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2 회: 경영의 대가 17권 -->
***
화르르르―
산 전체가 이글거리는 시뻘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산길을 가로지르던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은 산불에 가로막혀 멈춰서야 했다.
“히히힝!”
“이히히힝!”
그들을 태운 말들이 겁을 집어먹고 울음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쳤다. 절대로 저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 않을 거라고 표현하는 듯했다.
“하필이면 산불이라니?”
“하필이 아니야. 카록 리간드 놈의 짓이다!”
“그 간교한 놈이 이따위 장난질을 쳐놓다니!”
흑십자기사단은 불길 탓에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그저 나를 욕할 뿐이었다.
그랬다.
나는 땅속에 숨어서 놈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산불도 일으켰겠다, 함정도 파놨겠다. 이제 가만히 기회를 보다가 놈들이 빈틈을 드러낸 순간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물론 놈들이 산길을 포기하고 되돌아간다면 나로서는 가장 좋은 결과였다.
하지만 수장인 륭겐 후작은 몸져 누워있고, 나에게 여러 차례 골탕을 먹은 흑십자기사단은 여러모로 잔뜩 열이 받아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겠지 싶었다.
“무슨 방법이 없겠소?!”
흑십자기사단의 단원 한 사람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되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소?”
한 마법사가 말했다.
기사단원이 화를 냈다.
“그럼 지금 카록 리간드 놈의 불장난 때문에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임무를 포기하잔 말이오?”
흑십자기사단의 전 단원은 불길을 뚫고 가겠다는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정말인지, 광전사들이 따로 없다. 나한테 당한 게 그렇게도 분했나?
그러자 다른 마법사가 말했다.
“실드를 쳐서 말과 몸을 보호한 상태로 전속력으로 불길을 돌파하는 방법이 있소. 다만, 이 험한 산길을 화염 속에서 전력질주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오.”
“그 방법으로 합시다.”
흑십자기사단은 전원 찬성했다.
마법사들은 난색을 띠었지만, 흑십자기사단의 의욕이 너무 높아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와 기사단원이 한 명씩 짝지어서 나란히 섰다. 마법사들은 일제히 실드를 펼쳐서 말까지 전부 감쌌다.
그렇게 실드로 보호된 상태에서 그들은 빠르게 산불 속으로 뛰어들어 진격을 개시했다.
정말 의지가 대단한 것들이다.
그럼 이제 지나친 의욕은 몸을 망치는 법이라는 교훈을 배울 차례로군?
실드에 의존하여 불길 속을 달리던 그들은 이윽고 내가 미리 파놓았던 구덩이 함정에 연달아 빠졌다.
“으악!”
“엇!”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말과 함께 구덩이에 빠져버린 이들이 속출했다. 그나마 흑십자기사단의 단원들은 반사적인 운동신경으로 착지에 성공했지만, 함정에 빠진 마법사들은 그대로 목뼈나 팔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함정이다!”
“발밑을 조심해!”
파놓은 구덩이 함정 20개 중 10개나 효과를 거두었고, 2명의 사망자와 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2명은 모두 마법사였다.
자, 그럼 마지막 수를 써야겠군.
“노움.”
-응, 아빠!
“어스 월로 진로와 퇴로를 모두 차단해.”
-응!
노움은 삽으로 땅을 찍었다.
그러자 거대한 흙벽이 튀어나와 진로와 퇴로를 모두 차단했다.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불길 속에 가둬버린 것이다.
“카록 리간드!”
“놈이 여기 어딘가에 있다!”
“제길, 일단 길을 막고 있는 흙벽을 부숴버려!”
흑십자기사단은 앞길을 차단하고 있는 흙벽을 오러로 때리기 시작했다. 불길 속에서 무기를 휘둘러 흙벽을 부수는 그들의 모습은 대단히 필사적이었다.
나는 땅속에서 뛰쳐나왔다. 실프의 바람에 몸을 싣고 하늘 높이 치솟았다.
땅속에서 튀어나와 날아오른 날 발견한 놈들이 소리를 질렀다.
“카록 리간드! 네놈이!”
“죽여 버린다!”
우연이군.
나도 너희를 죽이려고 나왔는데.
“노움, 어스 스피어!”
나는 노움에게 정령친화력을 대량으로 전달했다. 하늘에 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00개가 넘어가자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흙의 창 숫자는 무려 200개였다. 200개의 흙의 창이 하늘을 온통 수놓은 장관이 산불이 난 산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200발의 어스 스피어가 일제히 낙하했다.
마법사들은 실드를 중첩으로 펼치고, 흑십자기사단은 무기에 오러를 잔뜩 싣고 방어태세를 갖췄다.
콰콰콰콰콰콰콰―!!
쩌렁쩌렁한 굉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흙의 창들이 적들을 미친 듯이 난타했다.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도 열심히 막아냈지만, 그들 사이에서 간간히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모여 있으면 피해가 더 커진다! 흩어져!”
어스 스피어가 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폭격하니 적들은 제각각 뿔뿔이 흩어졌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이쯤이면 됐다. 피해도 충분히 줬고 뿔뿔이 흩어지게 했으니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이곳은 이쯤 해두고 캠벨 자작을 도우러 가기로 했다.
나는 캠벨 자작 일행이 후퇴한 방향으로 날았다. 지금쯤 니젤의 2만 기병대의 추격을 받으며 힘겹게 후퇴를 하고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뮤트 공작가 군대가 향한 방향으로 비행했을 때, 정령과 공유된 감각으로 확인한 광경은 내 머릿속을 백지장처럼 하얗게 만들었다.
“이, 이게 뭐야?!”
뮤트 공작가의 군대가 혼트 제국군 기병대에게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었다.
혼트 제국군 기병대는 뮤트 공작가 군대를 포위한 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다.
황야에 잔뜩 널린 시체는 대부분 뮤트 공작가 병사였다.
어떻게 이런 참담한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거지?
아직 채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추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벌써 이렇게 괴멸지경에 몰리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캐, 캠벨 자작은 어디 있지? 다른 제자들은?”
나는 정령의 감각에 더욱 집중해서 캠벨 자작을 찾았다. 캠벨 자작은 보이지 않았다. 시체도 없는 걸로 보아 전장에서 벗어난 듯했다.
대신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뮤트 공작의 제자들 중 세 번째 서열이라던 사내였다. 이름이 라우렐 남작이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라우엘 남작은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병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안색이 창백한 걸로 보아 출혈도 있어 보였다.
“샐러맨더!”
-알겠다!
분노에 휩싸인 나는 샐러맨더에게 정령친화력을 있는 대로 퍼부었다.
샐러맨더는 거대한 불새로 변해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유혈이 흐르는 전장의 상공 위에 태양처럼 밝게 타오르는 불새가 등장하자,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쏠렸다.
“카, 카록 리간드다!”
“정령술!”
“레던 왕성 때 봤던 그 불새다!”
“도망쳐!”
겁에 질린 혼트 제국군 기병대가 우왕좌왕했다. 샐러맨더가 날개를 활짝 펴고 활강하자 비명을 지르며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크헤헤헤!
샐러맨더는 마음껏 날갯짓하며 혼트 제국군을 태워 죽였다. 샐러맨더로부터 도망가기에 바쁜 터라 포위망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이윽고 혼트 제국군 기병대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천인대별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모습이었다. 샐러맨더는 그중 2개의 천인대를 쫓아가 숯덩이로 만들었다.
“와아아!”
“재상 각하다!”
“흐흑, 살았어!”
불과 3천여 명도 남지 않은 뮤트 공작가 병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였다.
그들의 감격에 호응해줄 시간도 없이, 나는 라우렐 남작에게로 날아가 착지했다.
“라우렐 남작 맞소?!”
“재상 각하…… 오셨군요.”
라우렐 남작은 힘겹게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겼다. 안색이 파리한 걸로 보아 부상이 심각해보였다.
세상에…….
저런 꼴을 해놓고도 끝까지 말에 탄 채 지휘를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