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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75화 (475/529)

<-- 475 회: 경영의 대가 19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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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간이 설계했는지 전쟁이 끝나면 혼트 제국으로 데려가고 싶군요.”

말버린 자작이 말했다.

롬펠 대공 군단이 점령한 모든 고지를 다니며 리간드 영지군의 요새를 여러 각도로 관측한 끝에 내린 감상이었다.

“척 보기에도 잘 지은 것 같던데 네가 보기엔 어떻더냐?”

“치밀하게 설계했습니다. 공들여 축조해야 할 부분과 대충 지어도 될 부분까지 배분해서 인력과 공사기간의 효율을 최대로 높인 노력이 보입니다.”

롬펠 대공가의 잡다한 대소사를 관장하며 축성(築城)까지 관여해보았던 말버린 자작은 리간드 영지군의 요새가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건축 상의 문제는 물론이고 군사학적인 측면까지 충분히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야.’

“음, 하여간 우리한테는 골치 아프게 됐다 이거겠지?”

“그렇습니다.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된 지형입니다. 나머지 다수 병력이 싸우지 않고 놀게 됩니다. 전형적인 천혜의 요새지요.”

“으음…….”

말버린 자작의 말에 롬펠 대공은 잠시 뭔가 고민을 하더니, 아니 하는 시늉만 하더니 이윽고 귀찮다는 듯이 툭 내뱉었다.

“그럼 어디 대책을 말해봐라.”

“……지형적으로 볼 때 딱히 찌를 만한 약점 같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럴 땐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정석적인 포석을 두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특정 지점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모든 구역을 동시에 공격하는 것입니다.”

“고지를 점령했던 것처럼 말이지?”

“예. 전 병력을 동원한 총공격이 될 겁니다. 놈들도 병력을 전부 동원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식의 싸움양상은 병력면에서 압도적인 아군이 유리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자. 보급선을 유지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놓고 나머진 전부 요새 공략에 투입한다.”

“알겠습니다.”

롬펠 대공 군단은 거침이 없었다.

요새 공략 계획이 결정되자마자 다음날 곧바로 전 병력을 움직인 것이다. 1만여 명만 본진과 보급로 수비를 위해 남겨놓고 나머지 전 병력을 움직인 총공세였다.

고지를 점령하고 진지를 구축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도 곧장 공세를 취해오는 롬펠 대공 군단의 행동력은 두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총공격을 펼칠 거라는 사실은 리간드 영지군도 이미 예상한 바였다. 영주대리 베일의 지시 하에 전 병력이 제각기 맡은 구역으로 할당되어 방비태세를 갖췄다.

이윽고 제 1 요새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격!”

“으와아아!”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용맹하게 요새를 향해 돌진했다.

정예 중의 정예인 돌격병이 사다리를 끼고 달려든다. 목책 위에서 리간드 영지군이 화살을 쏘아댔지만, 한 손에 든 방패로 막아내며 계속해서 돌진했다. 레던 왕성 전투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던 공성 전문 병과가 활약을 시작한 것이다.

함께 사다리를 들고 있던 전우가 화살에 맞아 죽자, 그 공백을 뒤에 있던 대기조가 즉각 채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작업을 위한 부품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리간드 영지군의 준비성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촤촤ㅤㅊㅘㄱ―

“으앗!”

“억!”

땅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로프가 좌우로 팽팽하게 당겨지며 돌격병들의 발을 걸었다.

예상치 못한 함정에 돌격병들이 우르르 넘어지고 말았고, 순간적으로 진열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때다! 사격!”

경비대장 딘의 명령에 리간드 영지군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쉬쉬쉭―

“큭!”

“꺼어억……!”

화살에 맞아 죽는 돌격병들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오른팔로 사다리를 짊어지고 왼손은 방패를 들어 화살을 방어하는 것이 성벽을 향해 돌입하는 돌격병들의 정상적인 포지션. 그런데 선두가 로프에 발이 걸려 넘어지자 방패로 막을 수가 없었고, 뒤에 있던 전우들까지 빈틈에 노출된 것이었다.

“뭘 꾸물대나! 얼른 수습해라!”

이를 본 말버린 자작이 호령을 했다. 롬펠 대공이 일반 병사 출신에 성격이 호탕하여 병사들과 곧잘 어울려 논다면, 말버린 자작은 냉정하고 아주 엄격한 상관이었다.

오러가 실린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돌격병들은 반사적으로 서둘러 일어나 진열을 재정비했다.

“다시 돌격!”

“선두는 발밑을 조심해라!”

또 어떤 자잘한 함정이 있을지 모르므로 돌격병들은 발밑을 살피며 신중하게 움직였다.

험한 산지라 공성병기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에 돌격병들의 역할에 걸린 책임이 막중했다.

공방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혼트 제국군의 대병력이 제 1 요새의 전 구역을 타격했고, 이러한 총공세를 예상한 리간드 영지군의 방어도 만만치 않았다.

대륙 정복이라는 큰 스케일의 기치를 건 혼트 제국군과 달리 리간드 영지군은 자신들의 영지 방어 하나에 집중했다. 지금의 전투 상황을 가정하여 수없이 훈련을 받아왔다. 때문에 낯선 환경에서 작전을 진행하는 롬펠 대공 군단보다 더 능숙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겠군.’

전투 상황을 수시로 보고 받으며 말버린 자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파죽지세로 요새를 깨부수고 리간드 영지를 점령하고 싶었는데 적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두 사람의 오러 마스터와 카록 리간드의 측근 인재가 모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작은 영지 때문에 우리 군단이 발목 잡혀 있는 것은 불명예다. 대공 전하의 명성에 큰 누가 되고 말아.’

롬펠 대공.

혼트 제국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이름.

특히 평민으로 태어나 일반 병사로 시작해 살아 있는 무신이 되었다는 점에서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신앙처럼 떠 받들었다.

말버린 자작 또한 그런 롬펠 대공을 누구보다도 존경했다.

그런 롬펠 대공이 고작 리간드 영지 하나 때문에 발목 잡혀서 황제가 내린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절대로 용납 못한다!

말버린 자작은 전투가 전개되는 요새를 훑어보며 치열하게 궁리했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결국 점령할 수 있을 테지만, 시간과 병력의 낭비가 너무 크다. 확실하게 승기를 가져올 수 있는 포인트를 발견해야 한다.

그렇게 얼마나 고뇌했을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한참을 승리의 비책을 갈구하던 말버린 자작의 시선에 문득 요새에서 오른쪽으로 100미터쯤 떨어진 지점에 있는 높은 언덕이 들어왔다.

이 일대 산지가 온통 활엽수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병력 운용이 힘들 지경이었는데, 그 언덕 위는 그럭저럭 공간적 여유가 되는 공터가 있었다.

‘저 정도 거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말버린 자작은 즉시 천인장 하나를 불렀다.

“저기 보이는 언덕을 점령해라. 그리고 휘하 백인대를 시켜 아군의 본진에서 투석기 2대를 가져와라.”

“옛? 투석기를 말씀이십니까?”

이 험난한 숲에 투석기를 가져오는 일은 불가능했고, 설령 투석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적들의 요새는 높은 지형에 위치해 있어서 위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다. 분해해서 운반하고 저 언덕 위에서 다시 재조립해라. 저 언덕에서 투석기를 쏘면 요새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제야 말버린 자작의 뜻을 이해한 천인장이 즉각 명령을 받들고 출발했다.

“리간드 영지의 영주대리와 이름 모를 천재 건축가 양반이 깜빡 놓친 게 하나 있군.”

말버린 자작은 히죽 웃었다.

“우리 혼트 제국군의 투석기는 너희들 것보다 두 배 가까이 사거리가 길다. 전쟁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 혼트 제국의 공성병기를 너희처럼 평화로운 나라의 것과 같은 수준일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것은 정말로 영주대리 베일과 파오니 남작이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들이 혼트 제국군의 투석기를 실제로 볼 일이 있을 리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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