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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39화 (439/529)

<-- 439 회: 경영의 대가 17권 -->

“엄청난 대군이니 베잘리우스 대공의 환생이니 뭐니 하더니,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어디 하나 전황이 순조로운 곳이 없잖소! 이러다가 전쟁에서 혼트 제국군이 지기라도 하면 우리도 무사할 수 없소!”

안타레스 백작은 불안에 휩싸여 있는 린델 백작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성질만 급한 줄 알았더니, 참 간도 작은 친구로군.’

그렇지 않아도 매사에 침착하지 않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인 린델 백작인데, 혼트 황실의 깃발 아래로 전향(轉向)한 후에는 더 심해져서 쉽사리 냉정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육제후라는 든든한 공조체제에서 벗어나게 되고부터 안정감을 얻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각오했어야 했다.

섬기던 왕실을 배신하고 돌아서는 일은 아주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레던 왕실도, 육제후도 같은 편이 아니고 심지어 카르스 황제에게도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다. 그렇듯 입지가 불안한 상태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보게, 린델 백작.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보게. 레던 왕실의 선전은 우리로서는 아주 잘 된 일일세.”

“잘 된 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이제 레던 왕실과는 적대관계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혼트 황실의 편이 된 것도 아니지 않나.”

“그야 물론이오. 황제가 우리를 신임할 리 없잖소. 충성관계라기보다는 협력관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결국 린델 백작가와 안타레스 백작가는 이익 관계 탓에 레던 왕실을 배신하고 돌아섰다.

혼트 황실이 두 가문을 전적으로 신임할 리가 없었다. 다만 전쟁을 수행함에 있어 두 가문의 막대한 자금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손을 잡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 협력관계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 될 걸세. 달리 말하자면, 전쟁이 끝나면 황실은 더 이상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

대륙 최고의 노른자위인 바덴 강 유역을 지배하고 있는 두 가문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혼트 황실은 두 가문의 영지를 빼앗을 궁리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으로 나라 살림도 좋지 않은데다가 전쟁까지 치른 뒤이니 혼트 황실의 재정사정이 극히 어려울 터. 그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하여 린델 백작가와 안타레스 백작가를 내쳐버리고 재산과 영지를 빼앗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휘하로 들어와 충성을 맹세하고 전쟁의 승리에 큰 기여까지 한 두 가문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모든 걸 빼앗아버릴 수가 있냐고? 약육강식과 약탈행위가 일상화된 거친 혼트 제국의 정서상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혼트 제국이 전쟁에서 져야 하는 건 아니잖소! 레던 왕실이 승리하면 여세를 몰아 우리까지 단죄하려 들 것이오. 제길! 이제 보니 어느 쪽이 이기나 우리는 위태로운 처지로군!”

“쯧쯧, 너무 극단적으로만 생각을 하는군. 물론 전쟁은 혼트 황실이 이겨야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쉽게 이겨서도 안 된다는 뜻일세.”

“양패구상이오?”

“비슷하지만 다르네. 황제는 이번 전쟁을 끝으로 힘을 잃어서는 안 되네. 레던 왕국을 발판 삼아 오리엔 왕국까지 집어삼켜야지. 대륙정복을 내세웠으니 그 정도는 해야 우리가 그의 휘하로 전향한 보람이 있지 않겠나.”

안타레스 백작은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다만 이번 전쟁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유리하네. 이 전쟁이 끝나도 우릴 내칠 수 없도록 입지를 다질 시간이 필요하네.”

“으음…….”

“현재 혼트 제국의 권력판도는 유목민족까지 제압한 황제의 절대 권력에 귀족들은 숨죽이고 복종하고 있는 처지일세. 황제가 원정을 위해 나라를 비우고 친정을 떠난 터라 간신히 숨통이 트인 상황이지. 황제가 압도적으로 레던 왕국을 멸망시키고 승리를 거둔다면 상황은 변함없겠지만, 전쟁이 길어진다면 어떻겠는가?”

“혼트 제국의 귀족들이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하겠구려.”

“맞네. 바로 그때 우리가 파고들 수 있는 빈틈이 생기지. 황제가 전쟁을 치르느라 바쁜 틈에, 우리는 혼트 제국의 귀족들과 손을 잡고 새로운 공조체계를 만들어내는 걸세. 세력을 이루게 된다면, 전쟁이 끝난 후에도 황제가 우리를 내칠 수 없게 될 걸세.”

“레던 왕국 안의 육제후처럼, 혼트 제국 내부에 새 세력을 형성하자는 뜻이구려.”

“바로 그걸세. 귀족뿐만 아니라, 황제의 눈에 드는 데 실패해서 이번 원정에 참전하지 못한 제국군의 고위 장교들도 포섭 대상이지.”

“그렇게 세력을 일구려면 시간이 필요하겠구려.”

“그래서 전쟁이 쉽게 끝나서는 안 되지. 개인적으로는 레던 왕국이 장기전을 펼쳐서 5년, 아니 2년이라도 버텨주었으면 좋겠네. 그렇게 되면 계획대로 이룰 시간이 충분해질 테니 말일세.”

안타레스 백작은 끌끌 웃었다.

“황제는 위험한 인물이지만, 또한 우리에게 기회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지. 황제는 용처럼 날아올라야 하네. 다만, 우리가 용꼬리를 붙잡고 매달려서 함께 날 수 있도록 천천히 말이지.”

“허어!”

린델 백작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안타레스 백작의 대계는 그만큼 장대하였다.

‘이제야 불만이 조금 수그러든 모양이군.’

안타레스 백작은 불안한 심기가 진정된 듯한 린델 백작을 보며 피로를 느꼈다. 육제후들 중 뜻을 함께한 자가 이런 덜떨어진 인간 한 명뿐이라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육제후의 다섯 가문이 모두 자신의 대망에 따라주었더라면 일은 훨씬 쉬웠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육제후가 일제히 혼트 제국으로 넘어간다.

육제후가 빠져버린 레던 왕국은 혼트 제국군에게 맥없이 패배한다.

전쟁은 일찍 끝날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육제후 여섯 가문이 서로 힘을 합쳐 굳건한 공조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혼트 황실이라 해도 쉽사리 어쩌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바덴 강을 지배하는 육제후의 힘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린 혼트 제국이라 해도 얕볼 수 없는 저력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만 되었더라면, 황제와 육제후의 협력관계는 훨씬 쉽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황제는 야망대로 대륙정복을 계속 하고, 육제후는 바덴 강을 통해 물자를 지원한다. 그리하여 황제가 오리엔 왕국마저 무너뜨리고 대제국을 건설하였을 때, 육제후는 그 대제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한 축으로서 영화를 누린다.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레스 백작의 야심찬 대계는 시작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이를 방해한 인물이 있었다.

‘카록 리간드…….’

육제후의 구심점이었던 볼프강 란즈헬 백작의 사후 그 아들 제이슨 란즈헬을 설득하기 시작하더니, 란즈헬 백작가와 쿤트 백작가의 혼담을 계기로 육제후를 분열시켜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

안타레스 백작과 함께 혼트 황실에 투신한 가문은 린델 백작가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린델 백작은 카록 리간드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반발로 안타레스 백작을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안 끝났다. 그 정도의 방해로 흔들리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지.’

어느덧 80대 초반에 이른 안타레스 백작.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몸담으며 연륜을 쌓아왔다.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노회한 안타레스 백작은 질투가 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뜻을 꺾이고 싶지 않았다.

“인간은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습니다.”

“그럼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옳은 것을 외면하는데 익숙해진 것을 늙었다고 부릅니다.”

문득 카록 리간드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프게 심장을 후볐던 그 말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이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안타레스 백작은 싸늘하게 웃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승자가 옳은 거다. 살아남아서 승리의 역사를 기록해 후세에 전하면, 그게 바로 옳은 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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