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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522화 (522/529)

<-- 522 회: 경영의 대가 20권 -->

10장. 추락

카르스 황제가 거느린 12만 병력 중 10만 가량이 기병. 그것도 유목민족 전사로 구성된 정예 기마대였다.

당연히 공격권은 빠른 기동력을 가진 카르스 황제에게 있었고, 우리는 방어태세를 단단히 갖춘 채 대비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카르스 황제는 당장 공격에 나서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무슨 일이지? 먼저 공격하지 않을 생각인가?”

에릭 국왕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옆에서 제론이 답했다.

“폐하, 필시 먼저 공격을 시도하는 쪽은 혼트 제국군입니다. 일단은 기다려보시지요.”

“알겠네.”

잠시 후, 정말로 혼트 제국군 측에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10만 기병이 다섯 부대로 나뉘는 것이 정령과 공유된 감각을 통해 느껴졌다.

그 다섯 기병 부대는 륭겐 후작과 할슈타인 후작, 쥬르덴 후작 등 주요 인물이 이끌고 있었다.

나는 즉시 에릭 국왕에게 말했다.

“2만 명씩 다섯 부대로 나뉘었습니다. 각각 륭겐 후작, 쥬르덴 후작, 할슈타인 후작, 그리고 엠페러 나이츠의 부단장 실버 타한 백작과 젊은 장수가 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실버 타한 백작은 일전에 바덴 강 통행세 협상 문제로 카르스 황제를 알현하러 갔을 때 만난 인물이었다.

그때 내 일행이었던 랜달 스페이 백작과 팽팽한 대결을 펼쳐 판정승을 거두기까지 했던 실력자였다.

당시에 그는 황실 경호 기사단인 엠페러 나이츠의 부단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론이 덧붙여 말했다.

“실버 타한 백작이라면 얼마 전에 엠페러 나이츠의 단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젊은 장수는 누구인가?”

에릭 국왕이 물었다.

“잠시만 기다려보십시오. 금방 알아내겠습니다.”

나는 정령과 공유된 감각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2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장수를 다른 이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엿듣기 위해서였다.

‘쥬르덴 후작의 장남’이라는 말이 포착되었다.

……니젤이었다.

저놈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었다.

“니젤 쥬르덴입니다.”

“쥬르덴 후작의 아들? 그자는 재상 그대에게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놀란 에릭 국왕의 물음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당시에 다량의 오러를 체내에 보유한 적은 전부 죽였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그때 오러를 전부 소진했기 때문에 제 감각에 걸리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운이 좋은 자군. 그런데 쥬르덴 후작과 할슈타인 후작, 륭겐 후작은 물론이고 실버 타한 백작도 보통 지위의 인물이 아닌데, 니젤 쥬르덴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뜻인가?”

2만 명씩 나뉜 다섯 부대의 대장에 니젤이 끼었다는 것은 의외였다.

“능력을 인정받아 중용된 모양입니다. 기병을 지휘하는 능력이 뛰어나니 이번 전투에서 요긴하게 쓰일 거라고 황제가 판단했겠지요.”

내 말에 에릭 국왕도 수긍한 눈치였다.

아무튼 다섯 부대로 나뉜 혼트 제국군의 10만 기병은 각기 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할슈타인 후작의 2만은 카르스 황제의 본부대를 지키는 가운데, 다른 네 부대가 좌우로 산개하며 우리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옵니다, 폐하!”

내 말에 에릭 국왕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유목민족 방식의 치고 빠지기 전술이다. 그걸 네 방향에서 동시에 펼치면 우리가 당황해서 진열이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냥 놔둬라. 우린 흔들림 없이 올바른 대응을 하면 된다.”

그러면서 에릭 국왕은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적의 움직임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대응해서도 안 되겠지.”

“제가 가볍게 인사나 하고 오겠습니다.”

“부탁하겠네.”

“예. 가자, 실프!”

나는 실프의 힘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높은 상공까지 날아오른 뒤에 곧장 카르스 황제가 있는 적진으로 향했다.

“샐러맨더!”

-불렀냐! 드디어 불렀냐!

샐러맨더가 잔뜩 들뜬 모습으로 소환되었다.

“가볍게 불장난 한 방 해보자.”

-크헤헤헤! 그거 좋다!

샐러맨더는 이윽고 거대한 불덩어리를 만들었다. 이 자식이, 가볍게 한 방이라니까.

카르스 황제의 머리 위에 뜨거운 불길을 선사해줄 생각이었다. 물론 할슈타인 후작도 있고 마법병단도 있으니 막아낼 테지만, 그래도 황제가 공격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적군을 정신적으로 동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혼트 제국군의 진영에서 거대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응? 마법병단이 방어마법을 준비하나? 대응이 아주 빠른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적진 중심에서 거대하게 일어난 마나가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양군을 중심으로 거대한 원을 형성하는 마나의 기운.

나는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샐러맨더에게 급히 외쳤다.

“날려!”

-알았다!

불덩어리가 카르스 황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나의 거대한 원이 완성되었다.

불덩어리는 도중에 사그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묵직한 중력의 힘에 끌어당겨져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크윽?!”

하늘에서 빠른 속도로 추락하면서 나는 놀라 소리쳤다.

“이게 대체 뭐야? 실프! 어서 날 띄워!”

내 앞에 나타난 실프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체 뭐야!

“운디네! 노움!”

차례로 나타난 운디네와 노움 또한 쩔쩔 매는 얼굴로 말했다.

-안 돼 아빠!

-힘을 쓸 수가 없어!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고 보니 상급 정령들과 공유되고 있던 감각까지도 사라져버렸다.

샐러맨더가 추락하는 나를 따라 날아오면서 소리쳤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다!

“자세히 좀 말해봐! 보다시피 아빠가 지금 추락 중이거든!”

-날 꽁꽁 묶고 있다! 힘을 쓰지 못하게 압박한다! 크아악, 신경질 난다!

묶고 있다고?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거대한 불새로 변신한 샐러맨더를 꽁꽁 묶던 마법병단의 금빛 로프. 바로 정령속박마법이었다!

그거구나!

아까 마나가 뻗어나가며 거대한 원을 만들던 것이 바로 정령속박마법이었다. 정령속박마법의 변형판! 그 마나의 원 안에서는 정령의 기운이 속박당하는 원리 같았다.

……그럼 난 어쩌지?

나는 무방비 상태로 땅을 향해 급격히 추락하고 있었다.

아주 높은 상공으로 떠 있었기 때문에 아직 피떡이 되지는 않았지만, 곧 대지와 온몸으로 키스를 해야 할 듯했다.

레던의 현자, 레던 왕실의 재상, 리간드 가문의 주인, 그리고 두 아내와 한 아들의 아버지, 카록 리간드…… 추락사로 생을 마감하다?

그건 너무하잖아!

-아빠! 힘을 쓸게!

노움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오만상을 찌푸리며 힘을 발휘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흙으로 이루어진 손바닥, 어스 핸드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쿠웅!

“큭!”

어스 핸드는 추락하는 나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 충격에 허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숨 돌릴 틈이 없었다.

파아앗―

나를 떠받치고 있던 어스 핸드가 다시 흙이 되어 허공중에 부스러져버린 것이다. 흩어져버린 흙과 함께 나는 또다시 추락했다.

“아악!”

-미안 아빠! 힘을 오래 못 쓰겠어!

노움의 귀여운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기특한 것. 그래도 날 살리고자 속박을 억지로 이겨내고 힘을 발휘한 것이리라.

내가 말했다.

“노움, 계속 어스 핸드를 만들어서 나를 떠받쳐! 부서지면 또다시 만드는 거야!”

-알았어!

“운디네, 너도 힘을 써서 내 추락속도를 늦춰!”

-……응!

노움과 운디네가 내 정령친화력을 듬뿍 빨아들이며 힘을 발휘하려고 안간 힘을 썼다.

샐러맨더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실프는 아직 중급 정령이라 속박을 이겨낼 힘이 부족했다.

운디네의 힘이 잠깐 발휘되었다.

나는 피가 역류되는 느낌과 함께 잠깐 추락을 멈추고 둥실 떴다. 체액을 조종해 날 비행시킨 것. 하지만 곧 운디네의 힘이 풀려버리고 추락을 재개했다.

그래도 추락속도를 다소 늦추는 데는 성공했다.

이어서 노움이 간신히 만든 어스 핸드로 날 받아냈고, 어스 핸드가 사라져버리자 다시 추락했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추락한 끝에 나는 지상에 도달했다.

쿠우웅!

“끄어억!”

온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특히 왼쪽 다리에서 엄청난 고통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났는데, 아마도 다리가 부러진 듯했다.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 추락해 쓰러지자, 혼트 제국군 진영에서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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