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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26화 (426/529)

<-- 426 회: 경영의 대가 17권 -->

“재상이 직접?”

에릭 국왕이 놀라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제가 뮤트 공작 전하를 구출한 뒤에 합류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템플 오브 나이트를 공략 중인 12만 대군을 이끌고 있는 지휘관은 쥬르덴 후작이다. 이미 한 번 그대의 정령술에 크게 당한 그자가 그만한 대비를 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저 또한 정령친화력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면 정령술로서 적의 추격을 훼방 놓기에 충분하고, 만약의 경우 공작 전하만이라도 모시고 도주하겠습니다.”

“으음…….”

에릭 국왕은 또다시 고민하는 표정이다. 웬만하면 날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다시 말했다.

“카르스 황제가 작심하고 파놓은 함정에서도 무사히 빠져나온 접니다. 염려 놓고 맡겨주십시오.”

결국 에릭 국왕은 결정을 내렸다.

“좋다. 재상 리간드 후작 카록은 뮤트 공작을 구원하라. 이 구출작전에는 재상 외에도 로열나이츠 전원을 동원하겠다.”

“로열나이츠 전원을 말입니까?”

“폐하를 경호하는 인원은 남겨두어야 합니다.”

관리들이 놀라서 만류하자 에릭 국왕이 말했다.

“나 또한 내 한 몸 지킬 실력은 된다. 그리고 로열나이츠가 없어도 날 경호해주는 사람은 있고.”

에릭 국왕은 턱짓으로 등 뒤를 가리켰다.

에릭 국왕의 등 뒤에는 열다섯 남짓한 금발 소년이 버티고 서 있었는데, 바로 존 스페이였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에릭 국왕을 수행하기로 한 탓에 어디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릭 국왕도 존도 오러 엑스퍼트의 실력자였다. 당장 위험한 일에 처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뮤트 공작 구출 명령이 떨어졌다.

***

뮤트 공작의 위대한 승리로 사기가 크게 올라 분전을 한 뮤트 공작가 군대였으나, 적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쥬르덴 후작은 그 정도 돌발 사건에 영향 받지 않고 여전히 매섭게 템플 오브 나이트를 두들겼다.

“뮤트 공작도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두려울 게 없다!”

“그 잘난 뮤트 공작 한 번 나와 보라고 해라!”

혼트 제국군은 금세 사기를 회복하여 공격에 열을 올렸다. 워낙 숫자가 많은 탓에 전황이 유리하니 겁먹을 필요가 없었고, 륭겐 후작도 빈사상태이긴 하지만 목숨은 건진 터라 깨어나면 재기할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장의 패배에 자존심이 상한 흑십자 기사단의 맹렬한 공격 가세도 한몫했다.

나날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서 뮤트 공작 대신 지휘를 맡은 캠벨 자작의 걱정은 깊어져갔다.

“대사형, 더 위태로워지기 전에 후퇴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스승님께서 거동이 불편하신데 후퇴하다가 추격당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위험해져!”

“하지만 언제 점령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잖습니까, 사형! 당장 10구역 성벽도 파괴되기 일보직전인데!”

“맞아. 점령당하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야. 재상 각하께서 애써 만들어주신 비밀통로를 써보기도 전에 대다수가 잡혀 죽고 말아.”

“그래도 더 버텨봐야지. 스승님께서 조금이라도 회복하셔서 거동이 가능해지시면 후퇴도 쉬워질 거야.”

“스승님께서 과연 언제 그만큼 회복하실 지가 의문이야. 이기긴 하셨지만 스승님께서도 륭겐 후작만큼이나 큰 타격을 입으셨을 거라고!”

“그야 그렇지만…….”

뮤트 공작가의 주축인 제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 의견들을 모두 들으며 대제자 캠벨 자작은 갈등했다.

일단 후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은 일치했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아직은 굳건한 템플 오브 나이트의 성벽에 보호받고 있어서, 지금 후퇴를 한다면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반면, 성벽이 점령된 상태에서 비밀통로를 통해 후퇴하면 성내로 난입한 적에게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뮤트 공작의 거동이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아직 요양이 필요한 뮤트 공작을 데리고 후퇴하면 적의 추격을 뿌리치기도 힘들뿐더러, 급히 도주하는 와중이라 회복도 더뎌진다.

캠벨 자작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조금 더 버텨보자.”

“대사형!”

당장 후퇴하자고 의견을 냈던 제자들이 불만을 표출했다. 하지만 캠벨 자작은 손을 들어 그들의 발언을 제지했다.

“끝까지 들어.”

“…….”

“템플 오브 나이트를 계속 지키고 있되, 스승님은 미리 대피시키자.”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캠벨 자작의 주장은 이러했다.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계속 수성을 함으로서 적의 이목을 속이고, 소수 정예로 하여금 뮤트 공작을 보호하면서 비밀통로로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다.

적은 비밀통로의 존재를 모르니 뮤트 공작이 빠져나갔다고 생각지 못할 터였다.

“일단 정예 병력으로 1천 명을 추리고, 우리들 중에서도 10명 정도는 스승님을 모시기로 하자. 자, 누가 스승님을 모시고 탈출하는 임무를 맡을 테냐?”

캠벨 자작의 물음에 제자들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뮤트 공작을 수행할 인원은 10명.

나머지는 이곳에 남아 적과 항전을 벌여야 한다.

당연히 후자가 더 위험한 일이었기에 아무도 나설 생각을 못했다. 뮤트 공작의 제자들답게 모두들 서로 위험을 자처하려 했다.

“루크, 네가 맡도록 해.”

“전 싸우겠습니다. 사형이야말로 스승님을 모시시죠?”

“난 이곳에 남아야겠군. 스승님을 모셔야 하는 중요한 일은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을 거야.”

“저도 대사형과 함께 이곳에서 싸울 겁니다!”

캠벨 자작은 한숨이 나왔다. 하나같이 고집이 세서 양보할 줄을 몰랐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나서서 교통정리를 하기로 했다.

“일단 스승님을 모셔야 하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만에 하나 적이 나타나도 스승님을 지킬 수 있어야 해. 따라서 오러 엑스퍼트에 도달한 사람 중에서 선별하도록 하겠다.”

그 말에 아직 오러 엑스퍼트가 못 된 절반가량의 제자들이 안도를 했다.

캠벨 자작이 다시 말했다.

“일단 데릭.”

“예, 사형.”

평민 출신인 데릭이 지명을 받고 일어섰다.

데릭은 용병노릇을 하다가 뮤트 공작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된 케이스였다. 평민출신이라고는 하나, 백여 명이나 되는 제자들 중 무려 서열 2위였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실력과 노력을 중시하는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평민 신분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본래 뮤트 공작은 딱히 공식적으로 제자들의 서열을 규정해놓은 바가 없었다. 그저 입문 순서에 따라 사형제간이 결정될 따름이었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사제가 사형을 무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템플 오브 나이트에 또 다른 규칙이 하나 있었다.

오랫동안 뮤트 공작의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성취를 얻지 못한 제자는 스스로 템플 오브 나이트를 떠나는 것이다.

최고의 가르침을 받아도 소용없다면, 방랑수행을 떠나 많은 경험을 쌓으며 스스로 정진하여 벽을 깰 수밖에 없다는 철칙이었다.

이 불문율에 따라 실력이 낮은 제자는 스스로 템플 오브 나이트를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간혹 방랑수행 끝에 성취를 얻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오랫동안 뮤트 공작의 휘하에 남은 높은 서열의 제자들은 그 서열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캠벨 자작 다음으로 오랫동안 뮤트 공작을 스승으로 섬긴 데릭은 서열 2위의 지위에 걸맞게 오러 엑스퍼트 상급의 실력을 자랑했다.

충분히 작위를 받고 귀족이 될 수 있는 실력자였으나, 데릭은 무의 극의를 깨닫지 전에는 평민으로 남겠다고 스스로 맹세한 강직한 무인이었다. 물론 다른 사제들도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데릭을 존경하는 사형으로 여겼다.

“너는 나를 제외하면 가장 서열이 높은 제자이니 네가 스승님을 모시는 책임자가 되도록 해라.”

“전 대사형과 함께하겠습니다. 셋째나 넷째를 시켜도 될 일입니다.”

데릭이 거절했으나 캠벨 자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면 끝이 없으니 그냥 강요하마. 책임자는 너다. 네가 나머지 아홉 명을 뽑고, 정예 병력 1천을 선별해라. 이건 명령이다.”

“크윽…….”

데릭의 표정이 구겨졌다.

결국 책임자가 된 데릭은 다른 제자들 아홉을 선별했다.

뮤트 공작을 우선 피신시키는 일은 적이 잠든 한밤을 틈타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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