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5 회: 경영의 대가 18권 -->
마침내 리간드 영지는 결전의 순간을 맞이했다.
7만이나 되는 혼트 제국군의 어마어마한 군세가 이 작은 영지를 치기 위해 해일처럼 밀려든 것이다.
리간드 영지의 순박한 토착 영지민들로서는 억울해서 펄쩍 뛸 노릇이었다.
크고 부유한 영지였다면 모를까, 리간드 영지는 옛날부터 작고 가난해서 담당 왕실 관리(제론 데커드)마저 야반도주를 시도했을 정도로 열악한 동네였다.
이제야 위대한 레던의 현자님을 영주로 만나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잘 살아보나 싶었다.
그랬더니 날강도 같은 혼트 제국군 놈들이 또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엄청난 대군을 끌고 몰려든단 말인가. 7만이라니? 이 영지에 사는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 아닌가.
하지만 화가 날지언정 공포에 떨지는 않았다.
이미 이런 일을 예견한 영주대리 베일의 지휘 하에 오래 전부터 방비를 해왔던 리간드 영지였다.
이미 예상하고 대비해온 일이 벌어진 것뿐이니 영지민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위대한 영주 카록 리간드가 행한 일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영지민들을 흔들리지 않게 했다.
‘그런 맹신을 하기에는 어려운 싸움이 될 테지만…….’
영주대리 베일로서는 민심이 흔들리지 않고 잘 따라주니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영지민들이 추앙하는 카록 리간드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싸움이었다.
총지휘관은 명성 높은 무인인 바스크 쿤트 백작이나, 바스크를 포함하여 모두들 이번 방어 전략을 구상한 베일의 책략가로서의 자질을 인정하고 따르고 있었다. 때문에 사실상 지휘관은 베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스크 쿤트와 릭 페르난도.
두 사람의 오러 마스터라는 강력한 카드를 쥐고 있었지만, 불행히도 상대는 롬펠 대공. 그 많은 혼트 제국군의 인재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롬펠 대공이었다.
오러 마스터 부자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는 늙은 괴물! 압도적인 무력을 이용한 유격전에서도 결코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러한 강적을 앞둔 두 부자는…….
“드디어 나타났군, 그 노망난 늙은이.”
바스크는 이를 갈았다.
“2대 1 같은 걸 할까보냐?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아버지는 뒤로 빠지십쇼.”
릭의 말에 바스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애비는 약해빠진 자식을 벼랑에서 굴러 떨어뜨릴 정도로 모진 부모가 아니다.”
“부모 된 사람이 자식의 재능도 알아보지 못하다니, 자식에게 추월당했다는 사실을 인정 못하시는 겁니까?”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도 나오는구나. 누굴 닮아서 저럴까, 쯧쯧쯧.”
“사실 저도 제 혈통이 의심됩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 주워온 자식 아닙니까? 아버지 같은 범재의 혈통에서 저 같은 천재가 나왔을 리가 없잖습니까?”
“부모가 누군지도 까먹을 정도로 정신이 나갔나보구나. 그럴 땐 머리를 몇 대 쳐줘야 고쳐진다더구나.”
바스크와 릭은 대련을 시작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대련이라 충격파가 어지럽게 난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수 검술만으로도 충분히 두 사람의 대련은 치열했다.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하군.”
리처드 벅이 중얼거렸다.
“무인이라면 저걸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하딘도 맞장구쳤다.
“전 무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히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많이 됩니다. 분명히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수준의 대련이겠지요?”
영지의 경비대장인 딘이 물었다.
혼트 제국의 군인과 용병생활을 두루 거치다가 카록에게 등용된 바 있었던 딘은 정식으로 무예를 배운 바가 없었다.
용병 시절에 카록에게 고용되었다가 크게 한 탕을 한 덕에 큰돈을 내고 오러 브레싱을 익힐 수가 있었다. 그 투자는 큰 효과를 거두었다. 오랜 부하이자 지금은 영지경비대 부대장인 렉스와 함께 오러 유저가 된 것이다.
리처드 벅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오러 엑스퍼트가 되면 그 진가를 알게 될 테니 똑똑히 보고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요.”
“오러 엑스퍼트라니, 제게는 꿈도 꾸지 못할 경지입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히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지요.”
“저 110살 먹은 괴물 대공도 본래는 일반 병사였다고 했소. 전장에서 수없이 뒹굴었던 경험과 뒤늦게 배운 무예가 시너지를 이뤄서 지금의 경지를 터득했지. 딘 경이라고 못할 게 무어겠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군요. 이번 전쟁이 끝나고 기회가 된다면 저도 정식으로 검술을 배워봐야겠습니다.”
“나라도 괜찮다면 기꺼이 검술을 가르쳐줄 용의가 있소만.”
“정말이십니까?”
“피차 리간드 후작님의 말발에 넘어간 동지로서 그 정도도 못해주겠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찾아오시오.”
그 말에 딘은 하하 웃었다.
리처드 벅도 딘과 마찬가지로 용병 출신이었다. 솜씨 좋은 특급 용병으로서 벌어들인 돈을 술집에 쏟아 부으며 살다가 카록에게 설득당해 쿤트 백작가의 가신이 된 케이스였다.
카록으로서는 리처드 벅이 아버지 바스크 쿤트의 호적수였던 전생 시절의 일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지만, 그로서는 오러 마스터의 가신이 될 기회를 준 카록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하딘도 마찬가지였고, 영주대리 베일이나 천재 건축가 파오니 남작, 그리고 콘돌 기병대의 대장 패트릭도 카록의 선택을 받은 인재들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인물들의 면면을 훑어본 리처드 벅은 나직이 휘파람을 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하마터면 이런 자리에 끼지 못하고 술집에서 인생을 낭비할 뻔했군.’
역사의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이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영광스러운 리처드 벅이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들만 모인 자신들이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나저나 계획대로 롬펠 대공은 왔는데, 정작 콘돌 기병대는 돌아오지 않는군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하딘의 말에 리처드와 딘도 덩달아 콘돌 기병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군. 롬펠 대공의 군단이 저렇게 우리 앞마당에 진을 치고 있으니 이쪽으로 돌아오기는 힘들 것 같은데.”
“롬펠 대공이 이렇게 빨리 진격해온 것을 보면, 확실히 콘돌 기병대가 활약을 해서 혼트 제국군을 제대로 자극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쪽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군량 보급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 걱정이군요.”
“흐음, 돌아올 수 있도록 이쪽에서 움직여서 틈을 만들어줘야 하나?”
리처드의 의견에 딘은 고개를 저었다.
“적군의 병력 배치를 보아하니 작정을 하고 모든 길목을 차단한 상태였습니다. 그게 가능할지는…….”
“우리가 고민해봐야 소용없을 듯합니다. 대책은 베일 경에게 맡기는 수밖에요.”
하딘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건 그렇군.”
“우리는 베일 경의 생각대로 따르면 그만이지요.”
그런데 그때였다.
“믿고 협조해주시는 마음은 감사하나 좀 더 의견을 피력하는데 적극적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반대편에서 두 부자의 대련을 구경하던 베일이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리처드가 반갑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여어, 산적 두목. 콘돌 기병대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이라도 있소?”
그 짓궂은 인사에 베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산적 두목으로서 짧은 소견을 내자면, 콘돌 기병대는 패트릭 콘돌 경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는 것 외에 다른 대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책이 필요 없다고요?”
딘이 놀라서 물었다.
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예정되었던 작전이 좀 많이 앞당겨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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