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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대가-420화 (420/529)

<-- 420 회: 경영의 대가 17권 -->

충격파가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뮤트 공작가 병사들은 휘말리지 않도록 물러났고, 성벽을 점거하려던 혼트 제국군 병사들 역시 부리나케 공성탑으로 되돌아갔다. 인간이 끼어들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다.

롱 소드는 크기도 무게도 적당해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검이다. 반면 투 핸드 소드는 중병기라 공격속도는 늦지만 그만큼 강력한 한 방을 갖는다.

물론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그런 무기의 특성에 구애받지 않는다.

하지만 검술의 스타일까지 달라지지는 않는다.

처음 무기를 잡고서 그 무기에 걸맞은 무예를 연마했으니, 당연히 오러 마스터가 된 뒤에도 그 스타일은 몸에 남아 있는 법이었다.

뮤트 공작이 공수 밸런스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평균적인 검사의 모범이라면, 륭겐 후작은 일격 일격에 파워를 싣는 변칙 스타일.

륭겐 후작을 상대로 한 방 한 방 맞부딪치며 겨루는 싸움을 해서는 뮤트 공작으로서는 이로울 것이 없었다.

노련하게 싸움을 자기 페이스로 끌고 가던 뮤트 공작이었으나, 륭겐 후작은 위험을 무릅쓴 과감한 움직임으로 반전시켰다.

륭겐 후작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뮤트 공작을 물어뜯듯이 공격했다.

콰앙! 까아앙!

뮤트 공작은 적절하게 빗겨 흘리며 륭겐 후작의 흉포한 공격을 막아냈다. 조용히 시작되었던 싸움은 서서히 치열한 접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템플 오브 나이트의 성벽 전체가 진동할 정도의 충격파가 계속해서 터졌다.

공방을 주고받으며 륭겐 후작이 문득 앞뒤 맥락도 없이 불쑥 내뱉었다.

“날 죽여라.”

“그럴 생각이다.”

뮤트 공작은 뜬금없는 말에도 동요 없이 대꾸했다.

“일전에 카록 리간드와 겨뤘을 때, 패배를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죽을 뻔했지. 그 망할 자식, 정말로 날 죽일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크흐흐.”

“아깝군.”

“막판으로 치달으니까 내게 선택의 기로가 있었지. 이대로 죽을까 항복할까. 살아있으면 또다시 싸울 수도 있고 얼마든 기회가 있을 텐데, 자꾸만 죽음이 끌리더란 말이야.”

“죽지 그랬느냐.”

뮤트 공작은 륭겐 후작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온 정신을 공격을 막아내는데 집중하며 가볍게 대꾸할 뿐이었다.

륭겐 후작도 뮤트 공작의 대답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예전에, 정말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 누군가의 창에 가슴을 찔려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쓰러졌지. 의식이 가물가물하더군. 내 인생에서 그때보다 더 죽음에 가까웠던 적은 없었어.”

륭겐 후작은 투 핸드 소드를 풍차처럼 휘둘렀다. 한 바퀴를 돌고는 뮤트 공작을 내리치나 싶었더니, 다시 한 바퀴 빠르게 돌리며 허리를 노렸다.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는 페인트였지만, 뮤트 공작은 속지 않고 반 박자 더 빠르게 찌르기를 넣었다. 노리는 부위는 가슴이었다.

륭겐 후작은 몸을 비틀어 피했다.

그로 인해 공격의 주도권은 다시 뮤트 공작에게로 넘어갔다. 뮤트 공작은 동작이 작고 빠른 공격을 불규칙한 박자로 퍼부었다. 륭겐 후작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것들을 모조리 막아내었다.

“묘하더군.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이 허망하게 망가지는 순간. 종종 어떤 어린아이는 열심히 공들여 쌓은 모래성을 발로 차서 부수고는 하지. 그런 묘한 쾌감이었어. 이해하겠나?”

“모른다.”

“그로부터 3년 뒤에 난 오러 마스터가 되었다. 어렵지 않더군. 이전까지는 말도 안 되는 요원한 경지였는데, 그때 일을 계기로 바뀌었어. 그냥 날 부수면 되더군. 열심히 깎아온 나를 그냥 발로 차 부숴버리면 되는 거였어. 크흐흐흐.”

그의 목소리가 점점 흥분으로 물들었다.

“내 가슴 한복판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 채우고 채워도 다 빠져나가버려.”

콰앙!

뮤트 공작이 내리친 롱 소드가 투 핸드 소드에 가로막혔다. 순간, 뮤트 공작은 손목을 비틀며 방어의 틈바구니로 롱 소드를 찔러 넣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찬탄을 마지않을 절정의 테크닉이었다.

하지만 륭겐 후작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미간을 노리는 칼날을 피했다. 오러 블레이드가 깃든 롱 소드가 지척을 스쳤음에도 공포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목말라. 평생 타는 목마름을 안고 지옥을 살아가고 있어. 나는 언제야 이 갈증을 채울 수 있을까?”

흠칫.

그 말을 듣고 뮤트 공작의 움직임이 움찔하고 미세하게 멎었다.

오러 마스터에게 그 ‘미세함’은 미세한 게 아니었다.

륭겐 후작이 재빨리 역습을 가했다. 뮤트 공작이 쥐고 있던 공격의 주도권이 순식간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실수를.’

말 그대로 실수.

륭겐 후작의 말이 너무나 가슴 깊이 파고들었기에 벌어진 작은 이변이었다.

륭겐 후작은 뮤트 공작의 어깨를 토막 내려 들었다. 칠흑색 궤적을 그리며 사선으로 떨어지는 투 핸드 소드!

뮤트 공작은 또다시 탁월한 동작을 선보였다.

롱 소드를 비스듬히 세워 륭겐 후작의 투 핸드 소드를 빗겨 떨구며, 동시에 우측으로 반보(半步) 사이드스텝을 밟았다. 방어와 회피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더없이 안정적으로 륭겐 후작의 공격을 무위로 돌린 것이었다.

“뮤트 공작. 이 기분 알지?”

륭겐 후작은 어깨로 뮤트 공작을 들이받았다. 뮤트 공작 역시 상체를 숙여 무게중심을 낮추고 몸싸움으로 맞받아쳤다.

서로 어깨를 맞댄 채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보통의 힘겨루기가 아니었다.

막대한 오러가 맞부딪쳐 서로를 밀어내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한다.

두 사람이 딛고 있는 성벽 바닥이 쩌저적 균열이 갔다.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던 중에 륭겐 후작의 음성이 또다시 뮤트 공작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지?”

“전장을 찾아 떠도는 승냥이 같은 자가 나에게 공감을 구하느냐?”

“그야 모양새는 다르지. 하지만 난 느낄 수 있어. 너도 나와 같다는 것을 말이야.”

“멋대로 나를 안다고 하는 사람처럼 불쾌한 자가 없지.”

“시치미 떼지 마셔. 원래 오러 마스터는 이런 인종이야. 자기를 끝없이 극한에 몰아넣어야 이룰 수 있는 경지! 그런 걸 정상적인 인간이 손에 넣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륭겐 후작이 가하는 압력이 점점 거세어졌다.

뮤트 공작은 두 발로 꿋꿋이 버티면서 이 힘겨루기에서 발을 뺄 타이밍을 재기 시작했다.

“롬펠 영감님도, 할슈타인 후작도, 바스크 쿤트도, 너도, 나도 전부 똑같은 족속들이야.”

“일반화가 심하군.”

“크하하! 웃기는군. 난 이 성을 보자말자 알겠던데?”

뮤트 공작은 할 말이 없어졌다. 묘하게 핵심을 찌르는 한마디였기 때문이다.

륭겐 후작이 말했다.

“정말 멋진 요새다. 돌 하나하나를 공들여 쌓아올린 게 느껴지는 성벽이야. 방어태세도 완벽하고. 수십 년 세월에 걸쳐 완벽에 완벽을 기하며 준비했겠지?”

“…….” 

“이 템플 오브 나이트를 쌓아올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나는 짐작돼.”

륭겐 후작의 일방적인 혼잣말은 어느덧 대화가 되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뮤트 공작을 공감시키고 있었다.

륭겐 후작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목 타는 기다림.”

그 순간, 륭겐 후작이 있는 힘을 다해 뮤트 공작을 밀어붙였다.

터엉!

타이밍에 맞춰서 뮤트 공작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롱 소드는 륭겐 후작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륭겐 후작도 쫓아가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5미터의 간격은 단숨에 좁혀졌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서로에게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꽈아앙!

또다시 격돌!

뮤트 공작의 롱 소드도, 륭겐 후작의 투 핸드 소드도 수십 개의 잔상(殘像)을 만들며 초고속으로 휘둘러졌다. 지금까지의 싸움을 10배 빠르게 반복한 듯한 광속의 격돌이었다.

한 숨 한 숨 흐트러짐도 없이,

손끝 하나, 발끝 하나의 불필요한 군더더기 동작도 없이,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웠다.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뮤트 공작의 눈빛은 깊고 무거워졌다.

륭겐 후작은 본색을 드러낸 양 사납게 웃으며 광전사처럼 투 핸드 소드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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