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6 회: 경영의 대가 20권 -->
12장. 최종결전
크로센트 베잘리우스는 살아생전에 수기(手記)를 남기지 않았고, 자신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전쟁의 신이자 구국의 영웅으로 절대적인 추앙을 받았지만, 그 원인이 적에게 공포를 주기 위하여 행한 잔혹한 행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는 전장마다 적을 격파하고 포로를 남김없이 화형 시키며 죽음의 행진을 하였던 폭력성! 그것이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되어, 도리어 대중으로 하여금 흥분과 희열을 느끼게 했다. 그 사실을 베잘리우스 대공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되도록 자신에 대한 전기(傳記)나 기록물을 남기지 않기를 원했고, 결국 오늘날 그의 행적을 알려주는 자료는 부족하게 되었다.
하지만 혼트 황실에 가보처럼 내려지는 사료(史料)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그의 노트였다.
매번 힘든 전투를 앞둘 때마다 머리를 쥐어짜며 전략·전술을 구상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긴 노트였다.
무질서하게 휘갈겨진 메모와 스케치로 가득했지만, 역대 혼트 황실은 오랫동안 그것을 해석하였다. 그 결과물은 오늘날 카르스 황제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베잘리우스 대공의 생각이 담긴 기록을 본다고 해서 누구나 그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르스 황제에게는 그만한 역량이 있었다.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고, 실현시키는 것 또한 가능했다.
“성공입니다. 카록 리간드의 정령술은 봉쇄됐습니다.”
할슈타인 후작이 보고했다.
“봤다.”
가볍게 대꾸한 카르스 황제는 손짓을 했다.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뿌우우우―
뿔나팔이 울려 퍼지면서, 2만씩 다섯 개로 나뉜 기병 부대 중 하나가 출발했다. 륭겐 후작이 지휘하는 부대였다.
옛날, 베잘리우스 대공이 딱 한 번 펼쳐보였던 희대의 용병술. 그 이후로 다시는 누구도 재현해내지 못했던 난해한 전술.
‘사관연쇄돌파(四貫連鎖突破)’가 카르스 황제에 의해 재현되려 하고 있었다.
사관연쇄돌파는 기병의 돌파력을 철저히 활용한 용병술이었다.
말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스피드가 실린 일격은 매우 큰 파괴력을 갖는다. 기병의 돌격은 적진을 돌파해 분쇄해버리는 가장 강력한 일격이었다.
그러한 돌격을 연속으로 감행하여 아무리 병력이 많고 방어가 두터운 적도 분쇄해버리는 것이 사관연쇄돌파의 목적이었다.
기병 전력을 네 부대로 나누고, 한 부대씩 돌격을 감행한다.
첫 번째 부대가 제 1관.
륭겐 후작의 기병 부대가 레던 왕국군의 중앙군인 영주 연합군을 덮쳤다.
콰아앙! 쿠웅!
“아아악!”
“크악!”
파지직! 퍼억! 빠아악!
“커억!”
“마, 막아!”
흑십자 기사단이 선두에 선 륭겐 후작 부대의 돌격은 엄청난 파괴력을 낳았다. 순식간에 영주 연합군의 진형을 깊숙이 파고들며 말발굽 아래에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버텨라! 분단되면 안 된다!”
뮤트 공작이 영주들을 독려했다.
천인장·백인장의 역할을 맡은 영주들도 휘하 병사들을 독려하며 어떻게든 결속력을 유지하게 했다.
륭겐 후작의 기병 부대가 그들을 쪼개려 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방어한 덕분에 분단되는 것을 막았다.
“사방에서 에워싸 섬멸시켜라!”
정면과 좌우에서 영주연합군의 병사들이 밀려왔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뿌우우우―
카르스 황제의 지시에 의하여 또다시 뿔나팔이 울려 퍼졌다.
제 2관은 쥬르덴 후작의 기병 부대였다.
쥬르덴 후작은 2만 기병을 휘몰아치며 곧장 영주연합군에게 달려들었다.
영주 연합군과 륭겐 후작의 기병 부대가 뒤얽혀 있는 지점으로 전속력으로 돌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
“저게 무슨? 황제가 미쳤나? 아니, 원래 미치긴 했지만…….”
마법진의 속박에 맞서며 마법병단과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하던 나는 전황의 변화에 기가 찼다.
영주 연합군과 륭겐 후작의 기병이 맞붙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 쥬르덴 후작이 돌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아군도 있는데 돌격이라니? 내 눈에는 적과 함께 아군까지 한꺼번에 짓밟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륭겐 후작의 기병들이 돌연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고 말머리를 돌려 물러나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바구니로 쥬르덴 후작의 기병 부대가 비집고 들어와 질주했다.
이윽고 륭겐 후작은 완전히 물러났고, 돌격하는 쥬르덴 후작이 영주 연합군과 격돌했다.
말발굽 소리. 금속성. 비명. 유혈.
“저, 저게 뭐야!”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쥬르덴 후작의 기병 부대가 깊숙이 파고들자 영주 연합군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니젤과 실버 타한 백작도 연이어 같은 돌격을 행했다. 영주 연합군은 마침내 완전히 중앙을 돌파당하고 말았다.
“와아아아―!”
혼트 제국군의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전장을 뒤흔들었다.
진열이 완전히 무너져 혼란에 휩싸인 영주 연합군. 중심부에 아군의 시체와 피가 한가득했고, 병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다.
영주 연합군이 이렇게 빨리 박살날 줄은 몰랐기에 모두가 경악했다.
“빗물이 바위를 뚫듯이…… 이거였구나!”
곡예와도 같은 용병술이었다.
영주 연합군은 전투 초반부터 급격히 무너져 뮤트 공작의 지휘로도 통제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큰일입니다, 폐하! 아군이 분단됐습니다!”
제론이 급히 에릭 국왕에게 보고했다.
에릭 국왕 역시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 영주 연합군이 단숨에 분단되었구나. 나도 봤다.”
“그게 아닙니다, 폐하. 아군 전체가 분단된 겁니다!”
그제야 에릭 국왕도, 나도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오리엔 왕실 원군과 우리가 좌우익이 되고, 중앙군은 영주 연합군이 위치했다.
중앙군인 영주 연합군이 삽시간에 통제 불능의 혼란에 빠지자, 오리엔 왕실 원군과 우리도 서로 연계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즉시 영주 연합군을 후퇴시켜서 재정비하게 하고, 우리는 오리엔 왕실 원군과 합류해야……!”
제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뿌우우우―
혼트 제국군의 진영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뿔나팔 소리.
“빌어먹을, 또 뭐냐!”
에릭 국왕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한 발 늦었습니다! 아군이 각개격파당할 지도 모릅니다.”
할슈타인 후작이 기병 2만을 이끌고 출발했다. 그가 노리는 타깃은 오리엔 왕실 원군이었다.
그렇구나.
할슈타인 후작이 오리엔 왕실 원군을 상대하며 붙잡아두는 사이, 나머지는 우리 레던 왕실군을 칠 생각이었다.
……정말 탁월하다.
신속하게 가장 조직력이 취약한 영주 연합군부터 격파해 무력화시킨 후, 오리엔 왕실 원군은 적은 병력으로 붙잡아둔 채 나머지 전력으로 에릭 국왕을 노리는 전략!
뿌우우―
다시 울리는 뿔나팔.
어느새 진열을 재정비한 륭겐 후작이 우리에게 돌진해왔다.
쥬르덴 후작과 니젤, 실버 타한 백작도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돌격대형을 갖추고 있었다. 영주 연합군을 단숨에 무너뜨린 그 연속 돌격을 또 시도할 참이었다.
“돌파에 대비하라! 정면에 방어선을 겹겹이 펼쳐라!”
에릭 국왕은 급히 지시를 내렸다.
왕실군의 각 군단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군단장들도 영주 연합군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똑똑히 봤기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저 가공할 연속 돌파를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륭겐 후작, 쥬르덴 후작, 니젤, 실버 타한 백작, 이 넷이 순서대로 돌격하지만, 결코 네 차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다섯 번이든 여섯 번이든 에릭 국왕의 목을 얻을 때까지 계속 돌격할 게 분명했다.
“역시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해.”
나는 네 정령들에게 다시 한 번 정령친화력을 보냈다.
“노움, 아군의 앞에 구덩이를 파자.”
-해볼게!
노움은 커다란 삽자루를 꽉 쥐고 잔뜩 힘을 주었다.
마법진의 억제력을 뚫고서 노움의 힘이 발휘되었다. 아군의 앞에 구덩이 몇 개가 파인 것이다. 세 개, 네 개……. 계속 생기던 구덩이는 도중에 중단되었다.
-아빠, 쟤들이 또 방해해!
노움이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화를 냈다.
“괜찮아. 계속 힘을 발휘해, 노움!”
-응!
“운디네, 샐러맨더, 실프, 너희도 함께 힘을 발휘해!”
-……응!
-알았다!
-하아, 힘든데…….
나의 네 정령이 모두 정령친화력을 듬뿍 빨아들이며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