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7 회: 경영의 대가 18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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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토로 가고 있다고?”
카이슨 후작은 보고를 받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4천여 명으로 파악된 기병대가 단독으로 혼트 제국으로 향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었다.
국경을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군대가 적국의 땅으로 접어들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 아닌 보급이었다.
식량을 구할 길이 없으니 마음대로 활개치고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전쟁에 있어 보급은 중요했다. 카르스 황제가 카이슨 후작에게 보급로를 맡긴 것도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혼트 제국의 영토로 향하는 콘돌 기병대의 행동은 분명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이상했다.
자칼 남작의 그간 보고서를 종합해보면, 콘돌 기병대의 대장 패트릭 콘돌은 유능하면 유능했지 결코 어리석은 인물이 아닌 것이다.
‘단시간에 많은 공적을 거두고 나니 더 욕심이 생겨서 무모해졌나?’
그런 가정도 어딘지 어색했다. 지휘 스타일상 패트릭 콘돌은 자기 대원을 희생시키는 것을 꺼린다. 100기만 끌고 보급부대를 쳤던 위험한 작전도 본인 스스로가 나섰고,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갔다.
그렇다면 뭘까?
대체 보급을 어떻게 하겠다고 무턱대고 적국의 영토로 무서운 속도로 쇄도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가만?’
비슷한 경우가 떠올랐다.
인류 전쟁사를 전부 뒤져볼 것도 없이, 바로 얼마 전 전쟁 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쥬르덴 후작의 레던 왕성 공략 작전.
비록 실패는 했으나 쥬르덴 후작 군단이 불시에 레던 왕성으로 진격하여 레던 왕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었다. 그때도 레던 왕실은 보급 문제로 쥬르덴 후작 군단이 뮤트 공작령을 그냥 지나치고 레던 왕성으로 진격할 줄은 몰랐을 터였다.
‘미리 포섭해놓은 현지 상단을 통해 식량보급을 할 계획이었지. 에반 테일러의 암약에 의해 보급에 실패하긴 했지만.’
설마…….
카이슨 후작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콘돌 기병대의 저 뜻이 확고한 빠른 행군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설마, 폐하와 비슷한 발상을 한 책략가가 레던 왕국에도 있었단 말인가?’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황제의 숙적인 카록 리간드.
‘카록 리간드나 그가 발굴한 재능 있는 인재가 황제와 비슷한 발상의 작전을 구상했을 수도 있겠군.’
전쟁 전에 미리 혼트 제국 본토 어딘가에 식량을 숨겨놨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전략을 세워놓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가정하면 모든 의문이 풀린다.
그 식량을 보급 받으며 콘돌 기병대는 혼트 제국군의 후방을 교란시킨다. 콘돌 기병대의 엄청난 기동력은 바로 그것을 위해 훈련된 것이리라.
‘그렇군. 그래서 콘돌 기병대가 리간드 영지에 배치된 것이었어. 유사시에 곧바로 후방으로 돌입할 수 있기 위해서.’
리간드 영지는 산세가 험한 지형으로, 기병이 활약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리간드 영지에 콘돌 기병대가 배치된 것은, 유사시 곧장 바덴 강 유역을 통과하여 혼트 제국령으로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떠오른 카이슨 후작은 병사를 시켜서 자칼 남작에게 파발을 보냈다.
“당장 전해라. 콘돌 기병대는 아국에 침입해 교란을 벌일 생각이라고. 끝까지 뒤쫓아서 놈들을 저지하라.”
“옛!”
병사는 즉시 말을 타고 서쪽으로 달렸다.
‘카록 리간드가 생각한 작전이 아니라면, 리간드 영지에 대단한 책략가가 있다는 뜻이군. 롬펠 대공 전하께서도 방심하시면 안 될 텐데…….’
그나마 다소 안심이 되는 것은 롬펠 대공이라는 인간의 존재감이었다. 살아 있는 전설인 그가 패퇴하는 경우는 어떤 상황이라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아무리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도 결국 전장에서 최후까지 서 있는 사람은 롬펠 대공일 것이다.
한 인간의 순수한 강함이 전략 수준의 레벨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인물 말이다.
***
2미터가 넘는 장신의 노인이 사방을 둘러보고 있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강철갑옷 같은 근육이 우락부락한 건장한 그는 등에 맨 큼직한 배틀 액스가 손도끼로 보일 정도였다.
“크하하, 이것 참 애들 꽤나 굴려야 하는 지형이구만!”
노인, 롬펠 대공은 껄껄 웃었다.
온 사방이 높고 험한 산으로 둘러져 있었다. 하나같이 굵직하고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사람이 다닐 수나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설령 저곳에서 트롤이나 오우거처럼 흉악한 대형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이 산지의 꼭대기에 적의 목책이 언뜻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0대 중반 시절에 일개 병사로 군대에 몸 담은 후로 110살이 된 지금까지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전쟁에 몸 담았던 롬펠 대공은 지금의 지형이 얼마나 아군에게 불리한지 알고 있었다.
“일단은 이 산맥의 지형부터 파악해야겠군. 그것부터가 문제일 테지만.”
지형도 모르고 작전을 펼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역사서에 남을 만한 대패를 기록할 지도 모른다. 실제로 얼마나 게으르고 우둔한 장수들이 위대한 대승의 재물로 희생되었던가.
오러 마스터씩이나 되어서, 7만 대병을 가지고 이 코딱지만 한 영지에서 패배하는 치욕은 겪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롬펠 대공이었다. 그건 110년 삶으로 쌓아올렸던 명망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짓이었다.
‘이 롬펠 대공이 이끄는 7만 대군을 꺾었다고 두고두고 자랑할 테지. 그 꼴을 볼 수야 없지. 뭐, 하지만…….’
롬펠 대공은 산맥을 올려다보았다.
언뜻 보일 듯 말 듯한 애매한 위치에 구축된 적의 목책은 절묘할 지경이었다.
공격하는 입장에서 방어시설의 구조가 어떠한지 눈으로 전혀 파악되지 않는 참으로 고약한 건축설계였다. 대체 어떤 건축가의 소행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런 방어선을 구축할 정도의 적이라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뿐.
‘승리와 패배의 갈림길은 양측에 공평하게 제시되어 있다. 어디 이 톰 롬펠을 곤란하게 만들어보아라. 궁지에 몰아넣고 처절하게 부숴봐라. 너희가 그럴 능력이 된다면, 이 톰 롬펠도 패배를 맞이하는 순간에 껄껄 웃으며 칭찬해주마.’
살아있다는 기분이 생생하게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어렸을 때부터 군대에 몸담아 평생을 피를 보며 살아온 롬펠 대공.
이 세상에서 가장 격렬한 경험을 일평생 경험하며 살아온 끝에 그의 나이 110세!
그런 삶을 살았던 톰 롬펠에서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이란, 눈을 뜬 채 죽어 있는 것처럼 공허한 것이었다.
마치 미리 무덤에 와 누워있는 것처럼, 전쟁이 좀처럼 없었던 노후는 아무런 자극이 되지 않았다.
술도 계집질도 아무런 감흥이 되지 못했다. 이 세상 그 무엇이 목숨을 건 투쟁만큼 격렬하고 자극적일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수록 행동이 과격해지고 상식을 벗어나게 된 것도 그러한 까닭이었다.
통각이 마비된 것 같은 답답한 삶을 그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숨 쉬는 시체가 된 것 같은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전쟁이 될 지도 몰랐다.
이제 승리의 영광도, 부귀영화도 롬펠 대공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인간군상이 원해 마지않는 모든 것들을 일평생 누려왔던 그였으니까.
‘이래서 잘 사는 귀족집안에 망나니 자식들이 많은 게로군.’
돈이 많아 못해본 게 없으니 점점 미친 짓을 해대는 것이리라. 그런 걸 생각하면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평민 집안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행운이다 싶었다.
상식을 넘어선 괴력과 재능을 타고난 그는 설사 노예로 태어났어도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아무튼 가난한 평민으로 태어난 덕에 3, 40대에 출세하고서는 늦게 배운 도둑질이라고 젊을 때 못해본 술과 계집질에 미쳐 살기도 했었다. 금방 싫증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추억들이었다.
‘이제 내 인생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축제로군.’
롬펠 대공은 클클 웃으며 이 싸움을 어떻게 해나갈지 구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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