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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514화 (514/529)

<-- 514 회: 경영의 대가 20권 -->

“그래서 저한테 심술궂게 대하시는 거예요? 그때의 복수로?”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니? 복수는 무슨 복수야? 오히려 팔자를 고쳐줬더니.”

“여보가 아니어도 전 어차피 성공했을 거 아니에요.”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말이지.”

“······.”

“늙은 귀족의 첩으로 청춘을 바칠 뻔했던 네가 이렇게 잘생기고 성공한 남자의 아내가 된 것이 누구 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참 희한한 남자란 말이야. 어째서 자기 외모에 대해서만큼은 그렇게 관대한지 모르겠어.”

“원래 내가 어릴 때부터 형들에 비해서 내세울 수 있는 게 외모밖에 없었거든.”

귀염둥이 시스만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해준다. 줄리아는 그런 우리를 질린 눈길로 쳐다봤다.

쓸데없는 잡담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행렬의 선두에 선 에릭 국왕의 왕실군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졌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아.”

“좀 더 있어도 상관없잖아요.”

투정을 부리는 줄리아.

“폐하의 곁을 지켜야 해. 이것도 폐하께서 내 사정을 많이 봐준 거라고.”

“더 있다 가.”

시스가 찰싹 내 옆에 붙으며 속삭였다. 나는 시스와 시스의 품에 안겨 있는 아들 지스를 끌어안았다.

“금방 다녀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돌아올 거야?”

“물론이지. 나는 싸우다 죽는 영웅담 싫어해.”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작별을 하고 나는 실프를 소환해 몸을 띄웠다.

발이 바닥에서 떼어지고 점점 위로 날아올랐다. 두 아내와 어린 아들은 나를 올려다본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올 것이다.

엔딩은 언제나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야 한다.

가족들을 뒤로 하고 나는 마침내 높이 날아올랐다.

***

카르스 황제의 출정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카르스 황제는 우리의 출진 소식을 듣자마자 12만 병력을 이끌고 마찬가지로 출진했다고 했다.

그 역시 한 번의 전투로 이 전쟁을 끝낼 생각인 것이다.

단판 승부.

그것을 위해 일부러 우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병력만을 거느렸다.

승부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만히 후디니 백작령에 틀어박힌 채 혼트 제국군이 나라 전역을 유린하는 걸 구경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대다수가 기병인 카르스 황제 측이 기동력이 훨씬 빨랐고, 결국 결전의 무대가 될 전장을 선택할 권리 또한 카르스 황제가 갖게 되었다.

카르스 황제의 군세는 기병 전력을 잘 살릴 수 있는 평원 지역을 전장으로 택했다.

그곳은 오리엔 제국 시절 이전부터 레던 평원이라 불렸던 지역이었다.

옛날, 베잘리우스 대공이 오리엔 제국의 50만 대군을 대파한 신화적인 대회전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했다.

그럴 줄 알았다.

스스로를 크로센트 베잘리우스의 환생이라고 믿는 카르스 황제라면 그곳을 전장으로 선택할 거라고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도 그때의 전설을 재현하려 하고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짐 또한 군사학을 배우는 데 힘썼지만, 베잘리우스 대공의 전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지 않군.”

에릭 국왕의 말에 제론이 답했다.

“그럴 겁니다. 베잘리우스 대공의 전술은 늘 불리한 상황에서 전세를 뒤엎는 기책이었으니까요. 베잘리우스 대공 본인도 가능하면 쓰고 싶지 않았던 도박이 대부분이었으니 오늘날에는 훌륭한 군사교본이 되지 못합니다.”

그 말에 뮤트 공작 또한 동의하였다.

“베잘리우스 대공 이후로 그의 공적에 매료된 혼트 제국군은 한동안 무모한 짓거리를 많이 했고, 낭패를 많이 봤었습니다. 베잘리우스 대공의 활약이 군사학적으로 의의를 갖는 것은, 그로 인해서 기존 군사체계의 수많은 약점이 드러났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점들을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전략·전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베잘리우스 대공처럼 소수의 전력으로 다수의 적을 이기기란 힘들게 되었지요.”

결국은 국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절대적인 요인이 되었다. 베잘리우스 대공이 국력상의 열세를 천재적인 개인 역량으로 극복해버린 덕분에 말이다. 그거야말로 아이러니다.

카르스 황제는 진화한 오늘날의 군사학을 역행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옛날의 오만했던 오리엔 제국군과 달리 우리는 방심하지도, 빈틈을 드러내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혹시 그때 당시에 베잘리우스 대공이 오리엔 제국군 50만을 어떻게 격파했는지 아는 사람 있는가?”

에릭 국왕이 물었다.

제론이 말했다.

“당시의 전투 경과를 자세히 기록한 자료는 혼트 황실에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외부에는 자세히 알려지지가 않았습니다. 지금의 오리엔 왕실도 잘 모를 겁니다. 당시의 전 대패는 치부이니 상세한 기록을 꺼린 탓이지요.”

그러자 랜달 스페이 백작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대충 짐작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폐하. 우세한 기병 전력을 십분 활용해 교란시킨 뒤, 빈틈을 노려 돌파해 오리엔 황제를 사로잡았겠지요.”

뮤트 공작도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오리엔 제국 황제는 군신(軍神)이라 불리며 절대적인 명성을 누렸던 베잘리우스 대공을 질투했습니다. 베잘리우스 대공은 의도적으로 오리엔 황제를 도발하여서 직접 군세를 이끌고 전장에 나오게 만들었고, 황제를 사로잡음으로서 결정적인 승리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전투를 카르스 황제가 본받는다면, 전투에서 필시 짐을 노리겠군.”

에릭 국왕의 말에 뮤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적이 어찌 나오든 방어를 단단히 하여 돌파를 허용하지만 않는다면,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군(軍)의 후미에서 따라오고 있던 오리엔 왕실 원군의 사령관 라엘이었다.

“무슨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지 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라엘 경.”

에릭 국왕은 라엘을 환영했다.

내가 말했다.

“오리엔 왕국 입장에서는 약간 불편한 화제일지도 모르겠군요.”

라엘은 곧바로 내 말을 이해했다.

“아아, 레던 평원의 대회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군요. 이해합니다. 어차피 수백 년 전의 일이고 그때의 오리엔 제국 황실은 매우 나태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라엘 경, 혹시 오리엔 왕실에는 그 전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소?”

에릭 국왕이 물었다.

“아쉽게도 없습니다. 방심했다가 황제가 붙잡히는 바람에 대패를 한 것 외에는 말입니다. 제대로 망신살 뻗친 사례라 역사에 남기고 싶지도 않았고요.”

“아쉽게 됐군. 아마도 적은 그때의 전투를 본받은 전술을 시도할 것 같은데······.”

“음,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때의 전투를 표현한 인상적인 묘사가 있긴 합니다.”

“말씀해보시오.”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50만 대군을 꿰뚫었다, 라는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통 군사학적으로 분석이 불가능하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인가.”

“계속 돌파를 시도한 끝에 중앙돌파에 성공했다는 해석이 가장 그 표현에 가까운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에 맞지가 않습니다.”

제론의 말에 뮤트 공작도 거들었다.

“돌파에 실패하면 도리어 적에게 둘러싸여 큰 피해를 입게 되는 게 상식인데……. 시도하는 쪽 역시 큰 각오를 하고 시도하는 것이 돌격입니다. 그것을 몇 번이고 계속 시도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폐하.”

라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추측해보자면, 발 빠른 유목민족 기병을 이용해 전후좌우로 공격을 퍼부어 진열을 뒤흔들었을 겁니다. 그 뒤에 진열이 무너지고 빈틈이 드러나면 전력을 집중시킨 돌파로 단숨에 파고들었겠지요. 저도 얼마 전에 그렇게 당할 뻔했으니까요.”

“라엘 경의 말이 옳소. 사실여부의 확인도 불가능한 옛일을 두고 추측하느니, 지금껏 대비해왔던 대로 싸우는 것이 현명하겠소.”

에릭 국왕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다들 동의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라엘 경이 들려준 말이 계속 맴돌았다.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모두가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카르스 황제라면 시도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허를 찔러왔던 카르스 황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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