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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57화 (457/529)

<-- 457 회: 경영의 대가 18권 -->

‘좋았어!’

자칼 남작은 쾌재를 불렀다.

바로 이거였다.

젊은 시절, 그는 말을 타고 달리며 화살을 기막히게 쏘는 전사였다. 누구도 그보다 화살을 잘 쏘지 못했다. 그가 부족 내 최고의 전사였던 비결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하나, 화살 하나로 백인대를 격퇴한 것은 그로서도 인생 최고의 무훈(武勳)이었다. 기적처럼 적의 지휘관을 파악하고 달리는 말 위에서 쏴 맞췄다. 행운 없이는 해낼 수 없는 활약이었다.

“이놈!”

화가 난 패트릭은 말에 오러를 주입했다.

오늘만 싸울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오러를 최대한 아끼고 싶었지만, 방금 전의 적장의 신기 어린 솜씨를 보니 살려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 것이었다.

갑자기 거리가 좁혀지자 자칼 남작은 당황했다.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 빨리 달리는 거지?’

불가사의했다. 유목민족으로 태어나 말 위에서 평생을 산 자칼 남작은 갑자기 빨라진 패트릭의 속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오러를 사용한 어떤 수법인가?’

저런 속도로 달릴 수 있었으면 애당초 처음부터 저렇게 빨리 달렸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스피드가 올라간 정도라면, 말 그대로 일시적인 기술이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목숨이 정말로 경각에 달렸으니 말이다.

바짝 거리가 좁혀진다.

패트릭이 바스타드 소드를 들어올렸다. 자칼 남작을 세로로 두 쪽을 낼 기세였다.

따가운 살기를 등으로 느끼며 자칼 남작은 한 가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빌어먹을, 신이여!’

바스타드 소드가 휘둘러지는 동시에, 자칼 남작은 말에서 뛰어내렸다.

바스타드 소드는 허공을 갈랐다.

그의 인생에서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본 적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다리가 부러졌고, 또 한 번은 타박상에 그쳤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크윽!”

자칼 남작은 몸을 웅크린 채 땅을 뒹굴었다. 살이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뒤따랐다. 하지만 다행히 골절상은 없는 듯했다.

낙마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죽는 경우도 흔한 점을 감안하면, 자칼 남작은 정말 초인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패트릭이 달리던 것을 멈추고, 말머리를 돌렸다. 패트릭은 기필코 자칼 남작을 죽일 각오였다.

돌아와 달려오는 저 사신 같은 젊은 적장을 보며, 자칼 남작은 맞서 싸워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부질없다.

살겠다고 그토록 버둥거렸는데…….

이제 죽는 일만 남았다.

“자칼 남작님―!”

뒤에서 들리는 병사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면, 악과 끈기의 자칼 남작도 모두 체념할 뻔했다.

뒤를 돌아보니 말을 타고 달려오는 병사가 손을 뻗고 있었다. 자칼 남작도 손을 뻗었다.

손이 마주 잡혔다.

병사는 그를 힘껏 끌어올렸다. 자칼 남작은 사뿐히 병사의 뒤에 올라탔다.

패트릭이 득달같이 덤벼들었으나 병사는 잽싸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아났다.

간발의 차이로 구사일생한 자칼 남작이었다.

“서라!”

뒤에서 들리는 호통 소리. 돌아보니 저 지긋지긋한 놈이 쫓아오고 있었다. 이쪽은 말 하나에 두 명이 탔다. 곧 따라잡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계속 달려라.”

“예.”

자칼 남작은 두 다리로 병사의 허리를 휘감아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양팔로 활과 화살을 꺼내들었다. 시위를 당겨 뒤쫓아 오는 패트릭을 조준했다.

이마 한 가운데를 정확히 조준한다.

그러나 패트릭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얼굴. 그깟 화살, 어디 한 번 쏴보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자칼 남작의 조준점이 살짝 아래로 내려갔다.

파앗―!

빠르게 날아간 화살이 말의 앞발을 스쳤다.

히히히힝!

요동치는 말 위에서 패트릭은 낙마하지 않기 위해 고삐를 움켜쥐며 버텨야 했다.

결국 주저앉는 말에서 내린 패트릭은 분한 얼굴로 자칼 남작을 노려보았다. 자칼 남작은 코웃음을 쳤다.

‘뭘 그렇게 보느냐, 개자식아.’

이렇게 처절하게 당했는데 그 정도 앙갚음은 새 발의 피 아니냐. 정말 분한 건 이쪽이다.

자칼 남작은 그대로 패주(敗走)하였다.

전투는 콘돌 기병대의 대승이었다.

***

한참동안 전력질주를 했던 탓에 콘돌 기병대는 지쳐 있었다. 오늘만 네 차례의 전투를 치른 그들이었다.

패트릭은 주저앉아 있는 자신의 말로 걸어갔다. 앞발을 다친 그의 애마는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고생이 많구나.”

패트릭은 품속에서 힐링 포션을 꺼냈다.

콘돌 기병대의 대원은 누구나 힐링 포션을 하나씩을 구비하고 있었다. 긴박한 때에 지친 말에게 먹이거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돈 많은 카록 상단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힐링 포션을 다친 앞발에 조금 부어주자 상처가 금세 아물었다.

“자, 게으름 피우지 말고 일어나.”

고삐를 잡아 끌자 말이 일어섰다.

그 위에 올라탈 때쯤, 콘돌 기병대 4천여 명 전원이 그의 앞에 집합했다.

“피해상황은?”

“1연대 없습니다.”

“2연대 7백인장 빅터가 죽었습니다.”

“3연대 없습니다.”

“4연대도 없습니다.”

1,2,3연대의 연대장들과 4연대의 1백인장이 보고했다. 패트릭은 2연대장 달탄에게 말했다.

“새로운 백인장을 임명하고, 죽은 7백인장 빅터의 시신을 그의 말에 태워 수습해라. 적당한 곳에서 묻어주고 간단히 장례하겠다.”

“예!”

“가자. 일단은 적의 추격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렇게 콘돌 기병대는 출발했다. 전장을 떠나면서 패트릭은 생각에 잠겼다.

‘자칼 남작이라고 했던가?’

혼트 제국군의 기병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을 떠올렸다. 분명히 유목민족 출신일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게다가 그 활솜씨라니.

그 정도 실력자라면 유목민족들 사이에서도 꽤 알려진 인물일 수 있겠다 싶었다.

“3연대장.”

“예, 대장님.”

3연대장 게덴이 부름을 받고 다가왔다.

3연대장 게덴은 2연대장 달탄과 마찬가지로 유목민족 일개 부족의 족장 출신이었다. 달탄과 함께 자기 부족민을 이끌고 리간드 가문에 투신한 콘돌 기병대의 주축 중 하나였다.

“혹시 자칼 남작이라는 자를 아나?”

“자칼? 혹시 미르텐 부족의 족장 자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건 모르지만 아무튼 적장은 자칼 남작이라 불리고 있었고, 뛰어난 유목민족 전사였다.”

“제가 알고 있는 자칼 족장이 맞다면 용맹하면서 신중하고 활솜씨가 귀신같은 자입니다.”

“2연대 7백인장이 놈의 화살을 맞아 죽었다. 말리는 말 위에서 화살 한 대로 7백인대를 격퇴하더군.”

“그럼 제가 알고 있는 미르텐 부족의 족장 자칼이 확실합니다. 그자가 이곳에 있었군요.”

“그자를 어떻게 생각하나?”

“직접 만나본 일은 없었으나, 실력만큼이나 상승심도 강한 인물이라 들었습니다. 전공을 세워 출세하고 싶어 할 테니 분명 또다시 전장에 나타날 테지요.”

“그렇군. 역시 오늘 죽이지 못한 게 아깝구나.”

다음에 또 마주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패트릭이었다.

***

천신만고 끝에 카이슨 후작 군단의 본영에 도착했을 때, 자칼 남작이 이끌고 있는 기병의 숫자는 700여 명에 불과했다.

간신이 목숨을 건진 뒤에도 계속해서 8, 9, 10백인대가 전방에서 나타나 화살을 퍼부은 탓에 피해가 막심했던 것.

휘하 병력을 절반도 못 건진 자칼 남작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카이슨 후작에게 이 사실을 보고해야 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패퇴했다는 말이로군.”

“예…….”

자칼 남작은 속이 탔다.

공을 세운 것은 아니나, 정황상 이 정도 피해는 불가피했다는 것을 사령관이 알아주길 바랐다.

사령관 카이슨 후작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유목민족 전사들로 구성된 기병대였다고 했나?”

“예.”

“기억나는군. 콘돌 기병대, 패트릭 콘돌.”

“콘돌 기병대…… 말입니까?”

“그게 오늘 네가 만난 적의 이름이다. 카록 리간드가 유목민족을 받아들여 기병대를 조직했다는 첩보는 전부터 들은 바 있었다. 지금은 리간드 영지에 주둔 중이었을 텐데, 여기까지 내려와서 우릴 공격했군.”

‘패트릭 콘돌!’

자칼 남작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젊은 적장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때, 카이슨 후작이 다시 질문했다.

“몇 명이 필요하나?”

“예?”

“놈들을 상대하려면 병력이 몇 명이나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게…….”

자칼 남작은 짧은 시간에 치열하게 두뇌회전을 했다. 그리고 답했다.

“5천이면 놈들에게 공격을 받아도 맞서 싸울 수 있지만, 놈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족히 3만 이상을 동원해 이 일대를 전부 통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저라면 놈들을 잡는데 기병 1만이면 충분합니다.”

그렇게 말한 자칼 남작은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처분을 기다렸다. 지고 돌아온 주제에 건방지다고 할지, 정말로 중임을 맡길지는 이제 카이슨 후작의 결정에 달렸다.

그런 자칼 남작을 보는 카이슨 후작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재미있는 놈이군.’

수년 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짐은 경험이 없는 애송이라서 군대를 통제할 능력이 못 되는데, 그대는 10만 대군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할 역량이 되나?”

“감히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애송이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10만 대군을 지휘할 줄 아느냐고 물으신다면, 예! 저는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카이슨 후작이 황제의 최측근 인물이 된 계기였다. 눈앞의 유목민족 족장 출신의 사내는 그날의 자신과 비슷하게 스스로를 어필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회를 달라고. 이렇게 끝나게 하지 말아달라고.

카이슨 후작이 말했다.

“다소 병력을 잃었으나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도 아군을 최대한 살려 돌아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자칼 남작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안색이 밝아져 있었다. 역시 사령관은 알아준 것이다.

“출신도 그렇고 기마전에 상당히 능한 전문가로 보이니 이번 일에 적임자로 보인다. 그래서 네게 기병 1만의 지휘권을 부여하겠다.”

“가, 감사합니다!”

“더 이상 오늘 같은 도발을 당하면 곤란하다. 특히 보급로에 피해를 입으면 더욱 안 좋지. 넌 콘돌 기병대를 처치하여 후환이 없도록 해라.”

“맡겨주십시오!”

자칼 남작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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