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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25화 (425/529)

<-- 425 회: 경영의 대가 17권 -->

“황제가 진군을 개시했습니다. 할슈타인 후작이 보좌하고 있고, 아마도 뮤트 공작가를 경유해 북부대로를 이용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레던 왕성에서 열린 마지막 대전회의였다.

군사부상서 제론의 브리핑에 대전에 모인 왕실 관리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던 카르스 황제가 마침내 행보를 개시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아보면, 카르스 황제가 일단 움직이면 반드시 큰 일이 벌어지고는 했다. 바덴 강 통행세 협상 때도 그랬고, 유목민족 반란 진압 때도 그랬다.

이제 그 목각인형 같은 젊은 황제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바덴 강 통행세 협상 때는 그 ‘육제후의 두뇌’ 볼프강 란즈헬을 상대로 모략을 보여주었고, 유목민족의 반란 때는 전쟁수행능력을 입증했다. 육제후의 두 가문, 린델 백작가와 안타레스 백작가까지 끌어들이면서 정략(政略)까지 보여주었다.

카르스 황제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역량을 가지고도 즉위 후 오랫동안 스스로를 감춰왔다. 레던 왕국도 오리엔 왕국도 배일에 감춰진 어린 황제의 위험성을 몰랐다. 심계와 인내심까지도 매우 깊다는 증거였다.

이제 그런 황제가 제 2의 베잘리우스 대공을 자처하며 대륙 정복에 나선 것이다.

크로센트 베잘리우스.

이 이름이 갖는 의미는 너무나 크다.

인류 역사상 가장 대륙 정복에 가까이 갔던 남자. 전쟁에서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는 불세출의 전략가.

군사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성(城) 공략도 수없이 성공한 이 전쟁의 귀재는 죽은 뒤에도 승리를 거둔 것으로 더욱 유명했다.

정복한 옛 오리엔 제국령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진압을 위해 출정 준비를 하던 중 병이 깊어져 사망했는데, 그의 죽음을 모르는 반란군은 베잘리우스 대공이 직접 온다는 소식만으로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던 인물이었다.

그런 베잘리우스 대공의 압도적인 이미지가 이제는 카르스 황제의 이름에 덧씌워졌다.

이는 카르스 황제의 의도된 전략 중 하나였다. 오랫동안 자신의 본색을 꽁꽁 숨겨왔던 카르스 황제였지만, 일단 정체가 드러나자 거꾸로 적에게 공포를 주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그것은 잘 먹혀들었다. 레던 왕국도, 오리엔 왕국도 카르스 황제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내 책임도 있다.

오래 전부터 카르스 황제의 위험성을 알리고 다니며 전쟁에 대비한 장본인이 바로 나다.

덕분에 오리엔 왕국과의 동맹도 성사시키고 육제후와의 관계도 개선했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나니 아군의 사기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레던의 현자조차도 두려워하는 황제’라는 이미지랄까?

하지만 우리 레던 왕국도, 오리엔 왕국도 겁먹고만 있지는 않는다.

나나 루이, 제론, 뮤트 공작, 아버지와 릭 형님 등 두각을 드러낸 수많은 인재가 명성을 떨치며 아군의 용기를 북돋고 있다. 오리엔 왕국 측에서도 영웅 브리튼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한 원군을 보냈다는 소식이었다.

거기에 레던 왕성 전투의 승리가 아군의 사기진작에 크게 한 몫을 했다.

귀족가문의 자제들인 학생들이 힘을 모아서 강대한 적을 물리쳤다는 미담(美談)이 귀족들은 물론 백성들마저도 감동시키고 있었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

“그렇다면 륭겐 후작과 쥬르덴 후작이 황제의 진로를 여는 선봉 역할을 하는 셈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에릭 국왕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다시 물었다.

“뮤트 공작가의 현황은 어떠한가?”

제론이 답했다.

“오늘 아침에 급보가 전해졌습니다. 뮤트 공작 전하께서 로 적 사령관 륭겐 후작과 일대일 대결을 벌여서 승리하셨다고 합니다.”

“오오!”

“뮤트 공작 전하께서!”

“역시……!”

대전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륙의 내로라하는 오러 마스터들을 서로 비교하며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이야기는 술자리에도 곧잘 오르내리는 화제였다.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 레던 왕국의 자존심인 뮤트 공작이 륭겐 후작을 꺾었다는 이야기는 크게 의미 있는 희소식이었다.

에릭 국왕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정말 잘됐군! 륭겐 후작을 죽였다고 하느냐?”

“죽이지는 못했지만 빈사상태에 빠져서 쥬르덴 후작이 전군을 지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뮤트 공작가의 사기는 크게 높아졌지만, 뮤트 공작 전하께서도 거동이 불편하신 상황이라 템플 오브 나이트의 전황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제론의 답변은 냉정했다.

호승심을 자극할 소식에도 냉정하게 그것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음, 그렇겠군. 군사부상서가 보기에 뮤트 공작가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가?”

“뮤트 공작 전하의 승리와 상관없이 혼트 제국군의 공격은 점점 거세지고 있습니다. 황제가 그곳에 당도하기 전에 템플 오브 나이트는 점령당할 것입니다.”

“뮤트 공작가는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 짐은 더 위험해지기 전에 뮤트 공작이 무사히 후퇴해주었으면 한다. 그런데 륭겐 후작 같은 강자와 생사를 놓고 겨뤘다면 그 후유증이 쉬이 회복될 것 같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구나.”

에릭 국왕은 크게 우려했다.

왕실 관리들의 안색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원군을 보내어 뮤트 공작 전하를 구출하는 것이 어떻사옵니까, 전하?”

한 관리가 그리 제안했지만, 에릭 국왕은 고개를 저었다.

“적의 숫자가 어림잡아 12만이다. 도움이 될 만한 규모의 원군을 보낼 여력이 레던 왕성에는 없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지.

잠자코 있었던 나는 슬슬 나서야 할 타이밍이다 싶어 손을 들었다.

“재상, 할 말이 있느냐?”

“예, 폐하.”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주목받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 며칠 휴식도 취했고 전쟁준비는 루이와 제론이 주도했기 때문에 한동안 내 역할이 별로 없었거든.

“제가 카르스 황제를 만나러 갈 때, 뮤트 공작가를 들러 손을 써둔 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뮤트 공작가에 비밀통로를 만들어두어서 유사시에 무사히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에릭 국왕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다만 혼트 제국군은 어떻게든 공작 전하와 그 제자들을 죽여서 후환을 없애려 할 것입니다. 그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우리 왕실에서 원군을 보내 구원해주어야 합니다.”

“혼트 제국군이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는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만 있다면야, 원군을 보내 뮤트 공작 전하의 퇴각을 돕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론이 내 주장을 뒷받침해주었다.

“레던 왕성 철수 작전에 차질이 빚어지는 수준의 원군은 안 됩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공작 전하의 안위보다 혼트 제국군이 당도하기 전에 레던 왕성에서 완전 철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모든 물자를 가지고 철수하려면 병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루이의 발언이었다.

관리들은 혀를 내둘렀다. 나라의 영웅인 뮤트 공작을 구원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말하는 루이가 냉혈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이의 말도 지극히 옳았다.

“차질이 없는 선에서 파견할 수 있는 원군은 어느 정도 수준이냐?”

“로열나이츠와 기병 1천 정도입니다. 그 이상은 레던 왕성 철수가 예정보다 늦춰집니다.”

“그것 갖고는 부족할 듯한데…….”

고민이 깊어진 에릭 국왕.

나는 웃으며 말했다.

“폐하,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원군은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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