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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64화 (464/529)

<-- 464 회: 경영의 대가 18권 -->

패트릭은 대원들과 함께 보급부대의 야영지로 다가갔다. 경계를 풀고 다시 마음이 느슨해진 혼트 제국군과 달리, 패트릭과 대원들은 싸우기 직전의 맹수처럼 눈빛이 사나워지고 있었다.

‘아직…… 조금만 더!’

패트릭은 아직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대원들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가슴을 억눌러야 했다.

혼트 제국군 병사들은 설치한 천막에서 세상모르게 편히 쉬고 있었다. 그들은 콘돌 기병대가 이곳에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는 듯 경계심이 전혀 없었다.

패트릭은 좀 더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자칼 남작님의 명령으로 왔다고 했나?”

보급부대의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의 장교가 걸어왔다.

“예.”

패트릭이 대답했다.

중년 장교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례한 놈, 상관을 봤는데 말에서 내리지도 않나? 하여간 기병대 놈들은 하나같이 버르장머리가 없어. 그게 다 강도질 하던 유목민족들로…….”

촤악!

순식간이었다.

패트릭은 바스타드 소드를 등의 검집에서 뽑아 단숨에 휘둘렀다. 중년 장교의 잘린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너무나 신속해서 그 누구도 한참동안 반응하지 못하고 영문을 몰라 했다.

“쳐라!”

패트릭의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를 꺼내는 대원들.

대원들이 무방비로 주변에 있던 적병을 마구 베어 넘길 때에야 비로소 혼트 제국군은 상황을 이해했다.

“저, 적이다!”

“적군이…… 크악!”

조용했던 밤의 야영장에 한바탕 살육이 벌어졌다.

“불태워라!”

패트릭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제각기 하나씩 들고 있던 횃불을 천막이나 짐마차에 던졌다. 100명의 대원 전원이 하나씩 들고 있었기 때문에 야영장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이랴!”

패트릭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달렸다. 오러를 머금은 바스타드 소드가 혼트 제국군 병사를 무기나 갑옷을 통째로 절삭했다. 누구도 압도적으로 강한 패트릭에게 대적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천막 안에서 잠들어 있던 병사들은 허겁지겁 무기를 간신히 챙겨들고 뛰쳐나왔다. 그러지 못한 병사들은 불타 주저앉은 천막과 함께 죽었다.

100명의 대원들은 야영지를 말 타고 누비며 베고 짓밟았다. 솜씨 좋게 말을 몰며 돌팔매질을 할 때마다 퍽, 소리와 함께 적병이 즉사했다.

대장을 먼저 처치한 덕에 보급부대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도륙 당했다. 결정적인 순간까지 참았던 패트릭의 판단력이 빛을 발한 전투였다.

“제기랄, 도망쳐!”

“식량은 포기해!”

혼트 제국군이 후퇴, 아니 도주를 선택했다. 병사들은 질서 없이 뿔뿔이 흩어져 야영지를 탈출했다. 패트릭과 대원들은 대항하는 병사만 도륙하면서 도망치는 자들은 쫓지 않고 놔두었다.

한밤에 불길이 시뻘겋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서도 확연히 볼 수 있는 확연한 불길이.

***

자칼 남작이 이변을 감지한 것은 14천인대로부터 온 보고였다.

백인대 규모의 정체불명의 무리가 남하하는 것을 보았는데, 14천인대 소속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런데 14천인대는 백인대를 따로 보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적의 위장인지, 아니면 다른 천인대 소속인데 잘못 들은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효시로 신호하지 않고 직접 구두 보고를 해온 것이다.

자칼 남작은 곧바로 그것이 콘돌 기병대임을 알아차렸다.

고작해야 백인대 규모라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은밀하게 움직이려면 규모가 작을수록 좋은 법이었다.

게다가 혼트 제국군의 군복을 입고 위장했다면 더욱 노림수가 확실했다.

병력이 적은 대신, 같은 군복으로 속여서 크게 허를 찌르겠다는 계략인 것이다.

그것이 통한다면 몇 배의 적을 상대도 간단하게 이길 수 있다.

‘백인대 규모의 병력으로 놈들이 노릴 만한 타깃이라면…… 보급부대구나!’

자칼 남작은 이번에 콘돌 기병대를 잡기 위해 천인대 한두 개쯤은 더 미끼로 내줄 생각이었다.

놈들을 오갈 데 없게 고립시켜서 소탕할 수만 있다면, 천여 명 정도 병력의 희생이 있어도 남는 장사이니까.

하지만 보급부대는 달랐다. 이번 보급부대가 싣고 가는 식량은 상당히 많았다. 그 정도로 큰 희생을 미끼로 줄 예정은 전혀 없었던 자칼 남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머릿수가 워낙 많은 혼트 제국군에게 식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것이다.

‘보급부대가 당해버리면 큰일인데!’

경각심이 들었다.

보급부대가 당해서 식량 보급에 차질이 생기면 카이슨 후작이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번 전쟁에서 아군의 보급로 구축을 전담한 카이슨 후작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번에야말로 질책을 받을지도 몰랐다.

자칼 남작은 급히 병사를 시켜 말했다.

“14천인대에게 지금 즉시 보급부대를 보호하라고 해라! 최대한 빨리!”

“옛!”

병사는 급히 달려갔다.

‘제기랄, 역시 그냥 당하고 있지를 않는군!’

마음 같아서는 자칼 남작이 직접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콘돌 기병대의 본 병력을 쫓아야 했다. 고작 백 명 때문에 몰이사냥을 하고 있는 지금의 병력배치를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콘돌 기병대 본대는 한밤에도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었다. 도망을 다니며 혼트 제국군의 이목을 끌려는 명백한 의도였다. 덕분에 자칼 남작 또한 병사를 쉬게 하지 못하고 쫓아야 했다.

“하지만 급할 것은 없다.”

급한 쪽은 보급부대를 지키는 일.

그러나 콘돌 기병대를 잡는 것 자체는 다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갈 길을 모두 막아놓았으니, 따돌려지지 않는 선에서 뒤를 밟으며 놈들이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면 된다.

식량을 얻지 못한 놈들은 결국 먼저 싸움을 걸어올 것이다. 아직 싸울 여력이 있을 때 발악이라도 해보려 할 것이다. 그때가 놈들의 최후다.

‘그래도 보급부대는 지켰으면 좋겠군.’

이미 한 번 패전을 치렀던 터라 또 흠 잡힐 경력을 쌓고 싶지가 않은 자칼 남작이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동이 터 오르기 시작할 무렵에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보급부대를 구원하러 갔던 14천인대가 보급부대의 패퇴를 보고한 것이다.

당연히 식량은 남김없이 불태워진 뒤였다.

전투 현장에서 도망쳤던 병사의 말에 의하면, 적은 100명 내외였으며 그들의 지휘관은 상당히 강력한 오러 엑스퍼트였다고 했다.

‘패트릭 콘돌이 직접!’

이쯤 되면 자칼 남작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대장인 자신이 직접 소수의 병력을 데리고 위험한 작전에 돌입하다니. 실로 대범한 자가 아닌가!

자칼 남작은 자신이 어지간히도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레던 왕국의 귀족들 중에 전쟁에 관한 한 실전경험이 있는 자들은 극히 드물었고, 자신 같은 유목민족들을 상대로는 더욱 그러했다. 적당한 상대를 만났더라면 보다 손쉽게 승리를 얻어내 출세에 충분한 전공을 쌓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자신에게 열린 기회의 장(場)에서 만난 상대가 패트릭 콘돌이며 같은 유목민족 전사들로 구성된 콘돌 기병대란 말인가?

“큭, 정말 운도 더럽게 없군.”

어둠을 가르며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보며 자칼 남작은 나직이 실소를 했다.

이제 이 사실을 카이슨 후작에게 보고하고 처분을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이제 콘돌 기병대를 거의 다 잡았는데, 궁지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는데.’

이제 와서 임무수행을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이번 작전에서 물러나게 된다면 어지간히도 원통한 일이 될 터였다.

***

자칼 남작의 보고서가 카이슨 후작에게 전달되었다.

‘자칼 남작을 기용한 것이 실수였나?’

보급부대가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던 카이슨 후작은 자칼 남작의 보고서가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읽었다. 그는 이미 자칼 남작을 징계하고 다른 지휘관에게 임무를 맡길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적어도 자칼 남작이 눈치 빠른 인물임은 확실해보였다. 보고서는 카이슨 후작의 취향에 알맞게 과장도 축소도 없이 객관적이고 상세했다. 본래 무능한 책임자일수록 보기에 좋은 간단한 보고서를 원하고, 실무에 능한 책임자일수록 자세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찾는 법이었다.

보고서를 슥 읽어본 카이슨 후작은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자칼 남작은 대응을 잘 했군.”

사람을 잘못 보고 기용한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번 경과는 자칼 남작의 실책보다는, 적장의 활약이 워낙 대단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대장 자신이 기병 100기만 이끌고 군복을 훔쳐 위장한 채 깊숙이 침투해 보급부대를 타격했다. 경이로운 활약이군.’

자칼 남작이 아닌 다른 지휘관이었으면 피해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카이슨 후작은 고위 장교들을 불러 모아 작전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결정을 내렸다.

“리간드 영지는 롬펠 대공 전하께서 맡으실 것이다. 4인의 제후는 우리가 먼저 움직이지 않는 한 특별히 어떤 시도를 해오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아군의 보급로를 구축해야 하는 우리의 임무에 방해될 요인은 콘돌 기병대밖에 없다는 뜻이다.”

카이슨 후작의 말이 이어졌다.

“따라서 기병 5천을 추가로 보내 자칼 남작에게 콘돌 기병대의 격퇴를 명한다. 그리로 콘돌 기병대가 이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안에는 군수물자의 육로 운반을 중단하고 화물선을 이용하도록 하겠다.”

“옛!”

처벌은커녕 도리어 기병 5천을 더 지원한 카이슨 후작의 결정에 자칼 남작이 감격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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