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468화 (468/529)

<-- 468 회: 경영의 대가 18권 -->

“적군은 가장 먼저 이 일대의 지형을 파악하려 들 것입니다.”

영주대리 베일은 주요 인물을 모두 모인 군사회의에서 발언을 시작했다.

“우리의 병력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고, 방어시설이 어디에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를 적군은 전혀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큰 이점입니다.”

전쟁 경험이 많은 바스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릇 전쟁에 있어 적에 대해 모를 때만큼 답답한 일이 없었다.

“이 이점을 우리는 최대한 오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이 싸움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 있고, 전략적 목표대로 롬펠 대공 군단을 이곳에 붙잡아둘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 거야?”

릭이 물었다.

이를 보고 왕실특별군의 부사령관 바우텔 자작은 사령관의 무식함에 한숨을 쉬었다.

바스크도 혀를 찼다. 한마디 비아냥거려주고 싶긴 한데 회의에 방해될까봐 참았다.

베일은 친절하게 말했다.

“적의 정찰을 철저하게 방해할 것. 이 일대 지형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것. 이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작전입니다.”

“아아, 그러니까 적의 정찰병을 닥치는 대로 사냥해서 훼방을 놓으라는 것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 지리에 익숙한 우리 영지의 경비대를 총동원하겠습니다. 경비대장 딘 경, 부대장 렉스 경, 이해하셨습니까?”

“알겠소.”

“맡겨주십시오.”

딘과 렉스가 대답했다.

비록 이곳에 모인 바스크, 릭, 리처드 벅, 하딘 등에 비하면 무인으로서의 실력은 많이 부족했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 영지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지리에 익숙했다.

게다가 리간드 후작령의 경비대는 기존의 영지 군대에 베일이 데려온 산적들까지도 대거 포함된 산악전의 스페셜리스트들이었다.

“롬펠 대공 휘하에는 솜씨 좋은 기사들도 많이 있을 텐데 저 두 사람만으로 괜찮겠나?”

바스크가 물었다.

베일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려하신 대로입니다. 그래서 쿤트 백작 각하와 페르난도 백작 각하 두 분께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기다리느라 지루하셨을 텐데, 가볍게 몸이라도 푸는 것은 어떠십니까?”

“알겠네.”

“좋지!”

바스크와 릭도 대답했다.

“모쪼록 위험은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베일이 당부했다.

롬펠 대공과 맞닥뜨리더라도 목숨을 건 결투는 피해달라는 의미였다.

바스크와 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미 롬펠 대공과 마주쳐 혈투를 벌이는 짜릿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 속내를 짐작하고 있는 베일은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작전은 단독으로 움직여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두 오러 마스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리간드 영지의 경비대와 바스크, 릭은 전투에 투입되었다.

경비대장 딘은 경비대의 병력 절반을 렉스에게 맡겨서 자유롭게 행동하게 하였고, 병사들이 50명씩 조를 지어서 산맥의 각지에 뿌려두었다. 어디에서 혼트 제국군의 정찰병이 오든 사냥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한편…….

“롬펠 대공은 정찰하러 직접 오지 않겠지요?”

릭의 물음에 바스크는 혀를 찼다.

“멍청한 놈, 총사령관이 이깟 일에 직접 나서겠느냐?”

“역시 그렇겠죠? 쳇.”

릭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바스크도 미련은 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면 흥미가 동해서 한 번 보러 올 지도 모르지. 듣기로 롬펠 대공은 상당한 기분파로 보였으니까.”

일전에 롬펠 대공이 대뜸 국경을 건너와 카록을 찾아왔다던 일화를 듣고 내린 바스크의 판단이었다.

110년이나 살지는 않았지만 바스크 또한 전쟁을 많이 겪어본 오러 마스터였다.

어느 정도는 롬펠 대공의 기분이 어떤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삶의 만사가 다 의미 없어 보이겠지. 나 역시 미란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때때로 전쟁이 생각나곤 했으니까.’

전쟁은 마약과도 같았다.

죽음을 마주한 공포, 그걸 딛고 적을 죽였을 때의 폭력성, 승리의 희열…….

모든 감정이 범벅이 되어서 폭발하는 광기의 향연장이 바로 전쟁터였다.

누군가는 전쟁의 공포에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다시 느껴보고 싶은 스릴이기도 했다. 그래서 용병들이 은퇴를 못하고 전장을 배회하다가 끝내 죽는다고 들었다.

술꾼이 점점 독한 술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귀영화를 전부 누려본 무인이 마지막에 다시 돌아오는 곳은 결국 이곳, 전장이다.

‘나도 저리 되는 것일까?’

바스크는 문득 마음이 심란해졌다.

물론 그는 롬펠 대공처럼 너무 오래 살아서 세상만사가 지겨워 지지는 않았다.

새롭게 맞이한 아내 미란다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그녀와 행복한 일생을 보낼 생각이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긴 세월이 흐르면 결국 그녀를 먼저 떠나보내게 되리라. 오러 마스터인 자신은 그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테고.

모든 미련이 없어졌을 때, 자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늙어서 롬펠 대공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뮤트 공작도, 륭겐 후작도, 아들 릭 녀석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무(武)에 인생을 던진 족속들의 어쩔 수 없는 종착지…….

“릭.”

“왜요?”

아들 녀석이 삐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전쟁에 미치지 말거라.”

“…….”

아버지의 진지한 음성에 릭은 입을 다물었다.

바스크가 말을 이었다.

“네 인생에 있어 두 번째로 소중한 것을 찾아라.”

“두 번째라…….”

무인의 첫 번째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를테면 사랑 같은 것 말이다. 그게 네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줄 것이다.”

“젊고 예쁜 새어머니처럼 말이죠?”

릭의 농담에 바스크는 큭큭 웃었다.

“그래, 그런 것 말이다.”

“걱정 마십쇼. 저도 조금만 더 놀다가 가족을 만들 겁니다. 저를 뭐로 보시는 겁니까? 제가 ‘내 마누라 할 여자 다 모여라!’라고 소리치면 미녀가 우글우글 모여들 텐데요. 그중 한 열 명만 부인으로 데려다 놓고 살 겁니다. 자식도 많이 낳아서 시끌벅적하게 살아야지.”

“쯧쯧, 여자는 많을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어린놈이라고들 부르지.”

“어허, 능력이 있는 거지요.”

“……마음대로 하려무나. 마누라가 열 명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지는구나. 오러 마스터의 무력으로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내가 미란다를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도 알게 될 게다.”

“흥, 카록을 보십쇼. 그 녀석 아내 둘 만나서 재미있게 잘 살고 있잖습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입니다.”

“이제 보니 주제파악도 필요하구나. 카록 녀석이 사람 마음 꿰뚫어보는 눈치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느냐? 나나 너 같은 멍청이는 평온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한 명이면 족하다.”

“정말 그런가 한 번 두고 보지요.”

“내기라도 해볼 테냐?”

“내기요?”

“아내 열 명, 후회하나 안 하나.”

“호오, 내기 조건은 뭡니까?”

“진 사람은 이긴 사람 앞에서 스스로가 약자라고 인정하는 것.”

릭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좋습니다. 마침내 아버지와 저의 서열이 결정 나겠군요.”

“이 전쟁이 끝나도 지루할 일은 없겠구나.”

바스크는 이미 이긴 사람처럼 흐흐 웃었다. 여자가 어디 만만한 생물이던가? 힘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생활만 해온 이 어리석은 둘째 아들은 뒤늦게야 비로소 자신의 오판을 깨닫게 되리라. 

바스크 쿤트와 릭 페르난도.

레던 왕국이 낳은 신성 같은 두 무인은 그렇게 아웅다웅 잡담을 나누며 산맥을 가로질렀다. 

곧 피바람이 불 곳으로 향하는 것치고는 정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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