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물리치료사-7화 (7/205)

# 7

물리치료사 이기적 (7)

***

"저는 이번 경력직 합격자로 임수영 치료사를 추천합니다. 면접 데모 결과도 좋았고, 무엇보다 현재 저희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치료사들과 좋은 케미를 낼 수 있다는 점에 가산점을 주고 싶습니다."

치료과장 박영규의 말에 인사과장 임중기가 한 팔 거들었다.

"동의합니다. 데모, 그러니까 치료 결과도 좋았고, 저희 병원 출신이라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임수영 치료사에게 가장 높은 점수를 매겼습니다."

2명의 면접관이 같은 사람을 지목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반대 의견을 내기 힘든 분위기. 그러나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병원장 명의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두 분의 생각이 저하고는 다르군요. 저는 이기적 치료사를 흥미롭게 봤습니다만, 두 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그 말에 박영규가 조금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이기적 치료사도 훌륭했습니다. 솔직히 데모는 임수영 치료사 못지않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임수영 치료사는 인턴 과정부터 저희 병원에서 밟아 온 치료사입니다. 기존의 치료사들과 조금 더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니었을까, 명의진은 잠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우리 병원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하시는데…… 애초에 이번 부팀장 선발은 다른 부분보다 치료 실력에 중점을 두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면접에서 데모를 시킨 것은 그 때문이고요. 병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뽑을 거라면 굳이 면접을 볼 필요가 있었습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이기적 선생님과, 임수영 선생님. 이 둘의 데모 중에 누구의 데모가 더 훌륭했습니까?"

순수 실력만 놓고 따져 보자는 말이었다.

날카로운 질문은 박영규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는 이번에 실시한 '입원 3팀 부팀장' 면접에 자신의 라인인 임수영을 밀고 있었다. 자신을 따르는 임수영에게 자신의 파워를 과시함은 물론, 이를 미끼로 더욱 더 자신의 라인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데모를 하게 될 환자와 그 치료 방법에 대해서 미리 교육을 시켰다.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시키는 것도 모자라 답까지 알려 준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확신했다. 임수영이 무리 없이 부팀장 자리를 꿰찰 것이라고.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안중에도 없던 이기적이라는 치료사가 놀랄 만한 데모 결과를 낸 것이다. 솔직히 말해 임수영 이상의 치료 결과였다.

그 때문에 그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놓였다. 임수영의 치료가 더 좋았다고 하자니, 병원장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내보이는 셈이었고, 반대로 이기적의 치료가 더 좋았다고 하자니 더 이상 임수영을 밀 명분이 없어지는 것이다.

'멍청하게 답을 알려 줬는데도 1등을 못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를 어쩐다…….'

박영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임수영의 승진보다는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치료 실력만 따지자면…… 이기적 치료사가 조금 더 좋았습니다."

명의진은 여전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근 사회적 키워드가 공정 사회 아닙니까? 내부 직원의 승진도 좋지만, 이번만큼은 실력을 우선해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사과장님은 어떠세요? 치료는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인상이나 환자를 대하는 방법 같은 것은 과장님이 전문가 아닙니까? 그 부분에 대해 과장님의 평가를 듣고 싶은데요. 이기적 치료사와 임수영 치료사 중 누가 더 좋았습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임중기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노선을 갈아탔다.

"데모만큼은 이기적 치료사가 월등했습니다. 치료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환자를 대하는 방법이나 기술 등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원장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김정남 환자가 보이는 반응을요. 다만 임수영 치료사가 내부 직원이라 가산점을 줬던 것인데…… 원장님 고견을 듣고 보니…… 제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명의진은 다시 박영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과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를 뽑는 것이 우리 병원에 좀 더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이기적의 치료가 좋았음을 인정한 상황이었다. 더 이상 임수영을 밀어줄 명분이 없었다.

"원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기적 선생님이 병원에 더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 같고 말입니다."

"그래요?"

양쪽의 의견을 모두 들은 뒤 명의진이 이기적의 입사 지원서를 테이블 가운데로 밀었다. 그리고 도장을 찍듯 이력서를 탕탕 두드렸다.

"그러면 새로운 입원 3팀 부팀장은 이기적 선생님으로 결정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상황 종료.

명의진은 잠시의 텀을 두고 다음 안건을 진행했다.

"자, 다음은 제11기 인턴 사원 채용에 관한 건입니다. 두 분이 선택한 후보군을 발표해 주세요."

그는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했다.

***

2월 23일 금요일.

기적은 비장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이유는 있었다.

'드디어 3시다!'

합격자 명단이 올라올 시간이었으니까.

기적은 검색 앱을 켜 명성 병원을 검색한 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공지 사항에 들어가자 'new'라는 마크와 함께 합격자 명단이라고 쓰여 있는 게시물이 보였다.

'이거구나…….'

기적은 손가락을 들어 합격자 명단 게시물 위에 올렸다. 이제 손끝에 살짝 힘을 주기만 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적은 클릭을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망설였다.

'합격했을까?'

마음은 반반이었다. 한편으로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떨어졌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적은 어렵게, 어렵게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딸깍 하는 효과음과 함께 페이지가 바뀌었다.

"……!"

다음 순간 기적은 확인할 수 있었다.

-면접 번호 035 이기적(입원 3팀 부팀장)

합격자 명단 가장 위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됐다!"

기적은 양팔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기쁨을 표출했다. 그 바람에 스마트폰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지만 상관없었다.

약정도 한참 전에 끝난 구형폰, 다시 사면 그만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자신이 국내 최고의 재활 병원 중 하나인 명성 병원에 입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평 치료사가 아닌 부팀장으로 말이다.

그가 기뻐하고 있을 때쯤 머릿속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으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어, 뭐야? 저번에 말했던 튜토리얼 보상이란 게 이거였어? 그럼 진작 알려 줬어야지!'

기적은 시스템을 향해 그렇게 따져 물었다. 지난 이틀 동안 마음을 졸인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진 탓이다. 하지만 시스템은 대답이 없었다. 시스템은 자신이 유리할 때만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에휴, 어쩐지 놀림을 받는 기분이네. 생각난 김에 포인트를 투자해 볼까?"

불현 듯 필을 받은 기적은 시스템 창을 불러냈다. 그러자 그의 의지에 따라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매직 핸드 LV 2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15)

-매직 아이 LV 2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10)

-매직 브레인 LV 2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10)

-매직 페이스 LV 1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5)

-매직 마우스 LV 1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 : 5)

남은 포인트 : 15

'딱 15포인트인데 깔끔하게 매직 핸드를 올려 볼까?'

처음 기적은 매직 핸드에 포인트를 몰아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아직 1레벨에 머물러 있는 매직 페이스와 매직 마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일단은 매직 페이스와 매직 마우스에 포인트를 투자해 볼까? 어떤 효과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자 매직 핸드로 기울었던 마음이 시소 넘어가듯 매직 페이스와 매직 마우스 쪽으로 기울었다.

'뭐 합쳐도 10포인트밖에 안 되니까. 밑지는 장사는 아니겠지.'

결국 기적은 매직 페이스와 매직 마우스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러자 푸른 빛이 일어나 기적을 쓸고 지나갔다. 동시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매직 페이스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얼굴의 윤곽이 보다 뚜렷해집니다. 최소한 얼굴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 레벨을 위한 필요 포인트는 10입니다.

-매직 마우스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발음이 보다 정확해집니다. 인지력이 좋지 않은 환자들에게 조금 더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레벨을 위한 필요 포인트는 10입니다.

"대박! 발음이 좋아지고 얼굴 윤곽이 뚜렷해졌다고?"

기적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확인했다.

"어? 음, 달라졌나?"

어디가 딱 달라졌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풍기는 느낌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분명 긍정적인 변화였다.

"이러다가 흔남이 훈남이 되는 기적이 생길지도? 흐흐!"

생각만 해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의 앞날이 곧 다가올 봄 날씨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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