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 회: 경영의 대가 17권 -->
“내가 왔다, 뮤트 공작!”
륭겐 후작은 다시금 투 핸드 소드를 횡으로 힘껏 쓸 듯이 휘둘렀다.
콰르릉!
“끄악!”
“컥!”
병사들의 몸뚱이가 양분되었다.
륭겐 후작은 포효했다.
“이리로 나타나라, 크라일 뮤트! 이 륭겐이 널 위해 여기까지 오지 않았느냐!”
“와아아아―!”
공성탑에서 따라 내린 혼트 제국군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금방이라도 템플 오브 나이트의 성벽을 점거할 태세였다.
뮤트 공작가 측으로서는 저 사나운 오러 마스터를 제압하지 않는 한 성벽을 지키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뮤트 공작가 측에서도 이에 대응할 적절한 수를 내었다.
뮤트 공작이 륭겐 후작을 상대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었다.
“왔구나!”
륭겐 후작은 뮤트 공작의 등장을 절친한 친구 맞이하듯이 반겼다.
과묵한 표정을 유지하는 뮤트 공작은 허리춤에서 롱 소드를 뽑았다. 순수 미스릴로 이루어진 검신이 맑은 광채를 번쩍였다.
“시작하지.”
륭겐 후작은 칠흑색의 투 핸드 소드를 들어 상단자세를 취했다. 뮤트 공작은 이에 대비되는 하단자세를 취한 채 마주했다.
두 사람의 간격은 약 12미터.
오러 마스터인 그들이라면 충분히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누구도 그런 시도를 하지는 않았다. 공격거리가 길수록 오러가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기 때문이었다.
륭겐 후작이 먼저 한 발을 내딛자, 기다렸다는 듯이 뮤트 공작도 한 발 나아갔다.
서로의 간격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싸움의 양상은 천변만화(千變萬化).
두 사람의 싸움은 간격을 한 걸음씩 줄여나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외교 협상처럼 서로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의견의 차이를 조율한다.
둘 중 어느 한 쪽이라도 고집이 완고하면 조율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양보하면 형세가 불리해지기 때문에 상대방도 똑같이 완고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는 며칠이 지나도록 대치상태에서 싸움이 끝나지 않게 된다.
다행히 두 사람은 조금씩 양보를 하면서 싸움을 풀어나갔다. 타협이 이루어질 때마다 두 사람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 간격을 좁혔다.
이런 싸움은 륭겐 후작으로서도, 뮤트 공작으로서도 무척 오랜만이었다.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간격을 좁히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간격이 좁혀진 끝에 서로의 공격범위 안에 진입하자, 두 사람은 무거운 긴장감을 느꼈다. 이제부터는 언제라도 협상테이블을 부숴버리고 싸움을 개시할 수 있었다.
뮤트 공작은 륭겐 후작과 눈빛으로 소통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다시 한 걸음 전진했다. 또 한 번 협상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쿤트 백작과 다르군.’
바스크 쿤트는 싸움에 있어 타협이 없는 남자였다. 조금의 조율도 없이 곧바로 필살(必殺)의 단판승부로 치닫는다.
의외로 륭겐 후작은 사나운 기세와 달리 뜻이 잘 통하는 사내였다.
또 다시 두 사람은 간격을 좁혔다.
이제 그들은 제자리에서 검만 앞으로 뻗어도 상대에게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 정도로 지척에 상대를 둔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 그들의 형세를 보며, 싸움을 지켜보던 이들의 긴장감은 폭풍전야처럼 깊어져만 갔다. 혼트 제국군 진영의 지휘부와 흑십자기사단의 단원들도, 수비군을 지휘하는 뮤트 공작의 제자들도 숨 쉬는 것을 잊은 채 싸움을 멍하니 지켜봤다.
위대한 두 무인.
륭겐 후작은 수많은 전장을 떠돌며 맹활약을 떨쳤으며, 대륙 최강이라 자부하는 무력집단 흑십자기사단의 수장이었다.
뮤트 공작은 레던 왕국 최고의 기사로 공인된, 수많은 무인의 정신적 지주였다.
누구 하나 패배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또한 어느 한 쪽이 죽는 것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결판이 날 것이란 말인가? 아직 인간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듯한, 그런 승부였다.
‘어떠냐? 이제 슬슬 싸움을 시작해도 되겠는데.’
‘여기서 반보(半步)만 더 간격을 줄여볼 테냐?’
‘여기서 더?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건 너무 과하군.’
‘그렇군. 그럼 여기까지다.’
무언의 언어가 눈빛을 통해 오갔다.
두 사람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싸우자.’
‘시작이다.’
두 사람은 격돌했다.
***
재구성된 강력한 육체와 어마어마한 오러량을 지닌 오러 마스터에게 무기의 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떤 중병기도 가벼운 단검처럼 휘두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오러 마스터와 붙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극히 미세한 속도의 차이가 많은 것을 좌우한다.
때문에 투 핸드 소드의 륭겐 후작보다 뮤트 공작의 롱 소드가 더 빨랐다.
뮤트 공작은 빠른 찌르기로 가슴을 노렸다. 한 걸음 물러나 피한 륭겐 후작을 좌우로 롱 소드를 휘둘러 몰아세웠다. 륭겐 후작 또한 좌우로 사이드스텝을 밟으며 신속하게 포지션을 변경했다.
여기까지는 전초전. 상대가 누군지 살피기 위한 가벼운 인사였다.
진짜로 치열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뮤트 공작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은 자세를 취하자, 륭겐 후작은 좌측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며 투 핸드 소드를 비스듬히 들어 반격자세를 취했다.
뮤트 공작은 롱 소드를 아래로 내려 하단자세를 취했다. 그 즉시 륭겐 후작은 중단자세로 변경했다.
직접 검이 맞부딪치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은 치열했다. 보폭과 검의 기울기, 그 모든 변수가 수많은 결과를 낳는다. 그걸 본능으로 알 수 있는 오러 마스터인 두 사람이기에 계속 포지션만 바꿔가며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시금 뮤트 공작이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롱 소드를 사선으로 그어 올리는 일격이었다.
뒤로 물러나면 피할 수 있지만, 그때부터는 불리한 포지션이 된다. 그리 판단한 륭겐 후작은 물러서는 대신 자신 역시 투 핸드 소드를 휘둘러 뮤트 공작의 목을 노렸다. 자칫 같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뮤트 공작은 공격을 도중에 멈추고 롱 소드를 회수했다. 동시에 륭겐 후작 또한 투 핸드 소드를 멈춰 세웠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오러 마스터 외에는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 높은 공방이 짧은 사이에 수없이 오고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극적으로 공격하며 시종일관 유리한 쪽은 뮤트 공작이고, 륭겐 후작은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침착성을 유지한 채 방어에만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뮤트 공작은 달리 느꼈다.
냉정하고 침착한 대응을 하는 륭겐 후작이지만, 그의 체내에서 꿈틀거리는 오러의 움직임이 몹시도 흉포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사나운 살기가 피부를 찔러오고 있었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겠군.’
뮤트 공작이 그렇게 짐작할 때였다.
륭겐 후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슬슬 진심으로 가볼까?”
“난 언제나 진심이었다.”
륭겐 후작이 움직였다.
뮤트 공작은 그보다 더 빨리 움직였다. 륭겐 후작이 움직이려는 낌새를 파악하자마자 선수를 뺏기지 않기 위해 즉각 움직인 것이었다.
파파팟!
롱 소드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에 화려한 수를 그렸다. 타이밍을 빼앗긴 탓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나 싶었던 륭겐 후작은 곧바로 과감하게 뮤트 공작의 공격권에 뛰어들었다.
투 핸드 소드를 수직으로 휘둘러 뮤트 공작의 머리를 노렸다. 뼈를 주고 뼈를 치는 기세였지만, 뮤트 공작은 륭겐 후작이 선호하는 그런 패턴의 싸움을 할 의사가 없었다.
우로 한 걸음 옮기며 몸을 비틀어 피한 뒤, 뒤로 반 보 물러서며 견제삼아 륭겐 후작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런데 륭겐 후작은 상체를 한껏 반대로 비틀어서 피하더니, 그 자세에서 억지로 투 핸드 소드를 휘둘렀다.
깜짝 놀란 뮤트 공작은 다시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 앞으로 치고 나온 륭겐 후작이 투 핸드 소드를 수직으로 내리쳤다.
‘당했군.’
뮤트 공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롱 소드를 들어 방어를 취했다. 처음으로, 두 사람의 오러 블레이드가 충돌했다.
콰아아앙―!
어마어마한 충돌음!
뮤트 공작의 두 발이 딛고 있던 바닥이 쩌적쩌적 갈라질 정도였다.
“이래야지! 크하핫!”
흥분한 륭겐 후작이 광소를 터뜨리며 계속해서 공격했다. 뮤트 공작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맞받아쳤다.
콰앙! 쾅! 꽈아앙!