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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76화 (476/529)

<-- 476 회: 경영의 대가 19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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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둘러싸인 리간드 영지에는 옛날부터 사냥꾼이 많았다. 농사도 여의치 않은 이 척박한 땅에서 먹고 살려면 산짐승이라도 사냥해야 했던 것이다. 몬스터가 득시글거리는 숲이지만, 어쩌겠는가? 굶어 죽나 몬스터에게 잡아먹히나 매한가지인데.

지금은 영주 카록 리간드가 설립한 조선소와 벌목소가 크게 성공하여 사냥 같은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사냥꾼들은 영지 경비대에 입대하여서 자신들의 특기를 살리고 있었다.

영주대리 베일은 그러한 사냥꾼 출신의 경비대원들 31명을 데리고 제 1 요새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베일이 사냥꾼 출신들을 데리고 다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동풍이군.”

“예. 그래서 사냥을 할 적에는 바람을 등지지 않기 위해 반대로 빙 돌아야 했습죠.”

“산이 워낙 많아 놓으니 바람도 일정하지 않고 산 사이로 굽이굽이 불지요. 그래도 한 20년쯤 사냥하며 살다 보면 터득하게 되긴 합니다만.”

경비대원들은 사냥꾼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는지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그랬다.

베일은 그들과 함께 다니며 바람이 부는 방향을 점검하고 있었다.

요새를 축조할 때 이미 조사했던 사실이지만, 작전에 앞서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것이었다.

***

롬펠 대공 군단의 움직임에 사소한 변화가 생겼다. 제 1 요새를 공격하는 6만 대군 중 고작 일개 천인대의 움직임이니 사소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경험 많고 노련한 바우텔 자작도 천인대의 움직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쓸 틈이 없었다. 제 1 요새의 전 구역이 공격 받는 엄청난 상황인데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새의 우측에 조금 떨어진 언덕에 롬펠 대군 군단의 천인대 하나가 나타나자 바우텔 자작은 직감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딘 경.”

“예, 자작님.”

“저 언덕을 정탐해주시오. 놈들의 의도가 수상하오.”

“알겠습니다.”

하딘은 즉시 10명의 부하를 끌고 언덕으로 향했다. 고작 10명이었으나 모두들 오러 유저였기 때문에 정탐에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하딘은 바람처럼 달려가 언덕을 올랐다.

그런데 예상보다 언덕에 주둔한 병력이 많아 들키지 않고 오를 수가 없었다. 일개 천인대가 언덕 하나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핫!”

하딘은 앞장서서 혼트 제국군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라운드 실드로 상반신을 전부 가린 안정적인 방어 자세에서 오른손에 쥔 모닝스타를 휘둘러 하나둘 처치해나갔다. 모닝스타는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정확하게 한 명씩 혼트 제국군 병사를 타격했다.

“놈이 대장이다!”

“한꺼번에 덤벼!”

“에워싸!”

혼트 제국군은 잘 훈련된 정예답게 하딘에게 벌떼처럼 덤볐다. 범상치 않은 무인을 상대할 땐 사방에서 일제히 공격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검 한 자루로 바람처럼 종횡하는 무인이었다면 효과적이었으리라. 하지만 하딘은 무거운 갑옷을 갖춰 입고 라운드 실드를 누구보다도 잘 쓰는, 방어에 특화된 무인이었다.

태산처럼 자리 잡은 하딘은 정면에서 덤비는 적의 공격은 라운드 실드로 막아내며, 반대편으로 우회하여 달려드는 적을 모닝스타로 요격했다.

퍼억!

“끄억!”

빠아악!

“끅!”

모닝스타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한 사람씩 날아가는 모습은 무섭기 짝이 없었다.

하딘이 선두에서 혼트 제국군의 기세를 꺾자, 뒤이어 10명의 무인들도 합세했다.

무인들이 뒤를 받쳐주자 하딘은 돌파를 시도했다.

라운드 실드를 앞세우며 황소처럼 돌진하는 하딘.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라운드 실드에 튕겨나가 나뒹굴었다.

적 무리 한복판에 홀로 뛰어든 하딘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석재(石材)를 캘 때 흔히 바위의 틈새에 쐐기를 박고 물을 부어 부피를 불려서 쪼개는데, 하딘의 전투방식이 바로 그러했다.

적들의 틈바구니로 파고 들더니 라운드 실드로 막고 모닝스타로 견제하는 탄탄한 방어를 구축한다. 사방에서 에워싸서 난타를 하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으니, 결국 하딘의 방해로 진열을 갖추지 못한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뒤따르는 10명의 무인들에게 맥없이 사냥당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진열을 갖추고 조직력을 발휘하면 숫자가 많은 혼트 제국군이 유리했겠으나, 그렇지 못하고 뿔뿔이 행동하니 오러 유저 급 무인들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무인들이 혼트 제국군 병사들을 밀어붙이자, 하딘은 다시 한 번 전진했다.

“놈을 막아!”

혼트 제국군을 지휘하는 백인장이 부르짖었다. 하딘이 아군의 틈새로 돌파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창병들이 고슴도치처럼 창날을 세워 가로막는다. 방패를 든 보병들도 스크럼을 짰다. 그들 자체로 하나의 요새가 된 듯했다.

하지만 하딘은 개의치 않았다. 저돌적으로 적들에게 몸을 날렸다.

퍼퍼퍽!

찔러 들어오는 수개의 창날이 라운드 실드에 가로막혔다. 충돌 순간 하딘은 능숙하게 라운드 실드의 각도를 조절하며 창날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겉보기엔 단순한 방어 같지만 실은 굉장히 정밀한 테크닉이었다.

모닝스타에 오러를 실었다.

그리고 방패를 든 혼트 제국군 병사들의 스크럼을 있는 힘껏 휘갈겼다.

뻐어어어억!

“크아악!”

“아악!”

“이, 이게 무슨!”

한 방의 일격에 스크럼이 무너졌다.

하딘은 눈을 매섭게 빛내며 드러난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막아!”

사방에서 병사들의 창이 찔러 들어왔으나 모조리 라운드 실드에 막혀버렸다.

하딘은 모닝스타를 크게 휘둘러서 파고든 틈새를 넓히기 시작했다. 라운드 실드로 후려치고 부츠로 짓밟으며 좌충우돌하는 하딘의 모습은 전장의 폭군 그 자체였다.

평소에 주군인 바스크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공간 장악력을 높여서 상대를 압박하는 테크닉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었다. 그것을 보강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전투 형태. 방어적이면서도 매우 공격적인 완성형의 모습을 하딘은 확립한 것이었다.

결국 혼트 제국군 병력이 하딘의 돌파로 분단되었다. 하딘을 따르는 무인들은 분단된 적들을 습격해 사살해나갔다. 혼트 제국군의 병력이 빠르게 줄었다.

“크윽…… 후, 후퇴!”

결국 백인장의 지시로 혼트 제국군 백인대가 일시적으로 후퇴했다.

하딘도 재빨리 움직였다.

“이때다! 놈들이 또 나타나기 전에 우로 우회하여 언덕을 오른다!”

“옛!”

하딘 일행은 빠르게 오른쪽으로 산을 타며 언덕을 올랐다.

1천여 명의 적이 지키는 산을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전의 훈련을 통해 상대보다 더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활엽수와 넝쿨들은 그들의 편이었다.

샛길로 파고든 하딘 일행은 언덕에 이르는데 성공했다.

수풀에 몸을 숨긴 채 언덕 위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런!’

하딘은 깜짝 놀랐다.

분해된 투석기를 조립하고 있는 혼트 제국군의 모습이 보인 까닭이었다.

‘여기서 투석기를 쓴다고?’

이곳에서 요새까지 사거리가 닿는단 말인가?

물론 가벼운 돌을 쏘아 날린다면 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이 가벼운 만큼 파괴력도 떨어지므로 투석기의 가치가 쓸모없게 된다.

이 언덕에서 투석기를 열심히 조립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제 1 요새의 목책에 타격을 가할 만큼 큰 바위를 날리겠다는 뜻이었다.

‘만약에…… 놈들의 투석기 사거리가 요새에 닿을 만큼 길다면 문제가 크다.’

리간드 영지군이 지키는 요새는 애당초 혼트 제국군이 공성병기를 쓰지 못한다는 가정 하에 축조되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로 지어진 것이다. 요새보다 높은 이 언덕에서 투석기가 바위를 날린다면 목책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어서 보고해야겠다.’

하딘은 무인들과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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