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4 회: 경영의 대가 18권 -->
‘대단한 무위를 가진 자가 있군. 이자가 대장일 것이다.’
시체들 중 깨끗하게 절단된 즉사체가 상당수 보였다. 오러 엑스퍼트 급의 무인에게 당한 증거였다.
강하고 용감하다.
앞장서서 돌진해 거의 혼자서 적진을 좌충우돌 헤집어놓았다. 단 한 명의 피해도 입지 않고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 대장의 활약 덕분이다.
‘내가 이 자리에 없었던 것이 다행이군.’
자칼 남작은 자신이 이런 군대의 기습을 받고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적은 강하고 위험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기병 한 명이 급히 다가와 말했다.
“남작님!”
“무슨 일이냐?”
“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적?!”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쪽은 아직 적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적은 빠른 기동력과 정탐으로 이쪽의 움직임을 다 파악하고 있다. 그런 적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면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전투 준비!”
자칼 남작은 급히 소리쳤다. 다급히 혼트 제국군이 진열을 정비하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적의 숫자는 몇이냐?”
“대략 2,3천으로 보였습니다만 확실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놈들은 우리와 동류다. 유목민족 출신이야. 불확실한 싸움을 하지 않지.”
그리고 먹잇감이 달아날 틈도 주지 않는다. 병력을 분산시켜서 퇴로를 차단했을 터.
자칼 남작의 예상은 옳았다. 곧이어 보고가 잇달아 날아든 것이다.
“서쪽 방향에서 적 출현! 숫자는 1천여!”
“동쪽 방향에서 적 출현! 숫자는 1천 명 내외였습니다!”
‘역시!’
퇴로를 다 차단했다.
여기서 도망치려 들다간 적병 한 명도 못 죽이고 맥없이 전멸당한 보급부대와 똑같은 꼴이 난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가만히 적을 기다릴 수도 없다. 삼면에서 덮친 적에게 협공당하는 끔찍한 섬멸전의 재물이 되고 만다.
자칼 남작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동쪽 방면의 적을 돌파하고 퇴각한다! 본영(本營)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릴 것이며, 낙오하거나 적에게 발목을 잡혀도 구해줄 수 없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뒤를 따라라. 알겠나?!”
“옛―!”
기병들이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출발한다! 망설일 틈이 없다!”
자칼 남작은 즉시 진군을 명했다.
이윽고 11, 12천인대가 최대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자칼 남작은 이를 악물었다.
‘무위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대담무쌍하군. 어떤 놈인지 적장의 얼굴을 보고 싶다.’
습격 현장에 다시 나타나 기습할 생각을 하다니! 적장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었다. 조만간 명성을 떨칠 인물과 맞닥뜨린 예감이 들었다.
‘어쩌면 이번 싸움이 명성을 떨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 재물이 되어줄 생각은 없다.’
***
패트릭이 세운 작전은 간단했다.
1연대와 4연대는 정면에서 공격하고, 2연대와 3연대가 양방향을 차단해 적으로 하여금 달아날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 삼면에서 포위 공격해 섬멸시키는 작전이었다.
바덴 강을 끼고 있는 지역이라 세 방향만 차단하면 달아날 길이 없는 것이었다.
적이 당황하여 갈팡질팡하면 콘돌 기병대로서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칼 남작은 적 출현을 감지한 즉시 움직였고, 그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대장님, 놈들이 동쪽으로 움직였습니다.”
1연대장 발락이 말했다.
“카이슨 후작 군단의 본영이 있는 방향이군.”
“예. 2연대를 돌파하고 곧장 퇴각을 택할 테지요.”
“적을 전멸시킬 수는 없겠군.”
혼트 제국군 기병대의 숫자는 2천. 2연대는 그 절반인 1천여 명에 불과했다.
필사의 각오로 돌격하는 혼트 제국군을 정면으로 가로막으면 오히려 큰 손실을 입고 만다. 적의 퇴로를 막기 위해 병력을 삼분(三分)한 것이 도리어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손실을 입지 않고 적의 발목을 붙잡고, 그 사이 합류한 패트릭과 3연대가 적을 포위 섬멸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적 지휘관이 유능한 자로군. 겁이 많거나 무모했다면 좋았을 것을.’
겁이 많은 지휘관은 갈팡질팡하다가 삼면포위를 당해 섬멸 당한다. 반면, 무모한 지휘관은 적장의 목을 쳐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패트릭에게 돌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장은 가장 좋은 길을 선택했다. 전투 경험이 매우 많은 자였다.
“자칫 잘못하면 큰 낭패를 본다. 2연대가 좋은 선택을 해야 할 텐데.”
“2연대장 달탄이라면 믿을 만합니다.”
“아무튼 우리도 2연대 쪽으로 움직인다. 서둘러라!”
“예.”
패트릭이 이끄는 1, 4연대는 동쪽으로 방향을 살짝 틀었다.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전투가 있었을까?
자칼 남작의 혼트 제국군은 전멸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 달렸고, 패트릭 또한 놓치지 않기 위해 최대속도로 2연대를 향했다.
패트릭의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2연대를 뿌리치고 퇴각하지 못하면 자칼 남작은 전멸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패트릭 또한 도박을 감행한 상황임은 마찬가지였다.
혼트 제국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며 계속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콘돌 기병대의 입장에서, 한번 습격했던 현장에 다시 되돌아온 것은 도박적인 결정이었다.
일단 위험을 감수한 이상, 반드시 이번 전투에서 성과를 거두어야 했다. 어떻게든 바덴 강 유역에 있는 혼트 제국군에게 타격을 주어야 했다.
이제 이 전투의 행방은 2연대의 대응에 달리게 되었다.
혼트 제국군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온다는 보고를 받은 2연대장 달탄은 자신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사적으로 돌진해오는 두 배 병력의 적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것은 무모한 일이지. 하지만 길을 비켜주자니 적을 살려 보내게 되는군. 이를 어찌 한다…….’
2연대장 달탄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답은 금방 나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력을 보존하는 것이다. 영주대리 베일도 전력손실 없이 적에게 타격을 줘야 한다고 당부했었지.’
전투는 앞으로도 있지만 죽은 병사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적을 그냥 멀쩡히 보내줄 수는 없는 노릇.
‘보내주되 그냥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겠다.’
결심을 굳힌 달탄은 1연대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각 백인대별로 산개하여 예상되는 적의 퇴로에서 대기! 1백인대부터 순차적으로 적의 중단과 후미를 공격한 뒤 추격에 가담한다. 각 백인장들, 이해했나?”
“옛!”
2연대 소속의 열 명의 백인장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달탄이 들고 온 전술은 차륜전(車輪戰)이었다. 열 개의 백인대가 순서대로 적을 치고 빠지기를 반복해, 정면으로 맞붙지 않고도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는 전략이었다.
열 개로 병력을 분산하기 때문에 위험도 있었지만, 적이 반격에 나설 시에는 달아나면 그만이었다. 시간에 쫓기고 있는 혼트 제국군이 쫓아올 리 없는 것이다.
“1백인대부터 나를 따라라!”
백인대들이 뿔뿔이 흩어져 적의 예상 퇴로로 향했고, 1백인대는 달탄과 함께 공격에 나섰다.
자칼 남작이 이끄는 혼트 제국군 기병대는 달탄과 1백인대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병력이 왜 저것밖에 없지?’
필사의 각오를 하고 달려왔는데 겨우 백여 명만 나타났으니 자칼 남작으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상대의 전술을 파악했다.
‘차륜전이구나.’
유목민족 전사들이 적을 괴롭힐 때 자주 쓰는 전술이니 자칼 남작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자칼 남작은 이를 악물었다.
“놈들이 차륜전을 택했다! 적은 계속 출현해서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도, 주춤하지도 않는다! 낙오는 곧 죽음! 절대로, 앞만 보고 달려라!”
“옛!”
“돌격―!”
“와아아아!”
혼트 제국군 기병대는 고함을 질렀다.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지르는 포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