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1 회: 경영의 대가 20권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일대를 정찰 중이던 대원 한 명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연대장님. 기병 1만 5천여 명 규모로 추정되는 혼트 제국군이 접근 중입니다! 대략 5시간 안에 아군과 조우할 듯합니다.”
“알겠다. 계속 적의 동태를 감시해라.”
“예!”
1연대장 발락의 지시에 대원은 다시 왔던 길로 떠났다. 발락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이걸 어서 대장님께 보고 드려야 적과 조우하기 전에 후퇴하든 할 텐데…….’
정작 콘돌 기병대의 대장 패트릭은 무아지경이 되어 홀로 검무(劍舞)를 추고 있었다.
그 검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보는 이를 빨아들일 것 같은 자유롭고 웅장한 기세가 패트릭의 움직임에서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 문제로 패트릭을 무아지경에서 강제로 깨워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발락이 보기에도 패트릭은 무인으로서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군. 대장님을 불러서 이 사실을 알려야겠소?”
2연대장 달탄이 다가와 물었다. 발락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기다리지요. 지금 대장님의 저 검무를 중단시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그도 그렇소만…….”
하는 수 없이 모든 콘돌 기병대가 패트릭이 스스로 검무를 멈출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발락은 대원들을 통제하여서 패트릭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때문에 모두들 숨죽인 채 패트릭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금 혼트 제국군의 접근을 알리는 정찰대원이 왔을 때쯤, 마침내 패트릭이 검무를 중단했다.
움직임을 멈춘 패트릭은 검을 내려뜨린 채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흥분과 희열의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대장님?”
발락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패트릭은 슥 고개를 돌려 발락을 바라보았다.
“1연대장. 무슨 일 있느냐?”
“자칼 남작이 접근 중입니다. 놈들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어서 움직여야 적을 따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 자칼 남작이 벌써 여기까지 왔군. 우리의 꽁무니를 따라잡느라 고생 좀 했겠어.”
“대장님, 어서 명령을.”
걱정에 찬 발락의 재촉에 패트릭은 씨익 웃었다.
“자칼 남작은 우리를 따라잡기만 한다면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100% 확신을 하고 있다. 이건 좋은 기회다.”
“예?”
“이미 이 일대의 유목민족 부족들에게는 충분한 피해를 주었다. 이 정도면 전쟁에 참여한 유목민족 전사들을 동요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이제 남은 것은 자칼 남작을 격파하고 레던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자칼 남작과 정면으로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없다. 자칼 남작은 우리가 퇴각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병력을 분산하여 퇴로를 차단하려 하겠지. 우리는 달아날 것처럼 모션을 취해 방심을 유도한 뒤, 곧바로 자칼 남작의 본대를 쳐서 승리하겠다.”
“적은 우리의 3배가 넘고 적장은 무능한 지휘관이 아닌 자칼 남작입니다. 정말 이길 수 있겠습니까?”
“이긴다.”
“대장님, 혹시 어떤 성취를 얻으신 겁니까?”
패트릭은 발락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덕분에.”
비로소 발락의 안색이 환해졌다. 어째서 패트릭이 승리를 확신하는지 알게 된 것이었다.
***
“이제야 간신히 따라잡았군!”
자칼 남작은 콘돌 기병대를 발견했다는 정찰병의 보고를 받고 진군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콘돌 기병대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들이 남긴 흔적으로 유추하면 거의 사나흘을 꼬박 밤새워 달릴 때도 있을 정도였다. 애초부터 이런 강행군을 상정한 훈련을 오랫동안 받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속도였다.
자칼 남작이 이끌고 있는 혼트 제국군 기병 또한 대다수가 유목민족 전사 출신이었지만, 콘돌 기병대의 이동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초원을 누비며 유목민족 부락을 습격해 분탕질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어딜 가든 이미 콘돌 기병대가 한바탕 휘젓고 떠난 지 오래였다.
그렇게 계속 허탕만 치다가 비로소 아군 정찰병이 콘돌 기병대를 발견한 것이다. 지나간 흔적이 아닌 콘돌 기병대 전 병력을 말이다.
“서둘러라!”
자칼 남작은 이 기회를 놓칠 새라 병사들을 독려했다.
‘갑자기 이만큼이나 따라잡히다니, 놈들도 체력에 한계가 와서 쉬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놈들이 다시 달아나기 전에 박살을 내야 한다.’
마침내 콘돌 기병대가 자칼 남작의 시야에 들어왔다. 자칼 남작은 즉시 기병 3천씩을 좌우로 보내 콘돌 기병대의 퇴로를 막게 했다. 자칼 남작 자신은 9천여 명의 본 병력을 이끌고 돌격했다.
자칼 남작의 군대가 덮치자 콘돌 기병대는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쫓아라!”
달아나려는 콘돌 기병대의 모습에 자칼 남작의 두 눈에 불똥이 튀었다. 저 약삭빠른 놈들 때문에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단 말인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자칼 남작의 군대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자칼 남작이 직접 9천 기병과 함께 돌격했고, 좌우에서 3천씩의 기병이 콘돌 기병대를 에워쌌다.
자칼 남작의 맹추격에 콘돌 기병대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만…….’
자칼 남작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놈들도 우리가 접근해왔다는 것을 정찰로 알고 있었을 텐데, 어째서 진즉에 달아나지 않은 거지?’
콘돌 기병대의 대장 패트릭 콘돌은 과감하면서도 신중한 인물이었다. 적국의 영토인 이곳 초원지대에 단독으로 침투한 부대의 지휘관이라면 정찰을 결코 게을리 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자칼 남작이 가시거리에 접근할 때까지 후퇴하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 수상했다.
‘마치 날 유인하는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왜? 어떤 함정이라도 팠단 말인가?’
자칼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보이는 콘돌 기병대를 보니 전 병력 4천여 규모가 분명했다. 따로 매복시킬 병력도 없고 탁 트인 초원에서 매복하거나 딱히 함정을 팔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럼 대체 무슨 의도일까.
3배가 넘는 자신들과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수 있다는 건가?
자칼 남작은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무언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달아나는가 싶었던 콘돌 기병대가 돌연 방향을 돌리더니, 자칼 남작의 본대를 향해 똑바로 돌격해오는 게 아닌가?
“역시 싸울 생각이었군.”
자칼 남작은 비로소 콘돌 기병대의 의도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달아나려고 모션을 취했던 것은 혼트 제국군으로 하여금 퇴로 차단을 위해 병력을 분산하게 만들려는 술책.
그리고 그 틈에 혼트 제국군의 본대를 쳐서 지휘관인 자칼 남작의 목숨을 취하려는 전술이었다.
콘돌 기병대의 대장 패트릭 콘돌은 용맹한 인물이고 검술이 뛰어나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흥, 그렇게 쉽게 당해줄 줄 아느냐?”
자칼 남작은 그대로 돌격을 명령했다.
병력을 분산했어도 이쪽은 9천. 정면으로 맞붙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숫자였다. 그 틈에 좌우로 산개시킨 6천 기병이 콘돌 기병대를 에워싸면 그만이었다.
자칼 남작은 뒤로 약간 물러섰다. 패트릭 콘돌이 자신의 뛰어난 무위를 앞세워 순간적으로 돌파해 들어와 자신을 살해할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칼 남작은 콘돌 기병대의 의도를 거의 정확하게 알아차렸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자칼 남작이 알지 못하는, 알 리가 없는 변수가 한 가지 있었다.
그 변수가 승패를 완벽하게 뒤집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