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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510화 (510/529)

<-- 510 회: 경영의 대가 20권 -->

“그만큼 네가 현실적이고 냉정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지. 내가 널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주군…….”

베일은 내 말에 또다시 감격하고 말았다.

***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아버지, 릭 형님과 셋이서 한 식탁에 앉았다. 오랜만에 쿤트 가족의 시간이라 다른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주었다.

난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옛날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아서 형님도 계셨으면 좋았을 걸.”

“옛날은 무슨. 너희들 입장에서나 옛날이지, 이 아비에게는 아직도 너희 어릴 때가 엊그제 같다.”

그렇게 핀잔주는 아버지도 추억에 잠겨들며 말했다.

“며칠 전의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구나. 그 조그마한 때도 아서는 여전히 의젓했고, 릭 녀석은 뺀질뺀질 건방졌지…….”

릭 형님은 그 말에 울컥했지만 굳이 토를 달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날 보며 말을 이었다.

“이상한 건 네 녀석이다, 카록.”

“예? 제가 뭘요?”

“어릴 때부터 너는 자신감이 없어서 늘 축 쳐져 있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독립을 시키기로 결심했을 때도 내심 걱정이 태산이었지.”

“하하, 제가 좀 그랬죠.”

내 어릴 때라…….

너무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뎁쇼?

“근데 성인이 되자마자 뭘 잘못 먹었는지 사람이 확 변했잖느냐. 능청맞고 릭처럼 뺀질거리기도 하다가 때로는 아서처럼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널 키운 나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대체 무슨 일로 사람이 180도 변한 게냐?”

90년 평생을 살다가 늙어죽고서 다시 회귀하니까 그렇게 되더라고요.

……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어린 시절에는 제가 무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었죠. 그런데 정령사가 되고나서 진정한 제 자신을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아버지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하기야 정령은 네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지.”

“저도 카록 녀석이 난데없이 정령사가 됐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놀랐다고요.”

릭 형님도 맞장구친다.

“게다가 보통 정령사는 자연을 벗 삼아 은거하길 즐긴다던데 이 녀석은 하는 짓이 영 정령사답지도 않고. 지금도 여전히 넌 수수께끼다.”

“하하하, 저 같은 인간도 있는 거죠 뭘.”

그렇게 얼버무리면서도 나는 내심 속이 불편했다.

결국에는 내가 한 번 인생을 살아봤고 죽었다가 깨어나니 다시 열여덟 살 시절로 돌아왔다는 비밀은 평생 나만 간직해야 하는 사실이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불편한 일이었다. 때때로 내가 진실 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나를 아버지가 빤히 보더니 말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게냐?”

“네? 아, 아뇨. 딱히…….”

뜨끔한 나머지 드물게 말을 더듬은 나였다.

아버지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네?”

“난 네 애비다. 네가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가슴 속에 있는 말을 내가 모를 리 있겠느냐?”

“그게 무슨…….”

묘하게 당황한 나에게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롬펠 대공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느냐, 그걸 묻고 싶은 게 아니냐.”

……그 얘기였냐. 난 또.

“아버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해한다. 이미 릭과 둘이서 덤볐는데도 명백히 우리가 압도된 양상이었지.”

“아직 제대로 붙어본 건 아니잖습니까!”

릭 형님이 화를 냈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야 그렇지만 롬펠 대공의 무위에 놀라 기세싸움에서 눌린 것은 사실 아니냐.”

“그건 어쩔 수 없었잖습니까. 우리가 갈고 닦은 비장의 기술들을 그 괴물 영감탱이는 이미 옛날에 다 터득한 거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선보이니……! 제기랄! 완전히 바보 취급당하는 느낌이었어요.”

오러 블레이드를 원거리로 날리는 아버지의 스킬. 오러를 발로 발출해 걸음을 빠르게 하는 릭 형님의 오러 워크. 이제 보니 그것들 전부 롬펠 대공도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롬펠 대공과의 대결에 대비하여 비장의 무기를 갈고 닦았던 아버지와 릭 형님으로서는 허망한 노릇이리라.

그런 허망한 때문에 첫 싸움에서 롬펠 대공에게 기세가 눌렸으리라. 기세에서 밀린 채로 싸우면 좋지 않으니 본격적으로 싸우지 않고 물러났고 말이다.

아버지가 말했다.

“그런 거야 어쩔 수 없다. 롬펠 대공이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우리보다 많을 뿐 실력에서 밀린 건 아니다. 나나도 릭도 그 나이가 되면 그 정도의 기술이 축적되어 있을 게다.”

“110살까지 살 것도 없죠. 2,30년만 있어도 롬펠 대공의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겁니다.”

“기술과 연륜에서는 말이지…….”

아버지의 대꾸에 릭 형님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두 사람 모두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또 뭐가 문제죠?”

내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숨과 함께 답했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롬펠 대공의 진정한 강함은 따로 있다. 바로 근골(筋骨) 말이다.”

“근골?”

“그렇다, 타고난 근골.”

아버지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가 쉽겠구나. 우리는 오러 마스터가 되고 나서 막대한 오러의 영향으로 조금씩 육체가 최적의 상태로 변화되는 것을 겪었다.”

아버지는 오러 마스터가 되시고서 서서히 젊어지더니 어느 새 나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일반적인 경우라면, 롬펠 대공은 애당초 태어났을 때부터 육체가 완벽했다고 보면 이해가 쉽겠구나.”

“네?”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태어나서부터 오러 마스터처럼 완벽한 육체라니,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엄청난 완력은 물론 오러의 순환에 최적화된 육체를 갖고 태어났다. 그런 조건을 가진 작자이니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는 것 또한 남들보다 쉬웠을 거다.”

“그건 정말 반칙이네요.”

“게다가 가뜩이나 완벽한 육체가 오러 마스터가 됨으로서 더욱 강화되었지. 그게 지금의 롬펠 대공이다. 얼마나 괴물인지 상상이 가느냐?”

“…….”

“인간이 한 세기를 넘게 살았으면 오러 마스터라 한들 분명 노쇠할 텐데도 그 정도다. 하늘이 내린 타고난 근골만큼은 실력을 아무리 갈고 닦아도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지.”

전쟁 전에는 롬펠 대공을 무덤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의 입에서 냉정한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이런, 나답지 않게 아들 앞에서 너무 우는 소리만 한 모양이구나.”

“아, 그런 건 아닙니다. 롬펠 대공이 심상치 않은 강자라는 것은 저도 이미 직접 만나봐서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버님과 릭 형님께 너무 큰 짐을 떠맡긴 게 아닌지 마음이 내내 무거웠습니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난 기쁘다.”

“기쁘다고요?”

“그래. 이만한 경지에 오른 후로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 정도의 까마득한 적수를 만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아버지의 말에 릭 형님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막막한 벽에 마주치기를 두려워했더라면 애당초 오러 마스터도 되지 못했겠지. 부서지고 만신창이가 되는 한이 있어도 다시 도전해서 끝내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무인의 기쁨이자 보람이다. 우리는 다시 그런 도전의 기회를 만난 게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특별한 건 롬펠 대공뿐만이 아니다.”

의미 모를 말에 의아해하는 나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아비에 이어 아들까지 무의 극의를 체득한 경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으냐. 쿤트 가문의 명예를 걸고, 릭과 함께 롬펠 대공을 쓰러뜨리고야 말겠다. 카록 너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라.”

“흥, 둘이서 노인네 하나 못 이기면 미래의 역사책에 쿤트 부자의 코미디가 기록되는 거지. 그렇게 될까보냐!”

릭 형님도 투지를 불태웠다.

의욕과 투지로 타오르는 두 사람.

역시 롬펠 대공 군단은 내 부하와 가족들을 믿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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