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물리치료사 이기적 (3)
기적은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병원을 박차고 나와 센터를 차릴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레벨이 낮아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니, 바꿔 말하면 눈썰미가 부족해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기적은 그 말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이 환자는 왼쪽 허리를 다쳤다고 했어. 아마 그 이후로 왼쪽 허리 쓰는 것을 자제했겠지. 쓰려고 하면 통증이 느껴졌을 테니까. 그게 습관이 되면서 오른쪽 근육은 점차 강해지고, 왼쪽 근육은 점차 약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을 거고. 그로 인해 코어 머슬도 약화되었을 테고, 통증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일 거야. 그렇다면 왼쪽 근육을 강화시켜 주면 되겠지. 좋아, 쉬운 동작부터 시작해 보자.'
시진을 끝낸 기적이 밸런스 볼을 가져왔다. 그리고 남자를 그 위에 앉혔다.
"지금부터 제가 손님을 오른쪽으로 밀 겁니다. 밀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 보세요."
남자를 밸런스 볼에 앉힌 기적이 남자의 허리에 손을 대고 살짝 밀기 시작했다. 딱 밀리지 않을 만큼의 힘으로, 이는 등척성 수축으로 남자의 심부 근육을 강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메시지가 나타났다
-매직 핸드의 레벨이 너무 낮아 환부를 제대로 촉진할 수 없습니다. 엉성한 촉진으로 환자가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직 핸드의 레벨을 올리면 조금 더 정확하게 환부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뭐야?'
이번에도 기적이 인정할 수 없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 힘을 주니까 조금 아픈데요? 불안하기도 하고……."
타이밍 좋게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평소의 기적이었다면 그 말을 무시했을 거다.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단지 환자의 밸런스가 떨어지기 때문이고,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좋아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 때문일까?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 촉진이 잘못되었다고, 정말 그래?'
그렇게 자문한 기적이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래, 좋아. 레벨 업인지 뭔지 해 보자고.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속으로 소리치듯 묻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포인트를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일정량의 포인트를 투자하면 한 단계 레벨 업을 시킬 수 있습니다.
레벨을 올리는 데 필요한 포인트는 5포인트였다.
'보너스로 10포인트를 받았으니 레벨 업을 두 번 시킬 수 있겠군.'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치료사의 손과 눈이다. 그래야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단 기적은 손과 눈에 5씩, 도합 10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러자 신비한 빛무리가 손과 눈을 휘감고 사라졌다.
-매직 아이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눈썰미가 좋아집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는 10입니다.
-매직 핸드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손의 감각이 좋아집니다. 조금 더 세밀하게 환자를 촉진하고, 정확하게 힘을 가할 수 있습니다.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는 15입니다.
메시지가 울림과 동시에 그의 시야에서 변화가 느껴졌다. 마법인지 기적인지 얼마 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환자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골반이 조금 틀어진 것이 보였고, 척추 측만증도 보였다.
이에 따라 기적은 손의 위치를 재조정했다. 조금 더 안정적인 곳으로 손을 옮겨 간 것이다.
그러자.
"어어, 어! 지금 좋네요. 지금처럼 하니까 통증이 없어졌어요. 안정감도 생긴 것 같고…… 이야, 이거 신기하네."
사내가 탄성을 내질렀다. 꾸밈이 없는 탄성이었다.
'정말?'
지금껏 나 혼자 잘난 맛에 치료를 해 왔지만 환자로부터 이 정도의 감탄성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지금껏 들어왔던 입 발린 말들과 지금의 탄성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정말 편안하세요?"
참지 못하고 기적이 물었다.
"네? 아, 네. 편안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마사지 같은 것은 안 합니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물리치료사를 마사지해 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은 마사지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었다.
정말 필요한 경우라면 하겠지만, 진정한 치료는 치료사가 힘든 치료가 아닌, 환자가 힘든 치료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무거운 표정으로 기적이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말솜씨를 발휘할 때였다.
"평상시에 오른쪽 신발을 먼저 신으시죠? 허리띠 버클이 왼쪽으로 돌아가 있을 때가 많고요?"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남자가 신기하다는 듯 반문했다. 희미하게 미소를 보인 기적이 다시 말했다.
"보시면 골반이 왼쪽으로 틀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척추의 정렬도 올바르지 못하고요. 허리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하는 운동은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치료입니다. 마사지나 전기 치료, 침술 같은 것들은 이미 많이 받아 보셨잖아요? 그런데도 별로 변화가 없으셨죠? 그러니까 새로운 접근을 해 보자는 겁니다."
앞서 기적이 신뢰를 주었기 때문일까? 남자는 의외로 쉽게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해 보죠."
어느새 사내는 기적을 선생님이라고 높여 부르고 있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화를 나누며 여러 가지 운동 방법을 숙지시키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홈 트레이닝을 내주는 것으로 운동을 마친 기적이 사내, 김용우에게 물었다.
"어떠셨나요?"
"……!"
바로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기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 치료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 아니면 나아진 부분이 없는 건가? 설마, 더 심해진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알려 주신 자세를 되새겨 보느라…… 그런데 벌써 30분이 지났나요?"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 김용우가 말을 이었다.
"어? 벌써 30분이 지났군요. 아주 좋았습니다. 솔직히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였어요. 분명 들어올 때는 허리가 꽤나 묵직했는데, 지금은 통증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기하네. 별것 안 한 것 같은데…… 확실히 좋아진 느낌입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통증이 다시 생길 겁니다. 그러니 꾸준히 운동을 하시는 것이 중요해요. 알려 드린 대로 꾸준하게 홈 트레이닝을 하시면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여 보인 김용우가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들었다.
"30분에 8만 원이라는 전단지를 보고 왔는데, 맞죠?"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먼저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사정상 곧 센터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오늘은 절반만 받겠습니다."
치료에는 연속성이라는 것이 있다. 한 번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기적은 지속적인 치료를 해 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돈을 절반만 받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허허, 그런 사정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8만 원 다 받으세요."
"그러면 제가 너무 죄송해서……."
기적이 선뜻 돈을 받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자 김용우는 기적의 손에 억지로 돈을 쥐어 주었다.
"만족했으니 드리는 겁니다."
"그럼…… 감사합니다."
손을 들어 올린 김용우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센터를 나설 때였다. 일순 그의 몸에서 희미한 빛무리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기적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메시지가 들려왔다.
-치료를 끝냈습니다. 보상으로 3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튜토리얼 특전으로 2의 포인트가 추가됩니다. 총 5의 포인트를 얻었습니다. 포인트를 투자하겠습니까?
포인트를 투자하겠느냐는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잠시 고민하던 기적은 머리 부분, 그러니까 매직 브레인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당장 효과를 보여 준 매직 핸드나 매직 아이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포인트가 모자라기도 했고, 새로운 능력이 궁금했기에 매직 브레인에 투자한 것이었다.
-매직 브레인의 레벨이 2가 되었습니다.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집중력이 올라갑니다. 다음 레벨을 위해 필요한 포인트는 10입니다.
그러한 메시지가 울렸지만, 당장 어떤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흠……."
어깨를 으쓱해 보인 기적이 데스크로 가 앉았다. 무언가 큰일을 치른 것 같은 기분에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소름…… 이걸 진짜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판타지 소설에서나 접하던 일이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나다니.
그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빌려 두었던 판타지 소설을 펼쳐 들었다. 레벨 업 에이스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는데, 나락까지 떨어졌던 야구 선수가 레벨 업 시스템을 얻게 되면서 에이스가 된다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직업은 다르지만 같은 상황이라는 점이 몰입이 되었던 것일까? 신기한 마음에 책을 펼쳐 들었던 기적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 소설책 한 권을 완독했다.
'응, 뭐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제아무리 시스템 창으로 도배된 판타지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40분 만에 책 한 권을 읽다니? 이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게다가 단순히 빠르기만한 것이 아니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생각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치 암기를 하며 읽은 것처럼 글 내용이 잘 생각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독후감을 쓰라고 해도 막힘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거 혹시…… 매직 브레인의 효과?"
두뇌 회전이 빨라지고 집중력이 올라간다는 설명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느낀 기적은 책꽂이에 꽂혀 있던 전공 서적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어렵고 지루하던 전공 서적이 마치 판타지 소설처럼 술술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기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심심할 때마다 나타나는 시스템이 결코 헛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레벨 업 시스템이라……."
동시에 그는 생각했다. 솔직히 아직까지도 지금의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게 꿈이 아니라면, 정말로 엄청난 행운이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한 번 뿐인 인생, 더는 후회하지 않고, 멋지게 살아 보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