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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45화 (44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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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 18권

1장. 복귀

뮤트 공작가의 2만 병력 중 살아남아 후퇴하는 인원은 고작 6천여 명에 불과했다.

니젤 쥬르덴의 공격을 받아 막대한 피해를 입자 대제자 캠벨 자작을 비롯한 제자들과 3천 기병대만이 간신히 후퇴했고, 3제자 라우렐 남작이 남은 전 병력을 이끌고 끝까지 사투를 벌였다.

라우렐 남작은 용감하게 싸웠다.

뒤늦게 내가 합류해서 니젤 쥬르덴을 쫓아내었을 때 살아있는 병사의 숫자는 고작 3천여 명뿐이었다. 그나마도 라우렐 남작의 분투가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전멸했을 터였다.

다만 그런 아까운 인물을 살리지 못하고 임종을 지켜봐야 했으니 가슴이 아팠다.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혼트 제국군을 상대로 홀로 싸운 탓에 매우 지쳐 있는 나는 모든 전사자의 무덤을 만들어줄 여력이 없었다.

라우렐 남작만 땅에 묻고 아쉬운 대로 정령술로 그의 모습을 본뜬 석상을 만들어 세웠다. 나라와 전우를 위하여 목숨을 도외시하고 싸운 그의 용맹과 희생을 기리는 최소한의 성의였다.

그렇게 급조된 무덤 앞에서 생존한 3천 병사가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생전의 모습을 똑같이 재현한 저 석상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지만, 그는 이미 고인(故人)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싸우지 못한다. 이제 편히 쉬게 놔두어야 한다.

나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이제 그만 움직여야 한다!”

병사들은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이 쓰러진 이곳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

“이곳에서 머뭇거렸다가는 다시 적의 추격이 붙게 된다. 라우렐 남작의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 그만 움직여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병사들을 독려했다.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다시 돌아와 전우들을 제대로 장례해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떠나야 한다.”

다행히 병사들은 그제야 다시 진군을 할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이끌고 출발했다.

일단은 앞서 후퇴한 캠벨 자작 일행과 합류해야 한다. 그래야 패잔병 신세가 된 병사들이 캠벨 자작의 통솔 하에서 불안감을 다소 떨칠 수 있다. 군인은 자신의 직속 지휘관의 지휘를 받아야 정신적으로 안정을 얻으니까.

그리고 나 또한 캠벨 자작 일행과 합류해야 안심하고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령친화력이 거의 바닥을 드러날 정도로 힘을 소진한 탓에 지금의 나는 상당히 약해져 있었다. 지금 적의 공격을 받으면 꼼짝없이 당하든지 병사들을 버리고 혼자 달아나든지 둘 중 하나였다.

병사들이 진군을 시작했다. 그나마 천인장급의 장교가 한 명 살아남은 덕택에 병사들을 잘 수습한 모습이었다.

나는 노움과 샐러맨더, 실프를 모두 돌려보내고 운디네만 남겨놓았다. 내 몸속에 깃든 운디네는 치유의 힘으로 내 체력을 다소 회복해주었다.

“출발하지.”

내 말에 천인장이 진군을 명했다. 나는 병사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피로에 찬 발걸음들이 길게 이어진다.

우울함으로 물든 생기 없는 표정들…….

죽음이 수없이 펼쳐진 지옥도에서 간신히 살아 나온 이들은 대개 이런 얼굴을 하는 법이었다.

전쟁의 영광 같은 건,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이나 떠올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다행히도 캠벨 자작이 보낸 정찰병과 만날 수 있었다. 살아남은 아군 병사를 찾기 위해 정찰병을 잔뜩 풀어두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캠벨 자작 일행과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재상 각하, 무사하셨군요. 저희 병사들을 구해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전멸을 면치 못했으리라 생각했던 병사들이 3천 명이나 살아 돌아오자 캠벨 자작은 그나마 기뻐하는 눈치였다.

“미안하오. 라우렐 남작은 구하지 못했소.”

“……짐작했습니다. 그게 어찌 재상 각하의 책임이겠습니까? 전부 제 실책입니다.”

이번 패전은 캠벨 자작에게 큰 정신적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템플 오브 나이트를 빼앗기는 것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애당초 뮤트 공작가의 목표는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니젤 쥬르덴에게 대패한 일은 다르다.

물론 여건상 불리한 위치였다는 점은 있으나, 단판승부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캠벨 자작이 온전히 지휘권을 가졌을 때 벌어진 책임이었다.

물론 캠벨 자작이 잘못했다기보다는 니젤의 전략가적 기질이 뛰어났던 것이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도 안타까움을 느꼈다. 뮤트 공작도 무사히 피신시켰고 그의 제자들도 상당수 생존시키는데 성공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1만 4천여 병력을 잃고 말았다. 뮤트 공작가의 정예 병력의 가치는 그저 숫자만으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부족하나마 라우렐 남작은 그 평원에 묻어주고 석상을 세워놓아 넋을 기렸소.”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는 캠벨 자작. 정말 마음고생이 많아 보인다.

***

레던 왕성을 버리고 남하한 에릭 국왕이 근거지로 선택한 지역은 다름 아닌 후디니 자작령, 레이라 형수의 친정가문인 후디니 자작가다.

후디니 자작령은 이 나라 최대의 곡창지대라 반드시 지켜야 했고, 지리적으로도 레던 왕국 북부와 남부의 바덴 강 유역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전쟁을 총지휘할 사령부로 적합했다.

때문에 제론과 루이는 기동행정을 구상하면서 만장일치로 이곳을 근거지로 지목했다.

물론 사전에 그 땅의 주인인 후디니 자작과 협의를 했다.

아서 형님의 장인인 후디니 자작은 기꺼이 에릭 국왕의 요구에 승낙했고, 왕실의 승리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본래 왕실파도 육제후파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실리(實利)를 중시하던 후디니 자작가였다.

하지만 왕실파의 대표가문인 우리 쿤트 가문과 사돈이 되면서 왕실 측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번 전쟁을 계기로 아예 입장을 확고하게 왕실파로 정한 듯했다.

오러 마스터를 둘이나 배출하고 상급 정령사이자 재상인 나까지 배출한 쿤트 가문의 사돈가문이다. 그런 후디니 자작가가 왕실파로 입장을 정했으니 왕실도 후하게 대우해줄 거라고 계산이 선 모양이었다.

에릭 국왕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그를 백작으로 승작시켜주었으며, 왕실에 납부할 세액을 향후 5년간 절반가량 감면해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따로 더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후디니 가문은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상인 출신 가문이라고 해야 할까?

레던 왕실이 이곳에 자리 잡은 동안에는 자기 영지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후디니 자작은 기꺼이 왕실에 무한한 협력을 약속했다.

어차피 나라가 멸망하면 후디니 가문 또한 살아남기 힘들었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만 한다면 공로를 인정받아 대가문으로 부상할 발판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쿤트 백작가와 사돈지간을 맺음으로서 정치적 입지가 크게 성장한 후디니 자작가였는데, 어쩌면 현 후디니 자작은 가문의 부흥기를 이룩한 가주로서 역사에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 박제나 좋아하던 그 허영 많은 아저씨가 말이지.

캠벨 자작이 이끄는 뮤트 공작가 군대는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후디니 자작령에 도착했다.

패전 후 긴 행군으로 모두의 심신이 지쳐 있었다.

“드디어 도착했군요.”

캠벨 자작은 그새 10년은 더 늙은 듯한 얼굴이었다.

“뮤트 공작 전하께서도 이곳에서 정양(靜養)을 취하고 계실 것이오.”

“스승님을 무슨 낯으로 뵈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캠벨 자작의 잘못이 아니오. 어쩔 수 없었던 일 아니오.”

“귀중한 병사들과 라우렐 사제를 잃었으니 지휘관인 제 책이 아닙니까.”

“그리 따지면 뮤트 공작가를 구원할 임무를 맡았음에도 실패한 내 책임이오. 자, 지난 일 따지지 말고 일단 폐하부터 알현합시다.”

나는 캠벨 자작과 함께 에릭 국왕을 찾았다.

후디니 자작령에 마련된 에릭 국왕의 임시관저가 어디인지 굳이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

제론이 우리를 마중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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