주말에 코드 환자가 새로 입원했거든. 마땅히 맡길 사람이 없어서 부팀장이 조금 맡아 줬으면 싶은데……."

코드 환자를 배정하려면 그냥 배정하면 그만이다. 일정선 이상의 경력이 쌓이면 뇌졸중 환자나 코드 환자나 충분히 케어할 만한 경력이 쌓이니까.

이를테면 어느 힙합 가수가 말했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같은 것이다. 그런데 차트를 넘기는 주호식은 이상하리만치 기적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마치 미안하다는 듯이…….

'뭐지?'

기적은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넘겨받은 차트를 확인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주호식의 표정에서 느낀 찜찜함의 정체를 말이다.

"아니…… 실장님…… 환자 나이가 열여섯 살이네요? 요추 2번 손상에…… 더구나 아시아 스케일 B면……."

차마 하지 못한 말은 주호식으로부터 나왔다.

"엄청 예민하겠지……."

중2는 아니지만 그 언저리의 나이,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에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 심리 상태가 어떨지 능히 짐작이 가는 상황.

기적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아니, 실장님, 잠깐만요! 이 환자 꼭 제가 맡아야 합니까?"

주호식이 짐짓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부팀장이 이번에 케이스 컨퍼런스를 너무 잘해서 그래."

아니, 잘했으면 상을 줘야지 벌을 줍니까? 라고 따져 묻고 싶은 것을 기적은 꾹 눌러 참았다. 누가 그랬던가, 직장 생활은 인내의 연속이라고.

"아…… 케이스 컨퍼런스…… 정말 제가 맡아야 합니까?"

주호식은 달리 말이 없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얼굴로 기적을 바라볼 뿐. 그 모습이 기적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뭐, 알겠습니다. 제가 해 보겠습니다. 컴플레인 나와도 좀 이해해 주세요."

"그래그래. 이런 환자는 치료사와의 케미가 정말 중요하니까,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체인지해 줄게.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 아…… 그리고 치료 시작일은 오늘부터야. 보니까 10시 30분 타임 비었더라고? 아무래도 그 시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리 연락해 뒀는데, 괜찮지?"

협상의 여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조금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주호식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잰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하…… 중3이라……."

무거운 마음에 기적이 잠시 그 자리를 지킬 때였다.

-퀘스트 발생!

-퀘스트 [몸도 마음도 아픈 환자]를 부여합니다.

-목표 : 해당 환자의 만족도를 80 이상으로 올리세요. (-10/100)

-달성 보상 : ???

'아니, 다 좋은데 마이너스 10은 또 뭐야?'

퀘스트가 발생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10이라는 수치가 눈에 걸렸다. 만나기도 전에 ?10이라니…… 기본적으로 치료사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만나기도 전에 열일곱 환자의 까칠한 얼굴이 눈에 선했다. 불안감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기적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뇌까렸다.

'이거 진짜 잘못 걸린 거 아냐?'

10시 30분이 되자, 앳된 얼굴의 소년 1명과, 그 어머니로 보이는 40대 초반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김성우 환자 내려왔습니다."

물론 그 목소리는 보호자의 것이었다. 기적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김성우로 예상되는 환자를 슬쩍 본 뒤 마주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김성우 환자를 담당하게 된 이기적이라고 합니다."

첫인상이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다고 기적은 생각했다. 뭔가 크고 까칠한 인상의 소년을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작고 귀여운 얼굴을 한 환자가 내려와 있었다.

'괜한 걱정이었나?'

물론 그런 생각은 채 5초를 가지 않았다. 김성우가 입을 여는 순간, 좋았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이씨! 엄마! 나 다리 경련 일어난 거 안 보여? 어따 정신 팔고 있어?"

"아이고, 미안. 엄마가 선생님한테 인사하느라……."

"진짜 구질구질하게 만들 거야, 어?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휠체어에 앉아 대단한 벼슬에라도 앉은 양 유세를 떠는 아들과, 그 앞에서 쩔쩔매는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 기적은 슬프면서도 이해가 되고, 화가 나다가도 측은해지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표정 관리를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기적은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치료를 시작했다.

"다리에 경련이 있다는 건 좋은 징후입니다. 경련이 있다는 건 다리에 감각과 운동신경이 남아 있다는 증거니까요. 나이도 어리고, 남자고, 좋아질 요소들은 다 가지고 있으니까 열심히 하면 결과가 따라올 겁니다."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치료는 쉽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노골적으로 싫은 티를 내는 김성우를 상대로 뭔가를 하기란 쉽지 않았던 것.

그동안 신통방통한 효과를 발휘했던 매직 아이, 매직 핸드도 환자가 따라오지 않으니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의미 없는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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