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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칼 남작은 일단 신호체계부터 재정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열 명의 천인장을 모두 불러 모아 수정된 전략을 하달했다.
“11, 13, 14, 15, 16천인대는 제각기 할당된 구역을 책임지고 순찰활동을 펼쳐라. 지금과 마찬가지로 십인대단위로 행동하되, 백인대 단위의 적이 출현했을 시에는 이를 격퇴하도록.”
“옛!”
“단, 각 천인대가 감당할 수 없는 다수 병력 출몰시 대적하지 말고 신호로 나에게 알려라. 효시 1발은 소수의 적 출현, 효시 2발은 다수의 적 출현이다.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소수의 적이 출현하거든 놈들이 구사하는 포위섬멸 전술을 똑같이 써먹어서 반드시 타격을 가하도록 해라.”
5개 천인대가 각자의 할당 구역으로 출진했다.
자칼 남작은 나머지 5천 병력으로 군수물자를 계속 운반하는 보급부대를 보호하는 한편, 콘돌 기병대의 전력이 등장했을 시 즉시 출격해 응징하기로 했다.
그러한 자칼 남작의 대응은 효과를 거두었다.
신나게 다니며 혼트 제국군의 십인대를 사냥하던 콘돌 기병대 1연대 10백인대는 돌연히 나타난 5백여 명이 넘는 군세에 당황했다.
“후퇴!”
10백인장은 즉각 도주를 택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흩어져 정찰하던 혼트 제국군의 십인대가 사방에서 벌떼처럼 모여들어 퇴로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완전히 그물망에 걸린 셈이었다.
상황이 절망적임을 깨달은 10백인장은 이를 악물며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어서 백인장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다음 생에서는 더 훌륭한 상관을 만나도록 해라!”
“아닙니다!”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죽을 때까지 싸울 수 있다면 여한이 없습니다!”
대원들이 악을 쓰고 소리쳤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은 정예 콘돌 기병대의 대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참아가며 싸울 수 있도록 훈련이 되었다.
“우리의 목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서 돌아가 대장님께 보고하는 것이다! 마지막 명령이다! 자포자기는 하지 마라! 최후까지 살기 위해 싸워라!”
“옛―!”
“돌격!”
1연대 10백인대는 적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돌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상대인 혼트 제국군 기병들 또한 유목민족 전사 출신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화살을 쏘고 돌팔매질을 하며 괴롭혔다.
그러나 10백인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똑바로 전력 질주할 따름이었다. 이는 마치 얼마 전에 자칼 남작이 콘돌 기병대에게 쫓겼던 때와 비슷한 양상이었다. 사실 10백인장이 그때의 자칼 남작을 본받아 내린 판단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0백인장은 그때의 자칼 남작처럼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혼트 제국군은 분노의 공세로 집요하게 10백인대를 사살했고, 결국 10백인장도 화살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그나마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에 14명의 대원이 살아 돌아가 1차 집결지에 있던 패트릭에게 이 사실을 보고할 수 있었다.
“1연대 10백인대가 당했다고?”
“예, 대장님.”
살아남은 대원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가족 같은 전우들을 잃고 자신들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10백인장의 마지막 명령을 완수했다는 성취감과 교차했다.
‘자칼 남작…… 역시 예사 놈이 아니구나. 이렇게 대응이 빠를 줄이야.’
패트릭은 대원들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워주었다.
“수고 많았다. 살아남아주어서 고맙다.”
“크흐흑, 대장님……!”
대원들은 억눌렀던 울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다른 대원들조차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대원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한 패트릭은 홀로 중얼거렸다.
“주고받았다. 이제 다시 우리가 줄 차례로군.”
다음날, 패트릭은 발락이 제안했던 작전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에게서 획득한 효시로 거짓신호를 내는 것이었다.
제각기 활동하던 백인대를 불러들인 후, 4천에 달하는 콘돌 기병대 전 병력을 이끌고 출진했다.
안타레스 영지에 진입하자 1, 2, 3연대를 동·서·남서쪽에 배치시켰다. 패트릭은 자신은 직속인 4연대를 이끌고 진격했다.
“신호를 발사해라.”
“옛!”
대원 한 명이 효시를 발사했다.
삐이이익―
널리 퍼져 나가는 효시의 울음소리. 그러자,
삐이익―
남쪽 방향에서 효시 소리가 들려왔다. 혼트 제국군의 순찰병들이 아군이 보낸 신호인 줄 알고 반응한 것이었다.
이윽고 혼트 제국군의 기병대가 나타났다. 병력 규모는 어림잡아 1천여 명. 역시 빠른 대응이었다.
가시거리에 적이 나타나자 패트릭은 더는 망설일 필요는 못 느꼈다.
“공격!”
“와아아아―!”
패트릭이 앞장서서 달렸고 그 뒤를 4연대가 맹렬하게 따랐다.
그제야 속았음을 깨달았는지 혼트 제국군 측이 움찔했다. 백인대 규모의 적이 출현한 줄 알고 사냥하러 왔는데 콘돌 기병대 전 병력이 등장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내 말머리를 돌려서 후퇴하려는 듯했지만 때는 늦었다. 세 방향에서 1, 2, 3연대가 출현한 것이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어제 죽은 전우들의 복수다!”
단숨에 적을 포위한 콘돌 기병대.
혼트 제국군은 퇴각을 포기하고 싸우기로 했다.
“효시 2발! 효시 2발을 발사해라!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혼트 제국군의 천인장이 소리쳤다. 그러자 기병 둘이 효시를 일제히 발사했다.
삐이익― 삐익―
효시 2발이 동시에 올라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다수의 적 출현을 알리는 신호였다.
콘돌 기병대가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혼트 제국군 측은 결전을 각오하며 다시 한 번 효시 2발을 쏘아 올렸다. 패트릭도 그것을 보았다.
‘2발? 저건 새로이 정한 신호인 모양이군.’
이제 적의 효시 신호를 역이용했으니, 자칼 남작도 바보가 아닌 이상 신호체계를 다시 변경할 가능성이 높았다.
‘신호체계를 바꾸기 전에 오늘 최대한 많은 효과를 거두어야겠구나.’
이 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사냥하기로 결심한 패트릭이었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콘돌 기병대는 직접 맞부딪치지 않고 주위를 맴돌며 돌팔매질을 하거나 멀리서 화살을 쏘았다. 아군의 피해 없이 적에게 타격을 가하며 전력을 손실시키는 전술이었다.
혼트 제국군 측 역시 대다수가 유목민족 출신이었기에 똑같이 대응했지만, 이러한 유목민족 특유의 전술은 병력의 기동에 제한이 없어야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포위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혼트 제국군 측보다는 상대를 에워싼 채 이리떼처럼 주위를 맴도는 콘돌 기병대가 월등히 유리했다.
궁시도 콘돌 기병대가 월등히 유리했다.
포위되어 밀집한 적에게 일제히 집중사격을 하니, 화살이 쏟아질 때마다 적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적을 전멸시킬 수 있을 터.
하지만 패트릭은 생각을 달리 했다.
‘우리는 시간이 촉박하다. 겨우 1천 명만 잡고 끝낼 수야 없지.’
혼트 제국군이 어느 정도 힘이 빠졌다 싶을 때쯤, 패트릭은 4연대와 함께 앞으로 나섰다.
“4연대, 돌격하라!”
“오오오오!”
패트릭과 4연대가 일제히 돌진했다.
1, 2, 3연대는 4연대가 빠진 틈을 매우며 더욱 포위망을 옥죄었다. 사방에서 공격받아 정신없는 혼트 제국군은 패트릭의 돌격을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콰지지직―
“으아악!”
“큭!”
패트릭은 오러가 실린 바스타드 소드를 크게 휘둘러 두 명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선두에 선 패트릭에 의해 적의 진열이 무너지자 뒤 이은 4연대는 해일처럼 무너진 방파제가 된 혼트 제국군을 습격했다.
아비규환의 난장판이 펼쳐졌다.
패트릭과 4연대가 돌파해와 진형 깊숙이까지 침투하고 사방에서는 1, 2, 3연대가 포위망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혼트 제국군은 순식간에 전멸했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패트릭은 전 대원에게 지시했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이동한다!”
콘돌 기병대는 쉴 틈 없이 동쪽으로 말머리를 틀었다. 또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