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458화 (458/529)

<-- 458 회: 경영의 대가 18권 -->

“호오, 그런 놈들이 있었단 말이지?”

롬펠 대공은 호기심을 보였다.

카이슨 후작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루 만에 2개 순찰대가 당하고 보급부대가 괴멸했습니다. 조사를 보낸 기병대까지 패퇴 당했지요.”

“대단한 기동력이군. 손 써볼 틈도 없이 일을 해치우고 빠져나가버렸어.”

“카록 리간드가 키운 특별 전력입니다. 패트릭 콘돌이라는 젊은 기사가 창설부터 훈련까지 도맡았다더군요.”

“이만한 활약을 할 정도의 기병대를 훈련시켰다면 패트릭 콘돌이라는 젊은 친구도 대단하군.”

“예.”

“카록 리간드의 주변에는 인재가 많군. 역시 레던의 현자라는 건가. 외교, 정치, 인사 등 다방면에서 고루고루 전쟁 준비를 아주 철저히 했어.”

“감탄만 하실 때가 아닙니다. 놈들은 대공 전하를 부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놈들?”

“리간드 영지에 있는 적군 말입니다. 콘돌 기병대가 여기까지 내려와 기습을 해온 것도 일부러 우리를 자극하는 것이지요. 쿤트 가문이 란즈헬 백작가와 사돈지간이니 돕는 의미도 있고 말이지요.”

“그렇군. 하긴, 내 몫인 바스크 쿤트 백작과 릭 페르난도 백작도 그쪽에 있긴 하지.”

롬펠 대공은 흐흐 웃었다.

아마 그 오러 마스터 부자는 카록 리간드를 통해 자신이 한 말을 들었을 것이다. 화가 나서 이를 부득부득 갈며 싸울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

롬펠 대공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나이 110세.

아무리 건재하다 해도 결국 사람에게 주어진 수명이란 게 있는 법이었다.

‘앞으로 또 언제 치열하게 목숨 걸고 싸울 기회가 내게 주어질 것이란 말이냐.’

아직 노쇠해지지 않았을 때, 온전한 100%를 전부 발휘할 수 있을 때, 강력한 무인과 겨루고 싶었다. 바스크 쿤트와 릭 페르난도 부자는 아주 좋은 적수가 되어줄 것이다.

“부르면 가봐야지. 어차피 폐하로부터 받은 임무도 있었으니까.”

롬펠 대공에게 주어진 임무는 바덴 강 유역에서 북상하여 북부에서 남하하는 황제와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 북상 진로에 리간드 영지가 있었다. 리간드 영지의 적과 싸우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래. 모든 것이 예정된 수순이지.’

롬펠 대공은 언젠가 황제가 했던 질문을 떠올렸다.

“그대의 무위에 경외를 표하는 의미에서, 한 가지 선택권을 주겠다.”

“어떤 선택권입니까?”

“뮤트 공작. 카록 리간드 백작. 쿤트 부자. 골라라. 셋 중 어느 쪽과 싸우고 싶은지.”

“싸우고 싶은 상대와 정말 싸우게 해주시는 겁니까?”

“그리 될 것이다.”

단언하는 황제를 보며 롬펠 대공은 가슴이 설레었다.

롬펠 대공은 쿤트 부자를 선택했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전쟁은 완벽하게 황제가 계획한 장대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무인으로서의 욕망과 별개로, 군인으로서의 롬펠 대공은 황제가 가는 길의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110년을 살며 수많은 황제를 섬겼던 롬펠 대공이었지만, 이번처럼 대륙정복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심어주는 황제는 없었다.

최대 전성기였던 이사벨라 여왕 시절에도 이루지 못했지만, 카르스 황제라면 해낼 것 같다는 신비한 믿음이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했다.

‘가장 위대한 정복자의 탄생이냐, 쓸쓸한 비극이냐, 궁금해지는군.’

그리고 무인이나 군인과는 상반되는, 대륙에서 가장 오래 산 노인으로서의 롬펠 대공은 행복한 결말을 원하고 있었다.

불행한 젊은 황제에게 더 이상의 비극은 없었으면 했다.

출정을 떠나기 직전, 피로를 느껴 잠시 복도 계단에 앉아 쉬다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 베잘리우스 대공의 요절처럼 슬픈 마지막은 되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의 절반도 살지 못한 젊은이에게 그런 결말은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리간드 영지를 치겠다. 이쪽은 혼자 맡아도 괜찮겠느냐?”

“문제없습니다. 그게 제가 맡은 역할이고, 어차피 네 가문의 연합군도 방어에만 집중할 뿐 적극적으로 움직이진 않으니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카이슨 후작이 답했다.

카이슨 후작에게 주어진 임무는 공식적으로 바덴 강 유역 공략.

하지만 실제로 카르스 황제가 부여한 역할은 바로 란즈헬 백작가 등 바덴 강의 네 가문을 붙잡아두고, 동시에 보급로를 유지 관리하는 역할이었다.

대륙 정복에 나선 혼트 제국군 전군의 군수물자 보급을 책임지는 후방사령관의 역할은 분명 카이슨 후작의 꼼꼼한 성격에 잘 어울리는 임무였다.

“대공 전하야말로 조심하십시오. 리간드 영지는 험한 지형에 오러 마스터까지 둘이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불 보듯이 뻔합니다.”

방어일변도에 허를 찌르는 게릴라를 병행하는, 가장 골치 아픈 유형의 전투가 벌어질 터였다.

군인 경력 90년의 롬펠 대공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걱정마라. 엉망진창의 진흙탕 싸움이라면 이 노인네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다.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기든 나만큼은 아닐 테니까! 크하하!”

롬펠 대공은 간단히 작별을 고하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2미터 거인의 뒷모습을 보며, 카이슨 후작은 도저히 저 괴물 대공이 패배할 경우를 상상할 수 없었다. 혼트 제국에 있어 롬펠 대공이란 인물은 그런 존재였다.

***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상대로 아군의 병력을 분산하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일이다.

병법의 기본은 다수의 아군으로 소수의 적군을 물리치는 것. 더 나아가, 집중된 아군의 병력으로 분산된 적을 각개격파 하는 것이다.

다수로 소수를 공격하는 기본원칙은 전투 시의 전술과 용병술에도 적용된다. 다수의 아군으로 소수의 적을 공격하는 구도를 만들어낼수록 전투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소수의 병력으로 훨씬 많은 적을 물리치며 연전연승을 거두었던 베잘리우스 대공 또한 모든 아군 병력이 일시에 공격력을 집중시킬 수 있도록 용병술을 구사했다.

기병이라는 병과(兵科)의 장점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기동력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적과 싸울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 유리한 싸움을 고를 수 있는 특권적인 병과인 것이다.

그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 콘돌 기병대였다.

순찰대나 보급부대, 그리고 자칼 남작의 기병대 2천 명 등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의 적을 습격해 순식간에 몰살시켰다. 그런 피해가 누적되면 아무리 대군인 혼트 제국군이라도 큰 타격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카이슨 후작 군단은 기마전의 스페셜리스트가 나섰다.

‘놈들은 아마 이곳 안타레스 영지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1만 기병을 끌고 나온 자칼 남작은 콘돌 기병대를 잡기 위해 신중하게 생각했다.

‘영지 밖으로 벗어난 적을 추격해 붙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시무시했던 스피드를 떠올리며 자칼 남작은 혀를 찼다.

설령 놈들을 가시거리에서 발견한다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스피드로 꽁무니를 빼버리면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혼트 제국군 기병대는 그 정도로 기동훈련을 받지 않았다. 놈들이 전쟁 준비를 아주 잘 했어.’

대부분이 유목민족 전사들인 혼트 제국군의 기병대는 오만했다. 설마 유목민족인 자신들보다 빨리 달리는 적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레던 왕국에는 천천히 기어 다니는 느림보들만 있을 테니, 초원지대에서 노략질 하듯이 일방적인 전쟁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콘돌 기병대는 그 허를 찌른 특수전력이었다.

‘역시 레던의 현자로군.’

유목민족 유민들을 받아들여서 그런 기병대를 만든 카록 리간드 후작의 선견지명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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