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4 회: 경영의 대가 17권 -->
륭겐 후작은 온몸을 던지듯 다시 한 번 뮤트 공작에게 돌진했다.
간신히 한 발로 착지해 균형을 잡은 뮤트 공작은 다른 발로 성벽을 디디며 롱 소드를 휘둘렀다.
또다시 충돌.
꽈아아앙―!
뒷발로 딛고 있던 성벽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뮤트 공작은 성벽 아래로 추락했다.
“공작 전하!”
“스승님!”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비명성이 터졌다.
그러나 뮤트 공작은 왼손으로 성벽 틈새를 잡아 매달린 뒤, 추락한 반동을 실어서 다시 한 번 힘껏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새처럼 날아오른 뮤트 공작이 륭겐 후작을 향해 초고속으로 연속 찌르기를 펼쳤다.
광속으로 날아다는 롱 소드를 그에 못잖은 속도로 모조리 막아낸 륭겐 후작은 투 핸드 소드를 한 손으로 쥐고 한껏 휘둘렀다.
마치 투창을 집어던지듯이 우악스럽게 온 힘을 실은 일격이었다. 뮤트 공작은 왼손을 롱 소드 검신에 갖다 대고 양손으로 가드 했다.
쿠아앙!
뮤트 공작은 뒤로 수십 미터나 날아갔다. 공중에 뜬 상태로 방어를 한 탓이었다.
하지만 내상을 입었던 륭겐 후작 또한 타격이 없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충돌할 때마다 오러가 뒤엉키는 느낌이었다. 창자가 꼬이는 듯한 고통을 감수하며 륭겐 후작은 계속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팽팽했던 싸움의 균형이 조금씩 흔들린다. 균형이 깨지는 순간, 싸움은 무서우리만치 단호하게 결판이 나버린다.
‘후퇴할까?’
잠시 스친 생각.
“아하하!”
륭겐 후작은 웃었다.
그리고 돌진했다.
뮤트 공작도 승부를 보려는 듯 수십 미터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달려왔다.
콰르르르릉!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충돌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로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오러가 같은 오러 블레이드와 충돌하는 바람에 형태를 잃고 수증기 증발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오러의 폭풍이 사방에 휘몰아쳤다.
그들이 서 있던 10구역의 성벽이 파괴되었다. 오러 마스터들의 대결무대가 된 곳이 멀쩡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평생을 참았다. 네 말대로 목 타는 기다림 그 자체였다.”
검을 맞댄 채 뮤트 공작이 말했다.
“그런데 긴 세월을 살다가 마침내 오늘을 맞이해보니, 문득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더군.”
“유언?”
륭겐 후작이 이죽거렸으나 뮤트 공작은 무시하고 말했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냐고. 그럴 리가!”
뮤트 공작이 륭겐 후작을 밀쳐냈다. 간격이 벌어지자 즉시 롱 소드를 휘둘렀다.
륭겐 후작은 우측으로 몸을 꺾어 피하며 투 핸드 소드를 사선으로 휘둘러 올렸다. 기교적인 동작이었다.
뮤트 공작은 사이드스텝으로 피하며 륭겐 후작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리고 정석과도 같은 정면 수직 베기를 했다. 아주 기본적이고 강했다.
콰쾅!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방어해낸 륭겐 후작은 투 핸드 소드를 비틀어 롱 소드를 빗겨 흘리며 일어섰다. 손잡이로 뮤트 공작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고개를 뒤로 꺾어 피한 뮤트 공작은 다시 롱 소드를 수직으로 베어 내렸다.
콰아앙!
“큭!”
륭겐 후작은 또다시 신음했다. 충돌하면 할수록 내상으로 약해졌던 내부가 진탕되었다.
“삶의 완전함이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고통이 끝나기를 끝없이 인고하였는데, 본디 태어나 살다 죽는다는 것의 본질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런가.”
“살겠다. 끝까지 살고 또 살며 인고하겠다. 그러니 넌 죽어라.”
그 말에 륭겐 후작은 히죽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죽여 봐. 기다리고 있잖아.”
뮤트 공작은 롱 소드에 혼신의 힘을 실었다. 일평생 갈고 닦은 검술의 정수를 일격에 담았다.
롱 소드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날아든다.
‘멋지다.’
그 어찌나 아름다운 궤적이던지, 륭겐 후작은 순수하게 감탄하고 기뻐했다.
못 막을 것 같았다.
부서져버리고 말 것이다.
‘뭐, 그래도 좋다.’
어디 한 번, 날 부숴봐!
륭겐 후작은 씨익 웃으며 투 핸드 소드로 가드를 취했다. 그 위를 뮤트 공작의 롱 소드가 거세게 타격했다.
콰아아아앙―!
온몸을 부술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전신의 힘줄과 오러 홀이 파열될 것 같았다.
륭겐 후작은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온 몸이 붕 떠서 성벽 위에서 떠밀려졌다.
뮤트 공작이 악착같이 쫓아왔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는 집요한 의지였다.
‘아…….’
도약해와 자신에게 다시 일격을 선사하려는 뮤트 공작을 보며, 륭겐 후작은 죽음을 직감했다.
‘보인다.’
모든 것의 끝―.
부족하고 부족해서 끝없이 채워야 했던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의 정화(精華)가 손에 잡힐 듯이 눈앞에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이제 됐다.
이대로 죽기만 하면!
저 자의 손을 빌려 날 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충족된다. 바라 마지않았던 순간이었다.
짧은 순간에 지난 생애가 빠르게 뇌리를 스쳤다.
태어나서 싸우고 싸웠던 나날들.
순식간에 지난 63년을 다시 경험한 륭겐 후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롱 소드의 칼날을 바라보았다.
‘자, 와라. 어디냐? 목이냐? 아니면 심장이냐? 그래, 목이로군. 그래, 그게 더 적합하지. 취해라! 내 목을 취해라!’
롱 소드가 목을 향해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거짓말처럼 륭겐 후작의 오른손이 움직였다. 끝끝내 놓치지 않고 꽉 쥐고 있던 투 핸드 소드가 위로 올려졌다.
카앙!
투 핸드 소드가 롱 소드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뮤트 공작의 기세를 이기지 못했기에 충격파가 고스란히 온몸에 전달됐다.
“커헉!”
내장이 진탕되는 기분을 느끼며 륭겐 후작은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실 끊긴 꼭두각시처럼 아래로 추락했다.
뮤트 공작은 충격의 반동에 몸을 맞기고 성벽 위로 되돌아와 착지했다. 그리고는 추락한 륭겐 후작을 응시했다.
“놈…… 참았구나.”
생사의 기로에서 륭겐 후작은 생(生)을 택했다. 죽음 같은 고통을 감수했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다.
만약 자신이 저 입장이었더라면 어땠을까?
모든 걸 불태운 싸움 끝에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 자신 역시 륭겐 후작처럼 살기 위해 검을 들 수 있었을까?
뮤트 공작은 자신이 없었다.
자신을 끊임없이 죽음으로 몰아넣던 륭겐 후작은 역설적으로 실로 경이로운 생존본능을 보였다.
“사령관님을 모셔라!”
“빨리 가!”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추락한 륭겐 후작을 들것에 실어서 날랐다.
뮤트 공작은 위대한 승자의 얼굴로 근엄하게 성벽 위에 서서 그 모습을 오연히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존재는 혼트 제국군을 크게 위축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로 질 것 같지 않았던 자신들의 사령관을 무릎 꿇린 강자였다.
혼트 제국군 진영에서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12만 대군이 썰물처럼 후퇴했다.
“이겼다!”
“뮤트 공작 전하 만세!”
“템플 오브 나이트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와아아아―!!”
템플 오브 나이트의 성벽 위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뮤트 공작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스승님!”
대제자 캠벨 자작이 달려와 부축해주었다.
진정 위대한 싸움을 목격한 캠벨 자작은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이기셨습니다! 스승님은 진정 위대한 무인이십니다!”
“승리도 패배도 공허한 메아리처럼 덧없구나. 그저 살아있음이다…… 그뿐이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뮤트 공작은 캠벨 자작의 부축을 받으며 성벽을 떠났다.
크라일 뮤트 공작과 구스파트 륭겐 후작, 위대한 두 검호의 대결은 뮤트 공작의 승리로 돌아갔다.
레던 왕국의 사기를 크게 높인 이날의 대결은 훗날까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