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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40화 (440/529)

<-- 440 회: 경영의 대가 17권 -->

나는 땅속으로 이동하며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캠벨 자작 일행과 당장 합류할 수는 없었다.

이동 도중에 혼트 제국군의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정말인지 쥬르덴 후작은 얕볼 수가 없는 작자였다.

템플 오브 나이트를 점령하자마자 쥬르덴 후작은 영약하게도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을 보내 산길 루트를 통과하여 뮤트 공작가 군대를 추격하게 했다.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은 말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방 뮤트 공작가 군대를 따라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니젤이 이끄는 기병대 2만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캠벨 자작 일행인데, 그 강력한 흑십자기사단이 뒤에서 나타나버리면 더 큰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흑십자기사단과 합께 동행시킨 마법사들은 아마 나에게 대항하기 위함이겠지.

“하아, 첩첩산중이구나.”

내가 왜 혼자서 뮤트 공작가를 구원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을까. 왕실의 지원 병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텐데.

아무튼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은 가만 놔둘 수가 없었다. 2만 기병은 캠벨 자작 일행이 알아서 격퇴하게 맡겨두고, 저들은 내가 막아내야 한다.

마침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은 험한 산길을 지나고 있어서 지리적으로는 내가 유리했다. 흑십자기사단이 마음껏 말을 타고 달릴 수가 없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여 최대한 정령친화력을 아끼며 싸울 방책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냥 단순 화력 대결은 나에게 불리했다.

내 상태가 최상이더라도 흑십자기사단과 수많은 마법사를 상대로 정상적인 공방을 벌이면 내가 먼저 지칠 것이다. 하물며 지금 난 이미 적잖은 정령친화력을 소모했다. 캠벨 자작 일행을 도우려면 여력을 남겨두어야 한다.

으음…….

그럼 어떤 꼼수를 써서 상대해야 할까?

-다 태우자!

내 체온에 깃들어 있던 샐러맨더가 쑤욱 내 가슴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얘야. 나 지금 진지하거든?”

-태우자! 나도 진지하다! 활활 태우자!

“아 놔, 지금은 힘을 최대한 아껴야 할 때니까 뭘 태우느니 마느니 하는 소린 좀……!”

버럭 화를 내다 말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태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말이 다 장난같냐!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잘 하란 말이야!

나는 샐러맨더의 말대로 불태우기로 했다. 바로 산불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조그만 불씨도 큰 불로 이어지는 법이니, 산불을 일으키는 데는 정령친화력이 많이 소모되지 않는다.

“좋아, 해보자!”

나는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이 통과 중인 산길로 향했다. 하늘을 날면 눈에 띨 수 있으므로 계속 땅속으로 이동했다.

놈들이 지나갈 길목에 미리 도착한 나는 샐러맨더에게 지시했다.

“불 붙여.”

-크헤헤헤! 내 전문이다!

저 사이코패스 같은 샐러맨더 녀석은 그저 불태운다는 말에 좋아라하더니,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를 불 질렀다. 탁탁 불꽃이 튀며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불길이 이글거리며 크게 번졌다.

“실프.”

불 난 집엔 역시 부채질이지.

실프가 바람을 불게 했다.

화르르―

불길이 옆 나무에 옮겨 붙었다. 또 그 옆 나무에도 번졌고, 그 근처의 수풀에도 번졌다.

-저쪽, 저기 있는 나무들이 더 잘 탈 것 같다!

불장난 전문가인 샐러맨더가 훈수를 둔다. 나는 녀석이 가리킨 쪽으로 바람을 불게 해서 불길의 방향을 조종했다.

역시 꺼진 불도 다시 보라는 격언은 옳았다. 불길은 점점 거세져 큰 산불이 되었다. 이러다 이 일대의 산을 전부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게 아닐까 살짝 걱정될 정도였다.

자. 그럼 산불은 일으켰고, 그 다음 수를 생각해보자.

이 정도 산불로 놈들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마법사들도 함께 하고 있으니 마법으로 불길을 통과할 방법을 찾아낼 터였다. 그렇다면 그것을 대비해서 2중으로 함정을 파두는 게 좋지 싶었다.

잠시 궁리한 끝에 단순한 함정을 파기로 했다. 옛날에 자주 써먹었던 구덩이 함정이었다.

깊은 구덩이를 간격을 두고 여러 개 파놓았다. 불길을 뚫고 질주하느라 정신없을 테니 이 정도 함정에도 통할 터였다. 구덩이를 20개쯤 파놓았다.

자, 이제 그 다음 수를 생각해야지.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며 흑십자기사단과 마법사들을 상대할 준비를 갖춰놓았다.

***

정오가 지나고 오후로 접어들도록 전투 한 번 없는 기묘한 대치가 지속되었다.

늦은 새벽에 템플 오브 나이트를 탈출하여 지금까지 줄곧 걸었던 뮤트 공작가의 병사들은 서서히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적이 아직도 덤벼들지 않는구나.”

캠벨 자작의 얼굴 표정이 심각해졌다.

시간은 뮤트 공작가 측의 편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병사들의 피로를 감안하여 진군속도를 늦췄다.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흐른다면, 템플 오브 나이트의 공략을 끝마친 쥬르덴 후작의 본대도 재정비를 마친 뒤 추격에 나설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카록 리간드 후작이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아무리 날고 기는 대정령사라 해도 10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상대로 시간을 벌면 얼마나 벌겠는가?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뾰족한 수단이 없습니다.”

라우렐 남작의 말에 캠벨 자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의 기습이 없는 덕에 진군이 지체되지 않았다는 점이구나.”

진군 중에 적 기병대가 수시로 공격을 해오며 괴롭혔다면 진군은 지금보다 더 지체되었을 터였다.

이상하게도 적은 아직 그런 치고 빠지는 전술을 한 번도 펼치지 않았다.

“우리가 그에 대한 방비를 잘 하고 있어서 여의치 않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더 지쳐서 빈틈을 보일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을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은 더 편하구나. 하지만 방심하지 말고 주변을 정찰하도록 해라.”

“예, 대사형.”

***

한편, 니젤은 뮤트 공작군이 지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각지에 분산시켜놓았던 10개의 천인대를 움직여서 뮤트 공작군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에워싼 포위망을 완성하였다.

“왜 한 번도 공격을 시도하지 않나 궁금해 하고 있겠군.”

니젤은 저 멀리에 보이는 뮤트 공작가의 군대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의도하던 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싸움은 니젤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었고, 선택권이 없는 뮤트 공작군은 니젤의 주도대로 따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됐군.’

니젤은 마침내 승부수를 띄우기로 결심했다.

그는 병사 몇몇을 불러서 지시했다.

“각지에 분산 배치된 천인대들에게 전달해라. 3,4,5천인대는 적의 좌측으로, 6,7,8천인대는 적의 우측으로, 10,11,12,13천인대는 적의 후미로 이동한다. 신호를 내리면 적을 전후좌우에서 일시에 공격하는 것이다.”

“옛!”

병사들은 지시를 각 천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우리가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궁병을 좌우익과 후미에 배치한 것일 테지. 하지만 안 됐군. 그건 가장 큰 패착이 될 것이다.’

캠벨 자작은 니젤이 치고 빠지며 지속적으로 괴롭혀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니젤의 진짜 의도는 정반대. 그는 오히려 단판승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단숨에 뮤트 공작군을 괴멸시켜버릴 계획이었다.

병력은 비슷하고, 이쪽은 전원이 기병대라 기동력에서 압도적이었다.

이런 호조건이라면, 절대 우위에 있는 기동력을 십분 활용해 단숨에 적을 포위 섬멸할 생각을 하는 건 당연했다.

물론 단순한 포위진이라면 뮤트 공작의 제자들이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서 정면 돌파를 단행, 퇴로를 뚫을 것이다.

하지만 니젤은 그리 생각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점도 충분히 염두에 둔 전술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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