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2 회: 경영의 대가 20권 -->
콘돌 기병대의 선두에서 달려온 패트릭이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들었다.
파아아앗―!
검신을 휘감는 오러.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오던 오러는 점점 한데 뭉쳐지더니, 검과 비슷한 뚜렷한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 찬란한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
“말도 안 돼! 마스터라고?!”
혼트 제국군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콘돌 기병대를 향해 겁 없이 돌격했던 기병들이 주춤했다.
이미 현존하는 모든 오러 마스터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새로운 오러 마스터가 출현하였다는 것은, 그리고 그런 존재가 눈앞에 있다는 것은 무게감이 전혀 다른 충격이었다.
패트릭은 오러 블레이드를 그대로 횡으로 힘껏 휘둘렀다. 과시적인 일격이었다.
콰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충격파가 혼트 제국군 본대 선두를 덮쳤다. 단 한 번의 칼부림으로 수십 명의 기병이 죽거나 낙마(落馬)하였다.
“히이익!”
“마, 말도 안 되는……!”
“전부 죽을 거야!”
“저런 괴물이랑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많은 힘을 실은 패트릭의 첫 일격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용맹한 유목민족 전사들로 구성된 혼트 제국군 기병대가 콘돌 기병대에게 덤비지 못하고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용맹하다고 해서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목숨을 버리고 싶은 이는 없었다.
“돌격!”
패트릭은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기선제압의 효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혼트 제국군 기병의 대부분을 이루는 유목민족 전사들은 용맹하지만, 충성심이 없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황실에 대한 충성은커녕 정복전쟁에서 활약해 한 몫 챙기겠다는 개개인의 욕망이 앞섰다.
그런 그들이 무모하게 오러 마스터에게 덤빌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패트릭이 질주하자 혼트 제국군은 길을 비켜주기라도 하듯 좌우로 물러섰다.
바짝 패트릭의 뒤를 따르는 콘돌 기병대가 거대한 송곳이 되어서 자칼 남작 군대를 둘로 쪼개기 시작했다. 그 송곳의 날카로운 끝이 향하는 곳에는 지휘관인 자칼 남작이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자칼 남작은 멍하니 전장을 바라보았다.
패트릭 콘돌이 추풍낙엽처럼 병사들을 베어버리며 질주해오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똑바로.
그의 머릿속에 이런 구상은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러 마스터라고? 패트릭 콘돌이 알고 보니 오러 마스터여서 오늘 내가 죽을 목숨이라고?’
그건 말도 안 된다.
두 눈으로 지켜보는데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애당초 오러 마스터였다면 왜 진즉에 그런 무위를 선보이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결론은 이곳에서 패트릭 콘돌이 깨달음을 얻어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해볼 수가 없었다.
‘마치 전설 속의 영웅담 같군.’
자칼 남작은 황당하고 허탈한 나머지, 피식 웃고 말았다. 낄낄거리는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크흐흐, 빌어먹을. 나라의 위기 속에서 사투를 벌이던 중에 극적으로 오러 마스터가 되어 대승을 거두었다……. 완전히 끝내주는 영웅의 탄생이군. 나라는 인간은 그저 그를 꾸며줄 순간의 악역에 불과하다 이 말이지? 하하하……!”
파죽지세로 아군 병사를 척척 베어 넘기며 달려오는 패트릭. 전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금 달아난다 해도 결국 패트릭 콘돌은 기필코 쫓아와 자신을 죽이려 할 것이다. 지휘관인 자신이 살아 있으면 한 번 패하였다 해도 패잔병을 수습해서 다시 위협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 이거지?’
자칼 남작은 이를 악물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병사들을 놔두고 혼자 도망치다가 죽는 추한 결말로 인생을 장식하지 않겠다고 자칼 남작은 결심했다.
“전군 후퇴!”
자칼 남작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모두 후퇴해라!! 바덴 강의 본영까지 후퇴해서 이 사실을 알려라!”
이미 적군에 나타난 새로운 오러 마스터의 무위에 압도당한 병사들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꽁지 빠지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칼 남작만은 달아나지 않고 제 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섰다.
활과 화살을 꺼냈다.
화살을 시위에 걸어 당기며 패트릭 콘돌을 향해 겨누었다.
‘와라. 난 여기 있다.’
피잉―
화살이 섬전처럼 날아 패트릭의 이마로 쇄도했다.
째앵!
귀신같은 활솜씨가 무색하게, 패트릭은 귀찮다는 듯이 오러 블레이드를 한 번 휘둘러 화살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자칼 남작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한 번 화살을 날렸다.
한 발, 두 발, 세 발…….
얼굴을 향해 두 발을 쐈고, 한 발은 패트릭이 타고 있던 말에 쐈다. 하지만 적중되기는커녕 패트릭의 이동속도조차 늦추지 못하였다.
뭐, 어떠냐. 바람의 일족의 전사로 태어나 최소한 오러 마스터에게 화살 몇 방을 날리며 맞서보았으니! 이만하면 남자로서 여한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칼 남작은 씨익 웃었다.
다시 화살을 시위에 걸고 당긴다.
혼트 제국군 기병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 지 오래. 누가 유목민족 전사 출신 아니랄까봐 달아나는 것도 잽싸다.
자칼 남작과 최후까지 함께 해주려는 이가 한 명도 없으니 도리어 유쾌해진다.
‘그래, 이래야 바람의 일족이지.’
싸움도 약탈도 도망도 모두 다 살기 위한 것. 생존 외에 그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이미 지척까지 접근한 패트릭 콘돌.
자칼 남작은 그가 타고 있는 말의 앞발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파직!
채찍처럼 길게 늘어진 오러 블레이드가 화살을 일격에 가루로 만들었다.
자칼 남작과 패트릭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제기랄, 역시 무섭군.’
배짱 두둑한 자칼 남작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식은땀이 줄줄이 흘렀다.
자신의 목숨을 취해갈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저 사내 앞에서는 최소한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자칼 남작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활과 화살을 버렸다.
그리고 목을 보여주며 고개를 까닥했다. 자, 가져가라. 내 목이 여기 있다.
자칼 남작은 애써 웃음 지었다.
그러자 패트릭도 웃었다.
패트릭의 검이 휘둘러졌다. 그와 동시에 묵직한 충격이 목에서 밀려오며 자칼 남작의 의식을 끊어졌다.
***
정신을 차려 눈을 떠보니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드넓은 초원에 짙은 황혼이 드리우며 지평선을 붉게 비추고, 여기저기에 널브러진 사람과 말의 사체가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시체는 하나같이 혼트 제국군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여긴 지옥인가.’
자칼 남작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오러 마스터의 일격과 함께 목에서 육중한 타격을 입었을 때,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죽은 뒤에도 이상하게 목이 아팠다.
의식이 돌아오면서 서서히 시야도 밝아졌다. 점점 풍경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시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콘돌 기병대가 주둔한 채 십인대별로 화톳불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청각도 돌아왔다.
그들이 시끄럽게 왁자지껄 떠들면서 승리를 축하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대장님’과 ‘오러 마스터’란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었다.
비로소 자칼 남작은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름 필사적으로 공포를 참고 멋진 최후를 장식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 죽이다니. 원망해야 할지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군.’
자칼 남작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자, 뒤에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였다.
“깨어났군.”
상체만 겨우 일으킨 채 돌아보니, 바로 콘돌 기병대의 대장 패트릭 콘돌이었다.
자칼 남작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