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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49화 (449/529)

<-- 449 회: 경영의 대가 18권 -->

“그리고 사실 여기보다 안전한 곳이 어디 있어요? 여기가 점령당하면 어차피 이 나라도 끝인걸요. 다른 곳에서 마음 졸이고 있느니 그냥 여보랑 같이 여기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게 마음이 편해요.”

그건 그랬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안전한 곳에 있으라는 제안은 내 욕심일지도 모른다.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전쟁터에서 계속 싸울 나를 걱정하고, 이 나라의 안위도 걱정되니 편히 있을 수가 없다.

하아…….

정말 마음이 편치가 않다. 이놈의 전쟁.

제발 마음 편히 살고 싶다.

내가 이 짓을 빨리 그만두고 은퇴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이거다. 재상이라는 자리에 있으면 나라의 안위가 걱정되어서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한 뒤 열여덟 살 시절로 회귀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서 나는 하루도 안심하고 지낸 적이 없었다. 카르스 황제의 야욕과 멸망당하는 나라의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쫓기듯이 동분서주해야 했다.

“어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나는 줄리아와 시스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좀 마음 놓고 지내고 싶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어.”

“그런 날이 곧 올 거예요. 우리 조금만 더 참고 견뎌요.”

줄리아는 내 손등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힘내.”

시스도 날 응원한다.

나는 웃었다.

정말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일어나 어수선해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혼을 꺼렸던 나다. 하지만 막상 가족을 얻으니 내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어도 자포자기를 하지 않고 참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래, 힘내야지. 너희는 이 남편님만 믿으면 돼.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이 와도 우리 가족은 지킬 테니까.”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아냐, 우리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자. 만약에 전쟁에서 진다고 해도, 그냥 우리 식구 다 데리고 하늘을 날아서 튀면 그만이잖아?”

그러자 줄리아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뭐 저런 재상이 있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신이 나서 말했다.

“카르스 황제가 아무리 대단해도 설마 대륙 동쪽 끝까지 쫓아올 수 있겠어? 안 되면 하다못해 바다 건너 있는 무인도로 도망쳐도 된다고. 그거 좋겠다, 무인도. 내가 집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하면 되잖아.”

“평생 무인도에서 살자고요?”

“아니지. 그렇게 한 10년쯤 잠수 타다가 눈치 봐서 조용해졌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야지. 설마 전쟁 끝나고 그만한 세월이 흘렀는데 우릴 해치려 하겠어?”

“정말, 이런 사람을 레던의 현자라고 추앙하는 사람들이 불쌍해지네요.”

“어허,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시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무인도에서 우리 식구끼리 알콩달콩 평화로운 나날.”

“물고기 구워먹고?”

시스가 물었다.

“그럼. 아주 살이 통통하게 오른 물고기를 그냥 잡아다가 불에 구워먹고 쪄먹고 과일과 나물도 따서 샐러드로 해먹고, 새를 잡아서 통구이로 해먹을 수도 있다고. 무인도도 알고 보면 얼마나 먹을 게 많은데.”

“무인도 좋아.”

먹을 것 얘기를 하니 시스가 군침을 흘렸다.

“그치? 역시 우리는 천생연분 같아.”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우리 둘을 보며 줄리아는 이젠 질투할 기력도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와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니 다소 마음이 편해진다.

좋아, 최선을 다하겠어.

그러고서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아하하.

***

리간드 영지.

한때는 비텐 영지라 불렸던 곳으로, 영지의 절반 이상이 숲으로 둘러싸였던 험난한 영지였다. 얼마 없는 인구수에 몬스터는 들끓어서 살기가 힘든, 레던 왕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가난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카록 리간드 후작이 이 영지의 주인이 되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카록 상단에서 매달 보낸 지원금으로 부족한 재정을 충당했고, 영주대리 베일을 비롯해 딘, 렉스, 파오니 남작 등 유능한 심복들에 의하여 영지의 여건이 나날이 좋아졌다.

몬스터를 대대적으로 토벌한 뒤 조선소를 설립한 이후로는 카록 상단의 지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해졌다. 일자리는 넘치고 빈민구제책도 실시하여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졌다.

살기 좋은 영지라는 소문을 듣고 외부에서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었다. 정착금과 일자리까지 지원해준 탓에 인구수는 꾸준히 상승세를 탔고, 그 결과 리간드 영지는 나날이 부흥하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카록 상단의 자금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괜히 쓸모없는 촌구석 영지 때문에 돈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간간히 있었고, 실제로 카록 또한 별 의미 없이 불쌍한 영지민을 구제하는 의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선소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지금껏 투여한 금액을 넘어선 이득을 안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영지의 인구수도 수배로 늘어나 매년 거두는 세금 수익도 무시 못했다.

역시 카록 리간드가 건드린 사업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불패신화가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었다. 정작 본인은 영지 일에 아무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촌구석의 가난한 동네’에서 벗어난 리간드 영지는 이제 바덴 강 유역과 레던 왕성 다음 가는 세련된 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카록의 언변에 넘어가 영입된 천재건축가 파오니 남작의 활약이 시작된 것이다.

“흥미가 생기지 않아? 지금은 몬스터나 서식하는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융성하는 과정이 말이야. 내 제안에 응하면, 그대는 단지 하나의 조선소 설계자가 되는 게 아냐. 새롭게 탄생하는 도시 전체를 디자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는 거지.”

“도시 전체를…… 말입니까?”

“그래. 건축물 하나보다 훨씬 스케일이 크지? 물론, 파오니 남작 그대가 그만한 일을 감당할 만한 재능이 있느냐가 관건이지만. 어때? 할 수 있겠어? 자신이 없으면 물러서도 좋아.”

말재주꾼 카록 리간드가 던진 떡밥에 넘어가 이 촌구석 영지로 온 파오니 남작.

그는 정말로 심혈을 기울여 도시를 설계했다. 레던 왕국에서, 아니 대륙에서 가장 세련되고 우아한 도시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예술혼이 불타올랐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착민들의 거주지까지 일일이 파오니 남작의 설계에 따라 지어질 정도로 구석구석 공을 들였다.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도시는 도로의 벽돌 하나까지도 파오니 남작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

나날이 영지가 멋지게 변모하니 대대로 그곳에서 살았던 영지민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기뻐했다. 예전에는 늘 하루 먹고 살 걱정만 하며 살았는데,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영지의 주인인 카록 리간드에 대한 칭송이 하늘을 찔렀다. 이제 리간드 영지의 술집에서 ‘레던의 현자’를 욕하는 것은 싸우자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마지막 시련만 넘긴다면 리간드 영지는 앞으로도 계속 부흥할 터였다.

일개 영지가 겪을 시련치고는 스케일이 아주 컸지만 말이다.

***

리간드 영지는 현재 적잖은 병력이 집결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바스크 쿤트 백작이 이끌고 온 쿤트 가문의 군세. 용맹한 오러 마스터 바스크 쿤트 백작은 물론이고 리처드 벅이나 하딘처럼 뛰어난 가신기사들도 함께였다.

릭 페르난도 백작이 이끄는 왕실특별군의 전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총병력 5천에 경험이 풍부한(은퇴하려다 발목이 잡혀버린) 부사령관 바우텔 자작의 통솔력, 그리고 독자적인 자유지휘권을 가진 거침없는 오러 마스터 총사령관의 용맹이 조합된 정예 군단이었다.

게다가 차기 오러 마스터로 유력한 패트릭이 대장으로 있는 콘돌 기병대도 있었다. 전원이 귀순한 유목민족 전사들도 구성되어 있으며 혹독한 훈련을 통해 대륙 최고의 기동력을 가진 기병대로 거듭나 있었다.

일개 영지에 모인 병력치고는 그 전력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리간드 영지는 전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상대는 혼트 제국군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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