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영의 대가-421화 (421/529)

<-- 421 회: 경영의 대가 17권 -->

“너도 애타게 기다리지 않았느냐. 전부 죽이고 자기 자신까지 죽이는 그 날을. 그것을 고대하며 묵묵히 이곳을 지켜왔던 거잖아!”

콰아앙!

륭겐 후작이 횡으로 힘껏 휘저은 투 핸드 소드가 뮤트 공작의 오른쪽 어깨에 적중했다!

뮤트 공작은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어깨를 감싸고 있었던 오른쪽 완갑이 박살나버렸다.

“어엇?!”

“공작 전하가!”

“스승님―!”

뮤트 공작가 측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싸움의 균형이 깨지는가 싶었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말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콰지직!

다시 한 번 반대로 휘둘러진 투 핸드 소드에 왼쪽 완갑마저 박살났다. 이번에도 맞는 순간 반대로 몸을 비튼 덕에 상처는 없었다.

“크하하! 얼마나 목 타는 기다림이었을까?!”

광소를 터뜨리며 륭겐 후작은 투 핸드 소드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우지직!

뒤로 스텝을 밟아 피해냈지만, 완벽한 회피는 아니었는지 몸을 보호하는 갑옷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와아아아―!”

“사령관님이 이긴다!”

성벽 아래의 혼트 제국군 진영에서 환호가 터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환호가 멎어들었다.

뮤트 공작이 만신창이가 된 갑옷을 오러로 악력을 가한 손으로 통째로 뜯어내버렸다. 갑옷을 벗어던지자 나타난 뮤트 공작의 평상복은 조금도 찢어지지 않고 멀쩡했다.

갑옷이 거추장스러워서 벗어버린 것이었다.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륭겐 후작의 공격을 피하며 무거운 갑옷을 부숴서 벗기 편하게 만들었다. 륭겐 후작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뮤트 공작을 빤히 보며 륭겐 후작은 씨익 웃었다.

“느껴진다. 이곳 템플 오브 나이트에서 느껴지는 너의 욕망이. 무인의 무덤을 만들면서 그곳에 묻힐 날을 기다려온 네 기분을 나는 알 수 있어.”

“…….”

“자, 바로 이 날이다. 기다려온 순간이 마침내 우리에게 찾아왔단 말이다!”

“……그런가.”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뮤트 공작의 입이 열렸다.

저벅.

뮤트 공작이 한 걸음 나아갔다.

륭겐 후작은 흠칫 상단방어 자세를 취했다. 누가 보면 겁먹고 과민반응을 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가 저 한 발을 딛고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륭겐 후작의 직감은 파악했기 때문이다.

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

그 모든 걸 한 순간에 알아버리는 것이 바로 무의 극의를 채득한 오러 마스터였다. 그런 자들의 싸움인 것이었다.

“네 말이 맞다.”

다시 한 걸음 내딛자 륭겐 후작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내 소임을 다하며 살아왔지만, 내심은 나 역시 이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려왔지.”

“크흐흐. 그래서 이런 멋진 최후의 무대를 만들어온 것이겠지!”

륭겐 후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뮤트 공작이 돌진해왔다.

광속으로 거리를 좁힌 뮤트 공작은 힘차게 찌르기를 펼쳤다. 륭겐 후작이 오른쪽으로 피하자, 롱 소드도 오른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꺾였다.

륭겐 후작은 상체를 한껏 뒤로 젖혀 피했다. 롱 소드의 오러 블레이드에 륭겐 후작의 머리칼이 석둑 잘려나갔다.

사방에 비산하는 머리카락을 뚫고서, 뮤트 공작이 계속 저돌적으로 달려왔다.

꽈앙―!

두 검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하는 바람에 생긴 오러의 폭풍이 거칠게 불어 닥쳤지만, 두 사람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충돌했다.

지축이 울렸다.

이러다 성벽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격투였다.

***

그것은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다.

부친은 전쟁에 미친 것 같은 사내였다.

그것이 삶의 낙이라도 되는 양 군대를 이끌고 국경지역을 순찰하거나 병사를 훈련시켰다. 성을 꼼꼼히 점검하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 싶은 성벽을 수시로 보수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부친의 모습을 봐왔던 탓에, 그게 가문의 수장이자 영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18세 성인이 된 기념으로 레던 왕국 곳곳을 여행 다니면서 그게 일상적인 평범한 영지의 모습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이 나라는 너무나 평화로웠다. 누구도 부친처럼 전쟁 준비에 골몰하지 않았다. 영지가 국경지역에 속해 있어 소소한 분쟁이 곧잘 발발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과했다.

군대를 양성하고 성벽을 보수할 돈으로 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무척 외롭게 사셨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부친은 전쟁 준비에 정신 팔렸는지 가족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서 더더욱 반감이 들었다.

한번은 부친에게 직접 말했다.

왜 그렇게 전쟁 준비에 골몰하시냐고.

영지가 혼트 제국과의 국경지역임을 감안한다 해도 너무 과도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부친이 답했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놈의 전쟁, 전쟁!

노기가 치밀었다.

물론 혼트 제국군의 국경수비대나 유목민족들이 이따금씩 약탈을 시도하기 위해 국경을 침범해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혼트 황실이 자기 나라 군대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약탈을 하는 이유는 황실에서 보급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나라가 무슨 전쟁을 일으킨단 말인가?

부친은 또다시 말했다.

“한동안 전쟁이 없었지. 하지만 그래서 더욱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전쟁은 일어난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방심할 즈음에 놈들은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대비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도 부친에 대한 반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동시에 부친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결국 과로를 하신 부친은 병을 얻고 말았다.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부친의 갑작스런 은퇴선언으로 인해 나이 서른에 가문을 승계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후계자로서 부친의 모든 걸 이어받을 준비는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검술에 조예도 깊었던 덕에 휘하 기사와 병사들의 신뢰도 충분히 얻고 있었다.

무리 없이 영지를 다스려나갔다.

가끔씩 혼트 제국군이 국경을 침범하여 넘어오곤 했다. 혼트 제국군 쪽에서는 무단으로 침략해 레던 왕국 군대와 싸우는 일이 신임 지휘관의 데뷔전쯤 되는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반격을 가해 호되게 쓴맛을 보여주었다. 달아나는 적도 끝까지 쫓아가 응징을 가하자, 혼트 제국군도 더 이상 함부로 경거망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이 나라는 평화롭다. 전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바덴 강을 장악하고 있는 육제후가 일제히 통행세를 인상하는 바람에 수입에 의존하는 혼트 제국과 큰 마찰이 벌어진 것이다.

혼트 황실은 그것을 명분으로 자국 경제의 모든 어려움이 레던 왕국의 악행 탓으로 돌렸다. 일부 사실이긴 했지만, 혼트 제국의 백성들이 살기 어려운 이유는 유목민족과의 내부갈등으로 치안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모든 재정을 군비에 쏟는 탓이다.

하지만 황실의 선동으로 혼트 제국 백성들은 레던 왕국을 무섭도록 증오했다.

갑작스럽게 양국 간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황실의 통제에서 벗어나 멋대로 움직이던 군대도 갑자기 증오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약탈하고 날뛰며 황실을 괴롭히던 유목민족도 갑자기 숨을 죽이고 침묵했다. 황실의 군대가 하나로 뭉쳤을 때, 증오의 화살이 자신들에게 향하면 안 된다는 것을 유목민족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상식이 파괴되었다. 혼트 제국은 하나도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무너졌다. 부친이 옳았던 것이다.

당황한 나머지 부친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병상에 누워 있던 부친은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에 대비해라.”

그제야 부친이 행하였던 바대로 전쟁을 준비했다.

다행히 전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레던 왕실은 혼트 제국과 군사대결을 벌이기보다는 분쟁의 원인이 된 육제후를 압박했다. 왕실이 결딴을 낼 각오로 육제후를 압박하니, 육제후도 이에 승복하여 통행세를 원래대로 낮추었다.

양국의 사신이 수시로 오가더니 어느새 전쟁 분위기는 사그라졌다.

또다시 부친에게 물었다.

“전쟁의 위기가 끝나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부친이 말했다.

“전쟁에 대비해라.”

한결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날부터 철저하게 전쟁태세를 갖췄다.

세간의 상식과 평화 분위기에 빠져 방심하였던 자기 자신까지도 철저하게 단련했다.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버리고 다시 만드는 고난의 수련이었다.

병상에 있던 부친은 물론 어머니도 여의고 혼자가 되었을 때쯤, 무의 궁극을 얻었다.

삶 전체를, 숨 쉬는 것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전투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이룬 것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명성을 얻었다. 레던 왕국은 다시금 당대에 나타난 자국의 오러 마스터에게 열광했다. 그리고 칭송했다.

레던 왕국 최고의 기사, 크라일 뮤트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