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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77화 (477/529)

<-- 477 회: 경영의 대가 19권 -->

무사히 귀환한 하딘의 보고를 받은 왕실특별군 부사령관 바우텔 자작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걸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군.’

충분히 철저히 전쟁에 대비한 리간드 영지군이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 하나까지 챙길 수는 없었다. 혼트 제국군의 투석기 사정거리가 예상보다 길다는 것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놈들은 그 사소한 틈을 잘도 알아차렸다. 게다가 자리 잡은 위치까지 아주 절묘하다. 롬펠 대공 군단에 누군가 유능한 참모가 있음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롬펠 대공 군단에 소속된 마법사들의 공격을 막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상대는 병력뿐만이 아니라 마법사 전력도 이쪽보다 우세했기 때문이다.

리간드 영지군은 왕실특별군이나 쿤트 백작가 소속의 마법사와 리간드 영지가 고용한 용병 마법사가 있었지만, 방어만으로도 급급했다. 4서클이 넘어가는 고위 마법사의 공격은 그 자체로 공성병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결단코 막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공성병기까지 나타나 혼트 제국군의 공격을 지원하게 생겼으니…….

바우텔 자작은 하딘과 리처드는 물론이고 바스크와 릭까지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놈들이 투석기를 쓰기 시작하면 파괴당하는 목책이 생길 겁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목책이 뚫리면 즉시 그 구멍을 매우는 역할을 맡아주십시오.”

“알겠네.”

대표로 바스크가 쾌히 승낙했다.

뒤이어 딘과 렉스도 불러다가 명했다.

“언제든 후퇴할 준비를 하게.”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사 하나를 시켜 영주대리 베일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연륜이 깊은 군인이라 그런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대처하는 바우텔 자작이었다.

혼트 제국군의 투석기가 처음 선보여진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노을이 질 즈음, 바위 두 개가 연속으로 날아와 요새의 한복판이 꽂혔다. 다행히 사람이 없는 공터에 떨어졌기에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하늘에서 바위가 날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리간드 영지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바위는 또 한 번 날아왔다.

이번에는 바위가 목책 근처에 떨어졌다. 땅에 떨어진 후에 데굴데굴 굴러온 바위가 목책을 때렸다. 목책은 살짝 흔들린 것으로 그쳤다.

그것은 투석기의 발사각 조정이었다.

비록 그날의 투석 공격은 그것으로 끝났지만, 제 1 요새를 총지휘하는 바우텔 자작은 식은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적군의 투석기가 위력을 발휘하게 될 터였다.

다행인 점은 그 발사각 조정으로 인해 투석기가 어디를 겨냥하고 있는지를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바우텔 자작은 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장애물을 투석기의 예상 타격 지점에 설치해서 목책이 뚫리더라도 적을 막을 수 있게 보강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리간드 영지군도 롬펠 대공 군단도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했다.

그때만큼은 전장이 조용했다. 산지에 요리를 하는 불의 연기가 솟아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폭풍전야의 긴장감이 뱀처럼 은밀하게 전장을 휘감고 맴돌았다.

식사를 마치고 롬펠 대공 군단의 병사들이 각 위치로 집결했다. 정면에 배치된 돌격병. 그 뒤를 받쳐주는 보병과 후방에서 지원사격을 하는 궁병. 양 측면에는 방패병의 보호를 받고 있는 마법사들. 특별할 것 없는 정석적인 공성 배치였다.

하지만 높은 지형에 위치한 제 1 요새보다도 더 높은 언덕에 배치된 투석기 2대의 존재가 전술을 한층 파괴적이게 만든다. 그곳에서 요새 내부 상황을 내다보며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음은 물론이고 튼튼한 목책을 투석해 파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뿌우우―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공격!”

혼트 제국군의 총공세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화살과 마법 공격 외에도 바위까지 날아들기 시작했다. 화살은 목책에 숨어 피하고 마법은 리간드 영지군의 마법사가 막아냈지만, 바위만큼은 속수무책이었다.

퍼어엉!

바위가 목책을 강타했다. 성처럼 튼튼하게 지어진 목책이 큰 진동을 내며 흔들렸다. 다행히 튼튼하게 축조된 까닭에 쉽게 무너질 목책은 아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걸쳐!”

방패를 한 손에 든 채 돌진해온 돌격병들이 전우들과 함께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던 사다리를 목책에 걸쳤다. 완전히 일치단결한 협동력으로 사다리를 목책 꼭대기까지 단숨에 올려 걸치는 데 성공했다.

선두의 돌격병이 기꺼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중간 중간 허리춤의 단검을 목책 사이에 꽂아 넣었다. 그렇게 중간 이상을 올랐을 때, 리간드 영지군이 쏜 화살에 맞고 맥없이 추락했다.

뒤이어 돌격병이 또다시 사다리를 올랐다. 왼손에 든 방패를 들어 올린 채로 사다리를 오르는 동작이 신속하고 능숙했다.

“사다리를 부숴라!”

목책 위에 있던 리간드 영지군 중 망치를 든 병사가 사다리를 부숴버렸다. 한쪽이 부서진 사다리가 기우뚱거리더니 이내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사다리가 쓰러지자 리간드 영지군이 함성을 질렀다. 이 거대한 전투 스케일에 비하면 사소한 승리에 불과했으나, 용기를 북돋기 위해 일부러 환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트 제국군 최정예 돌격병의 진가가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앞선 전우들이 중간 중간에 박아 넣은 단검을 발판 삼아서 돌격병들이 목책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사다리도 없이 목책에 달라붙어 떼 지어 올라오는 모습이 마치 개미떼를 연상케 하여 리간드 영지군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겁먹지 마라, 애송이들도 아니고! 처먹은 짬밥이 아깝지도 않나!”

기어 올라온 돌격병을 베어 넘기며 소리친 사람은 바로 딘이었다.

그제야 리간드 영지군 중 경비대의 대응이 활발해졌다.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목책 위에 발만 못 들이게 하면 그만이다!”

경비대 장교들이 대원들을 독려했다.

경비대의 장교들 중 상당수는 딘이 용병단을 창설하여 활동할 적에 함께 했던 용병단원 출신이었다. 용병출신답게 경험이 많은 그들은 딘의 질타를 받고서 적의 기세에 겁먹었던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겼다.

“씨발, 전쟁 끝나면 내가 술 쏜다!”

부대장 렉스가 소리치자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환호를 지르는 숫자가 너무 많아서 렉스는 아차 하고 식겁한 표정이 되었다.

리간드 영지군의 분전으로 전투는 승패 행방을 알 수 없이 격렬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전군을 총괄하는 리간드 영지군의 바우텔 자작과 롬펠 대공 군단의 말버린 자작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쿠우웅!

투석기가 날린 바위가 목책을 강타한다. 목책이 흔들거리는 정도가 아까보다 심해졌다.

병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싸우건 상관없이 이 전투의 승부처는 저곳에 있었다.

아니,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바우텔 자작이 고려하는 것은 퇴각 타이밍이었다.

“싸움이 당초부터 구상한 계획대로 진행되고는 있는데…….”

바우텔 자작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진행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구나.”

혼트 제국군의 움직임은 영주대리 베일의 주도로 세워진 추측대로였다. 다만 리간드 영지군은 그들을 상대로 시간을 충분히 끌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해일에 휩쓸려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듯한 모양새다.”

그만큼 롬펠 대공 군단의 행보가 폭풍 같다는 의미였다.

제 2 요새까지 밀리기 전에 전쟁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사실은 그것이 리간드 영지군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승리의 형태였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한 채로 롬펠 대공 군단을 붙잡아두는 데 성공한 셈이니까.

그런데 이 같은 흐름으로 보면, 제 2 요새는커녕 제 3 요새까지도 적의 공세에 밀려 포기하고 영지 전체를 전장으로 백병전 게릴라로 저항해야 하는 사태까지 흘러갈 지도 몰랐다. 그때는 영지민들의 생계에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 영지의 젖줄인 벌목소와 조선소도, 텍스 강 유역에 건설 중인 계획도시도 적의 군홧발에 짓밟혀 파괴될 지도 모른다. 

투석기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 저 목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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