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5 회: 경영의 대가 20권 -->
믿을 수가 없었다.
양손에 모두 무기를 들고 싸울 줄도 몰랐고, 양손에 든 무기에 모두 오러 액스를 만들 수 있을 줄도 몰랐다.
오른손으로 검을 쓰던 오러 마스터가 갑자기 왼손으로 검을 쥔다고 똑같이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왼손으로도 오른손만큼 숙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찰나의 방심이 부른 결과는 뼈아팠다.
콰지직!
“끄으윽!”
릭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불에 댄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마치 어딘가가 잘려져 나간 느낌이었다.
……그런데 왼쪽 어깨가 허전했다.
패닉에 빠진 릭의 시야에 허공을 날고 있는 자신의 왼팔이 보였다.
“릭―!!”
바스크가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롬펠 대공에게 덤벼들었다. 맹렬한 공세에 롬펠 대공도 조금 맞상대하다가 뒤로 물러섰다.
“괜찮으냐!”
롬펠 대공을 릭에게서 떼어내는데 성공한 바스크는 황급히 물었다.
“크윽, 빌어먹을……!”
“어서 지혈부터 해라! 놈은 내가 막고 있으마.”
그러자 롬펠 대공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뭐, 천천히 해라. 나도 한숨 좀 돌리자고. 휴, 정말 힘들었다.”
“이놈……. 양손잡이였나.”
릭이 힐링 포션을 꺼내 팔이 잘려나간 어깨에 부으며 치료하는 동안,바스크가 밀려오는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
“오른손잡이지.”
롬펠 대공은 왼손에 든 작은 손도끼를 들어 보였다.
“왼손은 아무리 수련해도 오른손처럼 능숙하지 못해서 배틀 액스는 못 다루겠더군. 그래서 고작 이런 손도끼다.”
“왼손으로까지 오러 액스를 만들려면……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두 번 이루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싸움 말고는 할일이 없는 노인네가 110살이나 살면 혼자 무슨 짓을 하겠는가?”
“괴물 놈…….”
치가 떨렸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자신의 아들이 한 팔을 잃었다.
“아무튼 수세에 몰렸던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까지 내 왼손을 철저히 숨겼을 뿐이지. 내가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렸던 적은 처음이야. 칭찬해주지, 젊은 친구들.”
여유를 되찾은 롬펠 대공은 치료를 마치고 일어서는 릭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슬슬 승부는 난 것 같군.”
“개소리.”
릭이 사납게 말했다.
“내 심장은 왼팔이 아니라 가슴에 있다. 그리고 아직 이렇게 검을 쥘 수 있고.”
“내가 왼손을 연마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 줄 아나?”
롬펠 대공은 오른손의 배틀 액스와 왼손의 손도끼를 동시에 들어올렸다. 두 갈래의 오러 액스가 날개 한 쌍을 펼치듯 피어오르는 광경은 무섭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균형 감각이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배틀 액스에 비해 왼손의 손도끼는 너무 가벼웠거든. 무게 균형의 비대칭 때문에 동작이 자꾸만 미세하게 틀어지는 바람에 고생을 했지. 그래서 사실 지금도 되도록 양손을 모두 쓰며 싸우지는 않아.”
롬펠 대공은 릭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 자네도 그와 같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
릭은 대꾸할 수가 없었다.
롬펠 대공의 지적은 사실이니까.
몸을 일으켜 똑바로 선 순간, 이전과 달라진 몸의 균형에 이질감을 느꼈다.
한 달? 혹은 반년?
익숙해지려면 수련이 필요할 듯싶었다.
이런 상태로는 검술을 펼쳐도 자신이 원한 것보다 미세하게 동작이 변질될 것이다.
오차 없이 정밀하게 검 끝을 다룰 수가 없어진다. 컨트롤이 약해지면 공격의 날카로움도 사라진다. 아까처럼 롬펠 대공을 위협할 수 없게 된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그러한 문제가 점점 크게 불거지리라.
롬펠 대공의 말대로 이 싸움은 부자의 패배였다.
‘순간의 방심으로 이렇게 되다니. 난 정말 바보다.’
릭은 스스로를 반성했다.
‘하지만…….’
릭의 눈빛은 아직 체념의 그것이 아니었다. 더욱 매섭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댁 말이야.”
릭이 입을 열었다.
“댁은 태어났을 때부터 강했잖아. 그렇지?”
“그렇지. 다들 나보다 작고 힘이 약했지. 전쟁에 처음 참전해서도 공을 세웠고, 재능 있다고 무예를 배우고서 얼마 되지 않아 스승을 능가했고. 병약한 어린아이가 피나는 노력 끝에 강해진 훈훈한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서 민망하구만.”
넉살 좋게 대답하는 롬펠 대공.
릭이 말했다.
“당신이 비장의 한 수를 숨겨뒀던 것을 보고서 한 가지 알게 된 게 있는데 알려줄까?”
“호오, 어디 말해봐라.”
“당신은 호쾌하고 공격적인데도 묘하게 빈틈이 안 보여. 공격에100%를 쏟지 않고 항상 30% 이상은 방어에 둔단 말이야. 70%로도 충분히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으니까.”
“잘 아는군?”
“그래. 당신 자신은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눈치지만 말이야.”
“응?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롬펠 대공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릭은 팔 잘린 왼쪽 어깨의 심인성 통증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히죽 웃었다.
“언제나 강자였고 언제나 이겼고. 당신은 지금껏 한 번도 자기가 죽는다는 가정을 해본 적이 없다는 거다. 지금 내가 느끼는 절박감의 밑바닥을 당신은 느껴본 적이 없어. 혹시나 해서 묻는데, 당신은 자기가 다 늙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안 하지?”
“…….”
롬펠 대공의 말문이 막혔다.
“크흐흐, 그럴 줄 알았어. 죽음이라는 것을 한 번도 체감한 적이 없어. 한 번 죽었다 깨어나 본 적이 없는 이상, 댁도 나랑 마찬가지로 죽음 앞에서는 초짜란 말이야.”
릭은 하나 남은 오른팔로 찌르기의 준비 자세를 취했다.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당신한테 보여주려고.”
“어떻게 보여줄 테냐?”
“이렇게.”
릭의 롱 소드에 오러 블레이드가 피어올랐다. 그 오러 블레이드는 막대한 오러가 주입되어 점점 커졌다.
릭은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오러를 오러 블레이드에 쏟았다.
그의 전심전력이 담긴 오러 블레이드!
롬펠 대공조차도 흠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댁 말대로 균형 감각 때문에 오래 싸워봐야 허사지. 하지만 딱 한 방에 모든 것을 건다면 어떨까? 자, 말해봐! 내 모든 힘이 담긴 한 번의 일격도 당신은 아무 부담도 없이 막을 수 있을까?!”
“……!”
비로소 롬펠 대공은 릭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직 한 방.
저 젊은이는 단 한 번의 필살의 일격으로 승부를 볼 참이었다.
나이가 어린 이라고 해도 오러 마스터.
무의 극을 이룬 자가 자신의 모든 걸 담은 일격은 롬펠 대공이라 해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지는 못한다.
어느 정도 타격은 각오해야 한다.
물론 일대일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바스크 쿤트 백작도 있었다.
릭의 일격을 막아낸다 해도, 바스크로 이어지는 다음 후속타를 걱정해야 한다.
“난 여기서, 이제 곧 죽는다!”
릭이 소리쳤다.
“내 모든 걸 바쳐서 당신에게도 죽음을 보여주고 말 거다! 아버님,꼭 저 영감탱이를 죽이셔야 합니다!”
“……맡겨라!”
바스크 또한 자신의 모든 오러를 오러 블레이드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롬펠 대공은 광소를 터뜨렸다.
“릭 페르난도, 네 말이 맞다! 난 한 번도 져본 적도 위기를 느낀 적도 없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싸우든 난 죽음을 느낀 적이 없었어. 내 일평생의 의문이란 딱 하나! 대저, 공포란 무엇이란 말인가?!”
콰아아아!
악마의 날개처럼 펼쳐진 양손의 오러 액스가 막대한 힘을 받아 요동치기 시작했다.
“보여다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절박감! 나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두려움을 내게 보여다오! 나, 톰 롬펠은 그걸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 바로 이런 싸움을 원했단 말이다!”
“그 마음 이해하지.”
혼신의 힘을 검에 불어넣으면서, 릭은 말했다.
“당신도 우리와 같은 인종이라면, 스스로를 파괴하면서까지 자신의 끝을 보고 싶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려고!”
“크하하! 릭 페르난도 백작! 그리고 바스크 쿤트 백작! 그대들을 만나서 아주 기쁘다!”
이에 바스크 또한 최후를 각오한 결의 어린 얼굴로 답했다.
“롬펠 대공. 유사 이래 최강의 무인과 겨룰 수 있어서 영광이었소.”
“유사 이래 최강이라. 나쁘지 않군!”
세 무인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마침내 릭이 롬펠 대공을 향해 뛰어들었다. 목숨을 도외시한 일격필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